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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로 환경을 이기라(3) : 특별한 기도가 필요한 때에 (눅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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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환경을 이기라(3) : 특별한 기도가 필요한 때에 (눅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 6:12)

I. 본문해설

예수님의 생애에서 공생애의 시작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 사이에 한 분수령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열두 사도를 택하신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택하심으로써 단기적으로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나가게 하셨고, 장기적으로는 이들을 통해 신약 교회의 초석을 놓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뒤이을 때에도 충만한 능력과 권세를 주셨을 뿐 아니라 신약 교회의 초석을 놓을 때에도 그들 위에 성령을 물 붓듯 부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택하신 이 사건은 그분의 지상에서의 사역이 단지 그 당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로 인해 세워질 신약 교회를 통해서 대대적으로 주님의 사역에 뒤를 잇게끔 하시고자 하는 원대한 계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택하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가난한 자들을 도우셨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열두 명의 사람을 택한 것은 처음 만난 열두 명의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당신이 알고 있는 많은 무리들 가운데 열두 사람을 택해서 그들에게 ‘사도’라 칭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사역을 뒤잇게끔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겠습니까?


II.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필요한 때

성경은 바로 이 엄청난 일이 있기 직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산으로 가셔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한밤을 기도로 지새우셔야 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이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가 필요 없는 때라고는 없습니다. 늘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하고 늘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상적인 도우심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의 삶의 상황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우리를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인도해주셔야 할 필요가 있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렇게 특별히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한 그때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방황하고, 위기와 어려움은 시시각각으로 닥치고, 무엇을 선택해도 확신이 없고, 또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 없이 무엇을 선택한다면 몇 걸음 걸어가지 않아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게 되고 자신의 선택을 뉘우치게 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가 우리의 인생에 반드시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계셨고 또 사람을 깊이 꿰뚫어보는 안목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의 마음속에 간사함이 없는 것도 아셨고 처음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남성편력을 지닌 여인이라는 것도 즉시 알아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실 수 있었지만,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매우 특별한 인도를 받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밤이 맟도록 산에 올라가서 간절히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도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필요한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처럼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상식과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각별한 인도를 따라서 도움을 받고 싶어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과 달리 죄인이고 부패성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의 일 앞에서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지극히 작은 일에서도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면 한 걸음도 옮겨놓을 수 없는 어려운 기로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하던 사업을 정리할 때나, 혹은 다른 사업을 시작할 때나, 직장을 옮길 때나, 새롭게 일을 시작해야 할 때나 인생의 중대한 문제인 결혼을 앞두고 등 여러 가지 많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필요한 때에 사람들이 저절로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도 얼마든지 그 뜻을 거스르면서 살기도 하고, 불순종으로 주님께서 가라는 길에서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런 일들이 언제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의 삶이 그렇게 불순종으로 이어지고,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속에도 죄와 불순종, 어두움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인생을 걸어가면서 삶의 기로 기로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가 필요한데도 그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보다는 자신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갈 길을 선택한 후에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여 고통 받고 방황하는 지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III.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기도하심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누워서 쉬는 것이 건강을 이어가는 기본적인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적인 이야기이고 졸리는 데도 자지 말아야 하고 배가 고픈데도 먹지 말아야 하는 특별한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떠들고 놀고 싶은데도 그러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들은 특별한 기도를 요합니다. 교회 역사에 나타났던 특별한 부흥들은 항상 그 앞에 부흥이 오는 조짐들이 나타났으니, 바로 특별한 기도의 사람들의 등장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일을 앞두고 계셨기 때문에 특별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자신 앞에 크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할 때, 그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대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별하게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기도에 있어서 우리를 일반적으로 훈련시키기도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기도의 용사가 되도록 때로는 특별한 훈련을 시키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기도생활을 안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피곤한 중에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셔서 기도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일상적인 생활이었습니다. 기도가 일상적인 생활로 굳혀지는 것 자체가 얼마나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날은 밤을 지새우셨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일이 있는 때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각기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특별한 기도제목입니까? ‘하나님이 이루어주셔도 되고 안 이루어주셔도 됩니다’ ‘급한 기도부터 들어주시고 제 기도는 생각나시면 들어주시든지 말든지 하십시오’ 하는 기도의 제목들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도제목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도는 일반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그에 미치지 못하든지 합니다. 누가 그분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을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기도의 제목은 매우 특별한 기도의 제목이고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매우 특별한 상황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나의 처지를 돌보아 주셔야 한다고 하는, 주님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기도는 어떤 기도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기도는 청산유수와 같은 묘사, 멋들어진 문학적인 서술들이 깃들여져 있는 아름다운 문장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는 기도는 특별할 때에 드리는 특별한 기도입니다. 상황은 특별한 상황을 맞이하였는데 기도가 일반적이라고 할 것 같으면 아직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특별한 기도 제목을 향한 헌신의 마음이 준비되어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새벽마다 드리는 그 기도만으로도 예수님의 일생의 사역을 이어가시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니 우리처럼 기도하는 동안에 죄로 말미암아 기도의 영이 산란해지신 적은 없었을 것이고 그분은 하나님이셨으니 건성으로 기도하셨을 리도 없으셨을 것이며 우리처럼 기도하다가 힘들면 졸다가 일어나는 일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과 언제나 동행하며 사신 분이었으니 그분의 기도의 시간은 전부 하나님과의 교감 속에서 드리는 헌신적이고 열렬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달프기 짝이 없는 일과 속에서도 새벽 시간을 그렇게 드리며 아버지 앞에 사셨으니 주님의 그 새벽의 기도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 속에 일생을 사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일 앞에서 그분은 특별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셨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부터 또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분은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기 때문에 그날 밤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기도로 밝히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 속에서 사시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육체의 안락함을 포기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상적인 기도생활도 무너진 사람들이 많거니와 일상적인 기도생활이 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뭔가 훈련시키기 위해서 좀 특별한 기도를 바라셔도 우리는 더 이상 특별한 기도를 하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주신 기회들을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끝내게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들은 점점 더 능력 없는 삶을 살아가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놀라운 은혜의 기적들을 체념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보십시오. 크고 중요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특별한 일을 앞두고 특별한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IV.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

