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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안식의 주인입니다 (창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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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안식의 주인입니다 (창 2:1-3)

기독교 공동체의 기원은 안식입니다.
아마도 안식일이 없었다면 교회는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 성수야말로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 마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일주일의 하루를 직장이나 노동에서 면제받고 쉰다는 것과 안식일에 안식을 제대로 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교회는 주일에 성도가 교회에 나옴으로서 주일성수를 해야한다는 것에는 소리를 높여 가르쳐 왔지만, 그 안식의 성경적인 의미 그리고 안식을 누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온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안식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대체 안식은 무엇입니까?
안식이라는 단어를 다른 말로 말하면 “마음의 공간” 혹은 “마음의 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기독교 작가는 성경적 안식을 가르쳐 “창조적인 쉼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즉 우리들 인생의 여정에는 쉼표, 즉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마음의 공간, 혹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도록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유가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 “일곱째 날을 복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식다운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질문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처음 안식일을 만드시고 쉬시던 하나님 자신의 모범에서 찾고자 합니다.

1.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고 했고, 2절에서는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6일동안 창조의 노동으로 단순히 피곤하셨기 때문에 쉬신 것이 아니라 일을 다 마치셨기 때문에 쉬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곱번째 날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것들을 돌아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의 창조가 마칠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소감을 기록하고 있고, 6일 동안의 창조가 다 끝났을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휘튼대학 교수였던 라이켄(Leland Ryken)은 “하나님은 만물을 단순히 실용주의적 관점뿐만 아니라 심미주의적 관점에서 지으셨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왜 우주는 계절마다 그 옷을 번거롭게 갈아입도록 지어졌는가? 봄철에 만물이 부활의 새 옷을 갈아입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여름의 푸르른 신록이 우거진 녹음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이며, 가을의 단풍과 낙엽이 우리를 쓸쓸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또한 겨울의 백설이 온누리를 덮어 순백의 세계를 만드는 비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지난여름 그 뜨거웠던 폭염은 어느 사이 식어가고 가을의 눈부신 조락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이 모든 만물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인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즐거워하고 기뻐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이런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도록 우리를 위해 준비된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노동은 우리 인생의 생존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모든 직업의 성직사상과 근면한 노동정신, 금욕의 정신이 격려되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인 복지사회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노동이 안식과 균형의 리듬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일 중독자가 되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가장 불쌍한 인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죽어라고 일만하다가 죽어 버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노동의 보람을 돌아보는 쉼표 즉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현재를 충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합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씀은 “특별히 구별하여 다른 날과 차별화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의 쉼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날의 가장 큰 행복이란 쉼을 통해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과 몸이 새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시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유익,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였습니다.

출31:17절을 보면, 안식일에 주님께서 누리시는 행복에 대하여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평안하셨다”는 말을 히브리어로는 “뱌인나파쉬”라고 하는데, 이는 곧 “성령이 임하셨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쉬실 때, 그는 “임하신 성령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안식일이 주는 또 하나의 축복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새롭게 충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면 촛불을 켜며 “빛이 있으라”고 선포한 후에 이어서 그들은 촛불을 들고일어나 찬미하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래 동안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미리 준비된 식탁의 음식을 즐기며 가족들간의 나누지 못했던 대화를 나누며 즐깁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여유있게 해뜨기를 기다렸다가 해가 뜨면, 온가족이 함께 일어나 영혼의 새힘을 얻고자 회당으로 손잡고 걸어가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아무 것도 안하는 날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리시는 성령충만의 기름부으심을 받는 축제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신학자 아브라함 조수아 헤셀은 “이날을 가르쳐 안식일의 여왕, 혹은 안식일이라는 신부와의 데이트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식”이라는 책의 저자인 여성 신학자 마르바 던은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지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통해 요즈음 많이 유행하는 진정한 웰빙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웰빙을 그토록 그리워하면서도 참된 웰빙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서두름의 노예가 되어버린 까닭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는 소위 인스턴트 문화에 중독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현대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라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간의 그 좋은 식사시간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하고 나누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식일의 여유는 우리에게 왜 필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주일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쉴만한 물가 곧 안식의 강가로 인도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주일예배와 교회생활의 사역을 통해 위로부터 내리시는 성령충만의 기름부으심으로 영육의 모든 것을 치유받는 감격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3.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합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가리켜 “게으른 민족”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키는 성경적 의미를 묵상하던 철학자 필로(Philo)는 안식일의 축복을 이렇게 변호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율법이 우리의 태만성을 고취하는 것이 아니다. 이날의 축복은 오히려 끝날 줄 모르는 수고로부터 숨을 돌리게 해주고 또 사람들을 규칙적으로 계획된 쉼의 제도아래 둠으로써 사람들의 육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다시 옛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주려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 뿐 아니라 운동 선수들도 숨 돌리는 휴식의 여유를 가짐으로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자신들 앞에 기다리는 과업들을 효율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라이켄 교수는 “안식일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며, 우리의 현재를 성령의 능력으로 충전하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는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안식일의 목적 자체가 단순한 안식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성경은 창세기2:3절로 끝나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을 통해서 성령충만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하여 모든 질병과 모든 문제를 치유받고, 인생의 새 비전을 안고 다시 일터로 나아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쓰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선한 일은 참된 안식을 모르고 사는 이웃들에게 안식의 주인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안식의 선물을 이웃들에게 기쁨으로 나누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그리스도안에 예비된 안식을 당당하게 누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 우리가 성령충만한 가운데 확실한 증거를 가진 삶을 통해 안식의 주인된 삶을 사셔야 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교회는 바로 세상을 향해 이 세상이 찾고 있는 성령충만한 참된 안식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그리고 우리 목장교회에 나오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고, 영적인 쉼을 얻고,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게 하는 교회공동체, 바로 그런 쉼터가 되도록 우리 모두는 새생명 축제인 “해피데이 1028. 한 영혼을 두 팔로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주(10월 3-4일. 수-목)에 있는 바자회에 여러분이 마음에 품고 있는 태신자를 초청하여 식사를 같이 나누고, 그들에게 복음의 접촉점을 마련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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