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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욜 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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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요엘 2:28~32

오늘은 전부 고향에 가셔서 교회가 텅 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 가신 분들은 전부 분당이 고향이신가? 저는 분당이 고향이라서 여기 이렇게 미리 와있습니다. 모두 즐거운 추석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요엘서에 나타난 두 가지 방향의 말씀 중 지난 주일의 말씀은 육신 생활에 관계되는, 그러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아니하는 민족에게는 밭의 채소까지 벌레가 다 갉아먹어서 먹을 양식까지 없어지는 그런 육신적 방향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은 반대로 영적인 말씀, 영적인 교훈이 되는 요엘서의 다른 면의 말씀을 생각하겠습니다. 요엘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대가 B.C 830년이니까 이 예언의 말씀은 언제 이루어졌느냐 하면 A.D 33년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약 860년 만에 이루어진 말씀이 오늘 내용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요엘서의 말씀은 신약 사도행전 2장에 똑같이 기록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2장 16절에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그래서 2장 17절에서 21절까지 오늘 읽은 성경말씀이 그대로 나와 있어서, 사도행전에서 말씀하는 것은 “860년 전에 요엘 예언자가 예언해 놓은 것이 지금 이루어졌습니다.”라고 신약에서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강림 사건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오순절이라고 하는 유대인의 절기에 120명의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모여서 열심히 기도를 하다가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 충만한 역사가 나타난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이 역사는 요엘이 예언해 놓은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령 충만을 받고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이니까 그 옆에서 그 사람들을 보는 동네 사람들이 비웃는 말을 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술이 취했나 보다. 새 술에 취했나 보다.” 베드로가 그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여보시오! 지금이 때가 몇 시요? 이제 제 삼시가 되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시간으로 아침 9시입니다. “아침 9시부터 술 취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요?” “그럼 당신들이 떠들어대는 그건 도대체 뭐요?” “우리는 860년 전, 오래오래 전에 요엘 예언자가 예언해 놓은 것이 오늘 지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요엘에게 그 때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 이렇게 예언했는데 그 만민에게 부어주는 사건을 지금 여기서 받게 된 겁니다. 지금 이렇게 구약 성경과 맥을 같이 하는 말을 합니다.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했고, 그것이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860년 전 요엘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된 자신들의 성령 충만함을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먼저 오늘 말씀이 요엘 예언자가 말한 그 때, 하나님의 그러한 역사가 성취되는 그 때에는 이런 일이 있으리라 했는데 그때가 언제인가? 여기서 말하는 그때는 인류의 종말적 시간, 즉 말세 때를 가리키는 그런 말입니다. 오늘 말씀 30절과 31절을 보면 인류 종말에 있어질 요한계시록과 연결되는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요한계시록에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징조가 줄줄이 나오고 있는데 요엘서에 이미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 종말의 그 때가 되면 내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나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다. 그런데 그 부어주시는 역사가 지금 시작이 되는 것이다.” 베드로가 성령 충만함을 받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언제를 가리키는 것인가? 이 성서적 말세론을 정리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는 종말론적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말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간 구원 방법의 마지막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더 이상 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믿으면 구원 받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 두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만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순서를 보면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직접 인간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을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고 노아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방주로 예비하고 사람을 구원하라고 하셨고 호렙산 불꽃 가운데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 만남의 역사로 조명이 되는 그런 구원의 방법을 볼 수 있고 두 번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되신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사시고 동거하면서 구원의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이 두 번째로 나타났고 그 다음에 지금은 성령님의 역사로 인간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삼위일체라고 이런 정리를 하는 겁니다.

