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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 (행 2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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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사람 (행 27:1~11)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가들 그리고 종교인들이 정부와 정당에서 정치 활동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먼저 여기에 대해서 저의 견해를 밝히면 저는 전적으로 반대합니다. 시민단체들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와서 일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저는 그 일에 대해서 아주 반대를 했습니다. 몇 푼 되지 않았지만 저도 오래전에 시민단체에 조금씩 후원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그 후원하는 일을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각각에는 전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 특히 전문가들은 자기가 서야 할 자리에 서서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저의 의견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사람을 보시면서 이 일에는 이 사람이 전문가라고 생각하면서 그 사람에게 전문적인 탤런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에는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에 대해서 저는 시민운동가들은 시민운동을 하고 종교인들 즉, 신부라면 신부의 일을 목사라면 목사의 일을 하는 게 옳다는 저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사실 각자 자기가 맡은 일 하나만 하기에도 벅차고 잘하기 참 어렵습니다. 설사 이것저것 다 잘한다고 해도 겸손이 있어야지 자기는 이것저것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이고 탐욕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 언론인이 이것에 대해서 발표한 의견이 있는데 간추려서 소개를 합니다.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 이유는 사회에서 각자의 맡은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운동가들은 운동가로서의 역할을 해 온 것인데 그들을 운동가가 아닌 집행 당사자로 만들었을 때 과연 달라진 기능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시민운동가는 비판이 그의 기능이다.’ 그렇습니다. 목사는 목사가 그의 기능이고 신부님은 신부가 그의 기능입니다.

그는 또 ‘사회에서 소금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소금이 부패는 막지만 소금 자체가 간고등어가 될 수는 없다.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이미 있는 것,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해 비판이나 개선요구는 잘할지 모르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는 익숙지 않다. 대중운동이라는 특성 때문에 목소리는 크나 그에 버금가는 내실이 있는지는 검증이 안 되었다. 현실을 파악하는데 이해나 아량보다는 잘못에 대한 정죄에 익숙하다. 기업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은 하지만 그들이 기업가는 될 수 없다. 이를 확대한다면 이들은 분배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파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없다. 본래 그들은 사회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은 대중동원 운동이다. 그 성격상 이성적이기 보다 감정적이며 현실적이기 보다는 관념적이다. 운동가는 전문가이기 보다는 상식인이다. 사회는 발전할수록 복잡해지며 복잡성은 전문가를 요구한다. 어느 분야나 기관도 몇 십 년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되어 책임을 맡게 된다. 운동가가 촛불시위를 주도할 수는 있으나 촛불시위를 잘했다고 하여 그들에게 외교를 맡길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운동가들에 의한 수술이 아니라 분야별 전문성을 회복할 때이다. 시민운동가는 운동가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이 지금까지 성공적이었다면 그들이 운동가에 맞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 그들의 성공적이었다고 정치나 나라 일을 하는데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에게 맞는 전공이 있는 법입니다. 어떤 일에 대해서 의견이 나누어지고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구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한 번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들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그 일에 대해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물론 최고 책임자가 결정하고 선택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책임자는 그 모든 일에 대해서 최종까지 책임은 지되 그 일에 대해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곳에서든 마찬가지입니다. 후배든 부하든 그들의 의견을 들어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해 나가는 것이 최고 책임자이지 자기가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이 최고책임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판단하는 것은 최고책임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판단은 전문가에게 맡겨줘야 합니다.

