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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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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6-28)

지난 주간에 목회세미나가 속초에서 있었습니다.
오전과 저녁 시간에는 강의가 있었고,
오후에는 지방별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기 때문에
잠시 바다낚시를 하기도 했고, 설악산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사실 바다낚시는 배멀미를 하느라고 전혀 즐기지를 못했지만,
설악산의 아름다움과 울산바위의 웅장함은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자연을 바라보며 나타내는 반응은
그 웅장함에서 오는 경외심과 이를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양신, 달의 신, 별의 신, 용왕 등으로 이름을 지어 부르며
두려움을 가지고 경배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것에 맡기면서 의지하고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창조의 아름다움을 감탄하고 즐거워하지만
그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경배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물에 불과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을 보면서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편 8편을 보면, 다윗이 주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2)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가 베풀어 두신 달과 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고백이 있습니다.
5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절-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대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시편8편에서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고백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그 다음의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다스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은 분명히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다르게 구별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높이셨고
그로 하여금 세상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그것들과는 다르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는 더 존귀하게 하셔서
그 모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자연 만물의 지배를 받고, 그 통제권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연을 숭배하고 있으며, 자연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탄의 지배 아래, 사탄이 시키는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연이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을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마저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권한과 특권을 모릅니다.
그러니까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의 지배아래, 그 통제 아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인간이 그 권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그 권한 중에서 많은 부분을
사탄에서 빼앗겨 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사탄의 권세 아래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아낌없이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에서 사함을 받게 되었으며
자연히 잃어버렸던 다스림의 권한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탄도, 죄악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5년 쯤 전에 스위스의 알프스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지방 목회자들과 함께 종교개혁자들의 유적지를 방문하던 중에
관광 차원에서 유일하게 방문했던 곳이 바로 융프라우라는 곳입니다.
높이가 3,454미터인데 그 정상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습니다.
종착역에 내리면 기압의 차이로 어떤 사람은 걷기도 힘들어 하기도 합니다.
열차에서 내려서 얼음동굴을 지나면, 곧바로 만년설이 쌓여있는 정상에 이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곳에 오를 때, 힘들게 등산을 하지 않습니다.
톱니바퀴에 의해서 올라가는 열차를 타면, 산 정상인 융프라우까지 갑니다.
그렇게 가파르고 험한 계곡을 따라서 철로를 놓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 공사는 1896년에 시작하였고, 1912년에 처음으로 열차를 운행했습니다.
철로 공사가 무려 16년 동안이나 걸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까지 철로를 놓을 생각을 했을까요?
1800년대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각종 신화와 전설을 통해 두려운 마음으로
산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놀라운 패러다임의 차이입니다.
알프스 산 정상까지 철로를 놓으려 한 사람들은 다윗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에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인생을 가로막는 알프스와 같은 산을 다스리는 삶을 살 겁니다.

그러나 대자연을 두려워하며 경배하는 사람들은 삶에 어려움이 찾아올 때,
낙심하고 원인 제공자를 찾고 각종 원망과 비방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나가 세상을 다스리고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영향력 아래서 맥을 못 추는 삶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권한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주셨기 때문에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담대하게 세상에 나아가 이 권한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고 주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면
질병도 떠나가고 사탄도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온도계가 무엇인지 아시죠?
온도계는 현재의 온도를 가리킵니다.
온도계가 가리키는 눈금이 현재의 온도인 것입니다.
온도가 올라가면 온도계의 눈금도 올라가고,
온도가 내려가면 온도계의 눈금도 내려갑니다.

그런데 사람들도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올라가면 자기의 감정과 상태도 올라갑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의 분위기에 따라 자기의 기분이 좌지우지됩니다.
이런 사람은 소극적이며 수동적이고 부정적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주 환경을 탓하며 사람을 원망하며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화를 내면서도 정당화합니다.

왜 화를 내느냐고 물어보면, 화가 나게 만드니까 화를 낸다고 말합니다.
온도계와 같은 사람은 환경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집의 온도가 내려가서 추위를 느끼면,
온도조절계의 눈금을 원하는 온도만큼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집안의 온도가 올라갑니다.
또 집안의 온도가 너무 높으면, 온도조절계의 눈금을 내려 놓습니다.
그러면 집안의 온도가 내려갑니다.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주변의 감정과 상황의 온도가 올라면 오히려 이를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화를 내는 감정을 누그러뜨리도록 온유하고 겸손하게 응답합니다.
또는 주변 상황의 온도가 내려가 낙담과 염려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위로하고 믿음과 소망의 분위기로 변화를 줍니다.
긍정적, 적극적, 능동적으로 상황에 대처합니다.
감사의 말을 하며 소망을 불어넣는 사람입니다.
차갑고 냉랭한 분위기를 따듯하고 온화한 분위기로 바꿀 줄 압니다.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는 온도조절계처럼 살아야 합니다.
영향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하여 때로는 실패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의 보혈 아래 있을 때
원수의 어떠한 공격에도 우리는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주님의 보혈 아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영향력 아래 있는 온도계 같은 삶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켜가는
온도 조절계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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