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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을에 밭을 가는 신앙 (잠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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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잠 20 : 4 - 7           
제목 : 가을에 밭을 가는 신앙

여러분 요즘 들어, 이런 감정을 느끼시는 분들이 참 많을 있을 줄로 압니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하루 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올 한해를 새롭게 시작한지가, 진짜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월의 첫 주를 우리가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참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세월은 이처럼 유수와 같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는데,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했으며, 지금  현재에 나는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것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올 한해가 시작 될 때에, 아니 언제든지 새 해가 시작되면 의례 그러지요? 
희망의 새 해다 뭐다 해서 떠들썩하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희망이 어딨습니까?  희망은 발견할 수 없고, 올해도 여전히 불투명하고, 어려운 한 해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내고 있다는 겁니다. 

올해가 시작될 때만해도,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각오로 이 한 해를 맞이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변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실 변한 것이 별로 없는, 오늘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변화가 없는, 소망이 없는 한 해를 보내게 되는 것일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이유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우리 크리스챤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성도들, 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변화가 없고,  소망이 없는 날들을, 올해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변화를 수용할 만큼 신앙이 성숙  하지를 못했기 때문이고, 또한 소망이 내 삶에 이루어질 만큼, 우리의 믿음이 크지를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담에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서양 속담은, 거의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잘 되겠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결국 그 인생에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지도 않고, 추수할 곡식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는, 결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만물들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수고를  감당 해야지만,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식물들이나 나무들을 보세요. 얼마나 푸릅니까?  과실수마다 열매는 또 얼마나 풍성합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 나무들이 심어 놓으면 거저 그렇게 잘 자라납니까?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들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뿌리로는 자양분을 빨아들여야 하지요.  그리고 그 자양분들이 줄기나 잎으로  골고루 공급이 될 수 있도록, 잘 안배를 해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병충해와 싸우고, 때로는 모진 비바람과 싸우면서 자신을 지켜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런 노력의 결과로서, 아름다운 잎새를 자랑하고, 또 가을에 추수할 곡식을 내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면, 대게가 땀  흘리는 수고는 생략한 채, 결과만 얻으려고 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수고하기를 싫어하면서도, 열매를 거두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은, 신앙인인 아닌, 지극히 불신앙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와 같은 말씀이 나와 있지 않습니까?  4절 말씀을 보세요.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  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여러분, 결실은 어떤 사람들이 맺습니까? 
부지런한 사람, 게으르지 않는 사람들만이 맺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에겐 어떤 열매가 있습니까?  특별히 신앙생활 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있습니까?  저마다 쌓아온 신앙의 연륜이, 다 있을 것인데, 그 연륜에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 이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하는,  그런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필수 사항인 것입니다.  성도라고 한다면, 신앙생활 가운데 반드시 열매를 맺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데요, 주님이 얼마나 열매를 원하고 계시는가?  마 21장에 보면, 주님의 이러한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 21장에 어떤 내용이 있습니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책망 정도가 아니지요?  아예 저주를 하셨습니다.

왜 저주하셨습니까?  그 무화과나무가 잎은 푸르고 무성한데, 시장하신 주님이 열매를 찾을 때,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배가 고파서 열매를 찾았는데,  열매는 없다.  그래서 주님이 열 받으신 겁니다.  그래서 화가 나서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오늘날 신앙생활  하면서, 주님을 열 받게 하는 성도는,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열매 없이 오랜 세월을 보내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는, 이런 성도 없습니까?  여러분, 옆 사람 볼 필요 있겠습니까?  아마 우리 가운데 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니, 그러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저주받을 사람들인가?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열매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그 정도로,  주님이 저주하실 정도로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실상은 열매가 없음으로, 무화과나무와 같이 저주를 받아 마땅하지만,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수요일 날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때문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눅 13장 말씀을 보세요.  6절 이하에 보면, 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이 무화과나무 역시, 열매가 없는 나무입니다.
과원에 심겨져 있는데, 3년 동안 열매 없이 자라갑니다. 
그 때, 과원 주인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13 : 7절 말씀에 보니까,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열매 없는 나무를 찍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 아닙니까?

