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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딤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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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딤후 2:1-4)

  내일은 국군의 날이지요, 그래서 군사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의 마지막 편지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나라를 지키는 군대와 유사하기에, 군사에 신앙생활을 비유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다른 민족과의 싸움을 ‘거룩한 싸움’으로 이해하였고, 신약의 그리스도인은 악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군사로 이해했다. 이처럼 신앙생활은 전쟁이다. 마귀와의 끝없는 싸움이다. 죄악과의 싸움, 환란과의 싸움이다. 우리는 모두 다,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최후의 승리를 위해, 영원한 생명을 위해, 세상의 모든 유혹과 악의 세력들과 싸워야 한다. 지금도 이단과 사이비들은, 많은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사단의 공격에 대항하여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한다.

  전쟁에는 2등이 없다. 운동경기에서 2등은 은메달이기에 영광스럽다. 학업성적이 2등이라면 그는 우등생으로 칭찬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2등은 나라의 패망이다. 국토와 자유와 평화를 빼앗기게 된다. 노예의 신세가 된다. 일제강압시대에 우리민족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전쟁에는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탄은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자, 끊임없이 우리들을 미혹하고 있다. 우리는 이 대적과 싸워야 한다.

  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면, 사탄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게 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신 복과 주실 복까지 놓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어떤 모습일까?

1.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충성되다(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충성된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부르심이 분명한 사람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충성된 증인들을 양성하는 사명을 주었다. 이 일은 디모데가 가장 힘써야 할 일이었다. 당시에 여러 이단들이 설치고, 하루아침에 배교자로 돌변한 자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 올바른 복음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충성된 증인들을 세워야 했다. 충성된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군인이 상관의 명령에 불복한다면, 그 사람은 감옥에 가야한다. 전시인 경우엔 사형이다. 이처럼 좋은 십자가의 군병들은,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말씀하신다. 순종은 이해하고 따라감을 말하지만, 복종은 이해되지 않아도 따라간다. 어디로, 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따라간다. 이것이 복종이다. 일반 병사들은 지휘관의 뜻을 다 알 수 없다. 일반 병사는 전쟁 상황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지휘관은 고성능 장비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을 지휘한다. 그러므로 군인은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2차대전의 전범인 동조는 그의 전략에 의해, 세계 정복의 꿈을 이루고자,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했다.

  진주만 폭격한 후에, 미국의 반격에 의해 제동이 결렸다. 태평양전쟁에서 점점 전세가 불리해진 일본군 사령관은, 발악적인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조종사들이 전투기와 함께, 미 함대를 향해 돌격하는 것이었다. 일본군 조종사들은 이 명령에 복종하여, 폭격기와 함께 미 함대를 격침시켰다.

  그들은 장렬하게 죽어갔다. 이것이 곧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 정신이다. 하지만 지휘관의 명령에 따랐지만,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방금 말씀드린 일본의 경우가 그렇다. 이처럼 투철한 군인정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2차 대전에서 패망했다. 그 이유는 명령권자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사령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에게는, 실패가 없다. 예수님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다. 예수님은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복종하면, 영광된 좋은 날이 반드시 있다.

  어려움 때문에 타협주의자나 회피주의자가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될 수 없다. 고대의 군사들은, 국왕이나 지휘관에게 충성을 다하며, 생명까지 바쳤다. 우리도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좋은 군사가 되자.

2.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1)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고난을 이겨낸다(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복음과 함께 고난 받아야 한다. 참된 신자는 진리를 위해 고난 받는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은 군인은, 좋은 군사가 될 수 없다. 군인이 되면 훈련소에서 사격훈련을 받는다. 이를 P.R.I라고 한다. ‘총을 들고 땅에 엎드렸다가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그래서 훈련병들은 P.R.I훈련을 ‘피가 나고, 알이 배고, 이가 갈리는 훈련’이라고 부른다.

