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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에셀의 기도 (창 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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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에셀의 기도 (창 24:10~27)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늙은 종 엘리에셀에게 밧단 아람으로 가서 이삭을 위하여 신부감을 간택해 오라고 분부 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너무나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곧 바로 응답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삶과 직결되는 신앙행위입니다. 자식이 부모와 격의 없이 대화 하는 것처럼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 그의 응답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 엘리에셀의 기도는 이상적인 삶을 지향하는 성도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믿음의 기도입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자질이나 어떤 격식보다도 믿음이 있는 기도를 원하십니다(약 1:5-6).

1)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엘리에셀이 나홀의 성 근처 우물가에 꿇어앉아 기도를 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엘리에셀의 이러한 믿음은 사실상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믿음에 근거합니다. 처음에 그가 이삭을 저와 같이 가게 해 달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이를 거절하면서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7절).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그곳으로 보낼 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이레’로 미리 준비해 두셨다고 믿었습니다. 엘리에셀 역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계획과 배려하심을 믿었기에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해 주실 것을 믿고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십니다(히 11:6).

2) 아브라함에 대한 신뢰입니다.

엘리에셀은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12절). 그는 이기적인 자기의 목적을 구한 것이 아니라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과 엘리에셀 사이에 인간적인 신뢰와 믿음의 고귀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이삭의 신부감을 간택하는 그 막중한 일을 자기의 종에게 맡겼다는 점입니다. 한편 엘리에셀의 경우도 생각할 점이 있습니다. 만약 이삭이 나지 않았다면 저가 상속자로서 재산을 물려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창 15:2). 그뿐 아니라 지금 낙타 열 필에 싣고 가는 많은 보물을 욕심내어 아브라함을 배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 사이에는 빈틈없는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 사명에 대한 확신입니다.

성경은 종이 주인의 뜻을 받들며 섬기는 것을 두고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5-7에 보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에셀은 떠나 오기 전 아브라함의 환도뼈 밑에 손을 넣고 맹세하는 기도를 하면서 사실상 사명에 대한 서원을 하였습니다(창 24:3). 그러므로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께 엎드린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성공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성도가 주께 받은 사명을 위하여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기도가 됩니다.

2. 사려 깊은 기도입니다.

사명이 막중할수록 기도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 지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이 목적지에 이르렀으나 어떻게 하면 순조롭게 이룰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 같았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하여 매우 사려 깊게 행동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1) 보편적인 방법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에는 신비적 요소가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기도 자체가 신령한 것으로 생각하여 통상적인 방법보다는 이적적이고 신비적인 방법을 동원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건전한 신앙은 평범한 삶 가운데 되어지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면서 하나님의 의중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여기 우물가에서 무릎을 꿇은 엘리에셀도 매우 쉬운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13-14절).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는 점입니다.

2) 구체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주문 외우듯이 막연하게 여러 가지로 주어 섬기고는 자기 요구에 맞도록 해석을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라 맞추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엘리에셀의 기도는 나름대로 구체적이고 객관적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가 소녀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때 거기 나타나는 반응에 따라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이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요구를 거절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달라는대로 물을 주는 경우이며, 셋째는 그가 요구한 것 이상으로 반응하는 경우입니다. 그가 최상의 신부감을 찾으려 했을 때 첫째 경우는 당연히 제외되는 것이며, 둘째는 보통 신부 정도로 생각될 수 있고, 셋째는 최상의 신부감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기도와 삶이 연결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살전 5:17). 이와 같은 표현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가 그의 삶과 별개일수 없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기도 하는 사람들은 흔히 교회에 나오거나 또는 한적한 장소를 선택하게 되고, 또 일상적인 생활과는 거리를 멀리해야 제대로 된 기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인의 기도는 시간이나 장소나 상황에 구별 없이 삶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도는 그 사람이 자기의 할 일과 책임을 다 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미 6:8).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응답이 필요한 시간, 바로 응답이 이루어 져야하는 그 장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또한 기도하면서 자기가 할 일을 그대로 진행하였습니다.

3. 감사의 기도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감사로 이어지게 되는 법입니다.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가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방향을 잡게 되면 그의 눈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이 들어오게 되어있습니다. 엘리에셀은 기도와 행동이 신속하게 맞물려 감사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1) 신속하고 정확한 응답입니다.

엘리에셀은 우물에서 올라오는 리브가에게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리브가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의 응답 여부를 알려고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소녀는 첫말에 물 항아리를 기울여 마시게 하고 곧 이어서 약대들이 먹도록 구유에 물을 길어다 부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엘리에셀은 마음속에 감사와 희열이 넘쳤습니다(21절). 엘리에셀은 리브가에게 몇 가지 선물을 주면서 그의 부모와 가정의 내역을 들었습니다. 그 소녀가 아브라함이 원하던 대로 같은 집안의 딸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응답하신 것을 보고 깊이 감사하였습니다. 26절에“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하고 감사드렸습니다.

2) 바른길로 인도 하신 것입니다.

48절에는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목적이나 동기가 순수하고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도 길을 잘못 들어서 오랜 시간 많은 물질과 정력을 소진하게 되면 지치고 피곤해 지는 법입니다. 이럴 때는 오히려 마음의 갈등과 혼란이 거듭 되면서 시험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엘리에셀은 그의 기도한대로 하나님께서 바른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화면에 나오는 지도와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바른길을 찾아가듯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지도를 따라 순탄한 길을 가게 됩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 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6:9).

3) 자랑스러운 간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엘리에셀이 그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혼자서 그길로 돌아오게 되었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요 그 이름도 남아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자랑스러운 축복의 간증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에셀이 라반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식구들 앞에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그가 의도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것을 자신 있게 피력하였습니다(34-49절). 이에 그 집 사람들도 그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인 줄 알고 거기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50절). 엘리에셀은 며칠 더 머물다 가라고 하는 그 집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하며 리브가를 데리고 곧 바로 돌아왔습니다(56절). 그가 행한 이 사건은 이삭 한사람에게만 아니라 오고 오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축복의 근거가 되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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