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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받은 우리는 (롬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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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받은 우리는(롬12:3-8)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다. 롬1-11장의 말씀은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다른 길은 없다.’는 내용이다.

  그 다음 질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그 대답이 12-16장에 나와 있다. 한 마디로 하면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구원과 삶이 같아야 한다. 구원파는 구원과 삶이 다르게 말하기에, 잘못된 믿음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그렇다면 구원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예배를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간다(롬12:1-2).

(2) 교회를 사랑하며 섬기게 된다(롬12:3-13).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교회를 먼저 사랑해야 할까요? 교회가 세상의 빛이요 소망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회운동, 사회개량운동을 벌려도, 공중 권세를 잡은 자가, 이 땅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공중 권세를 잡은 자를 깰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세상에 있지 않고 교회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영적 능력으로만, 악한 자의 힘을 이길 수 있다.

  어떤 시대에나, 세상의 희망은 교회에 있었다.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가 영적인 힘을 발휘할 때, 사회적으로도 혁신이 일어났지만, 반면 교회가 빛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부패하고 힘을 잃었을 때, 사회 역시 부패하고 희망을 잃었다. 기독교인들이 잘못하면, 세상이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가?

  세상 사람들은, 술 먹고, 전봇대를 붙들고, 오줌을 싸며 길거리에 잠을 자면, 술이 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어떤 속상하는 일로 술을 한잔만 마셔도, 기독교인이 술 먹느냐고 뭐라 한다.  세상 사람들은 뇌물을 받아먹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조그만 뇌물을 받으면, 왜 그렇게 난리를 치는가? 그 이유는 교회는 세상이 희망인데, 너희 기독교인들마저 타락하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꾸중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희망을 주는 삶을 사시기 바란다.

(3)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12:14-21).

우리는 이 땅에 혼자 살지 않는다. 항상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사람은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들은,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수 같은 이웃에게는, 꼭 복수하기 원한다.

  그러나 성경은 복수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성도와 불신자와의 차이점은, 원수 같은 이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원수 같은 이웃도 사랑하며 살 수 있는, 넓은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교회에서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야 하나?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교회를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야 한다. 먼저 오늘 말씀을 보면, 은혜와 은사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다를까요?

1. 은혜와 은사

은혜는 헬라어로 χάρις(카리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Χαίρω(카이로, 환영하다, 기뻐하다)에서 왔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비록 죄인이지만, 기뻐하고 환영하며 받아주시는 호의를 ‘은혜’라고 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은사는 헬라어로 Χάρισμα(카리스마, 신비한 능력, 종교적 자질)라고 한다. 이 말은 χάρις에서 왔다. 은사는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라고 주신, 신령한 영적인 능력을 말한다.

  은사는 은혜 속에 있기에, 그리스도인에게만 나타난다. 은사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성장시키는데 쓰도록 주셨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절대적인 능력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능력으로 무장하여,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필요하다. 교회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만, 인간 차원의 능력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교회들의 일들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적으로 무장해야 한다. 영적인 무장은, 내 속에서 나오는 힘으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봉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힘, 성령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은사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다(눅11:9-13).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그러므로 은사를 사모하고 간구하여, 하나님께서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주시기를 바란다. 성령의 은사는, 남의 이목을 끄는 신비한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기 원하며, 헌신하기 원하는데, 도구가 없으니, 하나님 도구를 주십시오”하며 겸손하게 엎드릴 때 나타난다.

  청소하려는 사람에게 빗자루를 줘야하듯,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은사를 주신다. 하나님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선천적인 재능을 주셨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은 아주 다양하다. 그러나 불신자가 아무리 탁월한 재능이 있어도, 은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능과 은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선천적인 재능을,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은사로 바꿔야 한다. 하나님께 은사를 구한다는 말은, 충성하겠다는 뜻이므로,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충성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은사를 구하자.


