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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먹으며... 마실 때마다 (고전 11: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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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며... 마실 때마다 (고전 11:23~34)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어떤 목사님이 여행 하는 중에 호텔에 갔는데 방이 없어서
난감해 하고 있는데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답니다.
두 사람 모두 방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는데 마침 손님이 방을 비우고 나가더랍니다.
그래서 두 분이 호텔 방값도 비싸기도 하고
방에 침대가 둘이라고 하니 비용을 반반씩 내기로 하고 한 방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함께 방을 쓸 사람의 얼굴을 보니
인상이 험해 보이고 왠지 불안하기에 자신의 귀중품을 카운터에 맡기러 갔답니다.
그랬더니 카운터에 있는 직원이
“이상하네요. 조금 전에 손님과 방을 쓰시는 분이
귀중품을 맡기고 갔는데요”하더랍니다.

그 목사님은 방을 함께 쓸 사람의 얼굴이 험해 보여서 귀중품을 맡기러 간 것인데
그 사람은 목사님의 얼굴이 험하고 안좋아 보여서 벌써 짐을 맡기고 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겼느냐가,
다른 사람이 어떤 표정을 지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표정을 먼저 살피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에게 “좋은 분 옆에 앉아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누구에게나 평안한 얼굴을 보이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례와 성찬

구교인 가톨릭교회는 7가지 성례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례, 성찬, 고해, 견진, 결혼, 도유, 안수>입니다.
반면에 우리 개신교에서는 2가지 성례전만을 인정하는데
“세례”와 “성찬”입니다.

오늘은 이 두 가지 성례식 중에 성찬식을 거행하는 “세계성찬주일”입니다.
교회 마다 어떤 교회는 한 달에 한 번 성찬식을 하고
어떤 교회는 1년에 한 두 번,
어떤 교회는 그것조차도 안하는 교회가 있으므로
세계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10월 첫째 주일을 세계 성찬주일로 지키고
그날 모든 교회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성례를 행해서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었음을 드러내자고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성찬식을 하지 않는 교회도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예식이고,
“성찬”은 그리스도인이 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세례”는 불신자가 신앙에 입문하는 예식이라면
“성찬”은 예수 믿는 성도의 믿음을 북돋우어 주며 은혜를 더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이라는 말은 영어로 ‘유카리스트’(Eucharist)라고 합니다.
“감사를 드린다”는 뜻의 헬라어에서 나온 말로서
“주의 만찬” 혹은 “거룩한 교제”를 뜻하기도 합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이 친히 우리에게 물려주신 예전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 말씀에 보면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하시고”(눅22:19) 라 했습니다.

☞ 여기서의 「떡」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번역에 대해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이
마태복음 4장 4절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는 말씀과
누가복음 22장 19절에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라는 말씀에서“떡”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편안하게 먹는 음식은 “빵”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늘 먹는 빵을 가지고 성찬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떡”이 아니라 “빵”이라고 번역 되어야 이해가 더 쉬울 듯 합니다.
빵이 아니면 밥이라고 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늘 먹는 음식은 밥이기 때문입니다.
떡은 늘 먹는 것이 아니고 명절 같은 때나 특별한 때에 먹는 것이며
떡을 안 먹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냥 의식을 하나 만들어서 시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해도 되는 것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바로 알고 바로 참여하여 은혜 받고
약속된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자리가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찬을 통해서 주님과 내가 하나 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바르게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에게
법으로 벌을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무서운 벌이 “출교”였습니다.
‘예수 믿지 말고 아예 나가라’는 것이 출교입니다.
그리고 “수찬정지”라는 징계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것은 성도에게 성찬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가장 큰 징계로 여겼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교회 중직이(목사,장로,권사 …등)
자기 자녀를 불신자와 결혼시키면 일정 기간 수찬정지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장로가 주일 예배에 3차례 이상 빠지면 일정 기간 수찬정지에 처했습니다.