예수님께서 바로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기로 결심하시고 산에 올라가셔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신 후 확신에 찬 가운데 내려오셔서 열 두 명의 사도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그러한 기도는 어떠한 기도였겠습니까.

우선 첫째는 산에서 드리신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그 전체가 고단한 수고와 견디기 힘든 노역의 연대기였습니다. 안식과 휴식도 없으셨고 수많은 반대자들의 악랄한 박해와 그리고 무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순종에 에워 쌓이신 생애였습니다. 그렇게 고난에 넘치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제자들 중에서 사도로 택하시기 위해 산 속으로 들어가신 그 날도 아마 하루 종일 진리의 복음을 선포하고 이 동리 저 동리 다니시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 받는 자들을 고쳐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들을 가르치신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하루의 일과였을 것입니다.
그런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육신은 휴식하도록 예수님께 요구하였지만 잠시의 휴식보다도 더 큰 일이 예수님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고 신약시대의 교회의 초석을 놓을 열두 사도를 택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셔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 속으로 가신 것은 산 그 자체에 무슨 영험함이 있기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영성은 환경을 초월하는 영성이 정말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정한 영성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롭지 못하고 경건하지 못한 삶을 환경의 핑계를 대고 상황의 탓으로 둘러댔지만 성경을 보면 오히려 그 마음이 진실로 하나님께로 향하였던 사람은 타락한 시대에서 별처럼 빛나는 믿음으로 살았고, 모두들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던 때에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지켰습니다. 시대가 춥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사랑의 불꽃을 더욱더 잘 지켜야했고 시대가 어두웠기 때문에 오히려 빛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더 굳게 붙들며 그 빛 안에 거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지와 죄악으로 가득 찬 시대에 사셨고 사악한 종교 지도자들 틈바구니에 에워 쌓여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높은 산꼭대기나 한적한 광야로 나가서 수도원을 설립하시는 대신에 예루살렘의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이 우글거리는 거리거리를 다니며 주의 말씀을 가르치셨고 심지어는 부패하기 짝이 없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종교가 아닌 유대교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모인 회당에 들어가서 진리의 참 복음을 전하심으로 비진리(非眞理)와 승부하셨던 것입니다. 시대가 어둡고 캄캄할수록 빛 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면서 살아야 하고 빛 된 성도들이 자신의 온 삶과 신앙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결정적인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받아야 된다라고 하는 말들이 마음속을 크게 파고드는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애가 하나님께 바쳐진 생애였지만 특별히 이 어려운 선택을 앞두고 하나님의 각별한 인도를 바라며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정말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영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도원을 지으시는 대신, 광야에 홀로 집을 지으시는 대신 예루살렘의 거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과 사셨지만 예수님께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홀로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이 있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말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기도만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온 삶을 기도의 영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늘 기도하고 하나님을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살아감으로써, 언제든지 기도하고자 할 때 자신의 마음속에서 기도가 언어로 용해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그런 영적 생활을 항상 이어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무시로 기도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기도의 세계가 있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수시로 전철이든, 차안이든, 길거리를 걸어 가면서든, 장사를 하면서든, 직장에 있으면서든 하나님 앞에 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무시로 드리는 기도생활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든 환경으로부터 떠나서 자기만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런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언제 어디서 기도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저는 특별히 정해진 기도 시간도 없고 정해진 장소도 없습니다. 늘 기도하면서 살지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입니다. 거의 사도들의 수준에 육박하는 기도의 영성을 소유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별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늘 기도해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는데, 사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짧은 시간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셔서 기적에 가까운 역사를 베푸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하늘의 자원을 부음 받고 그 기도의 응답을 받는 놀라운 역사는 한순간의 간절한 기도만으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보면 짧은 시간의 기도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았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필요한 시간에 간절히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이렇게 홀로 기도하는 깊은 기도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순간에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개입하셔서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 모두 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무시로 기도하면서 사는 순발력 있는 기도의 삶과 함께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서 누구에 의해서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는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기도의 시간 모두를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이렇게 하나님을 홀로 대면하는 산이 있습니까?