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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 사는 사람 (삼상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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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사는 사람(삼상1:1~11)

  여러분, 이런 질문에 한번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많으면 인생에서 성공합니까? 노력을 많이 하면 인생에서 성공합니까? 어떻습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운이 좋아야 한다고. 너무 막연하고 요행수를 바라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인생이 인간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 말을 신앙적 관점에서 표현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는 호의’입니다. 노력의 대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무 조건 없이 주시는 겁니다. 사람이 노력하고 능력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세칭 일류대학을 졸업한 사람인데 이상하게 잘 풀리지 않습니다. 능력도 있고 노력도 많이 하는데도 일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반면에 학벌이 시원치 않은데 희한하게 잘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견 모순되고 부조리한 것 같은데, 이런 예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가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막연히 요행수를 바라면 인생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성실하게 노력하고 능력을 갖추어 가는 게 중요하고, 그런 바탕 위에 은혜의 힘을 기대해야 됩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력(自力)으로 사는 사람’, 그리고 ‘은혜(恩惠)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두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나는지 시127:1~2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은 연약한 존재인 데 반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도와주시고 은혜를 베풀면 당연히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전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최소치(Minimum)가 인간의 최대치(Maximum)보다 높다는 겁니다. 인간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인 성취도 따지고 보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그 모든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재물을 많이 모았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기까지 하나님이 모든 여건을 조성해 주시고 건강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만일 환란이 계속 몰아닥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그랬다면 그 어느 것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적극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 훨씬 더 강하고, 훨씬 더 잘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은혜의 창고’를 갖고 계십니다. 그 창고에 은혜를 가득하게 준비해 두고 있습니다. 시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보통은혜(일반은총), 그리고 특별은혜(특별은총)입니다. 보통은혜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심지어 악인들에게조차 부어주십니다. 마5:45 “ ...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특별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택함 받은 백성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로, 구속의 은총과 신령한 은혜입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은혜들을 적극적으로 기대하고 바라고 얻고 누리며 사는 사람이 성도들입니다. 간혹 성도의 이름을 갖고 있으나 은혜로 살지 않고 자력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영적인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여전히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육적인 크리스천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을 보면 서로 대비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도의 이름은 있지만 인간의 능력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한나, 그리고 브닌나입니다. 

[1] 은혜로 사는 사람 : 한나

  본문 1절과 2절을 보면 ‘엘가나’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죠. 한나와 브닌나입니다. 물론 부인을 두 명 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치 않은 모습입니다. 이방인의 풍습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아마 첫째 부인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브닌나를 얻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쨌든 그것은 엄연한 잘못입니다. 이 두 부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6절. “여호와께서 그(=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한나는 불임증을 갖고 있던 여인입니다. 당시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자식은 축복의 상징입니다. 특

히 여인에게 있어서 자식의 유무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입니다. 그러니 한나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됩니다. 가만히 놔두어도 그럴 텐데, 브닌나가 한나를 업신여기고 구박하니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한나는 괴로운 중에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눈물로 기도한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완전히 인생이 달라진 겁니다. 불행한 여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장 복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 한나의 이름은 성경에 계속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믿음의 여인으로 칭송되고 있습니다. 반면 브닌나는 그 이름이 금세 사라집니다. 한때는 한나보다 더 아름답고 더 건강하고 잘난 여인이었지만, 나중에는 미미한 존재로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이름이 가진 뜻입니다. 마치 두 사람의 인생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한나는 무슨 뜻입니까? 히브리어로 ‘은혜’입니다. 그녀는 정말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브닌나는 무슨 뜻입니까? 히브리어로 ‘보석’입니다. 그녀는 정말 잘났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인간적인 능력과 장점만 자랑하고 교만한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다가 미미한 인생으로 끝난 케이스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좀 부족해도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조금 잘났다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자랑에 빠져 있으면 별 볼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잠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마치 물이 낮은 데로 흘러가듯이 하나님의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에게 고질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했는데, 아마 그를 평생 괴롭힌 눈병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얼마나 고민이 되었겠습니까? 대장간 식칼이 논다고, 남의 병은 기도함으로 다 고쳐주었는데 자기는 병으로 시달리고 있으니 ... 정말 민망하고 부끄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간절히 세 번 기도합니다. 아마 사력을 다한 기도였을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응답하십니까? 그리고 바울은 그 응답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고후12:9~10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오히려 바울이 자신의 약점 때문에 주님을 의지하고 은혜를 구함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는 겁니다. 만일 그가 건강하고 완벽한 조건을 갖고서 오히려 교만해지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역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있어 육체의 가시는 오히려 주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게 해 주는 축복의 조건인 셈입니다. 그런 원리를 깨달은 바울은 이제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한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에게 부족한 것, 약점이 오히려 겸손하게 해 주었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풍성한 은혜 속에 살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시 결점이 있습니까? 약점이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남보다 조건이 빠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전화위복이 됩니다. 오히려 큰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 조건도 좋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 좋겠죠. 그러나 인간에게 그게 잘 안 된다는 겁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부디 이런 원리를 깨닫고 은혜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은혜로 사는 삶 : 기도, 감사, 헌신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요? 한나의 삶을 통해 살펴봅니다. 세 가지입니다. 기도, 감사, 그리고 헌신의 삶입니다.

