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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천히 일하시는 하나님 (히 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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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일하시는 하나님 (히 11:6-7)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삶은 너무나 피곤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초특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순간에 전 세계를 갈 수 있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KTX를 처음 타보았습니다. 296km. 고속버스 세배로 달립니다. 참 빠릅니다. 대구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이 안 걸립니다.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떼제베를 타보니까 380km를 달린다고 표시가 나옵니다. 더 빠릅니다. 앞으로 더욱 빠를 것입니다. 육상교통 운송수단, 항공 운송수단, 해상 운송수단도 빠릅니다. 모두가 빠릅니다. 지금은 기업을 하시는 분도 5년을 바라보고 시작을 못 한 답니다. 너무 변하기 때문에 빨리 투자해서 돈을 빼내야지 5년까지 갈 수 있는 기업이 없다는 겁니다. 너무 빨리 변한다는 겁니다. 세상이 빠릅니다.

제가 아는 분이 3년 전에 선물로 우리나라 최고의 핸드폰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어서 선물로 가지고 왔습니다. 비싼 거라고 했습니다. 너무 좋고, 비싼 것이어서 사용할 수 없어서 가만히 놔뒀다가 요새 얼마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지금은 공짜라는 겁니다. 얼마나 변하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아끼지 마시고 쓰십시오. 금방금방 새로운 것이 나오니까 아꼈다가는 못 씁니다. 오늘 이렇게 빠른 시간, 초스피드의 시대를 살아가니 우리는 안정이 안 되는 겁니다. 걷잡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고,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밀리지 않나. 앞으로 이래서 어떻게 되나.’ 그래서 차분하게 먼 미래를 준비해야 되는 입장에서 보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그날 그날의 삶에 재치 있게 살아가는 요령 있는 삶이 성공하는 것이며, 멀리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준비하기에는 너무나 턱없이 시간이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천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박자 늦추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년이 하루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요동치 않습니다. 색깔도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그의 인격과 그의 성품은 변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이 없습니다. 수정하는 법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천천히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성도의 삶은 치우치지 아니하고, 차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귀한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습니다. 죄의 길, 멸망의 길은 한순간에 달려갈 수 있습니다. 마귀가 인도하는 길은 그렇기 때문에 다 빨리 움직이는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거룩한 나라는 오래 걸립니다. 모든 좋은 것은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러가야 그곳에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더욱 천천히 걸어가야 합니다. 조급하면 안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37편 7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행악자로 인하여 불평하지 말 것입니다. 빨리 잘되고 빨리 돈 벌며, 빨리 성공하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천천히 하나하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준비하는 성실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노아는 하나님께서 120년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120년 지나면 물로 심판할 것을 말씀하셔서 노아에게 준비를 시켰습니다. 노아는 12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지 않습니까? 세상은 10번, 20번 변했을 겁니다. 그러나 노아는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천천히 그 말씀을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은 영원한 계약이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나오는 겁니다.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오래 지날수록 변함이 없습니다. 가짜는 지나면  지날수록 가치가 없습니다. 진짜는 오래 될수록 가치가 있습니다. 참 사랑은 오래 갈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가짜 사랑은 오래 갈 수가 없습니다. 조그마한 일이 있어도 넘어집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오래 갈수록 좋습니다. 금도 색깔이 오래 갈수록 변함이 없듯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120년 가도 변함이 없는 이런 믿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든 믿음의 선조들은 오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순종하며 기다리며 잘 지켜나가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큰 위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때에 따라 낙심될 때가 흔들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편 77편 7절, 8절에 보면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 인자하심이 다 하였는가, 그 허락을 영구히 폐하셨는가?” 의심 될 때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나 버리시지 않았나, 하나님께서 요새는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시편 77편에 보면 그것은 내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이 나 버린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겁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의 영 불변한 것입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찬송가 455장)

  마귀는 조급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조급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못 이긴다라고 시편 1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올 때에 어려움을 잘 이기지 못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비결은 오래 참는 겁니다.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나 그만 마음이 흔들립니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녀를 기르다가 어려우면, 사업을 하다가 어려우면 흔들립다. 어려움은 반드시 옵니다. 어느 길이든지 옵니다. 그것을 참고 잘 지내야 좋은 날이 옵니다. 할렐루야!

