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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함께 (롬 1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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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함께 (롬 11:23-24)

오늘 제가 봉독한 성경은 이스라엘에 흔한 나무인 감람나무의 접붙임을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감람나무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알기 쉬운 고욤나무와 감나무를 비유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두 나무의 접붙이는 원리는 같기 때문입니다.

감나무의 모양과 유사한 나무가 있는데 그것은 고욤나무입니다. 열매의 모양은 감을 닮았지만 크기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가 됩니다. 그 안에는 씨가 많아 먹을 수 없습니다. 상품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고욤나무 열매는 수확을 하지 않습니다. 겨울이 와도 그냥 내버려 둡니다. 이러한 고욤나무도 굵고 탐스러운 감을 맺힐 수가 있습니다. 방법이 무엇일까요? 좋은 종자의 감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접을 붙이면 됩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제가 자라난 고향집에는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습니다. 나무마다 다른 종자의 감이 열렸습니다. 그것은 저희 아버지께서 동네의 좋은 감나무가지를 얻어다가 접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감나무 접을 붙이는 것을 여러 번 지켜보았습니다. 요즘 같은 가을이면 나무에 올라가서 감을 따서 상자에 담아두었다가 홍시가 되었을 때 먹기도 하고, 어떤 감은 껍질을 깎아 추녀에 매달아 말려 곶감을 만들어 두고두고 먹기도 했습니다. 본래의 나무는 쓸모없는 고욤나무였는데 좋은 감나무가지를 꺾어다 접을 붙이면 고욤나무의 이름이 바뀌어 감나무가 됩니다.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쓸모없는 고욤대신 탐스러운 굵은 감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주인은 이 감나무를 사랑하며 잘 관리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은 참 감람나무(감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인바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맺히는 축복의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

一.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니” (요한복음 11:25~26)하셨습니다. 기독교의 특징이며,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무덤에서 장사 진낸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은 텅 비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가장 명확한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 땅위의 모든 종교가 주장하는 교리 가운데에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윤리를 강조하는 것, 선한 일에는 상이 있고, 악한 일에는 벌이 임한다는 것, 내세를 말한다는 것, 정성을 다할 때 바라는 소망이 성취된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입니다. 빈 무덤입니다. 만일 무덤에서 다시 나신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윤리도덕을 말한다면 유교로 족합니다. 병 낫는 것을 기독교의 특색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불공을 드려 병 나은 사람이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물로서 병을 고칩니다. 무당도 주술로 병 고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술로도 병을 고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유가 기독교만의 특징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 가운데 물질의 윤택함과 가정의 융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는 아닙니다.

타종교는 그들 교주의 웅장한 무덤을 자랑하지만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석가모니의 무덤은 인도의 실수에 있고, 공자의 무덤은 중국 창평창에 있으며, 모하멧의 무덤은 아라비아 메카에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자랑은 예루살렘에 있는 빈 무덤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죽음을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죽음은 모두가 무서워하며 싫어합니다. 인간 최대의 난제가 죽음입니다. 이 난제를 해결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승천하시므로 유일한 구주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로 지키며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이 곧 오늘날 우리들이 매주 마다 예배드리는 주의 날 곧 주일입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 지금 이 지구상에 20억을 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선진국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신자나 불신자나 다 예수님께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을 기준으로 쉬기도 하고, 일하기도 합니다.

인류가 남겨놓은 역사가운데에는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유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그렇고, 바늘 끝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석축을 쌓은 마야문명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에밀레종을 밭쳐주는 고리가 그렇고, 석굴암도 그렇고, 무령왕릉을 축조한 벽돌이 그렇습니다. 이 모두는 현대과학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그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역사를 부정한다면 그 사람은 무식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빈 무덤은 지금도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사람의 삶이 이 세상의 것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죽음 후의 세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니”(히브리서 9:27)하셨습니다. 

필립 디 네리(Philip de Neri)는 성자로도 불리는 16세기의 위대한 인물입니다. 하루는 네리가 당시의 최고의 대학이었던 컨티넨탈 대학의 교정을 걷고 있는 동안 어느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청년은, 자기는 유명한 그 대학에서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네리는 그 청년에게 묻기를“대학공부를 다 마치면 무엇을 할 것인가?”했더니 그 청년의 대답은“박사학위를 얻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 질문하기를“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무엇을 하겠는가?”했습니다. 청년은 또 대답하기를“아주 힘든 문제를 몇 개 맡아 웅변과 지식으로 멋지게 변호처리를 해서 뭇 사람의 관심과 명성을 얻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다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지?” 했더니“그 후에는 상당히 높은 지위를 차지하여 돈을 많이 벌고 드디어 큰 부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해서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느냐?”고 했습니다. 청년은 대답하기를“명성과 재물을 소유한 중에 평안하게 살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계속해서“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지?”그러자 청년은“그 다음에는 나도 늙어 죽게 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네리는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이지?”이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하는 청년에게“이보게 젊은 학생,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은 밤사이 곰곰이 생각한 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자신을 맡겼다고 합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고 김활란 박사는 감리교회 장로였습니다. 그분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고향 함경도를 떠나 인천까지 와서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내리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훗날 유학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분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신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으며, 대학총장까지 되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의 소식인 복음을 모든 국민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틈만 나면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만이 민족이 사는 길이라는 신념에서였습니다. 김활란 박사가 전도하며 개척한 교회가 금란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감리교회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金蘭”이란 이름은 김활란 박사의 姓인“金”과 이름의 끝 자인“蘭”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보람된 일입니까? 둘째는, 이 나라의 무지한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날 때 많은 제자들이 눈물을 흘렸을 때 “울지 마세요. 하나님이 주신 삶 최선을 다해 사세요. 그리고 내가 죽거든 장송곡을 울리지 말고 할렐루야 찬양을 불러주세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가고 싶었던 본향 천국의 현관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유훈을 따라 김활란 박사가 죽은 후 영결식에는 대형 합창단이 할렐루야 찬양을 불렀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니”(히브리서 9:27)하셨습니다. 이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오신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라고 하셨습니다.

