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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땅에서 그 해에 백 배나 복을 주셨다 (창 2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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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에서 그 해에 백 배나 복을 주셨다 (창 26:1-22)

오늘 설교 제목은 "그 땅에서 그 해에 여호와께서 이삭에서 백 배나 복을 주셨다"입니다. 그 땅에서 - 이삭이 실패한 땅에서, 그 해에 - 이삭이 크게 실수한 그 해에, 하나님께서 몽둥이나 책망 대신 복을 주셨다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위기와 시험과 갈등과 유혹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가 당하는 똑같은 위기를 경험하길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가 겪었던 똑같은 위기를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이 인생의 위기를 해결했던 바로 그 방법으로 위기를 헤쳐나가길 기대하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참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의 자녀들은 나처럼 이렇게 살아주지 말았으면 한다면 우리는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이지요.

어느 날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의 위기를 맞았을 때 내 아버지는 이때 어떻게 해결하시더라, 내 어머니는 무릎 꿇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시더라, 하나님께서 내 부모님에게 주셨던 삶의 자원들을 어떻게 나누고 섬기며 살더라 하는 것을 추억할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여러분이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 본문에 보면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경험했던 똑같은 실수와 위기를 아버지처럼 해결하려고 하여 실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선조들이 경험했던 실패와 실수의 경험들을 본받지 말고, 그들이 성공했던 아름다운 경험들을 우리의 삶의 자원과 지혜로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미국의 큰 호수에 미국 사람들하고 한국 사람들이 함께 빠졌는데 영어를 못하는 한국 사람들은 다 살고, 영어를 잘하는 미국 사람들은 몽땅 다 물에 빠져 죽더랍니다. 헬프 미, 헬프 미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헬프 미 헬프 미~ 푸 푸하고 물을 다 토해냈데요.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헬미 헬미 물을 다 마셔서 죽더랍니다.

우리가 토할 것은 토하고 삼킬 것은 삼켜야 되는데 선조들의 실패는 받아 삼키고, 선조들의 성공은 토하게 된다면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없는 것이지요.

전 비행기를 탈 때마다 신기해요.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쇳덩어리가 땅에서 치솟아오를 수 있는지, 어떻게 그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지. . . 그 비밀을 캐기위해 내가 매일같이 지붕 위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 부러지고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선조들이 했던 연구의 결실을 받아들이고, 비행기를 타고 즐기면 되는 것이지요.

신앙생활, 영적인 생활에서 어리석게도 인간은 언제나 신앙 원시인처럼 살아갑니다. 지붕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 부러지는 사람처럼 선배들의 실수를 반복합니다. 선조들이 실패했던 삶의 전철을 밟아가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삭이 겪었던 인생의 위기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26장 1절은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보릿고개를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쌀은 다 떨어지고 보리를 심었는데 보리를 아직 수확할 수 없어 먹을 것이 없을 때에 산으로 들로 헤매며 풀을 뜯어먹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흉년은 인생의 가장 큰 고난일 수밖에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비가 잘 오지 않습니다. 일년에 두 번 정도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옵니다. 비가 오지 않거나 비의 양이 적으면 흉년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게지요. 그들은 흉년들면 애굽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애굽은 5,000km가 넘는 긴 나일강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언제나 풀이라도 뜯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흉년을 만났을 때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삭도 애굽을 찾아가기 위하여 여행을 떠났습니다. 블레셋 땅 그랄에 왔을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2절 -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약속의 땅에도 순종의 땅에도 위기와 흉년이 찾아옵니다. 고난이 피해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을 똑같이 당합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고난을 통하여 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큰 유익의 단계로 나간다는 점입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잘 극복하며 살아간다는 점입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본문은 환경이 어떠하든지 그 환경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에서 일어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말씀 붙들고 무릎 꿇고 기도하고, 믿음을 부둥켜 잡고 씨름하여 승리하고 일어서라고 말씀합니다.

