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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유를 통일하신다 (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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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유를 통일하신다
본문말씀 : 에베소서 4:1~6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1-6)

인간은 파괴된 존재입니다. 내면이 파괴되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생각은 생각대로 움직이고, 감정은 감정대로 갑니다. 때로 의지는 이걸 해야 된다고 하지만 감정은 원하지 않습니다. 의지보다 감정을 따라갑니다. 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싶은 마음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인간의 내면은 근본적으로 분열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심한 경우를 정신분열증이라고 하지요. 반면에 계속 성숙해 가는 사람들은 분열된 그 내면들이 하나가 되어가면서 같은 방향으로 함께 갑니다.

여러 해 전, 제가 미국에서 교수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학기 초 어느 저녁에 신입생 환영예배에서 제가 대표기도를 맡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환영 예배가 다 끝난 다음에야 그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렇게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돌이켜 보니 그 때 교회문제로 제 머리가 복 잡 했고 너무 바쁘게 정신없이 돌아갈 때였습니다. 제 마음의 생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니 기도를 맡고도 잊어버리는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삶에 부담들이 많을 때 이런 일이 생깁니다. 정신이 여러 방향으로 산만하게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총장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총장님,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잊었습니다.” 총장이 저를 보더니 “괜찮습니다. 우리는 당신 없이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라고 해서 둘이서 한바탕 웃고 넘어갔습니다. 그 후 저는 총장의 얼굴을 보면 미안하게 느꼈는데 그 분은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습니다. 보십시오. 마음의 혼란이 많았던 나는 그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고, 마음이 단순하고 편안한 총장은 그 일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두 가지 반응이 얼마나 다릅니까!

만일 제가 총장이었다면 불러다 놓고 “어떻게 된 일입니까? 교수가 중요한 행사에 기도를 맡고도 안 나타나다니요?”라고 책망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숙한 사람, 마음이 하나인 사람, 단순해진 사람, 통일이 된 사람은 건강하게 반응했습니다. 그 일로 제가 그 총장으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너를 정죄하는 자들이 다 어디 있느냐?” “다 가고 없네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편안히 가라.” 하나로 통합된 사람, 통일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내면의 세계가 잘 조화되어서 생각, 감정, 의지, 언어, 태도 등 모든 것이 하나로 잘 조화된 ‘통합’된 사람입니다.

인간은 깨어진 존재입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라요. 아침에는 이것을 원했다가 저녁에는 또 다른 것을 원합니다. 삶에 압박과 부담이 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모릅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반복된 사고를 일으킵니다. 불안하고 두렵고 초조하고 긴장합니다. 심하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내면이 분열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분열된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하나로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다스리시고 만유에 위에 계시고 모든 것을 통일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인생이 복잡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로 연합 하여 통일되어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지난주에 남북한의 정상들이 만났습니다. 이 나라를 평화롭게 유지하고 공동번영을 도모하고자 애썼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한정부의 치밀한 계획과 수고의 흔적이 보입니다. 북한은 대체로 남한의 계획과 제안에 따라 준 것 같습니다. ‘정상회담을 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시기에 하나? 전략적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대통령도 정치인이고 김정일 위원장도 정치인 아닙니까!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너무 그렇게 나무랄 건 없어요. 그 분들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하고 우리 국민들 가운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현 대통령과 정부는 남은 기간도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 아래 최선의 노력을 계속하여 민족과 국가에 큰 유익이 돼야 할 것입니다. 핵 문제를 다루는 6자회담도 비교적 원만하게 진전되고 있는 때에 남북의 정상들이 주도적으로 남북문제, 북미, 북일 문제 등에 대해 함께 노력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념적 문제보다도 남북 간에 좀 더 나은 관계를 수립하고 상호간에 실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정상회담 도중에 김정일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하루만 더 있다 가기를 요청해서 모두 놀랐었지요. 보통 친척이나 친구 집에 가면 “좀 더 묵고 가세요.” 권하긴 하지만 정상 간에는 예의가 아니겠지요.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심성과 통치스타일을 볼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북한을 여러 번 다녀왔는데, 북한 사람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이렇게 하자!’고 말씀하시면 온 나라가 함께 그것만 합니다.” 그러다가 3개월 후 또 다른 이야기를 하면 또 다시 다른 것을 한다고 합니다. 말만 떨어지면 이런 것 하다가 그만 하고 저런 것을 다시 시작하고 그 분의 말을 따라 무엇이나 언제나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라 일을 치밀하게 계획해서 차근차근 밀고나가야 할 텐데, 정상 회담을 하다가 불쑥 “하룻밤 더 있다 가시지요!”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통령이 대응을 참 잘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대통령이 그걸 결심 못하십니까?” 하자 “큰 것은 제가 결심합니다만 스케줄 같은 작은 것은 제가 하지 않습니다” 라고 재치 있게 그 상황을 잘 넘겼습니다.

