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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경건생활 (막 1: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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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경건생활 (막 1:29-39)

이번주일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종교개혁은 1517년 루터가 로마카톨릭에 반대하여 개혁을 한 날입니다.루터는 1517년 카톨릭에 대항하여 95개조의 반박문을 독일의 성교회의 대학 게시판에 붙였습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는데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였습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하여 교황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발행하게 되고 그것을 구입하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밖에도 형식주의와 율법주의의 짐으로 고행과 노력을 강조하는 구습적인 형태의 로마카톨릭 믿음에 대해서 반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루터는 오직 의인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이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결국 루터는 로마카톨릭의 죽은 경건 속에 형식화된 종교를 거부하고 오직 참된 경건을 추구하는 선택을 결단한 것입니다.

이제 죽은 경건을 개혁하기 위한 종교개혁을 한지 올해로써 490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기독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부적으로 우리가 많은 자성의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중에거 가장 지적되는 모습이 우리의 생활,삶의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균형을 잃은 치우친 경건 형식화된 경건 삶과 생활이 없는 경건으로 인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성의 문제 경건의 문제입니다. 주님이 갖으셨던 바른 경건의 모습이 우리들에게 나타나게 되어야 합니다. 이땅에 오신 주님은 경건의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갖았지만 그분은 경건을 위해 시간과 몸을 잘 사용하셨습니다. 특별히 공생애 3년의 예수님의 삶은 균형잡힌 경건을 실천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습니다.

1. 예수님은 섬김을 실천하는 경건이 있었습니다.

29절-34절에 보면 예수님이 삶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문제를 따라 섬기시는 내용입니다.
베드로 장모가 열병에 누워있을때 그 질병을 고쳐주시는 섬김을 실천하셨습니다.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들이 찾아올때 그 문제를 해결하시는 섬김을 실천하셨습니다.
삶의 현장은 문제의 현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으신 사람들의 가정과 삶은 문제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질병의 문제,가난의 문제,귀신의 문제의 포로가 되어져 죽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삶이 있을가요? 문제없는 가정이 있을까요? 문제없는 교회가 있을까요? 내의도와 상관없이 우리 인생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문제에 자유한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유명한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주창자인 노먼 빈센트 필 박사에게 어느날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저에게 너무나 문제가 많습니다. 제게 문제가 없는 직장 하나를 소개하여 주세요” 필박사는 그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문제없는 직장이라고요’ 아 한군데 생각이 났소,소개하여 줄까요.내차에 타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차에 이청년을 캐우고 한참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그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공동묘지입니다. ‘형제여 이곳이야말로 문제가 없는 곳이요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인생을 산다는 것은 문제와 더불어 생활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피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다르게 또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괴롭히면 그 사람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피하는 것이 해결책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바꾸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남편을 바꾸려고 합니다.아내를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떠나버립니다. 도피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하다가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바꾸려고 합니다. 인생은 회피하는 사람들에게 성공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지적하고 판단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인생의 문제에 찾아오셔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시몬의 장모의 문제를 찾아오셔서 해결하여주셨습니다.
어떻게 우리 주님이 문제를 해결하십니까?

31절에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예수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고 합니다. 복음서에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 보면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다양한 방법으로 고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라고 합니다. 시몬의 장모에게는 말씀으로 고치지 않으시고 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치유의 과정에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시키시길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은 열병으로 고통받는 그 여인에게 임재하심으로 사랑의 경험을 하시게 하신 것입니다.그순간 그녀의 열병은 떠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수종드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섬김은 어떤 섬김이십니까?
필요를 채우시는 사랑의 섬김이었습니다. 이런 필요중심적인 사랑의 섬김은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주님의 사랑의 체험으로 감동한 시몬의 장모는 그후에 섬김의 인생으로 자신의 삶을 드리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무명의 맣은 여인들이 주님과 제자들을 섬긴 내용이 소개됩니다.
누가복음 8장 1-절을 보십시오. 주님이 섬김으로 일곱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고쳐주시고 합니다. 또 다른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여자가 함께 있어 소유로 저희를 섬겼다고 합니다. 그분들이 우연히 그 섬김의 자리에 나간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주님의 사랑의 섬김을 체험한 자들이라고 우리가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분의 섬김으로 내 인생에 은혜가 잇다면 그 사람의 가장 변화의 사인은 바로 섬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의 섬김의 은혜에 감사해서 물질로 시간으로 몸을 드려서 주님을 바라보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종종 교회에서 문제를 바라보면서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문제를 향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렿게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문제를 위해서 수고하고 섬겨야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그 문제를 보고 지적하고 말쓰마시는 분입니다. 가령 식당에 문제가 보이십니까? 그러면 식당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가령 주일학교아 중고등부가 문제가 보이십니까? 그러면 들어가서 그 필요를 채우면서 섬기시기 바랍니다. 가령 안내와 새가족부가 문제가 보이십니까?그러면 그 부서에들어가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섬김으로 섬기시면 그것이 곧 경건한 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사랑으로 행동하는 경건의 실천자였습니다.
입술로만 지식으로만 이론으로만 섬기라 사랑하라 하지 않으시고 직접 현장에 나가서 몸으로서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 경건의 실천자였습니다. 그 당시의 유대주의 학자들이나 유대인들은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현장이 없엇습니다. 섬김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들이 대접받고 명예와 권세를 누리는 것으로 안위를 삼은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경건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섬김의 현장 섬김의 실천자로 우리가 행동하는 경건이 있기를 바랍니다.