현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먹을 것이 없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먹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많은 것을 탐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느냐? 말씀의 땅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느냐 아니면 그랄에 발을 붙인 채, 한 발은 신앙의 세계에, 다른 한발은 세상에 들여다 놓고 살아가느냐? 아예 애굽으로 내려가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을 우리에게 묻는 것이지요. 인생 살아가다가 위기를 만나도, 흉년을 만나도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어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어라. 하나님은 부하시고 능력이 많으심을 믿어라. 네가 좋아하는 세상보다도 애굽 보다도 더 크신 분이고 부요하신 분임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핑계를 댑니다. "하나님,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려고 내려가는 게 아닙니다. 제가 돈을 벌어서 십일조 많이 하려고 가는 겁니다. 하나님 조금만 눈 감아 주세요. 돈 벌면 그냥 살지 않습니다. 감사 많이 할 거구요 멋있게 선교할 겁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조금 치사한 방법으로 살긴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얘길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거류해라"(3절) - 말씀의 땅에, 기도의 땅에, 복음의 땅에 거류해라. 그리하면 네게 복을 주리라 하시면서 3- 4절에 네 가지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두 번째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세 번째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겠다.
네 번째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첫 번째 복이 무엇입니까? 말씀의 땅에 거하면, 고난이 있어도 기도하고 약속의 땅에 머물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하심과 사랑 많으심을 믿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품 안에 인생의 뿌리를 박고 살아가면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는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이 처음 여기 나오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25장까지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이 나오지 않습니다. 여기 처음 '하나님이 함께 하는 복'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이 복이 최고의 복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약속을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 아무개와 함께 하셨더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 야곱과 함께 하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 모세와 함께 하셨더라.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더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을 너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너 혼자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복이 대를 이어 가게 될 것이다. 자녀들에게 계승되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기도하는 것이 축복의 씨앗이 될 것이고, 네가 말하는 것이 자녀들에게 복의 씨앗이 될 것이고, 네가 다른 사람들한테 나누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씨앗이 되어서 훗날 자녀들이 씨앗의 열매를 거두어 먹고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천하 만민이 너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게될 것이다. 여기 네 "자손"은 원문에 보면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구원받을 것을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움직이는 대로 복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어떤 복, 한 두 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복 덩어리가 되는 복이지요. 내가 복의 근원이 되는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말로 말미암아 주변의 사람들이 용기와 힘을 얻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나의 삶의 스타일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 이유가 뭐냐? 5절에 "이는"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었던 계약을 아브라함이 성실히 준행했기 때문이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고난과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 약속의 땅에 머물기만 하면, 믿음의 땅에 머물기만 하면, 말씀 부둥켜안고 씨름하다 보면 우리가 아브라함이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브라함이 되고, 내가 복의 근원 - 복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에서 저주와 갈등이 끝나길 축복합니다. 원망과 실패가 사라지길 원합니다. 가난과 질병과 방황이 끝장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의 가문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먼 훗날 우리의 자녀들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내가 이렇게 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은 내 아버지가 축복의 씨앗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내 어머니의 기도의 무릎 때문에 내가 복을 받는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충성하고 헌신했기 때문에 내가 이 복을 누리고 사는 구나하며 여러분들을 추억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6절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배가 고파서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는 않았어요.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그렇다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지도 않았어요. 엉거주춤 거리고 그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기근이 있는 땅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불완전한 순종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면서도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하나님 말씀의 품 안에서 사는 건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건지, 교회 중심에 뿌리박고 사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운 회색지대 그것이 바로 '그랄'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회색지대에서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회색지대에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회색 지대 그랄 땅에는 언제나 유혹과 시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하나님이 아신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사업도 빵빵하게 밀어주시고, 자녀들도 똑똑하고 잘난 자식을 주시고, 계획하고 일을 시작하면 확실하게 성공을 주시면 될 텐데, 왜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흉년, 실패 다 겪게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너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야속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 이삭이 이방인들과 살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믿지 않는 가족, 친척,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창회, 가족 모임, 결혼식... 전부 주일날 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집안 행사가 있는데 한번쯤 예배 빠지면 어떠냐? 만약 예배에 빠질 수 없다고 하면 외골수, 광신도로 취급해 버리고 맙니다. 매일 드리는 예배인데 한번 빠지면 어떠냐고 얘길 합니다.

