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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해에서의 자유 (롬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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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에서의 자유 (롬 10:4-7)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바둑에 있어 프로기사들은 바둑을 두고 나면 승패가 결정 난 뒤 다시 바둑판에 알을 놓습니다. 한 알도 실수없이 그 자리에 알을 놓으며 시작합니다. 저들이 다시 놓는 이유는 새로이 승패를 결정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이미 승패는 결정이 났고 어디에서 어떻게 승패의 원인이 되었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 때에 더 넓은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바둑판을 대하는 것입니다. 저는 언제인가부터 운동경기를 생방송으로 마음을 졸이며 보는 경우가 줄었습니다. 물론 시간에 있어서도 많은 여유가 없지만 사소한 것에 너무 마음 졸이는 것이 싫어진 것입니다. 대신 중요한 운동경기를 재방송으로 보곤합니다. 그것도 다 보는 것이 아니라 이긴 경기를 보는 것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이긴 경기를 봅니다. 이긴 경기 재방송을 보면 여유가 있습니다. 우선 한 골을 먹었어도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승리를 알기 때문입니다.지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또 주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곤 합니다. 더 많이 알기 위해서입니다.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들을때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용서를 받기 위해서 말씀을 배우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왜 말씀을 배우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

왜 말씀을 듣고 배울때 은혜가 되는 것입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깨달아 알아가는 것이기에 은혜가 있고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워서 용서를 받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용서는 받았는데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말씀을 통해 어떻게 받았는가 확인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깨닫는 것이 은혜라 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말씀을 듣고 배우며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하거나 더 많은 축복을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내게 임한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듣고 배우며 봉사를 하며 확인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여기에 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배함으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운데 말씀을 통해 성찬을 받으면서 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 남이 능히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감격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밀려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4절 말씀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먼저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란 율법의 끝이 나는 말로서 율법의 완성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합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입니다. 아는 자에게가 아닙니다. 유대인에게가 아닙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입니다. 헬라인이냐 유대인이냐 인종적 구분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으니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율법의 요구에서 자유 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 목적은 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죄인인 인간을 의인되게 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 의인됨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어 주심입니다. 내가 더 착해져서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착해졌다는 것 하고 의인이 되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죄인이 의인됨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이요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입니다. 지금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중에도 정말 착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이 흉내도 내기 힘들만큼 도를 닦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 착해져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의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나가지 않아도 착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안 됩니다. 더 착해지는 것으로 인생에 해답이 있지 않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입니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죄를 지어서 죄인이라면 더 선하게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에게 있어 최고의 문제도 죄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인생에게 진정한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죄로 말미암아 있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그냥 둔채 세상의 것들로 포장을 해봐도 인간의 근본적 문제인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선행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인가 먼저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죄인됨을 인정하게 하는 방법으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죄인이 아닌 사람을 율법이 죄인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죄인인줄 모르는 사람에게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인 됨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율법은 이 계명을 지켜 구원받으라 하며 구원의 도구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혹시 성경공부하실시 이렇게 공부하신 적 있으십니가 율법이 있기전에는 양심시대라 하여 양심으로 구원을 얻고 율법이 있고서는 율법시대라 하며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고 복음시대에는 복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닙니다. 율법앞에서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나는 죄인이로서이다 파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죄인으로 알게하고 자연스럽게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몽학선생이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오해하며 두 종류의 반응을 보입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율법의 도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은 율법앞에 충실한 율법주의자들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율법에서 자유 할 수 없다는 것은 로마서 강해를 통해 끊임없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5절을 보니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행하는 사람을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라는 말씀을 유대인들은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래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살 것이니라는 살라는 것이 아니라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역설적 표현입니다.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손들라는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되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런 말씀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래의도는 외면한 채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과 씨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개구리처럼 말입니다. 법앞에 인간의 노력은 얼마나 별 것 없는 지 아십니까 사람이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면 쓸 수록 더욱 더 세상욕심이 살아 탐내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속에서 탐식이 끌어 오르는데 한 두 번은 몰라도 계속 끌어 오르는 탐심은 이길 수가 없습니다. 율법앞에 의를 얻고자 하는 유대인들은 한가지 율법을 지키지만 다른 한 쪽의 율법은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제 6,7절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신 것을 믿음으로 받을 뿐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음부에까지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끌어 올리는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감사함으로 받을 뿐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무엇입니까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루어 주신 것에 믿음으로 참예하는 것입니다. - 아멘 -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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