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과 홀로 대면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여러분들의 기도 생활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장소는 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박해한 사람들의 야비한 비난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 오로지 무릎을 꿇고 지존하신 하나님만을 대면하고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선생, 놀라운 치료자, 기적의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 아들로서 무릎을 꿇고 주님을 홀로 대면하는 그런 시간, 그런 세계가 예수님께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깊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특별한 인도를 받고 싶으셔서 산 속으로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기도할 수 있는 환경에 두어야 합니다. 각오가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님이 그 산에서 밤이 맟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밤이 마치도록,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할 그 시간에 드린 예수님의 기도가 장시간의 기도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장시간의 기도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속에 기도의 열렬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 뜻대로 하고 싶어 하고,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이 이 땅에 자신을 통하여 펼쳐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특별한 인생의 위기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너무 간절히 받고 싶어 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고자 하는 열정이 그 속에 있는 법입니다. 그러한 열정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는 잠깐을 기도하고 나서 시간을 보면 한 두 시간 혹은 서너 시간이 지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에 간절한 열정이 없고 기도의 열렬함이 없을 때에는 실로 긴 시간을 기도했는데도 시간을 보면 겨우 5분인 흘렀습니다. 10분도 안 지났습니다. 이것은 결국 긴 시간의 기도가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는 마음과 그 기도가 그렇게 열렬하고 간절하면 우리로 하여금 깊은 기도 속으로 데리고 가고 그렇게 기도가 깊어지면 그 기도는 반드시 장시간 하나님 앞에 매달리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여주신 바와 같이 정해진 장소를 규칙적으로 찾으시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 이렇게 장시간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고된 사역에 시달리고 자기를 다 소진하셨습니다.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피곤하고 연약한 육체를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원래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밤이 되면 자는 것이 창조의 섭리이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지금 이 시간은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피곤한 일과 끝에 쉬셔야 될 시간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처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것입니다. 당신께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도 모두 돌아가고 고요하게 홀로 있는 시간이 와서 이제 쉬셔야 되는데도 예수님은 그 발걸음을 산으로 옮기셨습니다. 피곤한 몸에도 불과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온 밤을 뜨거운 기도로 지새우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환경 때문에 쉽게 무너지고, 우리 속의 생래적인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열렬히 기도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수시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그 고난의 생애를 묵상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작은 일에 있어서 자기를 희생하고 작은 십자가를 지는 충성스런 삶이 없는 사람들이 장엄한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것은 모두 영적인 허영입니다. 오늘 하루를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오늘 열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현실적인 삶에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하여 게으름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들을 개선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져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 때에 ‘주님, 나를 받으소서’ 라는 고백이 하나님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지푸라기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 건드리기만 하면 깨져버릴 질그릇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죄와 불순종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심령이 상해졌던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고치셨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이 결국엔 인간의 모든 연약함을 딛고 장엄하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믿음의 사람들 중에 태어나면서부터 믿음의 사람들이던 이들이 있었습니까? 신앙의 사람들 중에, 십자가의 사람들 중에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서 순조롭게 아무 어려움 없이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두 우리와 똑같은 삶의 환경에서 죄에 시달리고, 고단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에서 고통을 느끼고 곤고함을 느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그 무엇이 있었으니 바로 기도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도의 은혜를 소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바로 이렇게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사셔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쏟아놓아야 하는 생애를 사셨지만 변함없이 쏟아지는 은혜의 샘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그 샘을 소유하시어 이튿날도 거룩한 사역을 영광 가운데 이어갈 수 있는 신령한 힘을 공급받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 기도의 때를 열심히 지키셨고 특별히 이렇게 당신의 인생 가운데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이 아니면 당신 혼자서는 하나님 앞에 살 수 없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셨습니다.