2. 예수님은 새벽기도의 경건을 실천하셨습니다.

여기 주님께서 새벽 오히려 미명에 깨어서 기도하셨습니다.
여기 새벽미명시간은 아직 동이트기 전의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새벽기도 시간대와 비슷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먼저 새벽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시간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그기로 거기서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흔히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그분이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고 오셨다는 점입니다. 인성을 입었다는 것은 우리와 같이 잠도 자야하고 먹을 것을 먹어야 하고 쉴때 쉬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인성을 입고 오셨기에 그도 사역에 따른 많은 피곤함과 스트레스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일어난 새벽을 어떤 시간입니까? 아직 만물이 깨나기 직전의 시간입니다.
성경에 보면 새벽에 많은 이적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 갈라진 시간이 새벽시간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에 보면 그 새벽에 홍해가 갈라지는 일은 정말 엄청난 흥분과 감격의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가 내린 시간도 새벽시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물리친 시간도 새벽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시간도 새벽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에게 옥문이 열린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많은 일을 하신 것을 봅니다. 그런데 앞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가장 확률이 높은 시간대가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밤중 아니면 새벽일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새벽을 깨우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창세기에 야곱이 얍복강에서 새벽을 깨우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여호수아같은 지도자는 여호수아서를 보면 새벽을 깨우면서 하나님의 복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쓰신 사람 중에 다윗이있습니다. 구약에 다윗은 새벽을 깨우리로라고 찬양을 했습니다.시편57: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햇씁니다. 시편119:147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새벽을 깨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새벽에 다윗을 도왔기 때문입니다. 시편46: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라고 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분명히 있을줄 믿습니다. 새벽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하루의 첫시간입니다. 또 가장 집중하기에 조용한 시간입니다. 또 새벽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가장 깨끗한 시간대입니다. 새벽시간은 무엇보다도 기대감과 희망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교회에서 가장 교회에서 권장하는 기도가 새벽기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새벽기도가 하나님의 법은 아닙니다. 새벽기도가 율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약에 새벽기도나와서 새벽기도 안나오는 남을 정죄하면 안됩니다.분명 새벽기도는 좋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정한 전통입니다.앞으로도 한국교회가 가장 살려야 할 전통이 저는 새벽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도 앞으로 가장 집중해서 새벽기도운동을 회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새벽에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 새벽을 깨우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새벽에 기도하면서 3가지 정도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우선은 내 마음에 주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어떤 문제가 있고 아픔이 있어도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하여 지고 평안이 임합니다. 다음에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매일 새벽에 기도하고 나면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여 주심을 믿게 되고 그래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경험합니다. 셋째는 목회에 영감을 얻습니다. 어떤 미래의 계획과 생각을 혼자 생각하기보다도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다보면 좋은 영감이 떠오르고 아이디어가 생깁니다. 설교를 놓고 기도하다보면 좋은 말씀의 지혜도 주십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더욱 새벽기도에 많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교회 2010 비젼에 보면 새벽기도에 매일 100명이 출석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하는 분들이 한 사람당 1-2명 데리고 오면 여러분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20여명이 모여서 새벽기도합니다. 그런데 100여명 모여서 새벽기도하여 보십시오. 주님이 기쁠 것이고 함께 기도하는 우리들도 기쁠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새벽에 나오지 못하는 분들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 문제,직장문제,출근문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할수만 있다면 새벽에 나오셔서 새벽기도의 습관을 길들이기를 바랍니다
빌리선데이라는 사람은 야구선수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갔을때에 교회 지도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자세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싶은가?“ ”세가지를 계획하게 ”그 세가지가 무엇입니까?“. 첫째 날마다 15분 기도하기 둘째 날마다 15분 성경읽기 셋째 날마다 15분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라네.