  잠언 28장 20절에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20장 21절에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못하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라도 내 것을 하나 심어서 열매를 거두려면 오래 참아야 됩니다. 조급하면 안 됩니다. 욕심을 내고 무리하게 하면 안 됩니다. 자녀를 하나 길러도 오랜 세월 낳아서 정성을 다해 길러야 좋은 날이 옵니다. 참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얘가 크는지를 잘 모릅니다. 얘가 항상 그대로니까 다른 사람이 와보고 “얘, 많이 컸다.” 그래야 압니다. 곡식도 기르는 본인은 매일 다녀보면 이게 크는지 안 크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와 보고 “벼가 많이 컸다.”라고 해야 알 수 있습니다. 오래 걸립니다. 그러나 남의 애를 데려다가 길러보십시오. 그것은 쉽습니다. 사랑도 오래 걸립니다. 결혼해서 그게 사랑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가 씨를 뿌려서 10년, 20년 그때부터 거두는 겁니다. 꽃이 지고, 젊음이 다 망가지고, 자기가 뿌린 그 씨앗이 있어서 그때 거두는 겁니다. 결혼식은 부모님이 만들어 준 겁니다. 부모 잔치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한순간에 사라지는 겁니다. 그것을 유지하려면 그러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 망가지고, 자기가 뿌린 씨앗이 그 다음에 열매를 거둬야 그게 행복입니다. 그게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 마음에 안 든다고 막 뛰쳐나가고 흥분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저께도 신문에 보니까 둘이 애들 하고 기분 내려고 식당에 둘이 갔습니다. “여보! 우리 밖에서 식사합시다.” 둘이 “그래요” 그러고 잘 먹고는 집으로 오는데 부인이 34살입니다. 예민하지 않습니까? “우리 커피한잔 하고 들어가요.” 여자는 분위기가 있어서 금방 들어가면 안 되는데 “그만큼 먹었으면 됐지 또 어디를 가냐고?”, “먹는 것만 중요해요? 우리 둘이 대화도 하고.” “집에 빨리 들어가야 되.”, “남자가 그렇게 분위기도 모르냐고”, “뭐?” 이래서 화를 내서 “잘 먹여놓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한마디로 화가 났습니다. 부인이 들어가라고 그래서 막 싸웠습니다. 들어와서 대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부인도 안 지려고 때리는데 그만 머리에 맞아 뇌진탕으로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을 좀 참아야지, 가정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아야 됩니다. 그래야 좋은 날이 옵니다. 곡식을 하나 심어도 추위 더위, 온갖 어려움 다 참아야 가을에 열매를 거둡니다. 열매를 거두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길을 성실하게 참고 잘 나가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잠언 28장 20절에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언 20장 21절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고 그랬습니다. 오늘날은 너무 빨리 되려고 합니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돈 벌고, 빨리 행복하고 이 세상에 빨리 성공하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부 그래서 한탕주의가 되어 버린 겁니다. 모든 것은 시간이 바쳐지고 오래 오래 기다려야 얻습니다. 저는 어려움이 있는 동안 제가 믿었던 성경이 딱 한 절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안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고, 누가 잘되고 앞서갈지라도 흔들릴지 아니하는 겁니다. 자기 기분 조금만 나쁘면 이것을 못 참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조금 자기 속상한 것, 이것을 못 참습니다. 기분을 가지고 삽니까? 오래 참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참으면 좋은 날이 옵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오래 기다려야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천천히 걸어오시는 하나님, 천천히 움직이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심판도 천천히 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시험이 들 때에 회복도 천천히 옵니다. 빨리 해결하려고 그러지 마십시오. 시험 당하면 동동 발을 구르고, 이것을 해결하려고 울고 금식기도 하고 그런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붙들려 갔을 때에 ‘하나님께 회개하면 빨리 용서를 해 주겠지, 회복시켜주겠지’ 하고 짐도 안 푸는 겁니다. 그때 예레미야 29장에 예레미야를 통하여 “너희들 그런 생각 버리라.”는 겁니다. “여기서 포도를 심어 포도 열매를 먹도록 준비하고 너희 집을 지으라. 천막 속에 이렇게 있다가 하나님께서 빨리 해결해 주시겠지?” 아니라는 겁니다. 70년 정해 놓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돌아갈 생각 말고, 자녀를 낳아서 결혼시키라는 겁니다. 여기서 결혼시키고 여기서 살 준비를 하라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질병이 찾아와도 “빨리 고쳐야 되겠다.” 이러지 마십시오. 물질의 어려움이 왔을 때 이미 기울어 졌는데 이것을 살려야지, 어떻게라도 회복해야지, 처갓돈이라도 빌려오고, 처남 돈도 빌려오고, 동생 돈도 빌려오고, 이미 기울어진 기업은 좀처럼 바로 서기 어렵습니다. 주변을 다 망치는 것을 저는 목회하면서 제일 많이 봤습니다. 