나라 일에 대해서 예를 들면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나라의 모든 큰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판단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라야 합니다. 대통령이 일일이 다 나서게 되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로 회장이나 최고경영자가 모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서 마지막에 종합적인 결정을 내릴 수는 있어도 일일이 모든 일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참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경제가 현재 우리나라의 최대 이슈인데 지금 이러한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 경제를 잘하는 사람을 뽑을 것인가? 사업을 잘하는 사람을 뽑을 것인가? 경영능력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경제를 잘 알고 사업능력이 있는 사람을 잘 보고 뽑아서 쓸 수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가 경제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교육만 가지고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은 전문가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디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기독교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교회와 기독교 신자는 이 부분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 까닭은 교회라는 것이 신앙적인 공동체이고 신자들이 신앙적인 사람들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문가적인 요소들을 과소평가하거나 간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이 병에 걸렸습니다. 정신적인 질환이든 육체적인 질환이든 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병에 걸렸으면 의사에게 물어야 합니다. 의사에게 가지도 않고, 의사가 처방해준 약도 먹지 않고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내가 너에게 약을 주었는데 약을 먹지 않고 병을 낫게 해 달라고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의사를 보내 주었는데 의사를 싫어하고 나에게 직접 낫게 해달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고 말씀하십니다. 약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것이고 의사도 의학적인 치료방법도 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습니다. 내가 제일 전문가를 보내 주었고 제일 좋은 약을 보내 주었는데 왜 그것을 쓰지 않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연구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책도 보고 연구를 해야 하는데 예배당에 와서 기도만 하고 산에 가서 밥 안 먹고 잠 안자고 기도만 한다고 하나님께서 답을 주실 것 같습니까? 나도 모르겠다고 하실 것입니다. 좋은 책도 많이 있고 좋은 경험자나 주위 사람에게 배워야 합니다.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합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은 전문가에게 다 맡겨야 합니다. 대통령도 최고경영자도 교회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가이사랴로 이감되어 다시 배를 타고 로마에 가고 있는데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상당한 고생을 하였는데 이때 하나님의 종인 사도 바울이 나서서 지금 로마에 가려고 계속해서 배를 항해하면 큰일이 날 것이니 기다렸다 다음에 출발하자고 말하였습니다. 백부장이 최고책임자였으므로 그 소리를 들은 백부장은 당연히 선장이나 선주에게 물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에게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과는 달리 지금 가도 괜찮으니 계속 가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분, 결정권자인 백부장은 누구의 의견을 들어야 되겠습니까? 선장과 선주의 의견을 들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배를 타고 이런저런 경험은 했지만 전문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극히 당연한 이 일을 두고 성경은 의외로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11절에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마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백부장이 나의 종인 바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의 말을 들은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당연히 전문가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를 두고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세상의 이치가 있고 세상의 전문가가 있으므로 세상의 이치를 따라야 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도 세상 이치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고 세상 전문가들의 의견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 당신이 나서게 되면 세상 이치나 세상 전문가들은 자리를 비켜야 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개입하는 데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누구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어서시면 세상의 이치도 세상의 논리도 세상의 전문가들도 다 하나님에게 자리를 비켜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아닌 것이 맞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맞는다고 하시면 맞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사람은 곧 죽을 테니 준비를 하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일어 날것이라고 말씀하시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이고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 회사는 망하겠다고 말해도 하나님께서 망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 그 회사는 더 잘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문가들이 대체로 옳지만 특별히 이런 경우에는 옳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나설 때가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주인이시고 우주의 주인이시고 모든 일의 주인이시고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 할지라도 나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비전문가인 사도 바울이 10절에서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이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이 이런 비밀을 아는 사람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신 같은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나서느냐고 말하였고 선장과 선주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여러분,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고생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고생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고생시키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별로 잘하는 것 같지 않은데 자기 아내를 정말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도 잘하고 잘났으니까 장가가면 자기 아내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좋은 아버지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도 고생하고 다른 사람도 고생시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도 행복하게 살고 다른 사람들도 정말 행복하게 살게 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서 나뉘어 집니까? 잘하고 못하고가 아닙니다. 이런 비밀을 아는가 알지 못하는가에 따라서 나뉘어 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백부장이 결정한대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결국 배안에 있는 물건을 전부 바다에 다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도 결국에는 배는 파선되고 사람들의 생명만 겨우 건지게 됩니다. 자기도 고생을 하고 모든 사람이 다 고생을 했습니다.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선장의 말을 들어서 그렇습니다. 백부장이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오랜 옛날 이집트의 바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셉을 만났던 바로입니다. 