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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어떤 곳인가?(14) : 주님의 뜻을 이룬 교회 (행 11: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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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어떤 곳인가?(14) : 주님의 뜻을 이룬 교회 (행 11:19-30)

오늘 아침에는 “주님의 뜻을 이룬 안디옥 교회”에 대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이 설교는 지난 주 토요일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설교입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글 쓰기를 좋아하는데 제가 쓴 글들의 상당 부분이 비행기에서 자동차에서 기차에서 호텔에서 쓴 글들입니다. 제네바 호수와 알프스 산에서 쓴 글도 있고, 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와 방글라데시와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돌아오면서 쓴 글도 있고, 중앙정보부에서 심문을 받으면서 쓴 글도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안디옥 교회의 특징 7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의 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전하는데”(행11:19).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을 인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흩어진 피난민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세운 교회였습니다. 평신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소박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씨앗은 스데반의 순교의 피였고 안디옥 교회의 기초는 피난민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순수한 교회였고 보배로운 교회였습니다. 후에 로마 교회는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의 피로 튼튼하게 세워진 교회가 되었고, 서머나 교회는 폴리캅의 순교의 피로 순결하게 세워진 교회가 되었고, 칼타고 교회는 페루페투아의 순교의 피로 뜨겁게 성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영락교회와 충현교회도 순교자들의 피와 환난을 인하여 북한으로부터 흩어진 피난민 신자들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지고 단순해지고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집니다. 얼마 전에 이임주 집사와 이광미 집사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하면서 박하정 집사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하정 집사가 질병의 환난을 당한 다음에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여유로워졌고 너무 부드러워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광미 집사도 질병의 환난을 당하면서 사람이 많이 바뀌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의 신앙은 진지하고 겸손하고 단순하고 부드럽고 따뜻해집니다. 환난을 경험한 사람들은 기도도 성경공부도 전도도 봉사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신자들이 안디옥에 와서 기도와 전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주 예수를 전파하니” 라고 했습니다. 저들이 주 예수를 전파했을 때 주의 손이 저들과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전도를 축복하셨습니다. 결국 수많은 안디옥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 오게 되었고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의 일로 세워진 교회였는데 이 세상에 존재 했던 수 많은 교회가 순교와 환난의 일로 세워진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뜻하신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의 피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아니하고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로 세상에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행20:28은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순교자의 피와 환난으로 세워진 순수한 교회였고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둘째,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졌습니다. 성경은 바나바를 소개하면서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7) 라고 했고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안디옥 교회를 튼튼하게 세운 사람이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착함과 겸손을 구비하지 못한 믿음은, 재건파 신자들처럼, 교만해져서 교회에 방해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충만도 중요하지만 착함과 겸손을 구비하지 못한 성령충만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처럼,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 튼튼하게 세워졌던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신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산상 설교를 하시면서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착한 행실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튼튼하게 세워지는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욕심과 야심이 적은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에 대한 애착이나 공명심이 적은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이르러 안디옥의 이방인 새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을 보고 시기하지 않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는 또한 안디옥 교회의 새 신자들에게 자기에게 붙으라고 권하지 않았고 주님께 붙어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께 붙어있으라 권하니”(행11:23). 바나바가 주님만을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었고, 자기에 대한 야심이나 공명심이 없는 착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성품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지만 또한 후천적으로 감동과 훈련을 통해 만들어 지기도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진 교회였고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셋째,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협력 목회로 부흥 발전한 교회였습니다.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행11:26). 착한 사람 바나바는 심각한 과거를 지닌 사울을 데려다가 그를 격려하고 그를 내 세우면서 협력 목회를 아름답게 했습니다. 사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신 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내어 보내실 때 하나씩 내어 보내지 않으셨고 둘씩, 둘씩 짝지어 내어 보내셨습니다. “이 후에 주께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눅10:1)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 협력 사역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일부 한국교회와 일부 선교지역에서는 협력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협력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원로 목사와 후임목사가 화목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선교사들간에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협력 목회를 너무나 아름답게 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칭찬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인’ 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한경직 목사님께서 1937년경 일본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있던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을 부르셔서 신의주 제 2교회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9년 동안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부목사로 그리고 후임 목사로 협력목회를 잘 하셨습니다. 김기범 장로님이란 분도 한경직 목사님과 협력사역을 너무나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경직 목사님은 지난 날을 돌아보시면서 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고 김기범 장로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시곤 했습니다. 바나바는 튼튼하게 세워져 가는 안디옥 교회에서 자기 혼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일하려고 하지 않았고 자기 보다 유능한 사람인 사울을 청하여 자기와 함께 동역을 하게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 발전하는 좋은 교회가 되려면 협력과 동역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담임 목사와 교역자들이 동역하고, 담임 목사와 장로님들이 동역하고,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동역하고, 기존 신자들과 새 신자들이 동역하는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협력 목회로 부흥 발전한 교회였고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넷째,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29,30). 교회가 존재하는 첫째 목적은 물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구제 사역에 무관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고 이사야와 야고보와 사도 요한 등이 강조해서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5-17).

