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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라합은 (히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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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라합은 (히 11:31)

기생 앵무 이야기

여러분들 아마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때 송도(개성)에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 이 세 가지가 가장 뛰어났다는 뜻이지요. 이 가운데는 당대 최고의 기생 황진이도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송도에만 삼절(三絶)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구에도 삼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이 대구삼절(大邱三絶)이란 일제시대 때 석재 서병오 선생, 달성공원, 기생 자매인 앵무와 비취를 일컫는 말인데 이 대구삼절에도 역시 기생이 들어있습니다. 황진이처럼 이 앵무, 비취 자매는 당대 최고의 기생으로 일제 때 대구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행세깨나 하는 남정네들은 다 "언제 한번 대구삼절 앵무, 비취와 멋지게 한번 놀아볼까?"하고 사모할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이 당대 최고의 기생 앵무가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것입니다. 기생이 독립운동을 도왔다니 좀 신기한 일 아닙니까? 그녀는 '국채보상운동'에 네 번째로 기금을 내는 일을 했습니다.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이란 대구에서 일어난 민족주권운동입니다. 1904년 이래 일제는 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일본에 예속시키려고 한국정부로 하여금 일본의 차관을 도입하게 합니다. 그 결과 1907년 한국정부가 짊어진 외채는 총 1,300만원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수준에 이릅니다. 이 때 대구에서 서상돈 등이 주도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고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가 4만 여 명이 참여했고 230만 원 이상 모금됩니다. 물론 일제가 이 운동을 탄압하여 결국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우리 민족의 기개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런 역사는 꼭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생 앵무가 바로 이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 돈을 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평소 후배들에게 "기생은 돈 많은 사람만 섬겨선 안 된다. 만신창이가 된 나라를 위해 한 몸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며 기생의 지조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앵무 뿐 아니라 당시 이름 없이 독립자금을 은밀히 댄 기생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요즈음 매스컴에 가끔 일제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의 자손들이 조상의 땅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완용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양반집 아들로 태어나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올라 고속 승진하다가 한일합방을 주도하는 등 매국노 노릇을 했던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귀한 집안 출신에 고위관직까지 오른 남자요, 또 한 사람은 당시 가장 천하게 여기던 기생이니 상대가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정말 가치 있는 삶을 살았을까요?

기생 라합 이야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기생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라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입니다. 라합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2장에 설명이 나와 있는데 자세한 기록은 없어서 우리는 그녀의 나이도 몇인지, 얼굴이 예뻤는지 어땠는지조차 모릅니다. 우리가 라합에 대해 아는 것은 그녀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그 성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뿐입니다. 지난주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에 대해 말씀을 나눌 때 이 여리고성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치기 전에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내는데 이 두 정탐꾼은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의 집에 숨게 됩니다. 여기서 '기생'이란 상당히 점잖게 번역한 것입니다. 잘못하면 이 라합이 황진이나 앵무 같은 기생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우리나라 기생은 비록 술을 따르고 때로는 몸을 팔기도 했지만 의외로 상당한 식견과 판단력을 가진 여인들이요 지조를 중시했던 사람들입니다. 같은 기생이라도 상당히 점잖고 수준 높은(?) 기생입니다. 하지만 라합은 그런 기생이 아닙니다. 히브리말로 이 '기생'은 '간음하다, 매춘하다'는 뜻입니다. 즉 엄밀하게 따지면 라합은 기생이 아니라 윤락녀였던 것입니다.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천한 창녀였다는 말입니다.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집은 여호수아 2:15에 보면 여리고성 성벽 위에 있었습니다. 지난주 설교에서 제가 당시 여리고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잠시 설명했지요? 성이 내벽과 외벽 두 개의 벽으로 되어있었다고 했는데 사람들 중에 이 두 성벽 사이에 대들보 같은 것을 걸치고 집을 짓고 산 모양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집입니다. 틀림없이 가난하고 집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겠지요. 그런데 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한 기생 라합의 집에 두 이스라엘 정탐꾼이 숨어들면서 오늘의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그런데 제일 먼저 이런 의문이 듭니다. 왜 두 정탐꾼은 하필 이 윤락녀인 라합의 집에 들어간 것일까요? 첫째로 윤락여성이 사는 집은 온갖 남자들이 다 드나들기 때문에 낯선 남자 둘이 들어간다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 아무리 그래도 라합이 두 사람의 정체를 모르고서야 어떻게 숨겨주었겠습니까? 라합은 이 두 사람의 손님이 그저 평범한 손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탐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숨겨 준 것입니다. 왜 숨겨주었는지는 조금 있다가 생각해 보기로 하고 아무튼 두 사람의 정탐꾼은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집을 놔두고 기생 라합의 집에 숨어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이 인도하신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그저 두 정탐꾼이 의심 안 받을만한 곳으로 찾아간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단순히 발길 닿는 대로 찾아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사전에는 '우연'이란 없다고 했지요? 하나님이 두 정탐꾼의 발길을 라합의 집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라합의 집 아닌 다른 집이나 다른 기생의 집으로 들어갔다면 틀림없이 배신당해 붙잡히고 무자비하게 처형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여리고성에 사는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이스라엘에게 마음이 기운 라합이 있는 것을 보시고 두 정탐꾼을 그 집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는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나는 그저 우연히 그곳에 간 것뿐인데,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간 것뿐인데 그곳에 나를 도와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연일까요? 운이 좋은 것일까요? 나는 그저 별 생각 없이 그 길을 택했는데 놀랍게도 정말 좋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저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찾다보니 이 교회에 온 것뿐인데 그곳에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게 됩니다.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운이 좋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길로 가면 어떻게 되는지, 그곳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미리 다 아시고 철저한 계획 하에 나를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참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탁월한 선택