당시 중동의 풍습은 남의 아내, 딸을 빼앗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힘 센 자가 최고였습니다. 돈을 뺏기 위해 사람을 해치듯이 여인을 뺏기 위해 사람을 해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아내를 지킬 용기도 힘도 없었던 것이지요. 이때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도전합니다. 그런 세상 한 복판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너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 말씀 붙들고 살 용기를 가지고 있느냐? 신앙의 능력을 신뢰하느냐? 그러면 네 삶 속에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지켜주실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보호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하나님이요 애굽의 하나님임을 네가 아느냐?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하나님이 아니고 세상 한복판에서, 사업터에서, 직장에서, 마을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신 온 세상의 주인임을 네가 믿느냐? 그 믿음 붙들고 살아가다 때로는 손해 볼 수 있고 때로는 오해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영광으로 알고 살 수 있겠느냐? 예수 믿는 고난을 네가 자랑으로 여기고 살 수 있겠느냐? 성경은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이지요.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약점은 본받으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자기 삶 속에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갔습니다. 좋은 설교를 들으면 좋은 신앙인이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행복한 설교를 들으면 그 신앙의 주인공이 된 것으로 착각합니다. 좋은 설교 들었다고 좋은 신앙인이 된 것 아닙니다. 들었던 말씀마다 거기에 내 삶의 가치를 투입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생의 위기와 시험과 위기에 부딪혔을 때에 그 말씀을 붙들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승리하는 법을 배우고 체험할 때에 그 말씀의 주인공이 되고 그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못난 이삭 그러나 그 못난 이삭을 하나님이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실수하는 인간 치료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도 약점 투성이의 인간, 실수 투성이의 이삭, 그 실수 많은 자식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because of"의 하나님이 아니라 "in spit of"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엇 무엇 때문에만 나를 축복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충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시고 치료하시며 나를 자녀로 인정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 살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제 친구가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약을 한 주먹씩 먹어요.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먹냐고 물었더니 "약(藥) 할 때 강함 주신다"고 조크를 해요. 하나님은 우리가 약할 때 강함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약하다고 해서 우리를 폐기처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삭을 보십시다.
흉년을 만나 약속의 땅을 떠나갑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엉거주춤 그랄 땅에 머뭅니다. 그랄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 거짓말합니다. 이 일로 임금의 큰 책망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온갖 창피를 다 당합니다. 하나님 얼굴에 먹칠을 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이어져야 논리적으로 옳을까요? 하나님께서 큰 몽둥이를 들고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이렇게 성경이 이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이삭을 대하십니까? 그 땅에서 백 배나 복을 주셨다. 실수 투성이 허물 많은 이삭, 약점 투성이 이삭에게 백 배나 복을 주셨다. 그 해에 실수하고 실패했던 그 해에 하나님이 백 배나 복을 주셨다. 몽둥이 백 대 대신 백 배의 복을 주셨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편애하는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사업하던 김 집사가 있었습니다. "이레", "에벤에셀", "임마누엘" 그런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집사님이었는데 부도가 났어요. "주일을 지킬 수도 없는 도시로 가서 주일을 지킬 수도 없는 사업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책망하십니다. "네 이놈, 그래도 네가 집사인데 예배를 드려야지 주일을 지켜야지!" 겨우 주일 지키고 겨우 가정 예배 드리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해에 하나님께서 백 배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루 아침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공장이 몇 개씩 늘어납니다. 종업원들이 심히 많아졌습니다. 본문 12절 13절의 내용입니다.

"이삭이(김 집사가)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김 집사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아니 사무실과 공장이 떼를 이루고 종업원이 심히 많으므로" 여러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여러분이 잘 살아서만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다. 성공한 것이 여러분이 똑똑해서 된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한테 칭찬을 들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의 지혜가 많아서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로 아셔야 합니다. 내가 실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못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셔서 농사를 지으면 백 배나 수확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업마다 백 배의 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약점과 허물과 실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한 해 동안 여러분의 믿음이 백 배나 성장되길 축복합니다.

