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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사 55: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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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사 55:6~11)

하늘과 땅과 바다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 대한 통칭입니다. 모두 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그 웅대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그중에도 하늘은 높은 것으로, 땅은 넓고 광활한 것으로, 바다는 깊은 것으로 설명되곤 합니다(출 20:4). 땅에 있는 사람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도 있고 바다 속 깊은 데로 떨어 질수도 있는 것처럼 세상에서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높은 차원의 삶이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인간이하의 동물적 생활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중 이사야는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에 차이가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과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에도 차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더라도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이 높고 그 길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1. 위에 것을 생각하여야 됩니다.

골로새서 3:1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2절에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모든 사고의 기준을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땅에서 하늘로 향하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1) 지성적인 요소가 위에 것이어야 합니다.

희랍 사람들은 지식을 추구하는 면에 있어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니…”(고전 1:22)하고 헬라인들의 지식에 대한 열정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먹고 살아가는 일과 같은 평범한 지식은 매우 낮은 것이라고 여기며 무시했습니다. 당시의 철학 도들은 다른 사람보다 차원 높은 지식을 추구한다고 하여 이를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사물의 본질을 논하는 이데아(Idea)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양에서도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논하는 것을 도(道)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도를 가리켜 진리(άλήθεια)라고도 하고, 말씀(λογος)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요 1:1-3).

2) 도덕적인 요소가 위의 것이어야 합니다.

대체로 지성과 인격을 갖춘 사람일수록 도덕성에 있어서도 우월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사를 땅의 것에다 기준을 두는 사람과 하늘의 것으로 기준을 삼는 사람과의 차이는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골로새서 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종교들이 도덕적인 계율을 가지고 사람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것은 다분히 땅에 있는 사람들의 기준에 의거합니다.
그러나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의식 하면서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거기에 맞추며 살아갑니다. 옛날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고도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하며 이를 거절하였습니다(창 39:9).

3) 영적인 요소도 위의 것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누구나 그 속에 영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고전 2:11). 그렇지만 자기 안에 있는 영성이 땅에 것으로 머물고 만다면 육신의 소욕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의 경우 그 영성이 깨어 있어서 육신의 소욕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에 맞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2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인의 이상을 말합니다.

비행기를 처음 발명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어릴 때 새가 공중을 나는 것을 보고 하늘로 날아오를 꿈을 가졌더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로 향하는 이상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비록 땅에서 살지만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빌 3:20).

1) 환상이 있습니다.

아비의 집을 떠나 밧단 아람으로 가던 야곱이 벧엘 광야에서 사닥다리의 환상을 보고 거기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창 28:17). 그 이후 야곱의 인생은 오직 그 환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가 하나님께로 부터 계시와 지혜의 정신을 받게 되면 하늘의 이상을 바라 볼 수 있는 신령한 눈이 열린다고 하였습니다(엡  1:17-19). 그 자신은 계시와 환상을 통하여 셋째하늘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때 자기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황홀한 지경에서 낙원의 맛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2:1-4). 순교자 스데반은 죽음의 순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감격해 하였습니다(행 7:55-56). 그리스도인의 꿈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저 높은 곳으로의 환상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과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복에 대한 개념도 확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고려 말의 충신 최영(崔瑩)장군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서 황금을 돌처럼 여겼더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1서 2:15-17). 하늘을 향한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은 세상적인 재물이나 부귀 따위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늘에 있는 신령한 복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된 후 이전에 자랑스럽게 여겼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다 버렸습니다(빌 3:8-9). 그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령한 복을 주시려고 창세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엡 1:3).

3) 하늘의 소망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실 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8:36). 또한 제자들에게 하늘에 아버지의 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요 14:1-3).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영원히 살게 되는 집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13:14에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오게 될 새로운 도성이 우리가 사모하는 새 예루살렘 곧 하늘나라입니다(계 21:1-2). 그리스도인은 비록 땅에 살지만 더 높은 하늘의 도성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가 두고 온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성을 예비해 두셨다고 하였습니다(히 11:16).


3. 임마누엘의 삶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땅에 남겨둔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마 28:20).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이 약속대로 성령과 연합되어 임마누엘의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로 지향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이 때때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거듭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육신의 한계 속에 살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을 가고자 애를 쓰지만, 몸은 땅에 속한 성향을 벗어 버리지 못하여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는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마 26:41).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인간의 고민을 다 아시면서 우리에게 주님을 더 가까이 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십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또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6-7절). 시편 73:28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2)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열두 명의 제자 중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산위에 올라가서 황홀한 광경을 목격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7:1-8에 보면  예수님의 얼굴은 해같이 빛났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또 그곳에 모세와 엘리야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무나 감동이 되어 초막을 짓고 거기에 살자고 하였습니다.
한편 그 시간 산 아래는 다른 아홉 명의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와 더불어 아비규환의 현장에 시달렸습니다. 산 아래와 산 위의 모습이 이렇게 다른 것은 하늘이 땅보다 높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마치 애벌레가 자라서 번데기가 되고 거기서 나방이 나오게 되면 날개를 달고 전혀 다른 생태계를 살게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도 차원 높은 삶을 살게 됩니다.

3) 승리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0:31에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곤비하고 피곤하게 사는 세상이지만 여호와를 앙망하며 높은 길을 지향하는 사람은 언제나 독수리처럼 새 힘을 공급받아 승리적인 삶을 즐기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하박국 선지는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몸이 떨리고 뼈가 썩는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지만 저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하박국 3:19에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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