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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차든지 뜨겁든지 (계 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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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를 하려고 아침 일찍 나오면 이제는 제법 쌀쌀한 공기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예전에 이맘때쯤이면 우리는 겨울을 어떻게 지낼까를 걱정했습니다. 대부분이 연탄을 연료로 사용했기에 집에 달린 조그만 창고에 연탄을 가득 들여 놓으면 마치 부자가 된 듯한 마음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손을 넣고 녹이던 기억이 그립습니다. 

어렸을 때 겨울에 연탄을 갈아 넣는 것은 아주 고역이었습니다. 독한 연탄가스를 맡기 싫어서 바깥에서 숨을 한두 번 크게 들여 마시다가 마지막 크게 들여 마시고 난 다음에야 코를 손으로 꽉 막고 연탄을 새 것으로 갈아 올려놓던 기억이 납니다. 요사이는 연탄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사라져서 가스로 바뀌었습니다. 연탄을 사용하던 분들은 연탄에 관련된 시를 읽으면 기억을 새롭게 떠올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안도현이 쓴 ‘반쯤 깨진 연탄’이라는 시는 연탄을 의인화하여 쓴 시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은 것이다.  나는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에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어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활활 타올라서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 연탄의 모습을 보이다가 사라져야 연탄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지 도로 트럭을 타고 연탄가게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심정을 노래한 시입니다. 이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짧은 시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이 재가 되었을 때는 연탄의 열기를 다 발하는 뜨거움을 지닌 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뜨거운 사랑과 열정을 갖고 인생을 살아봤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얗게 재로 남은 존재를 아름다운 인격으로 그려주고 있는 시입니다. 

시인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사랑을 했느냐? 뜨거울 때 무엇보다 좋은 일도 있지만 가슴 아픈 일도 경험할 텐데 그것도 넘어섰느냐?”

인생을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살려면 축복의 역사도 있지만 때로는 가슴 아픈 고통도 당합니다. 그렇지만 인생을 뜨겁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을 할 때에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갖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상처 받을까봐, 실수할까봐, 실패할까봐, 떠나갈까봐 걱정하면서 사랑한다면 아마 사랑하는 사람도 떠날 것입니다. 그것은 전심으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종종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할 때가 있는데 제가 주례를 한다고 약속을 해놓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결혼약속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픕니다. “결혼을 미룬 것일까? 아니면 사랑이 깨진 것일까? 아니면 두 사람은 사랑했는데 부모님들이 안 된다고 해서 헤어진 것일까?” 

언젠가 우리 모두는 연탄재처럼 한줌의 재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 사랑하는 것, 열정을 쏟을 때 쏟아 붓는 것,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을 위해서 쏟아 붓는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갖는 것은 인생을 멋지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각오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려면 사랑에 실패할 각오도 해야 합니다. 열정을 갖고 살려면 사랑이 떠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가지고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뜨거운 사랑이 힘들기도 한 것입니다.  1980년 초반 독일에 유학을 갔을 때 그곳의 교회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독일교회는 마틴 루터 종교개혁자의 전통을 이어받은 훌륭한 교회들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회들이 영적으로 침체되어있는 것을 목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주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돌로 된 거대한 교회를 가보면 한쪽 구석에 20~30명의 노인들이 앉아서 예배드리고 있고, 그것을 구경하듯 관광객들이 수다 떨며 지나가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주 슬펐습니다. 과연 한국 교회는 이러지 않을까? 한국 교회는 20년, 30년 후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10대, 20대, 30대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키우지 않으면 아무리 부모세대가 뜨겁고 열정이 많다고 하더라도 신앙의 전승은 곧 10년, 20년, 30년 내에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 교회는 아직까지 뜨거운 교회입니다. 