  기초훈련이 끝나면 실제 사격을 하는데, 얼마 이상 맞추지 못하면, 총을 일자로 들고, 오리걸음을 걷도록 한다. 이런 수모를 겪으면, 사람이 오기가 생기고 집중력이 생겨서, 사격을 잘하게 된다. 또 가스실에 들어가 방독면을 벗어서, 많은 눈물을 흘리는 화생방 훈련도 있다.

  포복훈련, 각개 전투, PT 체조와 유격훈련, 공수훈련, 138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잠을 자지 못하는 UDT훈련, 등이 있다. 이런 고난도 훈련을 통해, 장차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용사가 된다.

  징집되었다고 자동으로 좋은 군인이 되지 않는다. 좋은 군인이 되려면, 반드시 고된 훈련을 인내하면서 받아야 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군사로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군사가 되지 않는다. 주님의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 받아야 한다.

  좋은 군사는, 훈련이 잘된 군사다. 훈련이 안된 군사들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은, 끊임없이 훈련을 받는다. 군대에서 잘 쓰는 말 가운데 “훈련에서 땀을 많이 흘린 군사는, 전쟁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말이 있다.

  훈련을 잘 받은 군사들은, 적을 이기고 생명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인 우리도 신앙 훈련을 잘 받아야 한다.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 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 하시느니라.”고 하셨다.

  용광로를 거치지 아니한 광석은, 아직 보석이 아니다. 뜨거운 용광로에서 불순물이 제거된 후에,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을, 고난으로 훈련시키신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고난으로 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에 통과한 후, 풍성한 은혜를 누렸다. 이 훈련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까지 예외가 아니었다. (히5:7-9)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기 상황으로, 계속 밀어 넣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의 날갯짓을 하라는 뜻이다.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 하나님은 의미 있는 고난을 주신다. 왜 성도들의 삶에 고난이 지속되는가? 우리의 날개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다.

  닭처럼 키우려면, 무엇 하려고 둥지에서 떨어뜨리겠는가? 모이를 많이 먹여, 근수나 많이 나가게 해서, 때가 되면 모가지를 비틀어 튀겨버리면 된다. 그러나 독수리로 키우려다보니까 훈련시키신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미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마귀가 두려워 떠는, 강한 성도들로 거듭나기 바란다. 독수리처럼 날갯짓하여 창공의 주인공이 되자.

(2)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은혜 속에서 강한 자이다(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했다. 군사는 무엇보다도 용감하고 강인해야 한다.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흔들리지 않고, 완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울 사도는, 네로의 박해로 감옥에 다시 투옥되었다. 첫번 투옥 때는 풀려났지만, 이번에는 순교 당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시아에 있는 신자들은, 박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바울을 떠났다(딤후1:15). 이 소식은 연약한 디모데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강하라’고 권면 한다. 문제들 앞에서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가라고 하였다.

  전쟁이 발생하여 총알이 날라 오고, 포탄이 여기저기 터질 때, 군인이 겁이 나서 고개도 못 들고 참호 속에서 벌벌 떨고 있다면, 좋은 군사가 아니다. 어떠한 극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용감하게 감당하는 자가 좋은 군사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군사들인 우리 성도들도, 무슨 직책을 맡기든지, 담대하고 강인하게 감당할 때, 좋은 군사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복음의 일꾼들은 은혜 속에서 강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은 너는 강하고 담대 하라고 하셨다. 겁쟁이나 이중인격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위기의 순간이 오면, 마음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베드로가 처음에 강하게 나갔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맹세했다(마26:35). 그러나 베드로의 결심은, 위기를 맞게 되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베드로의 강한 의지와 담대함은, 혈기에서 나왔기에, 위기가 오자 주님을 배신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바울을 따랐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고난에 동참했지만, 끝까지 계속되지 못했다. 바울을 하나 둘씩 떠나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은혜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강함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어떻게 고난을 이길 수 있고, 핍박을 이길 수 있나? 주님의 십자가를 어떻게 질 수 있고, 주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나?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라. 성령충만을 받아야 할 수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불가능한 일을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직책만 맡기지 않으시고, 능력까지 주신다. 강한 군사는 성령충만한 삶을 산다.  성령이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살아간다. 악한 마귀를 이기며 살아간다. 성경은 시험이 없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시험이 있기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면, 절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마귀가 공격해 올 때, 내 공로로 막으면 다 맞아 죽는다.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죄인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십자가의 의로 인하여 의롭게 되었다고 선포하고 담대히 맞서야 한다. 그래야 마귀를 이길 수 있다.