2. 은사의 통일성과 다양성(몸과 지체)

5절은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 몸(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성령이 부어지면, 교회를 이루게 되는데, 교회는 건물이나 교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말한다. 우리들의 모임은 보이지 아니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상에 보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2) 지체(그리스도 안에서 다양함)

지체가 된다는 말은, 같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이지만 달라야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르다는 말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비행기는 거대한 물체이지만, 여러 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엔진도 있고 프로펠러도 있고, 바퀴도 있다. 하지만 역할은 모두 다르다. 위치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다. 하지만 이 모든 부품들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안전하게 뜨게 하여, 승객들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뜨지 못하는 비행기는, 비행기가 아니다.

  비행기를 뜨게 하려면, 모든 부품이 각기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 안에 있는 모든 부품들은, 크기가 다르고 역할도 다르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라도, 그 기능을 상실하면 비행기는 추락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부분에서, 잘 움직여줄 때, 비행기가 뜨게 된다.

  우리 성도들은 아주 작은 일을 맡았지만, 충성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된다. 교회가 이 세상을 구원하는 거룩한 목적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따라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은, 하나하나의 기능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나와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기 때문에 좋아해야 한다. 역할과 기능이 서로 다르기에, 격려하고 축복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각 지체들은, 서로 달라야 하고, 다름을 인하여 감사해야 한다.

  서로 다르지만, 미숙하면 싸우고, 성숙하면 하나가 된다. 미숙하면 분열하고 지배하려고 하지만, 성숙하면 섬기려고 한다. 섬길 때 열등감만 없으면, 더욱 행복하다. 엄마가 자식에게 밥을 해주면서, ‘내가 왜 이렇게 밥을 해주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하면서 굉장히 좋아한다. 사랑하는 자기 자식을 위해 봉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봉사와 섬김은 큰 복이다. 내가 맡은 역할을, 내 위치에서 잘 감당했기에, 거대한 비행기가 뜰 때, 기쁨이 넘쳐나게 된다. 이런 축복과 행복감이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로 하여 당신이 날 수 있고, 세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래서 6절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일률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각각 그 특성과 은사와 체질에 따라, 우리를 다루신다.

  교회 안에는, 급한 사람, 침착한 사람, 의지가 강한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성격들이 다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을 야단치지 말라. 그런 사람이 있어야 일을 저지른다. 베드로를 보라. 마음이 급했지만, 큰일을 하지 않았는가!

  모든 것을 차분히 꼼꼼하게 하는 사람은, 허둥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허둥대는 사람도, 꼼꼼한 사람을 보면 이상하게 여긴다. 하지만 모두 다 필요하다. 교회에는 큰사람, 작은 사람, 청소하는 사람, 설교하는 사람…, 각 기능이 살아 있어야 한다.

  청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르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살아야 되고, 사슴은 들판에서 뛰어다녀야하고, 돌고래는 바다에 있어야 한다. 원숭이에게 들판에서 뛰라고 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돌고래더러 들판에서 뛰라고 하면, 밤에 잠도 잘 수 없이 고통스럽다. 하나님은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을 만드시고 이 지구상에 2만 4천 종족을 만드셨다. 각 종족마다 언어와 문화, 음식과 습관이 다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모두를 기뻐하신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 재미있고 신나면 은사다. 돈을 받지 않고 밤을 새워도, 좋기만 하면 은사다. 누가 욕하고 손가락질을 해도, 그 일에 몰두하면 은사다. 비록 내가 엔진이 못되고, 바퀴가 된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라.


3. 은사 활용 : 다른 사람을 위해 써라

은사의 특징은 나를 위해 주어지지 않았다. 은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 주어진다. 나무는 자기 열매를 먹지 않는다. 열매는 사람이 따먹지, 자기 열매를 자기가 따먹는 나무는 없다.

  성령의 은사가 그렇다. 열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하기 위하여 있는 열매처럼, 은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있다. 내가 받은 은사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했을 때 주어지는 축복은, 돈이 아니라 행복이다.