열광하는 인파도 없고 당신에게 깊은 경외를 표하는 제자들도 없이, 남루한 옷을 걸치시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적막과 고요 속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특별한 인도를 받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고 계셨을 때 그분은 메시아도 아니었고 위대한 능력의 구주도 아니었고 단지 하나님의 아들로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매순간 붙들어주시는 아버지의 손이 아니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아들의 모습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무장시켜서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권능보다는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를 더 깊이 의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각별한 순간에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인도를 받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고요히 눈을 감고 깊은 산 깊은 밤에 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구하며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고된 수고와 견디기 힘든 노역으로 점철된 생애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수고로운 자신의 노고와 환경을 핑계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를 받아야 할 결정적인 기도의 순간을 태만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시면서 그 기도의 열정과 그 기도의 열렬함이 얼마나 가득했던지 예수님은 온 밤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로 새우셨습니다. 그렇게 밤이 맟도록 아버지께 매달리셨던 것입니다. 그 겟세마네 기도의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자기를 바친 열렬한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 자신을 촛대 삼아서 기도로 태워드린 기도의 밤이었습니다. 특별한 인도를 예수님이 받으셨기 때문에 열두 명의 사도들이 세워졌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실 수 있었고 그 사도들로 인하여 신약시대의 교회 초석이 놓여서 오늘날 우리가 그 교회 터 위에서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드려 헌신적으로 온 밤을 지새우는 기도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열매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V. 결론과 적용

예수님께 있어서 특별한 일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 중 열둘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시고 당신이 하실 그 일들을 이 사도들을 통해서 대신 행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하는데 도구가 되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여기에서 세워진 열두 사도들이 거의 다 사도행전에서 성령강림사건의 증인들이 되고 예루살렘 교회의 초석을 놓는 역사들을 이루어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일은 바로 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오늘 특별한 일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교회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의미가 있는 일일수도 있고, 혹은 그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여러분의 개인적인 일들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여러분들 앞에 놓여있는, 일상적인 기도로는 극복될 수 없던, 일상적인 기도로는 하나님의 응답을 불러오기 어려웠던 그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혹시 그 일이 여러분들에게 특별 기도를 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특별한 기도의 제목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기도만으로는 안 되고 특별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시간과 길이, 장소의 문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집중해서 그 기도의 제목에 몰입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시간들, 그런 마음, 그런 기도의 자세들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모두 편안한 삶을 좋아하게 마련입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은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자들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때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가 살아있다면 이것도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까? 우리에게 건강이 있다면 이것도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아닙니까? 원래 우리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에 우리의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꿈도 소망도 우리의 생명도 우리의 건강도 모두 그분의 것으로 바쳐졌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이 자기희생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 모두가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들의 고단한 인생에 대해서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들의 생애에 특별한 점을 찍으시는 그 일에 특별한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린다면, 그것은 참으로 크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여러분들은 삶의 활력을 공급받아 아름다운 영적 생활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이것 자체가 여러분들에게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기도를 본받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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