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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정과 냉정의 사이에서 (왕하 13:14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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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냉정의 사이에서 (왕하 13:14 - 19)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활과 살들을 취하소서 활과 살들을 취하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곧 손으로 잡으매 엘리사가 자기 손으로 왕의 손을 안찰하고 가로되 동편 창을 여소서 곧 열매 엘리사가 가로되 쏘소서 곧 쏘매 엘리사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또 가로되 살들을 취하소서 곧 취하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가로되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왕하 13:14-19)

  오늘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열정이요,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열정은 누구에게서 받을 수 있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불을 질러야 하는 것입니다.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서 재능과 열정은 탁월한 성과의 필수요소이지만 21세기 판도라 상자에는 열정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MS사의 회장인 빌 게이츠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내 열정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그의 열정은 그의 조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냉담함은 구실만을 만들지만 열정은 개인의 성취를 높입니다. 여러분은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과학자들의 열정은 유명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축전기를 만들기 위해 무려 2만 번의 실험을 했답니다.  예술가의 열정의 열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무려 10년에 걸쳐 그렸는데 그림에 너무 열중해 하루종일 먹는 것조차 잊을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열정도 대단합니다. 미국 스탠다드 석유회사의 점원 아치볼드는 호텔에 가서 숙박계를 쓸 때에도 자기 이름을 쓰지 않고 "한통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가격과 이름을 적곤했다고 합니다. 그후 그는 록펠러의 뒤를 이어 세계 최대 석유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그 이상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열아홉 살에 예일 대학의 교수가 된 조나단 에드워드의 열정, 드와이트 무디와 같은 전도자의 열정이 미국 사회에 복음의 꽃을 피우게 하였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씩 기도하며 바쁠 때는 더 많이 기도하던 마르틴 루터의 열정은 독일과 유럽의 교회를 영적인 어두움에서 깨어나게 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한 편의 설교를 하고는 한 사발의 피를 토하곤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도 열정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영적 세계에서도 열정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정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에 요아스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동시대에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유명한 선지자가 살았는데 그는 대단한 능력을 소유한  훌륭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중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던 사람중에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있었습니다.  요아스는 엘리사에 병문안을 와서는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와했습니다. 동시에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엘리사가 있어서 적국에서 쳐들어오면 미리 알고 방비하게 해주어 안전할 수 잇었습니다. 이제 엘리사가 없는 줄을 알고 대적들이 당장에라도 쳐들어와 초토화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죽음을 직면한 엘리사의 임종을 지키러 온 요아스왕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스라엘의 힘이요 강력한 군대인데 이렇게 떠나가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하고 초조해하는 요아스왕에게 엘리사는 마지막 방책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아스왕의 손에 엘리사의 손을 얹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활을 잡으시오. 그리고 동편창을 열고 쏘시오."하였습니다. 활을 쏜 왕에게 엘리사는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입니다. 왕이 아람나라를 멸하도록 치셔야합니다."
  그리고나서 엘리사는 다시 왕에게 "화살을 집으시오. "  "화살로 땅을 치시오."하엿는데 왕은 세번만 치고 그쳤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크게 화를 내었습니다. "왕께서는 적어도 대여섯번은 치셨어야지요. 그랬으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칠 수 있었는데 이제 세번만 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엘리사는 죽었습니다.

  요아스는 왜 세번만 치고 그쳤을까요?  아마 그런 행동이 어린애 장난처럼 우스꽝스롭게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행동은 스스로 보기에 왕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보여졌을 것입니다. 그는 엘리사가 자기에게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 주리라고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또는 외국과 전쟁에서 이기는 무슨 전술이나 전략에 대하여 비법을 가르쳐줄 것을 기대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유치해보이는 행동을 요구하고 잇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절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마지못해 억지로 흉내만 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숨겨져 잇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행함의 비밀이 숨겨져 잇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아스왕에게서 열정을 보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왕의 행동에서는 전혀 열정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서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하는 왕의 행동을 보며 엘리사선지자는 죽어가면서도 절망감에 분노를 내타내고 있습니다. 조국 이스라엘의 운명이 어둡게 전개될 것을 내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아스왕은 품위대신 열정을 선택했어야 했습니다. 의심대신 확신을 선택햇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조국의 미래와 자손들의 미래가 자신의 열정에 달려 잇음을 알았더라면 다르게 행동햇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처럼 보였지만 미래를 좌우하는 예언적 화살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화살로 땅을 치라는 것과 같은 행동을 요구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우리의 찬양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우리의 기도하는 모습을 살펴보십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하는 자세가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짓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찬양하고 기도하는 자세가 여러분과 자녀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그것을 아는 사단은 체면을 더 중시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적당히 형식만 취하고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고 적당히 즐기다가 일찍 돌아가라고 충동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열정이 바닥에 떨어지면 예수님의 임재는 밖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여러분 열정적으로 주님읭 미재를 갈망하며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그의 폐활량이 허락하는 최대한 큰 목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절박한 심정으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개 취급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데려온 네 사람은 남의 집 지붕을 뜯어내는 모험을 하며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만났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열정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만났고 문제를 해결받았으며 그로 인해 쓰임받는 존귀한 이들이 되었습니다.

  열정을 가집시다. 삶에 대한 열정, 사명에 대한 열정, 비전에 대한 열정,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집시다.  우리도 열정적인 삶을 살며 부지런히 사명을 다 감당하고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설 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내게 주실 것이리"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를 변화시킨 사람들, 인류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킨 바울 역시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정열을 다해 이일을 이루기 위해 생을 불태웠습니다. 그는 얼마나 자기 백성에 대하여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십시오.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다면 자신은 지옥에 가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열정이 없는 기독교는 지옥불을 끄지 못합니다. 몇 년 전에 폴란드에 있던 어떤 군인이 헤럴드 옥켕가(Harold John Ockenga) 박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기독교와 공산주의 사이에 경주가 벌어지고 있소. 어느 쪽이든 그 메시지에 불을 붙이는 편이 이기고야 말 것이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회, 그리고 이 시대는 불타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고, 교회와 이 세상의 병든 것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을 위한 열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 말입니다.

  무관심, 물질주의, 냉혹함, 그리고 이기주의가 편만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은  그리스도인의 불타는 마음입니다. 불타는 마음의 전도자 요한 웨슬리에게 동료 사역자가 어떻게 청중을 모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전도자가 불탄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불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초기 감리교 학자요, 웨슬리의 보살핌을 받았던 아담 클라크(Adam Clarke)의 묘비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다가 나는 타서 없어졌노라"는 내용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내게는 오직 한가지 정열이 있다. 그 정열은 주님, 주님, 한 분 뿐이다." 그의 열정은 결국 세상의 가장 위대한 선교 조직체의 하나인 모라비안 교회를 일으키게 했습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템플턴 상'을 제정한 존 템플턴은 "열정, 행복한 변화로 이끄는 내 삶의 기관차"라는 책에서 "열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나의 열정을 주위로 전염시켜라. 위대한 열정의 씨앗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당신의 삶을 열정으로 변화시켜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혹 열정과 냉정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모두 열정적인 사람으로 변화됩시다.  교회안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 열심을 품읍시다. 특히 영원히 가치 있는 생명에 대한 열정을 가집시다.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 아니겠습니까?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우리가 가지는 복음에 대한 작은 불씨는 하나는 놀라운 불꽃으로 타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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