여러분, 과원이 어떤 곳입니까?  과원은, 유실수를 심어 놓은 장소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열매를 얻기 위해 나무를 심어 놓았다는 것이예요.  그러나 그 심어 놓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과원에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찍어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참으로 매정한 말 같지만, 과수원의 주인 된 입장에서 볼 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주인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주인이라도,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무화과나무는, 그대로 과원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과원지기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8, 9절 말씀에 보니까, 과원지기가 주인에게 강청을 합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을 별 문제없이 신앙생활을 해 왔고,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기도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여, 올해도 용서하옵소서.  제가 저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습니까?  내가 다시 저들에게 은혜를 주고, 다시금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보살피겠습니다.  만약 내년에도 열매가 없다면, 그 때는 찍어 버리소서.”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주님의 중보의 기도가 올해만 있었겠습니까? 
작년에도,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해서 있었는 줄로 압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 예수님의 기도 때문에, 우리가 여러 해를 반복해서 열매 없이 살아가도 참으시고, 또 용납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인내하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그 인내하심이 언제 끝이 날 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할 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올해가, 이 2007년도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인내가 끝이 나는, 마지막 해라고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께 다시금 인정을 받고, 그래야 다시금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천교회 모든 성도들은, 이제라도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을, 어떻게 맺어갈 수 있겠는가? 딤전 4 : 15절을 보게 되면,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만한 신앙의 진보를, 먼저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러한 신앙의 진보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지요? 
그만한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노력입니까? 
먼저 우리들이 신앙생활에 “전심전력”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전심전력하여” 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전심”이라는 말을, 헬라어 원어를 살펴보면, “멜레타”라고 하는 단어를 쓰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밭을 경작하다.” 라고 하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진보를 사람들 앞에 나타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신앙의 밭을 경작하는데 전력하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농부가 추수할 곡식을 거두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밭을 기경하는 일입니다.  겨우내 묵은 땅을 갈아엎는 일입니다.
이 일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그 다음에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이 허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농부가 밭도 갈아놓지 않고, 겨우내 언 땅에 그대로 씨를 뿌린다면, 그 씨앗이 자라겠습니까?  혹 자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정성껏 가꾸어 본다고 해도,  결국 그 씨앗은 열매 없는 쭉정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기대하는 농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묵은 땅을 기경 하는 일, 밭을 갈아엎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가을에 밭을 가는 신앙” 입니다. 
왜 우리가 이 가을에 신앙의 밭을 갈아야 합니까?  그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오늘 본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우리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실까요?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게으른 농부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 4절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할 줄로 압니다.
4절에 나타난 농부가 게으르다고 해서, 그가 씨앗을 구해 온다거나, 또는 구해온  씨앗을 뿌린다거나, 혹은 그 씨앗 위에 물을 준다거나 하는 일마저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그를 어찌 농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4절의 말씀은, 이 농부가 다른 일은 다 하는데, 밭을 가는 일만은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밭을 가는 일이 제일 힘이 드니까, 그런 힘든 일은 생략하고, 그냥 씨만 뿌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아예 농사를 짓지 않은 사람과 똑같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에,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왜 1년을 나름대로 수고해서 거두었는데, 구걸합니까?
소출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헛수고했다는 겁니다. 

다른 농부들과 똑같이 농사를 지으며 1년을 보내었는데,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예요.  결국 소출이 없어서, 남들에게 얻으려고 해 보지만, 그것  조차도 용납이 되질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해서 실패를 했더라면, 다른 농사꾼들에게 긍휼이  여김을 받아 얻는 것이라도 있었을텐데,  그들이 보는 눈앞에서 일하지 않고  요령부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으며, 누가  그런 사람에게 자기가 수고한 결실을 나누어주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래서 구걸할지라도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게으른 농부는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오늘 우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겁니다.  한 번 더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지요?  오늘 여러분에게 열매가 있습니까?  신앙의 연륜에 합당한 열매가 있습니까?  왜 똑같이 신앙생활을 했는데,  누구에게는 신비한 영적 체험도 있고, 삶에 기쁨도 있고, 전도의 열매도 있는데, 왜 나에겐 그러한 체험도, 삶에 기쁨도, 전도의 열매도 없는 것일까?

내가 교회를 안 다녔습니까?  내가 설교 말씀을 안 들었습니까? 
내가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전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다 했습니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나에게는 이런 일이 없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이 모든 일에, 우리가 전심전력하지를 않고, 적당히 적당히, 요령껏 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밭가는 것이 힘이 들기 때문에, 그냥 씨만 뿌렸기 때문  이라는 것이예요. 
오늘 본문 5절 말씀을 보세요.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에게는 다 욕심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깊은 우물물과 같이, 우리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철한 사람은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그것을 길러 내느니라.”  “그것을 길러 내느니라.”
아무리 우리가 좋은 것을 계획하고, 그것을 이루기를 소망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물을 길러내려는 노력, 땀 흘리는 수고를 하지  않고서는, 결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에 이제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고  우리에게도 은혜가 되는 귀한 열매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맺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여러분의 신앙에 묵은 땅을 기경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고집과 아집, 전통의식, 그리고 부담을 싫어하는 모든 잘못된 신앙을  이제는 갈아엎으시길 바랍니다. 