성령님의 사역은 오늘 말씀 요엘 예언에도 잘 나타나있고 예수님 자신이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이 오실 것이다.” 이렇게 요엘과 함께 말씀의 연결이 되는 그런 예언을 예수님이 또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순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나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다.” 성령 충만의 역사를 말하고 그다음에 곧 인류 종말적 예언이 나타납니다. 말세 때, 즉 심판 직전에는 “만민을 빨리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성령의 이 역사를 만민에게 아주 급속하게 많이 부어주실 것이다.” 32절에 “그대가 되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만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심판과 구원이 임박한 말세 시간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녀가신 것만 해도 벌써 2천 년 전인데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고 종말론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까?” 이런 말을 하는데 우리 계산입니다.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시간 개념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3천년이나 2천년이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만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산에는 그게 뭐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요엘의 예언이 제자들 시대에 이루어져서 이 이후 2천년이 지났으니 요엘 이후에 약 3천년의 시간이 지금 흘러갔으니까 심판의 시기가 언제인 것을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이 시대는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종말론적 시간을 우리가 살고 있다고 이렇게 확실하게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내가 나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 하신 이 말씀은 언제부터 이루어졌는가? 초대교회부터 즉, 베드로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지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집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성령님의 이 역사가 아주 만민에게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사건을 오늘날의 현상으로 말씀드리면 어떠한 증거가 있을 수 있는가? 넉넉히 증거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확장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분야는 예수님의 말씀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만민에게 내 신을 부어 주리라.” 사실 예수님의 시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민족은 이 하나님의 구원의 영은 만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택한 백성의 의미는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손만을 생각했습니다. 요엘의 예언은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손만이 아니라 성령 충만히 받은 이후에는 세계 만민 누구에게나 구원의 영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가 지금이다.” 그래서 그 예언은 예수님의 지상 선교 명령에서 다시 확실시 된 것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 사역의 특징은 두 가지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는 예수 믿는 자의 숫자가 계속적으로 늘어갔다는 기록이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다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숫자가 120명이라고 확실한 숫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한 장 넘어가면 “그 날의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120에서 3000으로 늘었습니다. 4장 4절에 가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점점 늘어 그 다음부터는 다 셀 수가 없어 “수가 더 많아지니라.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 로 계속되다가 마지막 21장 20절에 가시면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120에서 수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게 성령 사역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선교지의 확산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순서대로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예루살렘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실 유대 나라라고 말하면 예루살렘의 남쪽 지방을 말합니다. 거기에 복음이 제자들을 통해 증거되다가 “유대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은 상종치 아니함 이러라.” 말도 안하는데 예수님 말씀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 믿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어떻게 됩니까? 요엘의 예언대로 만민으로 확산되지 않습니까? 사도행전에 보세요. 고넬료는 로마 사람의 군인입니다. 그런데 로마 사람이 예수 믿고 세례 받고, 그 다음에 바울을 통해서 복음은 안디옥으로 올라가고 배 타고 구브로 섬으로 갑니다. 밤빌리아로 가고 이고니온으로 가고 아시아에서 환상을 통해서 유럽 마게도니아의 첫 성 빌립보에 가서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고린도 지방에 가서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에베소로 가서 에베소 교회를 세우고 데살로니가로 가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우고 마지막에는 로마로 들어가서 로마가 가지고 있는 큰 힘을 통해서 세계로 뻗어나갔습니다. 그

래서 지금은 선교사가 안 들어가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그때가 지금입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이 종말론 시대에 나타난 현상은 선교의 확장성에서 확실히 요엘의 예언자와 예수의 말씀이 연결되는 하나님의 예언의 역사가 이루어졌다고 이렇게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직의 확장성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내가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까지만 해도 성직자가 된다는 것은 특정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 되라고 약속한 그 사람만 되는 것이지 ‘아, 내가 제사장 되어야 되겠다. 성직자 되겠다.’ 아무도 못됩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내 남종과 여종 만민에게 내 신을 부어줄 것이다.” 약속하셨던 지금은 어떻습니까? 누구든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도 목사 안수 받을 사람 107명을 인터뷰 했습니다. 좀 까다롭게 묻습니다. 어떤 때는 인간적으로 계산해서 ‘아니, 저런 출신은 목사 안 되는 것이 좋겠다.’ 고 판단되는 사람도 없지 않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당신 어디서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까?” 질문하면 “교도소에서부터입니다.” 죄짓고 감옥에 가는 것이 직업이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교도소에도 어쩌다 한번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10~15번 왔다 갔다 심심하면 갔다 오는 사람입니다. 남을 못살게 구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한심스럽게 사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깡패 짓을 하며 날마다 남을 두들겨 패고 그랬던 사람이 목사 되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못된 짓은 골고루 골라서 경험하는 그런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출신들이 목사된 다음에 더 잘합니다.