그래서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부터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했고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도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구제 사역이 너무나 중요한 사역임을 나타내 보여주기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이 직접 구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고 뜻하신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우리 교회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받들어 방글라데시와 부르키나 파소와 북한과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연변지역 등지에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교회였고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다섯째,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 인종, 다 계급, 다 사회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계획하시고 소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그 날에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사19:23-25). 그래서 오순절 날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언어의 장벽을 깨트려주셨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행2:4-8).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하고 기도하며 예배 드린 다 인종, 다 계급, 다 사회 교회였습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루기오도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이었습니다. 마나엔은 귀족 출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소 출신의 유대인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 안에는 수리아 출신의 이방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이룬 교회였습니다. 백인들만 모이는 교회, 흑인들만 모이는 교회, 이북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 경상도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 전라도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는 바람직한 교회가 아닙니다. 사업가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 정치가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 연예인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 부자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도 바람직한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의 하나는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적 장벽과 문화적 장벽을 깨트리고 하나를 이루시는 일이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안디옥 교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습니다. 이남 사람들도 있고 이북 사람들도 있으며, 동쪽 사람들도 있고 서쪽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있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도 있고 공부를 적게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도 있고 돈이 적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새 신자들도 있고 구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인종이나 계급에 대한 차별 의식이 점점 사라져감을 느낍니다. 일본 사람도, 북한 사람도, 동남아 사람도, 러시아 사람도, 중앙 아시아 사람도, 아프간 사람도 모두가 귀하게 보이고 모두가 소중하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이상적인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교제하고 기도하며 예배 드리는 다 인종 다 사회 교회입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 인종 교회였고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여섯째,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행13:2).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빈 마음, 열린 마음, 단순한 마음, 겸손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을 지닐 때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 있을 때 성령께서 성령의 음성에 민감해 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수년 동안 매일 새벽 그리고 순간마다 성령의 음성과 지시에 민감해 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지내오고 있습니다. 나의 마음과 생각과 느낌과 말을 성령께서 조명하시고 감화 감동하시고 지배해 달라고 간절히 소원하면서 지내오고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한 축복 받은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13:2).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는 일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사울 왕과 삼손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성령의 감동과 은혜를 받았지만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고도 성령의 뜻과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에는 박태선이나 양도천처럼 이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축복 받은 교회였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성령의 지시는 안디옥 교회의 형편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엄청난 지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세워진 지 2,3년밖에 안 되는 어린 개척 교회였습니다.

선교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교회의 두 기둥과 같은 지도자를 뽑아서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성령님의 지시는 너무나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되었을지 모릅니다. 성령님은 원리만 아시고 현실은 모르신다고 마음 속으로 불평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비록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성령님의 지시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금식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저들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기 위해서 금식기도에 들어 갔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는 동안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동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천하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보내셨고 이사야를 택하셔서 보내셨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택하셔서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깊으신 사랑과 뜻을 헤아려 알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바로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시는데 있음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순수한 교회였고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일곱째, 안디옥 교회는 결국 선교 사역에 총력을 기울인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3).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고 두 사람에게 안수한 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을 했습니다. 갓난 아이들과 같은 저들이 저들의 믿음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안수해서 선교사로 파송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저들의 계획이나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계획과 선택과 지시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은 지 2,3년 밖에 되지 않는 초 신자들이 저들의 믿음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같은 바나바와 사울을 핍박과 박해가 기다리고 있는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 땅으로 파송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령의 지시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초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래된 신자들은 자기 고집과 주장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는 부모 잃는 고아와 같은 석별의 정을 금할 수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저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결국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예언과 분부를 이루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가서 주님을 증거하는 선교의 일을 수행하는 선교의 기지가 되었습니다. 세계선교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은 계속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기도와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뒤를 따라서 전주 안디옥 교회도 이동휘 목사님의 선교 사역을 계속해서 후원하고 영등포 교회는 방지일 목사님의 선교 사역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어제도 방지일 목사님이 저에게 전화를 걸고 과테말라 선교대회에 내가 왜 가지 않느냐고 따지기까지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저들이 파송한 바나바와 사울을 기도와 물질로 계속해서 후원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선교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저들을 파송하고 후원한 안디옥 교회에 와서 선교 보고를 한 후 저들과 함께 지내곤 했습니다.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행14:27). 바나바와 사울은 저들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 성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기억하며 저들의 위해서 기도와 사랑의 손길을 폈습니다. 제 2차 선교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도 안디옥 교회에 얼마동안 머물다가 다시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안디옥으로 내려 가서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하니라”(행18:22,23).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룬 아름다운 교회인 안디옥 교회의 일곱 가지 특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와 환난의 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둘째, 안디옥 교회는 착한 사람 바나바에 의해서 튼튼하게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셋째,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의 협력 목회로 부흥 발전한 교회였습니다.
넷째, 안디옥 교회는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다섯째,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 다 인종, 다 계급, 다 사회 교회였습니다.
여섯째,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한 교회였습니다.
일곱째, 안디옥 교회는 결국 선교 사역에 총력을 기울인 선교하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우리 교회는 물론 오늘의 한국교회가 어떠한 교회가 되어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아름다운 교회로 만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순교 신앙을 되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착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협력 사역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구제 사역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되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선교 사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고 감화 감동하시고 그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로 만들어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주셨던 순수하고 보배로운 은혜를 우리들에게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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