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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바울, 그리고 오네시모 (몬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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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바울, 그리고 오네시모(몬1:8~22)

  미국에 이민 간 교포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민 갈 때 공항에 어떤 사람이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거의 직업이 결정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세탁소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거의 세탁소를 할 가능성이 많고, 그로서리(Grocery) 하는 사람이 마중 나오면 거의 그로서리를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에 여러 가지 축복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바로 ‘만남의 축복’입니다.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 좋은 동업자를 만나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만남들 가운데 가장 좋은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인생 최고의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화됩니다. 마치 어둠이 빛이 되듯이 완전히 새로워집니다. 

  고후5:17에서 사도 바울은 뭐라고 증거합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ion)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의 연합 관계, 즉 예수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 된다는 겁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아름답고 복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원창조’라고 부르죠. 그런데 죄로 인해 타락하고 변질된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만드십니다. 그것이 곧 구원인데, ‘재창조’라고 부릅니다. 재창조는 교리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중생’ 혹은 ‘신생’입니다. 중생(重生, Regeneration / Rebirth)은 무슨 뜻인가요? 거듭할 ‘중’ 날 ‘생’,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뜻입니다. 신생(新生, New Birth)은 무슨 뜻입니까? 새 ‘신’ 날 ‘생’, 그러니까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옛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새사람이 됩니다. 변화됩니다. 그 변화는 물건을 싼 포장지만 바꾸는 것 같이 겉모양만 변하는 게 아닙니다. 근본적인 변화요, 질적인 변화입니다.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옛날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고물 장수 아저씨가 매일 골목을 지나가면서 고물을 산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면 동네 아낙네들이 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 빈 병, 고무신, 심지어 요강에 이르기까지 고물을 갖고 나갑니다. 그러면 엿으로 바꿔 줍니다. 그런데 고물 장수 아저씨 중에는 신품을 갖고 다니며 파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새 것을 아주 싸게 팔았습니다. 한번은 어머니에게 왜 그렇게 싸냐고 여쭈었더니 고물을 녹여서 만든 재생품이라 그렇다는 겁니다. 어린 마음에 아주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고물이 이렇게 새 것이 될까? 하고 말입니다. 마치 이런 것처럼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이것이 곧 구원의 축복이요 변화의 축복입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오네시모! 그는 사도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그의 일생일대에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 만남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사실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1]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 : 예수 안에서 변화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 후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본래 노예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 사회에서 노예는 하나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주인에게 복속되어 기계처럼 일하며 살아갔습니다. 혹시 좋은 주인을 만나면 조금 낫지만 그래도 노예는 노예였습니다. 오네시모의 주인은 빌레몬이란 사람입니다. 그가 크리스천인데 어떻게 노예를 부릴 수 있었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문제가 있죠. 하지만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으로 보면 됩니다. 하여튼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는데, 어느 날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쳤습니다. 한 밑천을 잡아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한 겁니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 한 게 아니죠. 그는 탕진해 버리고 무슨 죄를 지었는지 감옥에 들어갑니다. 다행히 거기서 바울을 만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는데, 오네시모에게도 복음을 전한 겁니다. 이렇게 해서 오네시모는 예수님을 만났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그가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본문을 보면 세 가지 면에서 변화되었습니다.

  ① 신분의 변화 :
  그는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더욱이 죄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남으로 어떻게 변화됩니까? 이제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요, 사람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1:12~13 말씀 그대로 된 겁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 이름은 죄에서 구원하는 분, 즉 구세주(Savior)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의인으로 인정해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다른 어떤 조건도 필요 없고,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이 상관없습니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오네시모가 본래 그의 노예니까 그의 양해를 구해서 복음의 일꾼으로 데리고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쓰게 됐는데, 16절 보면 오네시모를 가리켜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형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 모두 형제자매가 됩니다. 옛날 구한말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에는 반상의 구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양반, 상민, 천민이 어울려 예배를 드렸습니다. 상민도 떳떳하게 직분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게 아닌 것 같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예수 안에서 형제임을 밝히고, 그를 보낼 테니까 자기를 대하듯 맞이해 주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서 화해하고 그 후에 자기에게 보내달라는 겁니다. 17절 말씀을 보시죠. “ ...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노예 오네시모가 이제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하늘나라에 들어갈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지만 예수 믿으면 의인이 됩니다. 정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도 예수 믿으면 어엿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보호하십니다. 하늘의 평안과 기쁨을 내려주십니다. 여러분! 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셨습니까? 부디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긍지를 갖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② 가치의 변화 :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쓸모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아니, 남에게 해나 끼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 받고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11절 보면 바울이 그를 가리켜 뭐라고 증거합니까?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useless)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useful)” ‘오네시모’라는 그의 이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네시모’는 헬라어 ‘오네시스’(ονησις)라는 말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오네시스’는 ‘유익한’ ‘유용한’(useful)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그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생을 살았었는데, 이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 이름과 같이 유익하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보다 그 속에 무엇을 담고 사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됩니다. 겉은 번지르르해도 속에는 악이 가득하다면 무가치한 사람일 것입니다. 마치 그릇과 같은 겁니다. 그릇의 가치는 재질도 중요하지만 그 안의 내용물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금그릇, 은그릇이라도 그 안에 오물이 들어 있다면 오물통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나무그릇, 질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배가 들어 있으면 보배합이 되는 겁니다.