그런데 여호수아 2:2에 보면 여리고성의 왕이 두 명의 정탐꾼이 여리고성에 잠입했다는 첩보를 듣게 됩니다. 왕이 두 사람을 찾기 위해 사방을 수소문했겠지요. 그런데 마침 두 명의 수상한 남자가 라합의 집에 들어갔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입니다. 여호수아 2:3에 보면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 두 사람을 끌어내라고 합니다. 하지만 라합은 두 사람을 지붕에 말리기 위해 널어놓은 삼대, 즉 삼나무 줄기 사이에 숨기고 "두 사람이 이미 이 집을 떠났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이 거짓말에 속아 뒤쫓아 간 사이 성벽 아래를 향해 난 창문에 줄을 걸고 두 사람을 달아 내려서 도망하게 도와줍니다. 라합이 왜 이런 행동을 한 것일까요?

아주 오래 전 TV에 이런 선전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지금은 LG전자가 되었지만 당시 가전제품을 만들던 금성사에서 내건 슬로건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순간의 선택이 1년이나 10년을 좌우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그러니 우리도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영원히 후회할 일이 생기기고 하고 반대로 영원히 상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 기생 라합은 아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참으로 탁월한 선택을 합니다. 내 동족인 여리고 사람 편에 서서 두 정탐꾼을 고발하고 상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 편에 서서 두 정탐꾼을 숨겨주고 도망시킬 것인가? 물론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동족인 여리고 사람들을 배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동족을 배신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러다가 발각되면 자신과 가족은 다 동족에게 몰살을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라합은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의 편에 서서 두 정탐꾼을 숨겨주고 도망시킵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선택을 했을 때 그 결과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요? 하나씩 살펴봅니다.

제일 먼저, 여호수아 6:25에 보면 라합과 그 가족은 두 정탐꾼과 약속한 대로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정복할 때 구원을 받습니다. 다른 여리고성 사람들은 다 죽었는데 오직 라합의 집안만 다 삽니다. 생명을 구하고 구원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쪽을 선택할까 참 어렵고 애매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의 절대적인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구원의 길을 선택하십시오. 다른 어떤 것보다 생명을 얻는 쪽을 선택하십시오. 그래야 마지막 심판의 날에 다 심판 받고 영원한 죽음에 떨어질 때 라합과 그 집안처럼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법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 올 때 라합은 창문에 붉은 색 줄을 매달아 신호로 삼습니다(수 2:18). 많은 이들이 이 붉은 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고 봅니다. 즉 우리가 심판 날에 구원 받고 생명 얻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상을 받다

