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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행 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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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행 19:8-20)

종교개혁주일

사도 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로 악명 높은 사람이었다.
(갈 1: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어느날 기독교인들을 붙잡기 위해 체포 영장을 가지고 현재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는 전격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이방인들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교회는 시리아의 안디옥교회였다. 이곳에 최초의 담임목사로 파송을 받은 사람은 예루살렘교회의 바나바였다. 안디옥교회가 계속 성장하자 동역자가 필요했다. 바나바는 고향 다소에서 은거하고 있는 바울을 불러다가 함께 공동 목회를 하여 안디옥교회가 더욱 부흥케 되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 선교를 위한 선교사로 파송하도록 명령하셨다.
그래서 안디옥교회의 목회 사역을 멈추고 두 사람은 이방 선교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 바울의 생애 가운데 3차례의 선교여행이 있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울의 3차 선교여행 중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바울의 선교여정 중에서 제일 심혈을 기울여 사역했던 곳이 에베소에서의 사역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의 기간을 4년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3년을 에베소에서 보냈다.
(행 20:31)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이 짧은 한 구절 속에 에베소에서 바울이 어떻게 사역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3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했던 곳이다.

바울은 어느 곳을 방문하든 간에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다. 에베소에서도 역시 먼저 찾은 곳이 회당이었다. 그는 회당에서 3개월 간 말씀을 가르쳤다. 그러나 반대하는 사람들로 인해 그는 회당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장소를 옮겼다. 그곳이 바로 두란노 서원이다.
(행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행 19: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두란노서원은 알려지기로는 그 지역 주민들을 위한 철학 강연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날마다 말씀을 강론했다. 그 기간은 2년이었다.
(행 19: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두란노 서원에서의 말씀 사역을 통해 에베소 주변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주의 말씀을 들었다.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역은 말씀 사역과 함께 신유와 축사의 능력도 나타났다.
(행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행 19: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그러나 이 신유와 축사의 사역들은 주의 말씀을 힘 있게 전파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사역이 주가 된 것은 아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의 이름을 빙자해서 귀신을 쫓다가 도리어 망신을 당한 유대인 제사장 스게와의 아들들에 대한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이 사건을 통해 그 지역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미신 행위가 사라지게 되었다.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은 그들이 사용하던 책들을 모아다가 불살랐다. 그 책의 양이 무려 은 5만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 돈으로 환산하자면 약 1000만원에 해당되는 분량이 된다.
(행 19: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3년 간의 에베소에서의 말씀 사역은, 많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 왔다. 에베소와 그 주변 아시아 지역에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기록자인 누가는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역을 한 마디로 요약하였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그런데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누가는 다른 또 하나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사도 바울의 선교여정에서 잊혀질 수 없는 충격적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에베소의 수호신인 아데미의 신상을 만드는 세공업자 데메드리오의 불법 집회 사건이다.

바울의 말씀 사역으로 인해 우상 만드는 사업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아데미는 제우스신의 딸로서 에베소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데미 신전과 아데미 신상이 새겨진 은감실을 자기 집에 안치하고 여행할 때는 작은 은감실을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은, 아데미 신상제조 협회의 조합장격인 사람인데 종업원들과 업자들을 다 불러 모아서 요즘의 불경기의 원인이 바울이라는 사람이 전하는 도 때문이라고 진단을 했다.
(행 19:26) 이 바울이 에베소 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행 19: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이 말을 들은 업자와 종업원들이 격분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질러대며 에베소 온 성을 돌면서 선동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바울을 잡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하고 대신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서 연극장에서 2시간 동안이나 고함을 질러대며 성토 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거기 모인 태반의 사람들이 왜 그곳에 몰려 왔는지를 몰랐다.
(행 19: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다행히도 에베소성의 의회 서기장이 격분한 무리들을 진정시켜 해산시켜서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바울 일행이 어려움을 겪을 뻔 했지만 그러나 이 사건은 바울의 말씀 사역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에베소에서의 3년 간의 말씀 사역은, 단순히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 것 뿐이 아니었다. 더욱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에베소와 그 주변 아시아 지역에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다.

1)종교적인 면 - 미신과 우상숭배 현상들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술사들이 회개하고 그 책들을 불태워버린 사건과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우상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경제적인 면 - 아데미여신의 은감실을 만드는 우상업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에베소 지역의 주요 산업 중의 하나가 우상제조업과 판매업인데 그 사업이 잘 되질 않는다면 업종을 변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문화적인 면 - 신전 중심의 음난문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데미신전의 크기가 길이 130m, 폭이 68m, 높이 20m 기둥이 32개 였다고 한다(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가 더 크다 (세계 7대 고적물). 많은 제사장들과 신전 창기들이 있어서 의식 후에는 반드시 매음 행위가 이뤄졌다고 한다.

4)사회적인 면 - 교회가 생겨나므로 건전한 가정과 시민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에베소 5-6장, 부부관계, 부모공경, 자녀교육, 상전과 노비의 관계.

