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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눅 9: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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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눅 9:10-17) 

◈ 키에르 케고르는 인간은 불안한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을 고독한 존재로 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외롭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외롭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사람도 외롭습니다.
서민들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외롭습니다. 자리가 높을수록 더 외롭습니다.
고독을 잊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쇼핑을 합니다. 여행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운동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음식을 찾아다니며 미식을 즐깁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정이 많은 민족이기 때문에 더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그래서 계모임도 많이 있습니다.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서 향우회가 있습니다.
무슨 군대 출신이냐? 어디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서 모임도 많이 있습니다.
보통 한 사람이 여러 가지의 모임에 참여함으로 소속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것을 가리켜 “현대인은 고독을 이기려는 열병에 걸려있다”고 말했다.
주님은 자기에게 몰려나오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진한 고독을 보셨습니다. 마가복음의 표현에 의하면 목자 없는 양같이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 예수님은 보냄을 받고 순종하여 사역하고 돌아온 제자들을 맞으셨습니다.
그들은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영접하셨습니다. 이 때의 상황을 마가복음은 좀 더 생생히
전하고 있습니다.
【막 6:30-34】『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저희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저희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목자 없는 양'은 생존력이 없습니다. 홀로는 주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짐승들은 나름대로 생존력이 있습니다. 그 무능해 보이는 굼뱅이도 자기 사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양은 목자가 없으면 주려 죽습니다. 떨어져 죽습니다. 짐승에게 찢겨 죽습니다.
'목자 없는 양'은 부모 없는 고아보다 더 불쌍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활동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눅 9:11】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던 일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귀신을 쫓으며 병을 고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일은 제자들에게 맡겨진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다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사람들을 고치셨습니다.

◈ 금방 날이 저물었습니다. 저녁이 다 되었습니다. 그리고 있는 곳은 광야 한 가운데입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밥 먹을 생각을 합니다.
밥을 먹으려고 생각하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려듭니다.
뱃새다 들판에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앉아 있는데 제자들끼리만 둘러앉아서 밥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열 두 사도가 주님께 제의를 합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 있는 여기가 빈 들입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이 말을 금방
들으면 무리들을 생각해서 걱정하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들이 알아서 자기들이 처리하도록 보내어 버립시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이 골치 아픈 문제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 제자들의 속마음이었습니다.
이 말은 먹을 것 뿐 아니라 잠잘 자리까지 걱정해주는 듯 보입니다만 실은 스스로 그들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자는 제의입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무리들의 걱정은 혼자 다 해주는 듯이 들립니다만 사실은 문제에서부터 도망치려는 발상.

◈ 그러나 주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걱정되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목자의 마음입니다. 목자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불쌍히 여깁니다. 제자들이 목자의
마음이 없었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목자의 마음을 가졌을 때 무리를 책임지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자된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목자의 마음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에 제자들은 얼마나 황당했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가 기록한 제자들의 반응은 그래도 얌전합니다.
마가의 기록을 보면 상당히 노골적인 불만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가 먹이란 말입니까?"
누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200 데나리온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을에 간다고 해도 한꺼번에 그 많은 음식을 구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구했다고 해도 가지고 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정말 아무 대책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장정만 5000이라고 했으니 여인들, 아이들까지 하면 적게 잡아도 10000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누가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세었겠습니까?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50명씩 떼를 지어 앉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눠 줄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꿈도 못 꾸고 있었습니다.
나누어줄 떡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앉히라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순종했습니다. 이해되지도 않았는데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끝을 다 알고 이 명령을 들으니까 이상하지 않습니다.
떡 먹었던 것만 아는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12 바구니의 부스러기 거둔 것까지 알고 있으니까 50명씩 앉히라는 말씀을 읽어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날은 저물어 지는데 오십명 씩 앉히라는게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한데 그래도 제자들 중에는 반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놀라운 순종입니다. 시간은 점점 더 늦어가는데 사람들을 앉힌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믿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정말로 중요한 진리입니다.
밤새 고기를 잡을 수 없었던 베드로는 다짜고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가나 혼인잔치 집의 하인들은 맹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에게 들리는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이해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다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앉히라' 하시니 앉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순종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

◈ 예수님은 떡덩이를 떼어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누가는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께서 누구이신가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본문 앞 뒤의 문맥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 부분에는 헤롯을 통해서 질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군고?"(9절)
그리고 이 기사 바로 뒤에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대답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20절).
질문과 대답 사이에 나오는 사건 그것이 오천 명을 먹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누가는 제자들 오래 전에 던졌던 질문에 대한 결정적인 대답을 스스로 하게 합니다.
광풍이 부는 그 밤에 게네사렛 호수에서 제자들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풍랑을 진정시킬 때 생긴 의문이 오천명을 먹이시므로 결정적으로 해결됩니다.