“얄미운 목사 시리즈”라는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암흑가 출신으로 온갖 세상 나쁜 짓을 다 하고 살다가 어떻게 예수를 믿어서 그 다음부터 목사가 되어 지금은 아주 굉장히 거룩하게 평가받는 사람! 신학교 다닐 때 사실은 문제아라서 학생처장이 ‘이 학생 퇴학을 시킬까 말까….’ 제가 학생회장을 할 때 학생회장 오라고 하시며 이 학생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며 하셔서 나는 여러 번 불려가서 학생처장과 대화 나누며 “글쎄요. 이 학생 정말 문제아입니다.” 그러던 학생이 많습니다. 그런데 신학교 졸업하고 지금 목사가 되었는데 그런 사람들은 교회 부흥이 잘 된단 말입니다. 얄밉지 않겠습니까? 저 사람은 학문도 없는 가짜 목사가 분명한데 진짜로 취급받고 그럽니다.

하나님이 요엘에게 예언하기를 “그때가 되면 내가 이런 사람, 저럼 사람 내 남종과 여종에게 내 씨를 부어주겠다.” 여기서 이 부어준다는 말은 뭡니까? 병뚜껑을 열고 아까워서 한 방울씩 쫄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한꺼번에 확 열어젖히고 한 번에 왈칵 쏟아 붓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말세 때가 되면 그렇게 할 거야.” 그래서 성직의 확장성! “깡패 출신이었던 어떤 출신이었던 상관이 없이 이 사람, 저 사람 다 말세 때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 약속이 지금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부흥회 때 쓰는 예화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기도원에서도 했기 때문에 교인들도 아는 게 있습니다.

집사님 가운데 한 분이 취미가 있습니다. 심심하면 나한테 전화해서 뭘 먹으러 가자고 하십니다. “목사님 지금 뭐하세요?” “그냥 있습니다.” “신문에 냉면집 생겼다고 광고가 났는데 가서 냉면이나 먹읍시다.” “그럽시다.” 그래서 가서 냉면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분은 밥 같이 먹자고 하시고는 밥 먹기 전에 반드시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얀 종이 하나를 제 앞에 내놓으십니다. 기도제목입니다. 밥 먹기 전에 밥값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나는 그대로 읽으면서 기도해 드렸습니다. 항상 해드렸습니다. 그날도 냉면 시켰는데 “목사님, 이대로 기도해 주십시오.” 보니까 이것저것 다 쓰셨습니다. “그러지요.” 기도했습니다. 그 분은 항상 그러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집사님은 자동차 사업을 해서 부자가 되셨습니다. 제일 좋은 차타고 다니고 돈을 많이 버십니다.

그래서 막 기도 끝나고 젓가락으로 냉면 먹기 시작하려 하는데 이 집사님이 별안간에 깜짝 놀라시며 손을 부들부들 떠십니다. “아니, 왜 그러세요? 뭐가 잘못 됐나요? 집사님, 왜 그러세요?” “아니, 어떡하죠?” “왜 그러시는데요?” “목사님, 죄송해요. 잠깐만, 잠깐만요!” 그러시더니 벌떡 일어나시는데 지금 냉면집에 들어오는 어떤 사람을 보시고 그렇게 놀라시는 겁니다. 그러더니 쫓아가서 멱살을 잡더니 “야, 이 새끼야! 날 봐라!” 그러니까 그 멱살 잡힌 사람은 더 놀라는 겁니다. “아이고! 네가 웬일이냐? 그런데 사람 많은데서 창피하게 왜 그러냐?” “뭐라고? 창피해? 이 새끼가 창피한 걸 다 아네? 너 오늘 잘 만났어!” “이러지 말고 나가자!” 그래서 둘이 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그나저나 기도는 끝났는데 냉면을 혼자서 먹어야 되는지 안 먹어야 되는지 어떡하란 말이야?’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 멱살 잡힌 그 새끼가 목사란 말입니다. 나와 잘 압니다. 그래도 맞을 짓을 했으니 목사라도 거기 앉겠습니까? 사실은 나 때문에 나간 겁니다. 그 사람은 가고 그 집사님만 들어왔습니다. “목사님, 저 새끼가 목사요?” “목사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창피하게 사람 많은데서….” 그 사람이 과거 동대문 시절에 암흑가의 왕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줌마들은 그 사람에게 돈 바치고 몸 바치지 않으면 장사 못했습니다. 그렇게 서울 시내에서 몇 번째 안가는 악질 중의 악질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북에서 집사님과 고향 친구였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집사님께 와서는 “야, 친구야! 나도 이 짓 그만하고 싶다. 나도 너처럼 선하게 장사해서 먹고 살고 싶다.” “그래라, 잘 생각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런데 깡패 짓을 해서 그럭저럭 끼니는 잇지는 장사할 만한 자본이 없다. 내가 본전만 줄 테니 나한테 자본을 좀 대줘라.”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는 돈을 보따리로 주셨답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미국으로 도망가 버린 겁니다. 그리고 처음 만난 겁니다. 그러니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 나쁜 자식 나한테 사기 치고…. 그런데 저 놈이 목사가 되었다니! 목사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일이 그렇게 됐구먼. 이 일은 잘 되었소.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만약 저 사람이 아직까지 목사가 되지 않고 예수 믿지 않고 동대문 시장에서 그런 나쁜 짓을 하고 살았다고 합시다.