혼자 망할 터인데 다 끌어들이는 겁니다. 부인은 냉정해야 되는데 남편 하나 살리려고 친정 죽이는 겁니다. “엄마 엄마.” 그러고 가서 돈 다 뺏어다가 집어넣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자. 안 되는 거니까 새로 시작하자. 그러고 천천히 기다리자.” 하나님의 섭리는 천천히 옵니다. 낮도 시간이 되어야 해가 지고, 밤도 시간이 되어야 새벽이 옵니다. 남만큼 밤이 있습니다. 캄캄함이 왔으면 간단하게 어두움을 지어버리려고 그러면 안 됩니다. 천천히 시간이 지나야, 참고 기다리고 오랜 세월 지나야 시온의 빛나는 아침이 옵니다. 할렐루야!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동동동동 구르고 이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조급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붙들려 갔을 때 70년이 되었고 애굽에 가서는 400년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지 않습니까? 러시아에 공산화가 들어오고 7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 버리고 교회를 떠나서 금방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쉽지 않습니다. 은혜 받는 것도 그만큼 어려운 것처럼 회복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죄 짓는 것이 왜 무섭냐? 회개가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겁니다. 회복이 너무 오래 걸려서 못 짓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 죄짓고 금방 옷 갈아입듯이 갈아입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돌아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회를 받기가 너무 어려운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천히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기회를 잡으면 끝까지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잃어 버리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천천히 응답하시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옵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리 빨리 해 달라고 그래도 하나님이 빨리 움직이시지를 않습니다.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실하게 잘 달려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오는 어려움을 우리는 믿음으로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시험을 우리는 잘 참고 나가면 좋은 날이 올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조급합니다. 서두릅니다. 빨리 해결하려고 합니다. 뭐든지 빨리 빨리 해서 성공하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섭리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좋은 것은 어느 것도 빨리 해서 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실하게 천천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로마가 멸망한 원인 몇 가지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일은 안하고 빨리 빨리 돈 벌어서 성공하고 잘 사려고 하는 이런 서비스 문화가 발달을 했다고 합니다. 음식문화, 쾌락문화가 발달하고 당장당장. 그래서 로마천지가 목욕탕이고, 로마천지가 쾌락의 나라로 바뀌어 버린 겁니다. 금융업 등 전부 그런 것들이 발달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 됩니다. 워낙 경쟁이 심하니까 두뇌가 발달해야 되고, 빨리 공부를 많이 해야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닮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무엇합니까? 여자들은 모두 아름다움에 맞춥니다. 남자들이 돈 벌어서 집에 갖다 주면 전부 얼굴을 다듬고, 그때도 헤어스타일이 그렇게 발달했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술에다가 목욕을 하고, 우유에다가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아름답게 꾸미는 겁니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요새 우리나라도 보면 남학생이 여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학생이 남학생을 찾아갑니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찍는 것이 아니라 여학생이 남학생을 찍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미 여학생이 남자를 찍으면 꼼짝 못한다는 겁니다. “너는 내꺼다.” 그러면 다른 애들 만날 때도 전부 허락받아야 되고, 눈치보고 만나야 된답니다. 왜냐하면 찍힌다는 겁니다. “너는 내꺼다.”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여학생이 남학생을 찍으면 찍히는 겁니다. 그래서 남자는 전부 벌어 갖다 주면 여자들은 전부 이렇게 꾸미는데 돈을 투자 하는 겁니다. 온갖 보석과 의복과 화장품을 발달 시켜 그쪽으로 전부 갑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것 닮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성실히 열심히 일하는 삶이 지나가고 모두 한순간에 돈 버는 곳으로 막 사람들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고, 그 돈들이 다 어디로 갑니까? 전부 쾌락을 쫓아가는 길로 가고, 여성들에게 갑니다.