배고픈 무리를 돕기에 무능한 자기들과는 달리 무리를 다 배불리시기에 능하신 주님의 모습이 비교되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빈들에서 그 많은 무리의 허기진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난감한 이야기입니까? 이 상황에 자신들이 서 보았기 때문에 열 두 바구니가 넘게 부스러기를 거두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감격이었던 것입니다.

누가는 의도적으로 16절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절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주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행동 하나하나를 다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서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리들에게 갖다 놓도록 하셨습니다.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니" 그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성만찬의 모습입니다.
누가는 지금 신앙의 공동체들을 향해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예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던" 그 분이 바로 구주시라고 살며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 속에 최후의 만찬을 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찬을 시작하신 말씀이 여기에는 비취어지고 있습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인하여 나를 기념하라 "

◈ 십자가 처형 뒤에 엠마오로 향해서 두 제자가 가고 있었습니다. 슬픈 표정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나타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당신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어떻게 이 일을 모릅니까?' 예수 십자가 처형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씩 하나씩 모세의 율법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선자자의 글을 설명하시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하는 것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언제 알아보게 됩니까?
결정적으로 두 제자가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은 함께 식탁에 앉았을 때입니다.
"저희와 함께 음식을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 그인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니라".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니까 최후의 만찬에서 떡을 떼시던 그 주님을 연상하게
된 것입니다.

◈ 말씀을 깨닫는 일에 재빠르지 못한 그 두 제자까지도 떡을 떼실 때에 주님인 것을 알았음.
우리는 사람을 구별할 때 말을 들어서 알기도 합니다. 목소리를 들어서 누군지 알기도 합니다. 캄캄한 밤에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걸음걸이를 보고도 알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아마 독특한 매너라는 것이 있게 마련입니다.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주시던" 주님의 독특하신 모습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알아보게 하셨습니다.

◈ 여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자세하게 한 동작, 한 동작을 누가가 기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분이 구주시다'는 것이 제자들에게 그 때 분명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비로소 이 행동을 통해서 "이 사람은 누군고?"라는 헤롯의 질문에 제자들 스스로 답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에 한 번 보십시오.
"먹고 다 배불렀더라". 먹었다. 배불렀다 이것 뿐입니다.
앞에는 자세하게 기록하고 결과는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우리는 본문에서 제자들의 역할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함.
저녁이 되어 식사할 때가 되자 제자들은 무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너희들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먹이라는 말에 순종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우리에게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를 50명씩 앉히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순종했습니다.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며 그들이 직접 무리들에게 주도록 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신 예수님은 결국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게 하셨습니다.

◈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준 음식이 예수님의 손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떡과 물고기를 예수님께 드리지 않고 무리들 가운데 나누었다면 5천명 전부가 먹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배도 부르게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가진 작은 것이 예수님께 드려졌습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을 우선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다음 제자들은 그것을 다시 예수님에게서 받아서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이 백성들을 먹여야 할 양식은 결국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풍성한 축복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제자들의 사명에 관하여 중요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이 음식을 제공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며, 제자들의 역할은 예수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능히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공급하심은 풍성합니다(17절).
제자들의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으로 무리를 먹이는 것입니다.
제자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무리에게 주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양식은 사람들의 허기를 채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주님이 주신 것으로 먹이니까 12바구니를 남겼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양식은 아무리 먹어도 마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 만큼 풍족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구원의 풍성한 축복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목마르고 주려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고 명령하십니다.
배부르게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내 것으로는 사람들을 배불리게 할 수 없습니다. 만족시키지도 못합니다.
내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웃 초청 전도대상자를 내가 배부르게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와서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양식을 먹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배부를 수 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리는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풍성한 은혜와 구원의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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