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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누구입니까? (마 9: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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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은 누구입니까? (마 9:35-38)

오늘 본문은 희어져 추수하게된 세상의 추수터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꾼, 주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하는 이 시대의 일꾼, 그 일꾼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부르시고 쓰시고자 하는 일꾼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1.예수님의 방법을 가진 자입니다.

35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여기 보면 세 가지 아주 중요하게 강조된 동사가 있습니다.
어떤 단어가 나옵니까?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셨다”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방법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살고 있는 시대는 우리가 Click 한번만 하면, 전세계 정보가 쏟아져 들어오는 초고속 정보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의 사고의 틀이 변혁되기를 요청 받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에 대한 방법이 계속해서 달라지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이 세 가지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사역방법입니다.
물론 가르치는 방법은 그 시대에 따라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치느냐? 어떻게 전파할 것이냐? 또 어떻게 고칠 것이냐? 하는 방법은 계속 바뀌어 가고 개발되어 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르쳐 전파하여 지키게 하라”는 이 원론적인 방법을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적으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방법이 다같이 한가지 공통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거듭나게 하신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생명이라고 믿으십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희망이라고 믿으십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빛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빛이요, 구원이요 능력이신 말씀으로, 우리는 여전히 주님 오실 때까지 가르치고, 전하고, 지키게 함으로서 사람들을 치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나 이 말씀에 전문가가 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꼭 목사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목사들만이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를 속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역은 처음부터 주님의 명령이었고,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밭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당신을 부르고 있는 그 손짓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사역에 헌신할 수 있다면, 저는 그때 비로소 익산 복음화의 부흥이 우리 교회를 통해 일어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신뢰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가지고 “해피데이 1028”을 준비해 간다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기적처럼 쓰시는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 줄로 확신합니다.


2.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이어야 합니다.

36절을 읽겠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예수님은 무리를 어떻게 보았습니까?
“목자없이 방황하는 양”으로 보았고 했습니다.
여러분, 양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는 누구만 있으면 해결되리라고 느끼십니까?
양의 문제는 목자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무리들은 그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했고, 그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기서 민망하다는 단어는 “함께 느낀다. 함께 고통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그들의 방황, 그들의 두려움, 그들의 아픔, 그들의 좌절을 자기의 좌절처럼 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는 일꾼은 어떤 일꾼이라고 느끼십니까?
바로 이런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 동안 제가 설교하면서 몇 번 헨리 나우엔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가 쓴 가장 대표적인 책은 “상처입은 치유자”입니다.
그는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이 표현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접근해 간 것이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이 땅의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시면서, 우리들처럼 고통을 당하시고 모든 인생의 아픔을 경험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의 모든 문제를 이해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헨리 나우엔은 이 책에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그런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면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인용합니다.
어떤 랍비 하나가 우연히 예언자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랍비가 예언자 엘리야에게 “메시야는 언제 오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엘리야는 대답하기를 “직접 가서 메시아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합니다.
“아니 어디 계신데요?” “아마 저기 성 바깥에서 지금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아 ~그래요. 내가 어떻게 메시아를 알아 볼 수가 있습니까?”
이때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분도 상처를 입고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의 상처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두리 번 거리며 도울 자를 찾고 있는 그분이 바로 메시아일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성경이 그리고있는 메시아 상,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십자가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절정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절규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단절과 고독과 배신과 소외의 상처가 얼마나 아프고 깊은 상처인가를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히4:15절을 보면 예수님을 묘사하면서, “대제사장”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러분, 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백성들의 아픔이나, 문제나, 어려움이나 고통을 대신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 이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제사장 아닙니까?
좋은 제사장이란, 백성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절실하게 같이 느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히4:15절은 예수님에 대해서 묘사하면서 “우리에게 있는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라는 말은 이중적인  부정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우리의 좌절을, 우리의 아픔을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우리에게는 바로 그런 예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 내 상처도 있고, 내 아픔도 있지만, 자기 아픔 속에만 빠지지 않고, 내 아픔을 통해서 나보다 더한 아픔 속에 주저앉아 있는 이웃들을 향해서 손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을 주님은 일꾼으로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희어져 추수하게된 이 세상에서 고통하고 있는 인류를 바라보시면서, 이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예수님의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10:1절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오늘날은 설교도 많아졌고, 인터넷이나 체널 방송을 통해 얼마든지 좋은 설교들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프로그램도 좋아졌고, 성경연구도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더 어두워져 있고, 사람들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그렇다고 느끼십니까?
저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부딪쳐 오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능력의 결핍”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설교, 가르침은 있지만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12제자들을 보내셨을 때, 그들을 보내시면서 그냥 내보내지 않으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나가는 전도의 여정에 있어서 아픈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어둠에 붙들려 있는 악한 영들에게 눌려 있는 사람들을 해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던 그 주님이, 오늘 여러분의 주님이고, 나의 주님이고, 우리의 주님이라고 전적으로 신뢰하고 사역한다면, 저는 그 동일한 능력을 오늘도 우리 가운데 부어주신다고 확신합니다.

세계기독교사를 기술한 라토렛이라는 학자는 1세기의 초대교회를 기록하면서 “초대교회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힌 바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스토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 우리 주변에서 아무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서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삶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프로그램도, 지식도, 조직도, 후원도 가지고 있지만,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사도행전에 보면, 당시 인류 최고 지성의 도시 아테네에 전도하기 위해 바울은 가장 멋있는 설교를 준비해서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결과는 시원치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거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고린도에서는 놀라운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그 비밀을 고린도전서 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들 가운데 왔을 때에 나는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

그렇습니다.
한번 실패했던 바울은 더 이상 자긍하지 않았고, 그는 주님을 두려워했고, 성령님의 능력 앞에 떨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이제는 다만 나의 전도함이 사람의 말과 아름다운 소리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기를 원한다”
오늘도 우리들이 주님의 마음을 갖고 보혜사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면 나를 쓰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찰스 피니라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어느 날 미국의 시카고 거리에 왔다가 거리의 교차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밀 듯 지나가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곁에 있던 분이 “목사님 왜 그러세요?”라고 묻자 그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잖아”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 분을 왜 하나님이 쓰셨는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물론 나에게도 상처가 있고, 나에게도 많은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상처에만 집중하고 있으면, 내 인생은 그냥 내 상처와 싸우다가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내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예수없이 방황하며 나보다 더 깊고, 더 예리한 상처 때문에 울고 있는 수많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가 주님의 이런 마음으로 순종할 때, 이번 해피데이 1028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쓰시고 나를 쓰시는 놀라운 기적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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