  오늘 우리나라도 성형수술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어느 목사님이 그러셨지 않습니까? 천국 가도 하나님이 얘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어디에서 왔는지. 하나님이 보낼 때의 사람하고 올 때의 사람이 다른 겁니다. 여자의 아름다움이 얼굴에 있습니까? 결혼한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10년, 20년 되는 남편에게 물어보십시오. 남편은 여자가 아름다워야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아름다워서 좋아하는 놈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놈입니다. 예쁜 것만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지키는 남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아내를 귀히 여깁니다. 그래서 여자를 아내라고 합니다. ‘안에 빛이다’라는 겁니다. 집의 빛입니다. 그런데 요새 여자들이 안의 빛을 생각안하고 옆집 아저씨를 자꾸 비추려고,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자꾸 밖에 빛이 되려고 비추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깨달아야 됩니다.

  저가 어렸을 때에도 보면 기생과 일반 여자들은 전혀 달랐습니다. 옷이 다릅니다. ‘저것은 기생이구나.’ 보면 틀림없습니다. 누구도 기생 옷을 입지를 않았고, 기생같이 사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겁니다. ‘저것은 기생이구나. 저것은 윤락녀로구나’ 누구든지 그 당시에 보면 알았습니다. 그쪽 촌에 이렇게 지나가 보면 압니다. 화장이, 옷이 지나칩니다. 그런데 요새는 누가 기생인지, 누가 아주머니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 너무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화려하게 꾸밀 수가 없습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우리 성도들은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세계가 다 그러면 제가 말을 안 합니다.