내면이 분열된 사람은 가정과 직장을 어지럽힙니다. 크게는 나라와 세상을 어지럽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분열된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면이 통일된 사람을 가족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통일하는 주체로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조화롭고 통일된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민족통일의 노력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1절)라고 했습니다. 누가 불렀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방향 감각도 없이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변화시켜 통일된 사람이 되어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와 민족을 통일하는데 쓰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인류가 다 하나 되어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태도와 모습을 갖춘 사람이 있는 반면 하나님의 마음과 부르심에 맞지 않는 모습의 사람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요구하십니다. 통합된 우리를 원하십니다. 개인적인, 교회적인, 국가적인 통일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 내면이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영적 자질들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2절). 겸손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겸손이란 세상을 통치하시고 교회를 다스리시며 내 가정과 직장을 다스리시며 나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고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내가 왕이요, 내가 우주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다 난센스들입니다. 자기중심적,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때는 교만해져서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인생과 역사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온유입니다(2절). 온유는 부드러운 것입니다. 억세거나 강하지 않습니다. 온유는 부드러우나 강하고, 강하나 부드럽습니다. 잘 다듬어진 부드러움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말이나 성격이 너무 억세면 조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부러뜨리실 지도 모릅니다. 온유한 사람은 적응력과 신축성이 있어서 때로는 굽힐 줄도 알고 타협할 줄도 알고 양보할 줄도 압니다.

오래 전에 시카고에 있는 2천 개 회사의 사장들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부장에서 부사장을 거쳐 사장까지 올라갑니다. 그런데 부장에서 부사장을 거쳐 사장이 되는 사람과 부사장에서 끝나는 사람과의 차이점은 부드러운 성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부사장에서 끝마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억센 사람입니다. 사장이 “이것 다시 수정해오시오” 하면 “내가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준비한 것인데 이제 와서 고치라니, 저를 무시하는 겁니까? 회사를 그만 두겠습니다” 하고 윗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장이 “그럼 그만 두세요” 이렇게 해서 부사장으로 끝난다는 것이지요. 유연한 것, 온유한 것이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통일의 축복이 있습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하면 가족끼리도 화합이 잘 될 수 있어요.

셋째는 인내심입니다. 본문 2절에 “오래 참음으로”라고 했습니다. 우리 내면의 세계가 하나가 되고, 서로가 하나가 되고, 우리와 자연이 하나가 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인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인내를 patience 대신 longsuffering으로 표현하여 고난과 시련도 오래 끝까지 참고 견디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나 자신도, 우리 가족도, 교회도, 직장도, 사회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참지 못하면 하나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겁니다. 참는 것이 사랑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는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고전 13:4-7).

인내가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 참아 주는 것은 한 번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못 참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한다고 그랬죠? 정말 못 참겠으면 참아야지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가능한 방법이 딱 하나 있습니다. “주여, 나에게 이 시간 인내를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때 참을 수 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닙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세 번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세 번도 참을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을 때 그 순간, 성령께서 내 안에 참을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우리로 참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넷째는 포용력입니다. “서로 용납하고...” (2절). 사람을 수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릅니다. 부모도 고향도 학교도 재주도 능력도 성격도 다 다릅니다. 하나가 될 수 없는 사람은 주로 서로 간의 이런 차이나 다른 점들을 부각시킵니다. 하지만 하나가 되는 사람은 오히려 공통점을 찾으려 노력하며 다른 사람을 포용합니다. 본문에도 “서로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한 쪽만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만 계속 남편을 용납하려 애쓰고 남편은 자기 멋대로 하고, 남편은 자기 아내를 계속 용납하는데 아내는 용납하지 않으면 평화가 있을 수 없고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참는 것도, 용납하는 것도 서로 해야 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니라.” 사도 바울의 말씀처럼 관용이 있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관용이 없다면 관계가 깨어지고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고통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는 평화와 일치입니다. 하나가 되려면 평화를 추구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 하나가 되려는 목표를 놓고 노력하는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지, 하나가 되려는 마음이 없고 노력하지 않는데 어떻게 평화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가정과 교회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하나가 되려는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도 “힘써” 하라고 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나누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로 만들어 주신 것을 우리가 지역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 하나입니다. 얼마 전 저는 대구의 여러 교단 여성들이 참여하는 ‘하나 되게 하소서’라는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저는 내년부터는 대회의 제목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가 아니라 ‘우리는 하나다’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로 이미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내가 다른 것만 찾아냅니다. 얼굴색이 조금 검어도 ‘저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조금 희면 ‘저 사람은 서양 사람이구나!’ 하며 편 가르기를 합니다. 그리고 나와 다르면 바로 거부합니다. 얼굴색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교단이 달라도 우리는 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성령께서 하나를 만들어 주셨어요.

제가 교단의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십시다.”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교단사람을 만나도 “당신과 나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일체의식을 가지고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일체의식과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이 우리 가운데 계속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몸 의식입니다. 즉 지체의식이지요. ‘나는 이 큰 우주의 작은 한 지체에 불과하다. 내가 제일 중요한 지체가 아니고 나는 수많은 지체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내 몫을 성실하게 하면서 옆의 지체와 조화를 이루어 나 때문에 옆의 지체가 잘 성장하고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지체의식이 필요합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4-6절). 그분 때문에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면서 우리 모두가 하나인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하나된 것을 누리게 되길 원합니다.

그러려면 겸손, 온유, 인내, 포용력, 사랑, 평화, 일체의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는 우리 각자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사오니 하나님께서 온전히 바꾸어 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 땅에서 이루며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원하고 추구하면 내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 내가 원하는 것도 하나님이 원하는 것, 내 소원도 하나님의 것, 내 감정도 하나님의 것, 모든 것이 내 안에서 하나님으로 하나가 되는 통일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일된 사람은 가정을 통일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데 여러분과 제가 귀하게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일치운동, 평화운동, 통일운동은 믿는 사람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를 추구함으로써 이 땅과 우리 민족이 하나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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