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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이 참아 인내하라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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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참아 인내하라 (약 5:7-11)

서양에서는 결혼할 때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시집가는 딸에게 결혼 지참금으로 주는 보석의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 있는 진주를 준다고 합니다. 그 때에 주는 진주에는 특별한 이름이 붙여져서“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는 뜻으로 부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얼어붙은 눈물”이라는 뜻의 진주를 주겠습니까? 여기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시집살이를 하다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아서 속상하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고 참고 견디면 오늘 흘리는 눈물이 내일에 가서는 아름다운 진주로 바뀔 수가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진주를 주는 것일 것입니다. 정말 의미도 있고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선물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진주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 아십니까? 진주는 땅에서 캐내는 보석이 아닙니다. 바다 속의 조개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모래알이 조개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됩니다. 깔깔한 모래알이 보드라운 조갯살 속에 박히게 될 때 조개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모두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깔깔한 모래알이 조개의 보드라운 살에 박히게 되면 조개는 본능적으로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된다고 합니다. 한 가지는 조개가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제살에 모래가 막히든 말든 내버려두고 삽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은 조개가 모래알 때문에 병들고 맙니다. 살이 썩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얼마가지 않아 그 모래알 때문에 조개가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조개가 모래알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기면서 모래알을 돌봅니다. 생명의 즙을 짜내서 그 모래알을 한 겹씩 싸고 또 쌉니다. 이것이 바로<진주층(nacre)>입니다. 이 작업이 하루나 혹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짜낸 생명의 즙으로 자기 몸속에 들어온 모래알을 수년을 계속해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진주입니다. 하나의 진주가 만들어지기까지 숱한 고통과 인내라는 과정을 거치고야 완성되고 그렇기 때문에 진주가 아름다운 보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기다리는 과정을 지나고야 결과가 있는 것이고 그 과정이 가치 있고야 아름다운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과정이 없는 시대입니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무엇이든지 속성이 인정받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학원도 속성과정이 인기가 있고, 무엇이든지 빠르다는 것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스피드 시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든 것이 빠른 데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살아가다보니 인간성이 문제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참을성이 없어졌습니다. 인내가 부족하단 말입니다. 기다리지를 못합니다. 여러 가지로 급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이 일을 예사로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딤후3장에서 말세에 인간성을 말하고 있는데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사납고 포악해지겠고 또 하나는 조급한 마음들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미 환경들이 그렇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나 과일 채소들을 보면 생각할 게 많습니다. 원래 여름에는 여름에 먹는 과일과 채소가 있고, 겨울에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채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비닐하우스가 생기고부터는 사계절 못 먹는 과일이 없습니다. 제철 과일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계절의 진미는 더 이상 없습니다. 원래대로 하자면 봄에는 파릇한 나물을 무쳐먹고 그 다음에 오이 수박, 옥수수 그리고 늦가을이 되면 감을 먹고 겨울에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먹어 치웁니다. 그 계절만의 진미를 맛보는 입맛이라는 없어져버렸습니다. 새로운 것을 먹는 재미도, 기대도 없어지고 더군다나 계절에 대한 기다림마저도 없어졌습니다.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한번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시험지를 들고 왔는데 딱 한 문제가 틀렸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어떤 문제를 틀렸나 싶어서 봤더니 수박의 어느 계절의 과일인가요? 하는 문제더랍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답을 보니까 겨울이라고 적어서 틀렸더랍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왜 겨울이라고 적었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우리 집 냉장고에는 겨울에도 수박이 있잖아 하더랍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나를 얻고 둘을 잃어가는 세태입니다. 