  ① 기도 :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은혜를 부어 주시는지 아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죠. 성도의 이름을 갖고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모르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10절~12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 ” 한나는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아뢰었습니다. 여기서 아들에게 삭도를 대지 않는다는 것은 나실인으로 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 나실인은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나실’이란 단어는 ‘구별’ 즉 ‘성별’(聖別)이란 뜻입니다. 그 표시로 삭도를 대지 않고 머리를 길게 길렀습니다. 삼손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 아닙니까? 그러니까 아들을 구별된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서약을 하며 기도하는 것을 가리켜 ‘서원기도’라고 하는데, 마침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아들 사무엘이 태어났고, 이스라엘의 어두웠던 사사시대에 사사, 제사장,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은혜의 창고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영적인 은혜든, 육적인 은혜든 차고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만큼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시81:10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어미 새가 누구에게 먹이를 제일 많이 주겠습니까? 입을 크게 벌리는 새끼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겁니다. 

  이처럼 기도는 놀라운 은혜의 통로이기에 옛날 버마의 선교사였던 저드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도둑맞을지라도 기도 시간만큼은 절대 도둑맞지 말라.” 부디 이 말처럼 우리도 기도에 힘써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 누리기를 소원합니다.

  ② 감사 :
  한나는 아들을 얻게 되자 어떻게 합니까?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아들을 낳았으니 브닌나에 복수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그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았기에 겸손했습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삼상1:20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사무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한나의 신앙고백이 들어간 이름입니다. 자신이 불임증 여인이었는데,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그 아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한나에게 계속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은혜 위에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보고 교만하게 구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역사가 중단됩니다. 사울 같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삼하7:15 보면,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울은 비천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 베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는데, 그만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하게 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서 은혜를 거두셨고, 결국 그는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다니엘 같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고난이 닥쳐와도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간신들의 모함으로 사자굴에 들어가게 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합니까?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는 사자굴의 고난이 닥쳐왔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소년 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서 지금까지 지켜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심정으로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죽어도 천국, 사자에게 찢겨도 부활임을 확신하면 감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은혜 베푸사 천사를 보냅니다.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틀어막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살아납니다. 오히려 그 원수들이 사자 굴에 처박혀 죽임을 당합니다. 다니엘은 더욱 높아졌고, 다리오 왕과 이방인들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실로 ‘은혜 위에 은혜’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때에 감사하면 고난이 중지되고, 형통의 때에 감사하면 형통이 계속된다.” 아무쪼록 이런 원리를 붙잡고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계속적인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③ 헌신 :
  ‘헌신’이란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자기 것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헌신할 수 있습니까?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헌신을 좋아하십니다. 억지로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는 헌신은 참된 헌신이 아닙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얻은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으로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감사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삼상1:27~28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제사장에게 데려가 하나님의 종으로 키웁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조기 유학, 아니 젖을 떼자마자 보냈으니까 ‘초조기 유학’을 보낸 겁니다. 어미의 마음으로 도저히 할 수 없었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헌신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의 역사를 나타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바치자 그를 받으시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사무엘은 사사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사사였습니다. 암흑 같은 시대에 샛별 같이  쓰임을 받았습니다. 가정적으로는 불임증 환자였던 한나에게 태문을 활짝 열어 주시고 계속 자식의 복을 주십니다. 삼상2:21 기록을 보니까,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의 묘미입니다. 이런 묘미를 아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이런 고백이 있기에 또한 헌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헌신하는 그 인생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 주십니다. 

  여러분,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불리는 슈바이처 박사(Albert Schweitzer  1833~1875)를 아시죠? 그는 30세 이전에 이미 신학박사와 음악박사로 대학교수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다가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침의 밝은 햇살에 눈을 떴다. 내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큰 죄악이다.” 이런 신앙이 담긴 그의 짧은 명언이 있습니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가?” 그래서 그는 의학을 더 공부하고 아프리카 적도의 나라(현재 ‘가봉’)에 가서 병원을 세우고 평생 헌신합니다. 하나님은 헌신하는 그에게 더 큰 은혜를 베푸사 노벨평화상을 받게 하셨고 그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빛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분이 계십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장기려 박사(1909~1995)입니다. 그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안빈’의 실제 모델입니다. 그는 6.25 당시 김일성대학 의대교수였는데,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내와 자녀들과 헤어진 채 월남합니다. 부산에 정착한 그는 행려병자 등 가난한 자들을 위해 평생 헌신합니다. 한번은 극빈환자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자 장 박사가 뒷문을 열어주면서 도망치게 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그는 항상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다.” 그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마음 깊이 새기며 헌신하는 분이었기에 그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지성으로 헌신하는 그에게 더 큰 은혜를 부으셨습니다.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하게 하셨고,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헌신하는 인생은 이처럼 갈수록 넘치는 은혜로 업그레이드되는 법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습니까?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입니까? 자수성가한 사람? 아닙니다.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말은 자기 노력으로 이루었다는 말인데 사실 그런 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누구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혹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자체가 교만입니다. 그런 성공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표현해봅니다. 신수성가!(神手成家) 하나님의 손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하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사실을 솔직히 고백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브닌나 같이 잠시 반짝 했다 사라지는 인생이 아니라, 한나 같이 영원히 빛나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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