두 번째로, 라합이 두 정탐꾼을 숨겨줌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구했다고 했는데 생명만 구한 것이 아니라 엄청난 상을 받게 됩니다. 만약 라합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두 정탐꾼을 고발했다면 틀림없이 여리고의 왕에게 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합은 그 상을 포기하고 두 사람을 숨겨줍니다. 그래서 여리고왕이 주는 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상을 받게 되는데 그 상이 무엇일까요? 성경에 그 이름이 영원히 남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상입니다. 우선 마태복음 1장에 나온 예수님의 족보에 보면 이 기생 라합의 이름이 5절에 나옵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학자들은 여리고성이 망할 때 구원을 받은 라합이 두 사람의 정탐꾼 중 하나인 살몬이라는 사람과 결혼해 보아스를 낳았고 이 보아스가 룻기에 나오는 룻과 결혼해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고 봅니다. 나아가 이 족보에서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이 태어나십니다. 그러니 천하디 천한 기생 라합은 다윗임금뿐 아니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영광의 상을 받은 것입니다. 또 야고보서 2:25도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며 라합을 칭송하고 있고, 탈무드에서도 라합을 사라, 아비가일, 에스더와 더불어 구약성경의 가장 대표적인 여인으로 뽑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라합이 만약 발각되어 벌을 받거나 생명을 잃을까봐 두 정탐꾼을 고발했다면, 여리고왕이 주는 상이 탐나 그렇게 했다면 이 땅에서 작은 상은 받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그 이름은 영원히 더러운 이름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합은 믿음으로 이스라엘 백성 편을 택해서 그 이름이 영원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영원하고도 놀라운 상을 받게 됩니다.

약점을 극복하는 믿음

세 번째로 라합은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도리어 강점으로 만든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라합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의 직업이 기생, 즉 윤락녀였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만 해도 정말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녀의 직업을 조금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믿음만 보고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인 믿음으로 꼽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적시에, 즉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가 용서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회개하기만 하면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보든 성경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창녀와 세리처럼 당시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과 어울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한 창녀와 세리를 회개하지 않는, 자신은 조금도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람들이 볼 때 바리새인과 창녀-세리는 비교가 안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겉으로 보는 기준보다 그 심령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회개한 죄인이 하나님을 위해 위대하게 쓰임 받는 것을 너무도 많이 봅니다. 사울 같은 죄인 중의 괴수가 회개하니 사도 바울 되어 주님을 위해 놀랍게 사용됩니다. 이밖에도 우리는 세상에서 죄 많이 짓고 정말 추악하게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 아름답게 살고 하나님 영광 드러내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그래서 이런 경험을 한 사도 바울이 로마서 5:20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고백한 모양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리고성에서 단 한 사람을 택해서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십니다. 그는 여자요 추악한 직업을 가진 창녀입니다. 여리고성에서 둘도 없는 가장 더러운 여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여리고성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고백한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둘째, 라합이 동족을 배반한 배신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동족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는 용서받지 못할 매국노입니다. 그런데도 왜 성경은 그녀의 믿음을 그토록 높이 평가한 것일까요? 그 답은 여호수아 2:9에 나옵니다. 라합은 두 정탐꾼을 도망시키기 전에 이런 말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홍해를 가르고 애굽에서 탈출한 일과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쳐부순 이야기를 듣자 여리고 사람들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크게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두려워 떨면서도 어떻게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방비를 더 튼튼히 합니다. 눈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고도 끝까지 이스라엘을 추격한 애굽 군인들처럼 자기네가 이스라엘을 막을 수 있는 줄 착각한 것이지요. 그래서 히브리서 11:31은 여리고성 사람들을 '순종하지 아니한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똑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라합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됩니다. "아, 이 소식을 들으니 정말 하나님이 계시긴 계시구나. 우리가 하나님이 보호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길 도리가 없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동족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편을 선택한 것이지요. 비록 겉으로 볼 때는 자기와 가족 목숨 건지려 동족을 배신한 비열한 배신자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 그녀는 사람의 편이 아닌, 혈연이나 지연이나 그 어떤 인간적인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리고성을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주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앞날을 내다보는 믿음이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다면, 이런 믿음의 눈이 있다면 우리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아직은 안 보이지만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이 내게 주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왜? 하나님이 내 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이와 같이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들을 믿음으로 극복함으로 오히려 강점으로 바꾸어 놓아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자신도 위대한 신앙인이 된 여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약점이 있습니까? 내 앞길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약점 없습니까? 저도 그런 약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성격에도 약점이 있고 건강과 신체적인 약점, 환경적인 약점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 약점만 보고 있노라면 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온통 불가능한 일들만 보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약점을 가진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 있으면 이 약점이 오히려 장점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 약점을 사용해 위대한 일들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생 라합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라합의 믿음은 한 마디로 '선택'입니다. 우리도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 같은 세상적인 기준에 매여 인간적인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 됩니다. 믿음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택해야 합니다. 사람의 편이 아닌 하나님의 편을 택해야 합니다. 순간적인 상이 아닌 영원한 상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라합처럼 약점도 장점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멸망 대신 구원을, 저주 대신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영원한 하늘의 상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도 이 믿음 갖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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