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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엣 것을 생각하고 찾으라 (골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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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엣 것을 생각하고 찾으라 (골 3:1-4)

인간의 삶이란 생각의 차이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합니다.[존 템플턴]은 말하기를"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생각은 그 속성상 밖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80-20법칙이란 게 있습니다. 이 법칙에 의하면 20%의 생각이 80%의 삶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은 항상 우리의 생각으로부터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못하고 좋은 생각이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쁜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이 좋은 행동을 할 리가 없습니다. 생각이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이라면 손과 발이 그리고 행동 또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가면서 평소에 무엇을 보고 사느냐 혹은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일생동안 무엇에 몰두하고 있느냐는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존재요, 삶의 의미요, 또 그 사람의 운명입니다. 가만히 보면 사람의 생각이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됩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나쁜 생각에서 시작된 잘못된 습관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걸 평생 되풀이 하면서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여러분은 평소 무슨 생각 속에 살아가십니까?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습니까? 가끔씩 예배 시간에도 보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표정에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설교를 하면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둘러보면서 설교를 합니다. 그러다 보면 혼자 빙긋이 웃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제가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웃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또 그런가하면 분명히 웃어야 할 타이밍인데 멍하게 입 벌리고 눈동자는 초점이 풀린 채로 쳐다만 보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가 궁금합니다. 사람이 이렇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행동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이 추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해 지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생각에 따라 일생이 걸린 문제라고 한다면 얼마나 중요합니까? 더군다나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보느냐가 영혼에 관한 문제와 직결 된다면 또 어떻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인의 존재 의미를 아주 심각하게 또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러면서도 신비롭고 또한 실제적으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보면 그리스도인에 대한 네 가지 속성을 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넷째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오실 때에 함께 나타날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공통적으로 생각해야할 말씀이 있는데"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며 그리스도가 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그리스도를 보고야 나를 볼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내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세요. 앞으로 죽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죽었습니다. 오늘 죽는 것이 아니라 어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이미 죽었다"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옛사람은 죽어버렸습니다. 지나치게 까다로운 성격이 죽었습니다. 제 잘난 맛에 늘 남을 무시하던 교만이 죽었습니다. 명예욕, 권세욕이 다 죽고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죽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근심, 걱정, 시기, 질투가 언제나 문제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세요. 왜 그렇습니까? 결국은 덜 죽어서 그런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깨끗이 죽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때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무슨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합니다. 무엇을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죽어야 될 만큼 못 죽어서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죽지 못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날 아침에 나도 부활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삶의 의미도 내 삶의 목적도 내 가치관도 내 행복도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에는 맹목적이 아니라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기쁨으로 살고 그리스도가 기뻐하는 것만 내가 기뻐할 수 있고, 그리스도가 사랑하는 자를 내가 사랑하는 그러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중생 혹은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나로서 죽고 그리스도로 살고 율법 앞에서 죽고 성령으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거듭남의 의미를 알아야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빅터 에밀 프랭클]이라고 하는 심리학자가 있는데 이 사람은 의미요법의 창시자라 불립니다. 이 사람이 말하기를 인간은 의미로 산다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의미를 바로 알고 그 의미대로 살 때 참다운 인간의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말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씀을 의미를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고 거기에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아주 신비로운 표현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더 중요한 것은"그리스도 안에 너의 생명이 감추어져 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나는 땅에 살고 있지만 내 생명은 거기에 벌써 감추어져 있습니다. 나는 이미 새로운 삶에 출생신고가 되어져 있고 내 이름이 적혀져 있다는 말입니다. 결혼에 대한 발전과정 이랄까 하여간 생각해 보면 참 재밌습니다. 먼저 옛날 어른들은 얼굴도 못보고 결혼했다는 중매결혼이 있습니다. 중매가 들어오면 그저 부모님들이 알아서 결혼 시키자 하면 결혼했습니다. 그러다가 시대가 좀 지나면서"어떻게 얼굴도 안보고 결혼하나?"그래서 소위 맞선이라고 해서 남녀가 얼굴 한번 보고 결혼하더니 그 다음에는"사귀어보지도 않고 결혼하나?"그래서 사귀어 보고 데이트해 보고 결혼하는 연애결혼이란 게 생겨납니다. 그런데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어떻게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을 하는가?"합니다. 그래서 동거라는 것이 있고 그 후에 결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거는 몇 년을 해도 그것은 동거입니다. 혼인 신고를 해야 결혼입니다.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현대입니다. 그런데 왜 그래도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인가? 중요합니다. 결혼식이 하나님 앞에 약속하고 혼인 신고를 하기 때문입니다. 혼인신고를 하는날 꼼짝 못하고 운명이 하나로 엮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이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벌써 거기에 가있습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천국에 우리의 좌석이 예약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아무데서 죽더라도 이미 그리로 가게 신고가 되어있습니다. 그 하늘을 쳐다보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그리스도 안에 내 생명이 감추어져 있느니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순례자로 잠깐 살아가고 있지만 아무 때에 가도 좋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가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가면 분명히 내 생명이 거기에 감추어져 있는 그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그리스도인의 속성은 주님께서 오실 때에 영광중에 함께 나타나리라는 신비롭고 실제적인 말씀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꼭 앞을 보아야 됩니다. 절대 뒤를 보아서는 안 됩니다. 딴 생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앞을 쳐다봐야만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운전이란 앞으로 내가 가기도 하지만 저 앞에 있는 것이 순간 내 앞에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순간적으로 곧 다가올 것이요, 반드시 내 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그리고 멀리 내다보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오늘 성경 말씀은 신앙의 경주를 하는 우리를 향해"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라."고 아주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 있는 생명만 바라보고 나가야 할 신앙인의 자세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위엣 것을 찾으라.","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이미 저기 위에 가 있어야 합니다. 땅엣 것을 사랑하면 땅에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늘에 있는 것도 다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하늘을 따르면 하늘에 있는 것도 얻고 땅에 있는 것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이란"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그 안에 너의 생명이 감추어져 있느니라."는 말씀 앞에 자신을 확인하고 그리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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