얼마나 많은 선량한 아줌마들이 그 엄청난 상처와 피나는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하나님이 때려잡아서 다시는 그렇게 못하게 하신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소명을 받아서 뒤늦게 신학을 공부해서 이렇게 목사가 되었으니 최소한 옛날에 하던 나쁜 짓은 지금 안합니다. 그러면 이게 잘된 일이지요.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집사님도 이제 그 목사님을 목사로 존경하세요. 사람 많은데서 이 새끼, 저 새끼 그러지 마세요. 또, 옛날에 꾸어준 돈 못 받습니다. 돈이 없어요. 그 모습을 보세요. 내가 잘 압니다. 깡패 출신이었다가 별안간 목사가 되었으니 설교를 깡패 얘기나 하지 할 게 있겠습니까? 부흥도 안 되지만 몇 십 명 데리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세요. 얼굴 보시면 돈 있게 생겼습니까? 그러니까 집사님이 계속해서 축복받으려면 그 친구에게 돈을 계속 보내십시오. 그러면 되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책망하며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깡패 출신도 “이제는 만민에게 내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다.” 때려잡아서 “너 나쁜 짓 좀 그만해! 너는 이제부터 이렇게 살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집사님! 오늘 일 참 잘 된 겁니다. 만나서 돈 좀 주고 도와주세요. 그나저나 이 냉면 불어서 어떻게 먹습니까? 다시 시켜야지요.” 그런 적이 있습니다.

성직의 확장성! “그때가 되면 내가 엘리 지파라던가 아론의 후손 다 필요 없다. 누구든지 괜찮다! 내 남종과 여종에게 내 씨를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 강림에서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때를 사는 겁니다. 이때는 그때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영접하고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서 이 세상의 삶을 이겨가야 됩니다. 지금은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하는 겁니다. 왜? 인류 구원의 마지막 사역이 십자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적 시간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을 “구원받을 만한 때요 은혜 받을 만한 때다. 만민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려고 하나님이 모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확장해 가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사건에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결론해야 합니다.

오늘 여기 마지막 말씀을 보시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수만 믿으면 내 공로 없이 구원이 주어진다는 그때가 언제인가? 지금입니다. 남은 일은 이제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가 되면 내가 아무에게나 아주 끝없이 나의 씨를 부어줄 것이다.” 그래서 그 현상이 지금 나타나느라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하면 마귀의 영을 받게 되고 영적인 방해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날마다 충만해야 됩니다. 여러분, 인간이 왜 만물의 영장입니까? 인간 빼놓고는 다른 동물들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란 말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형상이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존재인 인간은 성령과 나의 영의 교통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고 이 땅을 이겨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그렇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뭐라고 그랬습니까?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로마서 8장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장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가 증거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장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6장 17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요한일서 4장 1절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때는 만민에게 내가 내 영을 나에게 신을 부어줄 것이다.” 이 영이 막히면 기도도 하기 싫습니다. 교회 가기 싫고 설교말씀이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영이 막힐 때 제일 하기 싫은 게 설교입니다. 설교 때문에 고민을 합니다. 영의 흐름이 없을 때 설교하는 거 참 고문입니다.