당신의 신앙온도를 재본다면 몇도 쯤 됩니까?  신앙의 온도가 미지근합니까? 아니면 뜨겁습니까?  나만 뜨겁습니까? 아니면 남도 뜨겁게 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합니까?  한국 교회의 뜨거운 영적 기본이 되는 것에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한국교회만이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새벽기도입니다.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는 교회는 한국의 교회밖에 없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새벽부터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말씀 들으며 기도하는 모습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한국의 성도들이 축복을 받았고 우리 민족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광복 이후 50년, 60년밖에 되지 않아서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지닌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축복을 받은 것은 세계 역사상 한국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영적인 뜨거움의 표면입니다. 그렇다면 소망교회는 어떠할까요? 사람들이 소망교회는 조금 찬 교회가 아닌가? 조금 냉정한 교회가 아닌가? 기도하는 데도 조금만 소리 내서 기도 하려면 옆에서 윽박질러 조용히 기도할 수밖에 없는 교회가 아닌가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4년 동안 담임목사로서 소망교회 목회를 하면서 소망교회 교인들이 차가운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나 소망교회 교인들은 뜨거운 마음이 있습니다. 소망교회 새벽기도회에 나와 보십시오.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 소망교회의 영적인 뜨거움의 근원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주일예배, 삼일저녁예배, 공동체와 제직회 등의 여러 예배와 모임들이 있지만, 소망교회를 소망교회 되게 하고 영적인 뜨거움을 간직하게 하는 것은 바로 새벽기도에 있습니다. 새벽에 하나님 앞에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소망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저는 새벽기도의 단에 오를 때마다 성도님들이 기도하는 즐거움을 회복하고, 말씀 보는 재미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제자 훈련의 의미,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축복을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새벽기도에 나오라고 하면 모두 두 손을 들며 얼마나 늦게 자는지 이야기하곤 합니다. 요즘의 문화가 사람을 늦게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의 문화들은 대부분 어둠의 문화, 음습한 문화, 음란한 문화, 타락의 문화들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모든 일을 마치는 시간을 앞당기셔야 합니다. 적어도 11시 정도까지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새벽 시간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일주일에 적어도 한 두번은 새벽을 깨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교회 나와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며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침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인생을 주님께 드려보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인 10대, 20대, 30대의 청년들이 자라나야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도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로 성숙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자고 있는 자녀, 졸려하는 자녀를 붙잡고 새벽기도에 한 번씩 나오게 하는 것도 좋습니다.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을 옆에서 잠깐씩 보기만 해도 자녀들의 가슴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아버지가 새벽 일찍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모습만 봐도 자녀들이 감격할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잠을 자도 괜찮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이런데서 부터 뜨거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어머니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자녀의 이름 불러가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는 데서부터 신앙의 뜨거움이 시작됩니다.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날 때 늘 할머니의 기도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할머니가 중얼 중얼거리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자는 것 같기도 하고, 깬 것 같기도 한 상태에서 가만히 들어보면 그 기도 속에는 언제나 제 이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기도하셨는지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 이름이 할머니의 기도 속에 나왔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의 제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기도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기도하는 선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내 신앙이 여기까지 왔다는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벽 기도란 기도의 간절한 영성의 밝음이 빛나는 시간입니다. 

기도로부터 영적인 가슴이 뜨거운 불로 솟아나는 시간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신앙이 미지근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것 을 다 제쳐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기도드리겠다는 각오로 다시 시작하십시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외 없이 예수님께 꾸중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안다. 네가 차지도 않고, 그렇다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해라. 네 스스로 생각하기를 부자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 하는가 본데 내가 보니 넌 가난하구나, 눈이 멀었구나, 벌거벗었구나. 네가 스스로 무엇인가 가지고 있다고, 무엇인가 되었다고 착각하는데 그것은 오해다. 네 실상을 보니 너는 벌거벗은 누추한 존재다. 잘못된 자족감은 헛것이다.” 