사도 바울의 말씀 사역은 에베소를 비롯한 그 주변 아시아 지역에 새로운 개혁의 바람이 불었고 그 결과로 나타난 사건이 바로 마술사들의 책을 불태운 것과 아데미 우상업자들의 불법 집회 사건인 것이다.
오늘 주목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사도 바울의 3년간의 말씀 사역을 통해 에베소 지역을 새롭게 개혁해 나가는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여러분, 주의 말씀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든지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면 죄인이 구원을 받고, 교회가 제대로 세워지고, 가정이 살고, 사회가 바르게 선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역사적으로 교회가 변질된 적이 많이 있었다. 가장 심각한 때가 16세기 중세 로마천주교회 시대였다. 그 당시에 주목할 인물이 두 사람 있었다. 한 사람은 당대에 뛰어난 웅변가요 학자인 텟젤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독일 지역 면죄부 판매 책임자였다.

면죄부 판매 목적은 로마 베드로 성당 건축비를 모금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을 회유했다.
“이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죄를 용서 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사면 그 은화가 헌금함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또 한 사람은 루터란 사람이었다. 그는 독일의 작은 도시인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 신부였다.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1510년, 그는 모범 신부로 뽑혀서 로마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빌라도의 계단이 있는데 그 계단을 무릎으로 올가가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장소였다. 진실로 회개하고 돌아 왔는데도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로마서 강의를 준비하다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보게 되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틴 루터는 오랫동안 이 한 구절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어거스틴 수도원에서 의인이 되기 위해 많은 세월 금식하고 회개하고 계명을 지키려고 애써왔는데.. 그것이 이뤄지기는 커녕 자신의 죄가 그냥 남아 있음을 인해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고민하다가 드디어 어느날 이 말씀의 진의를 깨닫게 되었다. 그때 이 말씀을 깨닫고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 것과 같은 감격을 경험하였으며,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깨달은 진리는, 나를 의롭다 하신 것은 나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구나. 이 사실을 발견하고 감격에 젖어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면죄부 독일 판매 책임자인 텟젤이 루터가 있는 비텐베르그에 도착했다. 루터는 텟젤이 이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대 설교를 했다. 그리고 교회당 게시판에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게시하였다. 주요 골자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1)면죄부가 죄를 속할 수 없다.
2)면죄부가 죄의 형벌을 면케 할 수 없다.
3)면죄부가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
4)회개한 자는 이미 죄 용서함을 받았다....

이 도시에서 일어난 면죄부 거부사건은 작은 불씨가 되어 순식간에 독일과 전 유럽으로 번져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부터 490년 전인 1517년 10월31일의 일이었다.

당시 34세의 젊은 신부였던 그는 교황에게 반기를 든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성경에서 어긋나는 교리이며 면죄부 판매는 잘못된 것이니 시정해 달라는 건의문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파면 당하였고, 교황은 자객을 밀파해서 루터를 죽이려고 했으나 독일의 귀족들이 그를 보호했다.

천주교에서는 개신교를 마치 작은 집처럼 생각하는데, 교회는 큰 집 작은 집이 없다. 집이 크든 작든 간에 중요한 것은 그 집이 말씀 위해 바로 서 있느냐는 것이다. 마틴 루터의 소망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당시의 로마 천주교가 성경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으니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것이다.

교회가 성경 진리 위에 서 있지 아니하면 교회가 타락하고, 그 사회도 함께 어두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중세 1000년을 암흑시대라고 역사는 부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크던 작던, 교파와 교단이 같건 다르건 간에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면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바르게 서면 변화는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가루 서말에 누룩을 넣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 13: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주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어 변화와 함께 확산되는 성질이 있는 것이다. 에베소 두란노서원에서 말씀 사역을 통해 사도 바울은 그 지역을 변화시켰다. 우상이 떠나가고 그 지역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졌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패망하고 말았다.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우리 교회에는 설립 정신이 있다. 바른 신학과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이다.
바른 신학은 성경 말씀에 근거할 때 바른 신학이 나오고, 그 신학에 근거해서 바른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바른 교회를 통해서 말씀으로 성도들이 양육을 받을 때 바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목표는 먼저 우리 교회가 설립 정신에 맞는 교회와 성도가 되는 것이고, 다음에는 우리 교회와 같은 교회들을 다른 지역에 세워 나가는 것이다. 그 정신을 가지고 우리 교회가 세워졌고, 말씀에 바로 선 교회들을 세워나가기 위해 사역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 것을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경 말씀 위에 견고히 서야 한다. 바울이 두란노서원에서 열심히 주의 말씀 가르쳤던 것처럼 나도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동역자들과 함께 가르쳤던 것처럼 여러분들이 말씀의 동역자가 되어 목장에서 교회학교에서 가정에서 주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기 바란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오늘 이 시대는 다시 한 번의 개혁이 필요한 때다. 바르게 살기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먼저 해야 할 일은 주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일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역의 우상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로 개혁한 것도 주의 말씀이었다.
(행 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내가 살고,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사는 비결은 어렵지 않다. 에베소 사람들이 말씀을 배우기 위해 두란노 서원으로 모인 것 처럼 배우기 위해 모이기를 힘쓰라. 배우기 위해 시간을 내라. 열심히 배우고 깨달은 그 말씀 위에 여러분의 믿음의 집을 아름답게 건축하기 바란다. 말씀과 멀어지면 쇠약해지고 망한다. 그러나 말씀에 서면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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