보이는 것을 얻고 보이지 않는 것을 잃어가는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과정은 없고 결과만 중시하는 이 시 대가 만들어 낸 문제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다림이 없고 참지 못 하는 것은 언제나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길이 참으라.","길이 참아","길이 참고"한 마디로 인내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보시면 그 인내의 한계가 어디입니까? 언제까지 참고 인내하라는 것입니까? 7절입니다. 주의 강림하실 때까지 하라고 합니다. 어쩌다보니까 1,2년 참은 게 인내가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앞에 생각 할 게 많습니다. 우리들이 부부싸움을 할 때나 혹은 서로 오랜 감정을 가지고 살다가 싸울 경우에 이런 말을 합니다."내가 10년을 참았는데...","내가 지금까지 싫은 말 한마디 않고 참았는데..."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 말을 안했어야 옳은 것이지요. 이 사람 인내한 겁니까? 실패한 겁니까? 그 말을 하는 순간 인내가 아닙니다. 깨져버린 것입니다. 언제까지 인내하라고요? 네, 주님 오실 때까지 참아야 됩니다. 아님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참는 게 진짜인내입니다. 여러분, 되겠습니까? 지금 이런 생각하는 분 계실 것입니다."아니 말이 안 된다. 그때까지 어떻게 참으란 말이냐!"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세요. 길지 않습니다."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눈 한번 감고, 침 한번 삼키면 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참으면 됩니까? 마냥 앉아서 무미건조하게 기다리며 이를 악물고만 있으면 인내가 됩니까?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중요한 인내의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농부의 인내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늦은 비와 이른 비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인내하라고 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면 비가 와야 합니다. 햇볕이 나야합니다. 바람이 적당히 불어와야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수고하며 살되 위로부터 오는 복,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와 하나님의 처분을 기다려야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어디 내 수고대로 다 되는 것입니까? 내 계획대로 다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다만 언제나 내 할 본분을 다하고 이제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렇게 살려면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씩 이루어야 할 인내가 있습니다. 먼저는 생각하는 데에 있어서 인내할 줄 알아야합니다. 이 말은 모든 일에 있어서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기 때문에 완전한 이해라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분들을 보면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각본 쓰고 아주 혼자서 드라마를 한편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생각하고는 그대로 결론지어서 종 주먹을 대고 달려드는 것을 봅니다. 이거 생각의 인내가 없는 답답한 사람입니다. 언제나 내가 아는 것이 부분적일 뿐이라고 생각 할 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생각이 너무 급합니다. 속단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기도 중에 생각하고, 뜻을 생각하며 미래를 보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에 있어서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약1:19절에"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전5:2절에는"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말하는데도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는 이것을 잘 지키지 못해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죄를 짓고 말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축복도 저주도 급하게는 하지 말아야 될 일입니다. 여러분, 그거 압니까?"망한다. 망한다"하면 정말 망합니다."죽겠다. 죽겠다"하면 정말 죽습니다. 그것이 다 저주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속단도 금물이요, 말조심해야 됩니다.

생각과 말 뿐만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행동에 있어서 인내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앞에서 말씀 드린 생각에 인내가 있고 말에 인내가 이루어지면 행동의 인내는 쉬워 보입니다. 그런데 흔히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먼저 저질러 놓고 수습하는 사람도 있지요. 정말 대책이 안서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행동에도 특별한 인내가 따라야 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보면 참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횡단보도 앞에는 정지선이 있습니다. 이건 지키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정지선에 서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처음 멈출 때도 아예 정지선 무시하고 횡단보도 안으로 차머리를 쑥 들이밉니다. 그리고 슬금슬금 밀고 나가다가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휙 가버립니다. 그런데 한번 그러면 실수라고 하겠는데 옆에 따라가 보니까 성격이 급해서 그런 겁니다. 서서 기다리지를 못해요. 그래 가봤자 멀리도 못가고, 빨리도 못 가는데 그러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급함 이것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매사에 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급하게 말하지도 말고, 급하게 행동하지도 말고 주님을 기다리듯이 온유한 마음으로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인내하여 인격을 회복하고, 인내하여 신앙의 사람이 되고, 인내하여 후회 없는 생을 살아야겠습니다. 잠깐만 참으면 됩니다. 금방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내를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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