주경가들의 설명에 의하면 백 배의 복이라는 것은 당대엔 파격적인 수확이었다고 합니다. 기적같은 수확을 맛보았다는 뜻입니다.

본문 12절 13절의 가장 중요한 단어는 "마침내"라는 단어입니다. "허물과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또 부어 주셨더니 마침내. . ." 그런 얘기이지요. 고난이 찾아오고 위기가 찾아옵니다. 인생의 질곡을 당하고 태산준령을 넘습니다. 많은 위기와 고난과 시험을 다 극복하고 난 다음에 "마침내"라는 뜻이지요.

운동 경기에서 중간 결산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합이 끝나 봐야 안다는 것이지요. 신앙 생활하다가 중간 결산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인생이 끝나봐야 안다는 것이지요. 지금 인생의 큰 위기에 부딪히신 분이 계십니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갈 길이 보이지 않는 분이 계십니까? 누구에게도 의논할 수 없는 갈등과 고민과 어려움에 빠지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마침내 일어설 것입니다. 마침내 여러분이 성숙할 것입니다. 향기로운 주님의 제자로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삭은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복을 가지고 사람들을 섬기고 사람들과 나누면서 아무 고난과 어려움 없이 잘 먹고 잘 살다가 장수하여 하나님 앞에 섰다. 인생이 이렇게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인생은 없습니다. 또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김 집사가 성공한다 그랬더니 시화공단의 모든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 인간이 우리 고객 다 끌어갔다고,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간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공장에 불을 지르고 사무실 집기를 집어던지고 도망가면 또 따라와서 난리굿입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자기 우물들은 바싹바싹 마르는데 이삭의 우물에는 물이 펑펑 쏟아지니까 이 우물이 우리 물샘을 다 뽑아 갔다고 우물을 메꿔 버립니다. 그곳을 피해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팠더니 또 이삭의 우물은 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자기네 우물은 물이 나지 않습니다. 동리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찾아와서 여기 우리 땅이라고 너희 땅이 아니니 가라하여 또 도망갑니다. 도망가서 또 팝니다. 멀리 멀리 도망가서 팠더니 점 점 점 점 더 큰 우물이 나옵니다. 자기는 양보하고 가는 줄 알았어요. 피해서 도망가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몰아 몰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이삭을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할렐루야.

오늘 말씀이 이삭을 두고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삭이 손해 보았습니다. 양보했습니다. 피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 이삭이 불평하거나 비난하거나 원망했던 흔적이 없습니다. 블레셋을 욕했던 흔적이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 믿고 살기 때문에 손해를 봐야 합니다.

명절을 보내면서 예수 믿는 집사 권사 장로가 되었기 때문에 참고 인내해야 했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요. 말하지 않았다고 바보 취급합니다. 양보했더니 말하지 않았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지는 것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종착점에 도착해 보았더니 내 원수들은 완패했고 여러분들은 완승하는 자리에 서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간사함과 잔꾀로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승리하고 성공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손만 대면 우물이 터졌습니다. 여러분이 손만 대면 생수가 쏟아지길 축복합니다. 이삭이 밟는 모든 땅이 옥토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가는 곳이 옥토로 변화되어질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삭은 전혀 초조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 모릅니다. 화딱지 나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분노를 잘 다스렸습니다. 분노에 지배당하지 않았습니다. 갈등과 좌절을 극복하고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 22절 마지막 결론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이 땅이 어떤 땅입니다. 복 받는 땅이 어떤 땅입니까? 내가 가는 곳이 이 땅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는 곳이 복 받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역사가 흘러 흘러서 마지막 결론은 26절부터 29절에 나옵니다.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다. 하나님이 너를 지키고 보호하는데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누가 빼앗을 수 있으며 누가 찢을 수 있으며 짓밟을 수 있겠느냐? 내가 너한테 항복하고 가니 너와 내가 조약을 맺자. "여호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내가 보았다"

29절입니다.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자기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 정도로 가야 믿음의 사람이지요. 이 정도로 가야 축복의 사람이지요. 그 땅에서 그 해에 백 배나 얻을 줄 아는 복을 얻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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