라오디게아라는 도시는 물이 잘 공급되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16km 떨어진 골로새라는 도시에 차갑고 깨끗한 물을 끌어들였습니다. 아주 상쾌하고 시원한 맛이 나는 물이었지만, 이 물이 루커스 평야를 거쳐서 라오디게아까지 16km를 오다 보면 어느새 미지근한 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또 그 옆 북쪽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에는 뜨거운 광천수 온천물이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물을 끌어왔는데 그것도 고원과 수로를 거쳐서 라오디게아까지 10Km를 흘러오다보면 뜨겁던 물이 다 식어져서 미지근한 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목욕을 할 수 있는 온천이 되지 못했고, 중간에 이물질이 많이 들어가서 신선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입에 담았다가 뱉고 싶은 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현상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들의 모습은 어떠하냐? 너희들의 신앙은 어떠하냐? 너희들의 영적상태는 어떠하냐? 너희들이 영적으로 출발할 때는 뜨겁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도 뜨거우냐? 너희들이 영적으로 신앙을 출발할 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지 않았느냐? 네 출발은 감사와 기쁨이었는데 지금은 왜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하냐? 왜 너희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냐?”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계속해서 질문하십니다. “네 신앙이 나태해지고 게을러졌다.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신앙의 위기가 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네 신앙이 위기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나는 구토가 난다. 내 입에 담갔다가 도로 토해내겠다. 시원한 활력을 주는 샘물이 되겠느냐? 병자의 질병을 고치는 뜨거운 온천물이 되겠느냐? 아니면 미지근한 물로 아무도 쓸 수없는 물로 전락할 것이냐?”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은 왜 미지근해졌을까요? 신앙에 열정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왜 미지근해지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성품의 이유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품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품이 너무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사람, 적극적이기보다는 자기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 체면을 차렸습니다. 스스로 대견한 사람처럼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가진 게 좀 있어서 영적으로도 부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기에 자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현재 상태에 머물러 있으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신앙이란 뒤를 보며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이란 끊임없는 미래를 향한 도전이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새로움을 향해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도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동감을 가진 신앙을 가지라고 요청합니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더 지혜로움을 향해서, 더 새로움을 향해서, 더 참된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미지근한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미지근한 사람은 피동적이고 자기 결단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의 결단에 끌려갑니다. 또한 책임을 지지 않고 집단속에 파묻혀 다른 사람들의 핑계를 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본래 위험하고 치열하며 힘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을 신뢰해야 합니다. 너무 위험하다고 전전긍긍하면서 해야 할 것을 멈춰 서지 마세요. 사랑에 실패할까봐 사랑의 열정을 쏟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오히려 그래야 진정한 사랑의 축복의 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속화가 되는 것은 명목상의 교인들만 있는 위기를 맞이하였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요한계시록 3:16) 

예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것은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요한계시록 3:19)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미지근한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오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이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한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찬양하지만 난 네 속에 있지 않은데, 네가 예배드리지만 문을 걸어 잠근 네 속에 내가 없는데.” 

때로 우리는 열심히 헌신했다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산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아직 문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문 좀 열어다오. 내가 들어가서 주인이 되기를 원한다. 네 마음대로 하고 내 이름을 인용만 하면서 내가 네 속에 있다고 하는데 도대체 네 속에 내가 없다. 네 속에 들어가 보자. 나를 주인 대접해 줄 수 없겠니? 내 이름으로 살 수 없겠니? 네 인생에서 내가 기뻐하는 것을 추구할 수 없겠니?” 

신앙이란 우리가 갖고 있는 번잡한 생각을 조금씩 줄여 나가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 기도하세요. “예수님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가르쳐주세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거절하겠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하나님 원하시는 것에 모험하고 도전하겠다고 결단하십시오. 그때부터 가슴이 뜨거워지며 성령의 역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사랑하고, 내 꿈과 비전이 하나님의 꿈과 비전이 되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결단하십시오. 주님 앞에서 무릎 끊고 주님 원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실 것입니다. 

열정을 갖고 기도하는 300명의 사람이 미지근한 모습으로 있던 만 명보다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미지근하지 마라. 차든지 뜨겁던지 해라. 다시 기도하며 말씀 앞에 서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미지근한 사람이 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면 ‘예’하고 일어나서 나가게 하옵소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아니다’ 말씀하시면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주님 기뻐하시는 것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신앙의 열정, 사랑의 열정을 회복시켜 주시고 이 땅에 사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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