  은사는 자기를 위해 쓰면,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된다.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면 허무하다. 은사로 돈벌이해도 안 된다. 은사를 자기의 성공과 자기가 유명해 지는데 쓰게 되면, 재앙이 온다. 자기를 위해서 은사를 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써라.

  따라서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라. 물론 안 나오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 교회에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다. 허송세월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1) 은사의 종류 : 6절 이하를 보면, 은사에는 7가지 종류가 있다.

특별히 6절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① 예언의 은사다. 예언의 은사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바울은 예언의 은사를 높이 평가했다. (고전14:1)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그리고 예언과 방언을 방언과 비교할 때, 방언은 자신의 덕을 세우지만, 예언은 교회에 덕을 세우고, 사람들을 권위하고 안위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예언은 무엇인가?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풀어서 가르치며, 하나님 나라의 꿈과 환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설교가 예언이며, 천국을 이야기하는 전도도 예언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고 말하는 것이. 장차 나타날 하나님 나라와 영광이라면 예언이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은혜 시대의 사람들은 어린 아이, 젊은이, 늙은이 가릴 것 없이 꿈과 환상을 보고, 예언하는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이 된다(행2:17-18).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면 예언자요, 백성들의 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드리면 제사장이라고 했다.

  이 은사를 받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는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는다. 분별력이 있다.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그렇지 못한 연약한 사람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겸손해야 하며, 특별히 지혜가 필요하다.

  예언의 은사를 잘못 사용하면, 교만해지거나 상처주기 쉽기 때문에, 성경은 예언의 은사를 믿음의 분량대로 활용하라고 말한다.

② 섬기는 은사가 있다.
유난히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굉장히 즐거운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일을 독점하지 않아야 한다.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섬기는 사람은 능력이 많거나, 돈이 많아서 섬기는 것처럼 하지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한다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그럴 때 열매가 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있다.

③ 가르치는 은사가 있다.
지식을 잘 정리하고 분석해서, 남을 이해시키는 은사다. 예언의 은사가 말씀을 증거 하는 영적 파워라면, 가르치는 은사는 이해시키는 능력이다. 설득력이 있다.

④ 권위의 은사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은사다.
  안 되는 일도 된다고 용기를 주고, 포기하려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자살을 하려던 사람을 자살하지 않게 하는 은사가 있다. 권면 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⑤ 구제하는 은사가 있다.
아낌없이 퍼주는 은사다. 아낌없이 퍼주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⑥ 다스리는 은사다.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은사다. 리더십이다.
담임목사에게 필요한 은사다. 조직을 지휘하는 은사가 없으면, 굉장히 어려움이 생긴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⑦ 긍휼의 은사가 있다.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신 줄로 믿고 찾아서 활용하라. 이 은사를 묻어두지 말라.  은사를 자기를 위해 쓰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자. 그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삶에 축복과 기쁨이 흘러넘치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다. 어떤 분이 교인들의 스타일을 재미있게 분류해 놓았다. 교인 가운데는 달구지 같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가 끌어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다음 하늘을 나는 연 같은 교인이 있다. 항상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잘난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에 매여 있기에, 더 높이 오르지 못하고, 줄이 끊어 질까봐, 위태로운 신앙생활을 한다. 또 고양이 교인이 있다고 한다. 고양이는 늘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좋아한다. 이처럼 칭찬 받기만을 좋아하고, 누가 건드리면 금방 할퀴려고 덤벼든다.

  그리고 럭비공 같은 교인이 있다. 그 공은 타원형으로 뾰쪽하게 생겨먹어서 한 번 튀면 종잡을 수가 없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또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 추리 불같다고 한다.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들쭉날쭉하다.

  믿음이 있다 없다, 기도를 하다 말다, 교회 나오다 말다, 봉사하다가 말다, 껌벅껌벅한다. 그리고 반석 같은 성도가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님 부르시는 일에 ‘예’하고 바른 응답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바로 이런 사람이 충성된 그리스도인이다. 이런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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