  한경직목사님 생전에, 하루는 어떤 교인이 찾아와서 목록 하나를 내밀었다. 한경직 목사님의 약점 1번, 2번, 3번, 그렇게 해서 10번까지 적혀 있더란다. 그러나 한경직 목사님은 그 목록을 받아들고서, 아무 변명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것말고도 약점이 더 있다면서 11번, 12번, 13번을 덧붙였다.

  마귀가 공격해올 때, 우리를 정죄하며 달려들 때,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러니 맞다고 하고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그 보다 더한 죄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나를 은혜로 구속해주셨는데, 네가 어찌하겠느냐?”며 마귀에게 배짱 있게 나가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갈6:14). 우리 공로를 내세우면 마귀 앞에서 박살난다. 교회가 세상에 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복음은, 죄인들을 구속하시는 십자가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능력을 전하는 하나님의 군사가 되자.

3.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자기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생활은 ‘생명, 일, 직업, 사업’, 등, 생계의 수단을 말한다.

  군인들은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사적인 일을 포기해야 한다. 영장을 받고 입대하는 군인들은, 정든 부모형제, 친지와 친구들을 뒤로하고, 눈물을 삼키며 입대한다. 입대하는 경우들을 보면, 가정형편이 정말 딱하기에 돈을 꼭 벌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군대에 와야 하는 경우도 있고, 공부를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활을 접어두고 입영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국가가 있어야 평화로운 사회가 있고, 가정이 있고,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면 안 된다. 세상에 얽매여 성도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의 영혼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롯의 가족들에게 뒤를 돌아보지 말고, 빨리 이 성에서 도망하라 하셨다.

  그런데 롯의 처는 그만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미련에 얽매여, 뒤를 돌아보다가 멸망을 당했다. 가룟유다는 돈의 유혹의 끈에 묶여,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 넘겼다. 그러나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괴력의 소유자 삼손은, 들릴라의 유혹을 끊지 못해, 블레셋 군대에게 붙잡혀 양 눈이 뽑히고,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히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하였다. 운동선수는 경기를 할 때, 몸에 착 달라붙는 가벼운 옷을 입는다. 그래야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도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 던질 수 있기를 바란다.

  습관, 오락, 욕망, 그리고 인간관계가 장애가 된다면, 벗어버려야 한다. 사사로운 것에 얽매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파멸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가는 길에, 우리를 붙들어 매려는 유혹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이 유혹에 얽매이지 아니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승리지가 된다. 요셉은 보디발의 유혹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고, 가족과 민족, 세계를 살릴 수 있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궁에서 제공되는, 왕의 진미를 제공받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신앙양심에 어긋나는 물질이므로 먹기를 거절했다. 그 결과 다니엘은 하나님의 남다른 은총을 받았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물질에 대한 욕심에 걸려 넘어진다. 돈은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였다.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시기와 질투의 덫에 걸려 넘어진다(고전3:2-3). 자기는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남이 열심히 하면 배아파하는 성도들이 많다. 그때 마귀는 옆에서 잘한다고 박수를 친다. 마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모른다.

  옛 습관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술 담배의 버릇을 끊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음란한 버릇과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게으른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인생의 경주에서 뒤쳐지는 경우들을 본다. 그 외에도 교만, 근심, 걱정, 낙심, 여러 가지를 지고 있다.

  그러나 승리하려면, 짐을 가볍게 해야 한다. 방해물을 벗어버려야만 한다. 버릴 것은 벗어버리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목적지까지 뛰시기 바란다. 나의 주장도 군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전진해야 한다. 이런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시기 바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이다. 세상의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세상의 온갖 유혹과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 온갖 세상풍파와 싸워야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이겨야 평화가 있다. 이겨야 참된 자유와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사사로운 생각이나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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