어느 토요일에 제가 설교 준비하고 있는데 대학부 맡은 전도사가 제 방을 찾아왔습니다. 얼굴이 벌개져서는 “목사님, 저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나 지난 월요일부터 지금까지 내일 대학부 설교 30분 준비하는데 일주일 동안 시간 보내고 끙끙 댔는데 지금 이 시간까지 도저히 설교 준비가 안 됩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화가 나서 성경책을 벽에 집어 던지고 오는 길입니다. 목사님, 저 어떡하지요?” “앉아보세요.” 그 친구는 프린스턴 신학교 졸업한 사람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유명한 목사님들이 다 거기 나오셨습니다. 원로 목사님도 프린스턴 신학교 졸업하시고 한경직 목사님도 그곳 졸업하시고 프린스턴 출신은 대한민국 오면 다 존경받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그곳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 중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더 좋은 학교가 없습니다. 그렇게 공부 잘하는 전도사님인데 지금 대학생들에게 설교 30분 준비하는데 성경책을 집어던질 만큼 답답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으니까 나한테 와서 “목사님, 어떡해야 합니까?” “그래, 왜 왔느냐?” “내일 대학부 설교를 목사님이 대신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 내가 대신할 테니 장년부 설교를 네가 대신 해라!” “거기 앉아봐! 신학교에서 배웠지? 이 목회 사역은 학문과 가지고는 안 돼! 지금 그것이 영적 방해라는 것이야. 그 방해가 계속 되면 번 아웃된다. 못하고 쓰러진다. 신학교에서 성령론 배울 때 이 목회 사역은 성령의 힘으로 하는 것이다. 너 그때 학점 A학점 받았지 않느냐? 그게 지금 안 되는 것이다. 영적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좋은 경험 했다. 이거 해결하지 못하면 아예 목사하지 않는 게 낫다. 이걸 해결해야 된다.” 막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목사님, 저 어떡해야 합니까?” 우는 겁니다. “지금 본당에 가서 30분 회개 기도해라. 내가 판단하겠다. 전도사하면서 새벽기도 안 나오면 기도 생활 안한다. 맞지?” “맞습니다.” “설교해야 될 사람이 기도 안하니까 마귀가 역사하고 방해 놓는 것이다. 네가 맞은 학생들을 위해 기도 한마디 안하면서 무슨 설교를 한다고? 영적 방해야. 알았지?” “알았습니다.” 그런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왜 인간인가? 영적 존재입니다. 동물들은 영이 없기 때문에 잡아먹어도 괜찮습니다. 인간은 영생이 약속된 영적 존재입니다. “내가 마지막 때는 나의 영은 내 남종과 여종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다.” 그때가 지금입니다. 여러분, 2000년 역사에 설교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바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6장 19절에 에베소 교인들에게 뭐라고 부탁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기도해줄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설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세계에서 설교 제일 잘하는 사도가 이렇게 애처로울 만큼 평신도에게 부탁했겠습니까? 영적으로 방해 받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 시간으로 끝나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적 사역입니다.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줄 것이다.” 영적 흐름이 있습니다. 영적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때가 하나님이 만민에게 이 성령의 역사를 부어주시는 반면, 마귀의 방해의 역사도 그것만큼 크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노력을 많이 하고 신앙적 활동에 우리가 몸을 바치는 이유가 그겁니다.

오늘 교회 나오신 여러분, 주의 영이 항상 함께 하셔서 우리가 찬송가를 늘 부릅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주의 영이 함께 하셔서 영적으로 승리하는 아버지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시여, 오늘 말씀의 뜻이 이루어진 시대를 저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영을 축복하셔서 날마다 성령 충만케 하시고 아버지가 저희에게 성령님을 통해서 주시는 사역에 몸과 마음을 드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가는, 종말론적 시대가 저희들 통해 선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 한 주간에도 우리가 그런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특별히 먼 길을 오고가면서 만나는 가족들 피차 평안을 나누면서 복된 시간을 갖는 축복된 한주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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