호 10 : 12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지요?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또한 렘 4 : 3절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동일한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더 이상 우리의 신앙이,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는, 밭도 갈지 않고 씨앗을 뿌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이 갈아야 될 밭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 동안 갈지 않아 방치된 채로 굳어져 있던, 딱딱한 밭, 메마른 밭은 과연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가 갈아야 할 밭,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우리의 마음의 밭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지금부터라도 갈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막 4장에 보면, 예수님이 비유하신 여러 가지 밭이 나옵니다.
돌밭과 가시떨기 밭, 그리고 옥토 밭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밭은 무엇입니까?  오직 옥토 밭 뿐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가 되었느니라.”  좋은 땅에 씨앗이 떨어질 때에 결실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 오래 다니고, 성경을 많이 보고, 말씀을 많이 들어도, 여러분의 마음이 옥토가 되지 않고서는, 결실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그 말씀들이  은혜로, 축복으로 열매 맺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흔히 말씀이, 꿀 송이와 같이 달다고 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은, 이미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받는 그 마음이 이미 옥토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그렇게 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스폰지와 같이, 그냥 쫙쫙 빨아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요,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질 않습니다.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니까, 자꾸만 뭐만 바라보게 됩니까?  시계만 바라보게 됩니다. 
“주만 바라볼지라.” 아니지요, 시계만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송이 같이 단 게 뭡니까?  무슨 한약을 마시듯이 쓰기만  합니다.  자꾸 하기 싫은 것 하라고만 하는데, 뭐가 달겠습니까? 
주일성수 하라고 하지요, 십일조 하라고 하지요, 죄짓지 말라고 하지요.  입에 안 맞습니다.  입에 씁니다.  삼킬 수가 없어요.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뱉어버립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열매가 없을 수밖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주의 말씀은 진립니다.” 
오늘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이 은혜의 진리로 받아들여지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질리게 하는, 부담스러운 말씀으로 여겨지십니까? 

잠언 16 : 24절에,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잠 27 : 7절에 보면,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는 모든 말씀이, 이 강단에서 증거 되어지는 모든 말씀들이, 다 꿀 송이와 같이 달게 느껴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2. 우리가 그 동안 메마른 채로 버려 둔 우리의 밭이 있다면, 그 밭은 무엇  이겠습니까?  그 밭은, 사랑의 밭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밭을 갈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이미 여러분의 심령에는  사랑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는 사랑의 밭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이 사랑도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만 우리 마음 가운데 굳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개발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 밭을 갈아야 하는 것입니다.  요일 4 : 7 - 8절에 말씀하지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  이심이라.”  할렐루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누구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이처럼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성경  말씀을 배워도, 성도들 간에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없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신앙생활을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어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늘 잘못된 모습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사람들에게 가시가 되어서 고통을 주고, 아픔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이 메마른 가운데 하는 사역에, 무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들이 나타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고전 13 : 2 - 3절에,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 결실도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진 사랑은 일반 세상적인 사랑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가진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도 아무런 대가 없이 내어주신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100%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  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입니까?  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 속에 있는 이 사랑의 밭을, 갈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행위들을 삶 가운데 실천하는 것이, 사랑의 밭을 가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까?  먼저 여러분의 옆에 있는 교회 안의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성도들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랑은 손해 보는 것입니다.  사랑은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사랑의 밭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할 때에, 우리는 더욱 더 풍성한 사랑의 결실을 맺으며,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사랑의 결실을 맺어 갈 때에, 우리 성천교회는 사랑이 넘쳐나게 되고, 예수의 향기가 넘쳐나게 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칭찬 듣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3. 우리에게 메마른 채로 버려진 밭은 무엇입니까?  전도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도의 밭을 갈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천 교회는, 전도 많이 하는 교회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8백명, 9백명, 천명도 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전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제는 과거의 그런 모습들이 점차 전설이 되어져 가고  있다는 겁니다.  전도하는 것이 전통이 되어져서 끊임없이 계승되어져 가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점차 희미해져 가면서, 점차 소극적이 되어 가면서, 이제는 그 옛날 뜨겁게 전도하던 모습이, 전설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주변의 교회를 바라보세요.  얼마나 큰 교회들이 주변에 계속해서 세워지고 있습니까?  그 교회들에 우리가 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세상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도, 여러분을 향해 비아냥거려도,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더  열심히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 교회가 살고, 장래에 부흥하게 되는, 유일한 길 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원래 목적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와 축복이 아닙니다.  내가 이 땅에서 잘 되고 강건케 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은 받은 원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축복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인의 가장 큰 바램은 무시하고, 우리가 다른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찌 우리 인생 가운데, 계속해서 복을 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일만 땀 흘리며 수고를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땀 흘리는 수고가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자랄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일꾼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 소유의 밭을 부지런히 갈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밭이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다 주인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종은, 원래 자기 소유가 없습니다.
있다면, 주인이 그 동안 수고를 치하해서, 그 종에게 얼마를 떼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이 원래 맡은 주인의 밭을 가꾸는 일에는 소홀히 하고, 조금 있는  자신의 밭을 가꾸는 데만 열심을 낸다면, 그 주인이 기뻐하겠습니까?
있는 것 마저 빼앗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이 가을에,  부지런히 전도의 밭을 가는 농부가 되시길 바랍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다른 열매와는 달리, 전도의 열매는 하나만 맺어도, 하나님이 미친 듯이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한 영혼도 전도하지 못합니까?  아직도 태신자를 작정하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까? 
지금이라도 전도의 밭을 갈아, 전도의 열매를 맺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니까, “많은 사람은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가을에 여러분의 마음 밭을 갈고, 사랑의 밭을 갈고, 또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의 밭을 갈아서, 풍성한 결실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수고와 노력을 하시는 분들을,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7절 말씀에, “완전히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이 가을에 밭을 가는 신앙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되, 여러분의 자녀들과 후손들까지, 이런 놀라운 축복 다 받아 누리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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