  고후4:7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 ”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인은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겁니다. 인생은 질그릇과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보배 되신 예수님을 모심으로 이제는 보배합이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육신의 욕망만을 위해 살아왔지만, 이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아름다운 인생이 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모심으로 보배로운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③ 인격의 변화 : 
  그는 거친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니, 인격이랄 게 없을 정도로 함부로 살았습니다. 주인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도망간 사람입니다. 방탕한 자였습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바울을 만나 그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러지 않았었더라면 짐승 같은 인생을 살다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본문 12절 말씀 보면 바울이 그를 얼마나 귀한 존재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my very heart)이라”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면서 자기 심복이라고 소개합니다. ‘심복’(心腹)이 무슨 말입니까? 헬라어로 ‘스프랑크나’(σπλαγχνα)인데,  ‘내장’ ‘심장’(heart) 등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이제 오네시모가 얼마나 아름다운 인격자로 변화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전폭적으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겁니다. 

  예수 믿으면 이렇게 변화됩니다. 세상의 욕망과 구습으로 뭉쳐진 인격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새 사람의 인격으로 변화됩니다. 엡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오네시모는 사람이 아무리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수 안에서 온전히 변화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찌 오네시모뿐이겠습니까?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변화됩니다. 저도 여러분도 이미 변화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사례를 찾아보면 아주 흔할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예수 안의 변화는 공식과 같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개인차가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변화됩니다. 

  여러분,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  1954~  )를 아시죠? 그녀는 미국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입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오프라 윈프리 쇼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방영될 정도로 대단한 프로입니다. 그녀는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가운데 뽑혔고,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합니다. 얼마 전엔 남아공에 무려 4천만 달러를 들여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여자고등학교(오프라 리더십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라이프 스토리를 알면 더욱 놀라게 됩니다. 그녀는 사생아입니다. 할머니에게 맡겨져 학대 속에 자랍니다. 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했고, 열네 살 때 사생아를 낳습니다. 마약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 인생이 변했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조롱합니다. “당신 사생아지? 마약도 했다며? 사생아도 낳았다지?” 그러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소. 그게 바로 오프라 윈프리요! 그러나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분은 위대하십니다!” 통쾌할 정도로 멋진 대답입니다.


[2] 복음의 중매자 바울 : 오네시모의 영적 아비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그 이상으로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 과정입니다. 그가 바울을 만나지 않았다면 결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로 하여금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 복음의 중매자였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의 영적 아비였습니다. 본문 10절을 보시죠.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바울은 감옥에서 그를 만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거친 인간이 쉽게 변화되었겠습니까? 아마 애도 많이 태웠을 겁니다.

  바울은 자신의 서신 곳곳에서 이런 모습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정말 대단한 헌신입니다. 만일 이런 헌신이 없었다면 변화된 오네시모는 결코 없었을 겁니다.

  여러분,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를 아시죠? 일본의 유명한 크리스천 여류작가입니다. 『빙점』『길은 여기에』등은 우리 말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저도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즐겨 읽으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녀는 폐병3기 중환자로 날마다 피를 토하는 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폐병 환자 수용소에서 죽어가던 청년이 예수를 전해 줍니다. 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미우라 아야꼬는 마침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 후 치유되었고 인생이 변화됩니다. 그녀의 소설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그 작품을 읽으면 80% 이상이 기독교에 호감을 갖는다고 합니다. 폐인이 변화되어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복음의 선한 도구가 된 겁니다. 죽어가면서까지 복음을 전한 무명의 청년을 통해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복음의 중매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를 통해 한 인생이 변화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 흥분되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이번 <새생명축제>에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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