그런데 이 사람 역시 단순했습니다 . 그래서 매일 15분 기도하고 15분 성경읽고 15분 전도하라고 해서 평생 그렇게 했습니다. 이 사람은 빌리그레이엄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인물이 부상하기 전에 미국에서 영적 도덕적 각성을 주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평생 쓰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나만의 기도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나만의 은밀한 경건생활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같은 영성으로 주님의 능력과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서로 옆사람과 하나님 앞에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새벽기도합시다’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열심히 전도하시는 경건의 삶을 사셨습니다.

38절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전도하러 왓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명,목적을 알고 사셧습니다. 성경에서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이 몇가지 있습니다. 우선 주님은 이 세상의 마귀를 멸하러 오셨습니다.

요일3:8에 보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마귀를 멸하시는 승리를 하셧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님을 믿으면 마귀를 이길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얻습니다. 또 주님이 오신 중요한 목적은 천국복음을 전파하러 오셨습니다.그래서 주님은 마가복음1:15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전파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 없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종이 되고 죽음의 종이 되어서 이땅에서 속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게 되면 마귀에서 죽음에서 해방되어 영생과 자유를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공생애 3년기간동안 매일같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분은 어떻게 전도했습니까?
38절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하시고라고 합니다.
이마을 저마을 다니시면서 주님은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시고 전도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참 염려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충동적으로 사는 삶이라고 봅니다. 삶의 가치관이 명확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그날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나라 민족성은 빠르기보다는 좀 늦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가 모든 것이 빨리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에 빨리 빨리 순응하는 모습입니다.우리가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변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시대가 변하여도 변하지 말아야 할 그 중심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입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 복음에 대한 간절한 사명은 시대마다 모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가치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슴에 새길 뿐 아니라 그사명으로 전도와 선교의 현장에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전도하다가 낙심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열매가 없다는 것때문입니다. 나는 전도하였는데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없는 즉 열매가 없는 것같아서 속상하신 분들이 잇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은 분명히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3:6-7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측면에서 우리는 씨를 뿌리는 역할 물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자라게 하는 역할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하고 나서 열매가 없는 것으로 속상할 이유 없고 전도는 그런면에서 실패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도를 하되 복음의 본질은 변해서는 안되지만 전도의 방법은 분명히 변화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교회에서 하고 있는 대표적인 전도방법이 무엇입니까? 대그룹중심으로는 태신자 전도방법이고 목장을 중심으로는 열린모임을 진행하고 잇습니다. 이 두방법말고도 거리에 나가서 찬양하면서 떡과 음료를 주고 또 가난하고 힘든 자들에게 먹을 것과 사랑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전도방법은 모두가 필요를 채워주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하는 전도방법입니다.이렇게 상대방의 필요를 채우면서 관계를 맺어가는 전도는 시간은 걸리지만 가장 확실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런 필요를 채우는 관계중심적인 전도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과 정성이 요구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몸을 드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질을 드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을 드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경건의 모습입니다.
주님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가장 회복해야 할 과제는 바로 전도의 실천이 있는 경건일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오셧듯이 교회란 주님의 몸입니다. 교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일이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에 존재하는 목적은 우선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땅끝까지 가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우리가 해마다 태신자초청축제를 갖습니다. 전도대상자를 품고 기도하고 사랑으로 접촉하다가 그날에 초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행사를 할때마다 우선 중요한 것은 기도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비된 사람을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경험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함께 전도할 때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또 교회적으로는 풍성한 부흥이 일어나고 개인적으로는 은혜가 충만하게 될줄로 믿습니다. 다함께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새벽을 깨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각자가 우리의 육신을 쳐서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피곤한 무릎을 세우고 기도하여 성령의 능력받으시고 우리의 삶의 승리와 사명의 승리자로 주님 앞에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가는 말 )

주님은 균형잡힌 경건의 실천자였습니다. 사랑으로 몸소 섬기시는 분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새벽을 깨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경건을 본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은줄로 믿습니다..우리모두가 주님의 균형잡힌 경건을 함께 본받아 실천하시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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