전 미국을 제가 다 다녀도 미국 여성은 그러지 않습니다. 얼마나 잘 삽니까만은 미국여성들의 의복은 검소합니다. 화장, 그렇게 하는 분은 좀처럼 안 보입니다. 그렇게 안합니다. 얼마나 검소한지 모릅니다. 교회에 가서 부흥회 때 성가대석을 보면 머리 하는 분을 거의 찾기가 어렵습니다. 다 그냥 그대로 와서 합니다. 유럽에 가도 그렇습니까? 세계 어느 나라 가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여성만 이렇게 야단입니까? 이것은 역사를 보면 왜 노아 시대 때에 하나님의 물 심판이 왔습니까? 거기도 여자들이 너무 별났다고 그랬습니다. 사람의 딸들이 너무 그런 것을 쫓아서, 정욕을 쫓아 살고, 사치하고 음란하며, 방탕한 길로 가서 그 시대를 하나님이 도무지 심판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됐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살며 선한 일, 좋은 일해야 되지 않습니까? 내가 소금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좋은 빛이 되도록 거룩함을 쫓아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신령한 삶,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천천히 걸어오시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며, 때가 되면 다 높여주십니다. 그를 믿으면 그에 맞춰서 우리도 성실하게 걸어가야 되고, 그의 뜻을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어두움의 문화, 사탄의 문화, 세속문화입니다. 잘못된 병든 문화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오시지만 확실히 심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민족, 국가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너무 흥분하지 말아야 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잠시 잠깐 이후면 없어진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니까. 그 찬란한 바벨론 문명, 앗수르 문명도 사라졌습니다. 시리아, 모압, 에돔, 암몬의 찬란한 문명도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할 때도 살아날 수 있는 분은 누구냐? 하나님의 뜻대로 노아와 같이 믿음으로 방주를 짓는 자인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은 아무리 성공해도 늘 기도 했습니다. 창을 열어놓고 기도 했습니다. 기도의 창문을 닫으면 안 됩니다. 우리 집에 한번 우리 외손자가 와서 방에 들어갔는데 얘가 어떻게 자기 혼자 놀다가 문을 딱 잠갔습니다. 장난으로 했는데 문이 잠겼습니다. 문을 잠가놓고는 얘가 막 소리를 지르고 울고 하는데 당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해도 안 되는 겁니다. 얘가 불안에 떨고, 무서워 그 안에서 죽는 줄로만 아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 문을 다시 한번 이쪽으로 열어라.” 그래도 말을 안 듣는 겁니다. 열면 되는데, 안 열고는 막 문 열라고 두들기고 밖에서는 “못 열어. 너가 열어야 돼.” 한 시간을 웁니다. 우리도 웁니다. “이쪽으로 열어.” 그래서 야단이 났습니다. 얘도 한 시간 동안 울고 지쳤습니다. 그때서야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우리가 설득했습니다. “그러지 마. 문 열어봐. 반대쪽으로, 너 닫은 그것가지고 다시 한 번 이쪽으로 해 봐.” 그랬더니 얘가 철커덕 하면서 열었습니다. 그래서 남북 만나듯 다 울었습니다. 

  기도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문 닫는 겁니다. 그래서 불안이 오고 두려움이 오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 왜 두려움이 옵니까? 조금 바쁘다고 자기가 닫아놓고는 공연히 낙심하고 좌절하고 울고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은 여기와 계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이것은 내가 할 일입니다. 문은 내가 여는 겁니다. 다니엘이 창문을 열듯이 어머니들은 기도의 창문을 열기를 바랍니다. 한순간에 불안, 걱정이 오고 시험이 들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질 때 우리는 다 무너집니다. 기도의 창문을 열면 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가니 자살하고 가정, 사회, 정신, 도덕이 무너지는 겁니다.

오늘도 어떤 분이 저한테 기도 받고 갔는데 이게 무슨 병이냐 하면 불안증후군입니다. 자신이 꼭 병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겁니다. 멀쩡한데 너무 아는 것이 많아 ‘이게 무슨 암일 거다’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안 됩니다. 사람이 그냥 빼빼 말라 들어가고 여기 가도 저기 가도 안 되는 겁니다. 불안에 떱니다. 현대인들은 공연히 불안에 떱니다. 그래서 제가 안수하며 “웃기지 마. 여호와 닛시 이름으로 불안의 마귀야! 물어가라.”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불안합니까? 기도의 창문을 닫으니까 다 불안한 겁니다. 세상에 먹을 음식이 없고 움직이면 다 병입니다.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문을, 기도의 창문을 닫아놓았습니다. 조금 있는 것 때문에 이 문을 닫아놓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겁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잘 살아봐야 몇 십 년 남았는데 얼마 산다고 기도를 안 할 겁니까? 살아봐야 잠깐인데, 주님께 기도하면서 가면 끝까지 잘 가는데 왜 기도를 안 하고 그럽니까? 지금까지 안 나온 분도 괜찮습니까? 내일부터라도 나오면 이게 축복으로 알아야 됩니다. 오늘 열라고 할 때 여십시오. 목사 말을 잘 듣는 것이 좋습니다.