교회의 장로는 성찬을 보좌하고 교회의 본이 되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사정이나 모든 사람에게 이해 될만한 이유가 아니고
장로가 예배에 빠지면 수찬정지에 처했습니다.

요즘에 교회에서
“당신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수찬정지를 합니다.”라고 하거나
“출교한다”고 하면 회개하고 자숙하기 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여기밖에 없나 … 다른 교회에 나가면 되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성찬을 받는 것이 귀한 일이며,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게 성찬은 귀중한 일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 라는 사람이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에 보면
‘성찬이 얼마나 귀중한 지’에 대해 표현해 놓은 글이 있습니다.

- 수많은 사람들이 성찬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 아아, 무지몽매하고 완고한 인간의 마음이여!
이토록 기막힌 은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매일 같이 접하다 보니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다니!
(Thomas a Kempis 지음 「그리스도를 본받아」p. 260 에서 인용.

성찬을 우습게 여기는 것을 통탄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구원 받은 사람이 된 것은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자기를 살피고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본문 28절에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 11:28)라고 했습니다.

첫째, “자기를 살피라”는 말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살피고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조그만 죄와 허물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자기를 살피라”는 말은 남의 허물보다 자기의 허물을 크게 보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남이 잘못하는 것은 잘 압니다.
그러나 자기의 잘못은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의 얼굴이 험상궂은 것은 잘 아는데
자기 얼굴에 미소가 없고 평안이 없는 것은 모릅니다.
남의 얼굴이 평안치 못한 것은 알면서
자기 얼굴이 평안치 못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모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먼저 살피라는 말입니다.

타인을 살펴야 합니다.
본문 33절에 보면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전11:33)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기다린다”는 말은
“받아들인다”, “용납한다”, “용서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기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즉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납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서로 받아주고, 용서하고, 용납하는 의식입니다.

본질을 살펴야 합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전11:34) 고 했습니다.
배가 고프면 집에서 식사하고 성찬식에서 배를 채우려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원래 성만찬식에서는 큰 덩어리의 빵을 가지고 먼저 기도하고
모든 공동체가 한 덩어리에서 조금씩 조금씩 떼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사람은 왕창 뜯어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먹는 문제 같은
세속적인 동기 때문에 성찬에 참여하지는 말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그 예식이/그 모임이 세속적인 동기를 앞세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성찬식은 구원의 기쁨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신 고난에 감사하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세례 받은 사람들이 성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회자들이 세례 받은 사람이라도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 사람은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마음에 거리낌이 있으면 아예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거리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회개하고
다 내려놓고 성찬을 받으라는 말이지
거리낌이 있다고 해서 아예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음을 믿고
내가 영원히 사는 것을 확신하면” 받을 수 있습니다.


옛날, 농촌교회에 그 동네의 유지가 되는 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 분이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되어 추수감사절을 지켰는데
그 분이 쌀 두 가마니를 바쳤습니다.
세례도 안 받은 분이 쌀 두 가마니를 바치니까
온 교인들이 그 분을 떠받들고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그 분이 웬일인지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전도사님, 그리고 장로님께서 심방을 가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고만 하기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으니
교회에서 성만찬 예배 때 떡과 포도주를 저희들끼리만 먹고
나는 한 톨도 주지 않으니 그럴 수 있느냐고 섭섭해 하더랍니다.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116편 5절에 보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시116:5) 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은혜 받는 방편을 크게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요.
둘째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요,
셋째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 은혜 받는 다고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성찬을 받다가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성찬 받는 중에 영적으로, 육적으로 병 고침 받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자에서 부요한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죄인들은 죄의 속함을 받은 기쁨과 확신을 얻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성찬을 받은 사람은 성찬 받은 사람답게,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은 사람답게 살아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과 한 몸이 된 사람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한 몸 되고 온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믿음으로 한 형제와 자매됨을 확신하는
복된 성찬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거룩한 성례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됨을 확인하려 합니다.
믿음을 가진 저희들, 세상에 살며 얻은 소득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도 드립니다.
이 귀한 시간 우리의 드림을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고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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