바로는 이런데서 분별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대개 똑똑한 사람들은 꾼 꿈을 두고 이런 저런 해몽을 하지만 이 이집트의 바로는 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꿈을 바르게 풀 수 있을까 생각하여 요즘 말로 하면 무당도 부르고 점쟁이도 불러 다 들었지만 마음에 영 동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결국 어디까지 갔습니까? 감옥 속에 있는 나이가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을 불러냈습니다. 수염이 근엄한 도사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 어린 사람을 불러서 어떻게 이야기했습니까? 내가 듣자니 당신은 꿈을 들으면 해석을 잘한다고 하니 나의 꿈을 좀 풀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얼마나 겸손한 사람입니까? 자기 땅에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자기 역시 상당히 똑똑한 사람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감옥 속에 있는 나이 어린 요셉을 불러서 제발 좀 가르쳐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늘의 비밀을 알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을 잘 만나냐 합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 바로 왕을 만났기 때문에 고생을 덜 했습니다. 바로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제 반대의 한 예를 들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람이라는 나라 사이에 전쟁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은 밀리게 되지만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 성은 포위되어 보급로가 끊겼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가 나서서 “여러분, 내일 이맘때쯤 되면 여러분이 얼마든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정치에 대해서 모르고 전쟁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하나님의 종 엘리사가 그런 소리를 하자 당시 이스라엘 장군 중 한 사람이 “네 까짓 게 무얼 안다고 이런 소리를 하느냐? 하늘이 구멍을 열고 거기다가 쌀을 쏟아 부어줘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엘리사를 통해서 내일 모든 사람들이 배가 부르도록 먹어도 당신은 먹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말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엘리사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게 해서 그런 말을 하게 했는데 네가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날입니다. 정말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람을 다 뒤집어 흔들어 놓으셨습니다. 아람 군대가 혼비백산하여 도망하게 되는데 그들은 군량미나 좋은 것을 다 두고 도망 가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도같이 밀려가겠습니까? 그 동안 얼마나 굶었습니까? 심지어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까지 먹었던 사람인데 얼마나 무섭게 달려갔겠습니까? 달려가서 마음대로 즐겼습니다. 마음대로 즐기는데 어제 함부로 말한 이스라엘의 장관은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차여서 죽고 말았습니다. 모르면 그렇습니다. 똑똑해도 똑똑한 척하지 않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따로 있을 때가 있는데 이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이런 비밀을 아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비밀을 알게 되면 여러분이 가장이라면 식솔들이 행복하고 집안이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회사를 경영한다면 함께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사회의 지도자라면 여러분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연말에 뽑을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이런 비밀을 알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상관없습니다. 잘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몰라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 비밀만 알면 어쩌다가 소 뒷걸음치다가 일이 해결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자기도 알지 못하는 이런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정말로 멋있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고 이럼 사람을 가리켜서 복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아우성 칠 때에도 이런 사람은 아주 멋진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정말 자신만만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제가 맨 처음에 교회를 개척하려고 할 때에 이런 저런 걱정이 많던 저에게 어떤 분이 “목사님 절대로 괜찮을 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나는 걱정스러워 죽겠는데 저 양반은 뭘 봤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분, 남편이 어떤 일이 있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당신은 잘 될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십시오. 이 비밀을 알면 이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공부하는 아이가 힘들어 죽겠다고 말할 때 엄마가 절대로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우리 어머니가 새벽기도를 하다 무슨 계시를 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남편들도 남편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 아내에게 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는 가지 않으면서 새벽기도 가라고 아내를 깨웁니다. 내 아내에게는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말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런 권세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기왕 예수를 믿으면 이런 안목을 가지고 이런 비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가 자신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 꼬질꼬질하게 살 것이 아니라 정말로 멋지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집사님, 권사님 기도 좀 해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꼭 잘 되어서 아니라 못되어도 나에게 권세가 있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 앞이 너나 잘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꼭 우리가 잘 살고 건강하고 뭐든지 잘되어야지 세상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당당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멋짐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라 라고 정말로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 믿는다고 정말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이런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사울에게는 어떤 근거가 있었습니까? 23절부터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샤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내가 지켜 주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26절 말씀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바다에 빠져 죽지 않고 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런 비밀을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이런 비밀을 알 수 있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말씀하시면 세상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말해도 나는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십시오. 세상의 어떤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아멘’하고 받아들이고 멋진 모습으로 살아가십시오, 사도 바울이 지금 모든 사람이 죽는다고 아우성치고 배가 흔들리고 난리가 나도 얼마나 당당하고 멋있게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면 우리 하늘의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그 비밀과 신비를 알게 해 주시고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당당하고 멋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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