  내 일에 만족하고, 하나님 주신 한 가정, 내 신앙 끝까지 지키고, 이것 해도 안 되면 저것하고, 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만사 어느 것인들 걱정 안 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골프도 모래와 물이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도 물에 빠집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도 다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잘 되는 것이 이 세상에 하나라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참고 나아가면 좋은 날이 옵니다. 내 자리 하나 지키는 겁니다. 병원하시는 우리 집사님이 저보고 “목사님! 저 신학교 다녀서 목사 될래요.” 그래서 제가 사정을 했습니다. “ 의사로 지금까지 지내면 얼마나 좋은데 여기 와서 설교하는 것이 쉬운 줄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의사는 누가 봐서 치료해도 말도 안 합니다. 배를 째도 말도 안 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수입도 짭짤하지 않습니까? 그 좋은 것을 두고 왜 목회를 하려고 합니까? 신학 다시 하는 것이 간단한 것인지 아십니까? 설교하고, 심방하고, 수많은 교인들 돌보는 것이 간단한 것인지 아십니까? 의사는 의사의 길로 가고,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길로 가고, 농사지으면 농사짓는 길로 가고, 끝까지 잘 가면 좋은 날이 오는 겁니다. 할렐루야! 

“복수불반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나라 말기에 여상이라는 사람이 글만 읽고 늘 어렵게 지내니까 부인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무능한 사람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먹는 것도 모르고 너무너무 그렇게 지내니까 그만 배반하고 집을 뛰쳐나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분에게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온 겁니다. 주나라의 문왕이 길을 가다가 이 여상을 만났습니다. 너무 훌륭한 분입니다. 이분을 데려다가 기용을 했습니다. 이분은 나중에 서백의 스승도 되었습니다. 무왕의 태후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재상까지 역임했습니다. 높은 자리 다 올라갔습니다. 그 부인이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겁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럴 때 이 여상이 물을 한 항아리 이고 와서 갖다가 부으라고 그랬습니다. 갖다 부으니까 땅에다 쏟아질 것 아닙니까? 그것을 퍼 담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쫓겨났답니다. 퍼 담을 수 있습니까? 조금만 참으면 좋은 날이 오는데,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옵니다.

  하나님은 천천히 일하시기 때문에, 천천히 일하는 것을 좋아해야 됩니다. 말도 천천히 하는 말이 좋답니다. 어느 학자가 안동 지역에 오셔 사투리 가운데는 안동 사투리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말이라고 하더랍니다. 왜 그러느냐고 하니 그렇게 줄일 수가 없답니다. “잘 주무셨습니까?” 한참 걸리지 않습니까? “잔니껴?”그러면 끝납니다. 세상에 1/3로 줄이는 겁니다. “잘 오셨습니까?” “왔니껴?” 그러면 끝납니다. 하나님은 줄여서 천천히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까지 우리에게 주셨는데 걱정할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땅에서도 잘 살다가 이 땅을 떠나면 천국, 내 가는 길만 치우치지 않고 여호수아에게 말하듯이 한길로만 잘 가면 이 축복은 자자손손 무너지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다니다가 특별은사 받으려고 유혹 받는 분이 있습니다. 나이가 그만하면 그냥 교회생활만 잘하면 되는데 성경공부 한다고 특별한 공부하러 다니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만 잘 들어도 얼마나 좋습니까? 주일설교도 잊어버리면서 어디에 또 가서 자꾸 공부를 따로 하려고 합니까? 그게 자꾸 안정이 안 되고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집에서 자기 자리 지키고, 교회에서 자기 자리 지키면 양 산맥을, 양 복을 다 받는 겁니다. 천하의 축복이 그 안에 있는 줄로 믿고 너무 옆에 것 다 보지 말고 성실하게 자기 길로 나아가는 노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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