二. 삶의 축복의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고욤나무가 변하여 탐스러운 감이 열리듯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축복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 대하여 이러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1~6)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간추려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은

첫째,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되리라.
둘째, 물질의 넉넉한 복을 받으리라.
셋째, 후손의 축복을 받으리라.
넷째, 매사에 복을 주셔서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 는 것입니다.

오늘날 초강대국 미국을 건설한 사람은 영국의 청교도들입니다. 이 청교도는 누구입니까? 청교도의 조상은 영국 해적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바이킹이었습니다. 이 바이킹들은 후손들이 계속하여 해적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던 중 정결하고 착실한 아내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런 여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늘 가까이 하는 여인들은 창녀들이었으므로 이런 여자들로는 그들의 뒤를 잊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찾은  여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처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착실한 그리스도인 처녀들을 납치하여 외딴 곳에서 강제로 결혼하여 자녀를 잉태케 했습니다. 남편들은 또다시 바다로 도적질을 하고자 나갔고, 아내들은 죽지 못해 살아가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불러오는 배를 만지며 “하나님 아버지 이 배속에는 도둑의 피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 생명을 불쌍히 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하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 후 생명이 태어난 후 철없는 어린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자식이 비록 도둑의 피를 받아 태어났지만 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이렇게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 속에서 태어났고, 눈물의 기도 속에서  성장한 그들이 훗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몸부림 친 청교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에 의해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래 전 평안북도 정주에 살던 가난한 농부가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웃에 살고 있던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전도를 했습니다.“나 같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농부는 나중에 외국인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 후 농부의 열병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유익한 일이 후세에 나타났습니다.  이 가난한 농부의 아들도 부모님을 따라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자라났습니다. 이렇게 성장한 이 아들이 1946년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백낙준 박사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영광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새로 오신 여러분!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계시는 분들은 더 열심히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겠노라는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모든 것은 선택과 각오의 결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들을 선택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친구를 선택해야 하고, 학교를 선택해야 하고, 직업을 선택해야 하고, 배우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선택한 것에 의해 내 삶의 운명이 결정되게 됩니다. 내가 선택한 것에 의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택과 결정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미국의 두 청년이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 두 청년은 술을 즐겨 마시며 방탕하게 지내는 불량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교회 앞을 지나는데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설교제목이 게시판에 써 있었습니다. 한 청년이 교회에 한번 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청년은“야, 우리 같은 젊은 청년이 교회는 무슨 교회야, 교회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 가서 신의 도움을 구하는 곳이야! 술집에나 가자.”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 옥신각신 하다가 한 청년은 교회에 갔고 다른 한 청년은 술집을 향해 갔습니다. 이 후로 두 친구는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간 친구는 그날 밤 설교를 듣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로 마음을 먹었고, 또 한 젊은이는 계속 방탕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한 흉악범이 감옥에서 새로 선출된 대통령의 호외 기사를 보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30여 년 전, 그가 가까이 지내다가 교회 앞에서 헤어졌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미국의 22대, 24대 대통령을 지낸 클리브렌트 대통령입니다. 교회 앞에 함께 서 있었던 그 순간이 선택의 갈림길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선택은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선택에 의해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게 됩니다. 특히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세 가지 선택을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어떤 종교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종교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종족이나 국가이든 다 종교가 있습니다. 이 종교의 선택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며, 개인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어떤 배우자를 선택할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을 오를 때에는 한번 기도하고,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을 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셋째,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타인의 영혼과 육신에 해를 끼치는 직업은 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성매매 금지법을 만들 때였습니다. 윤락업주들이 자기들의 자유를 주장하며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 같이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얼굴을 가리려고 했습니다.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직업이 자신들의 생각에도 양심의 가책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행복의 조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종교의 선택입니다. 종교는 옷의 첫 단추와 같습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고, 믿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늘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주위 사람들이 강권해서 오신 분들도 계시겠고, 구경삼아 오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오셔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교훈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왔습니다. 그때 큰 무리들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이끌지 않으면 아무라도 내게 올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초청으로 하나님의 전인 교회에 오셨으므로 예수임을 믿고 살기로 결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선택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과일나무 중 고욤나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감나무가지를 꺾어다 접을 붙이면 극상품의 감을 맺히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결단의 촉구>

오늘 교회에 처음으로 오신 여러분! 그리고 믿다가 낙심하여 교회를 멀리했다가 다시 교회에 오신 분! 참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결혼 청첩장을 배달부가 전했다고 하여 배달부가 초청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심부름을 한 것뿐입니다. 초청은 혼주와 신랑신부가 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지나, 친구나, 이웃을 통해 여러분을 초청하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영생의 축복과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주시고자 부르셨습니다. 이 존귀하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마음 문을 여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때 우리들의 삶속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유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삶의 승리가 있게 됩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풍요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지금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결단을 내일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일은 내 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기로 결심하시는 분은 인도해 오신 분과 함께 그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축복기도를 해드리겠습니다.

저를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저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집 교회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인생이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에서 살아 왔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셔 들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을 내구주로 믿으며,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섬기며 살겠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시옵소서. 나를 다스리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로 저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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