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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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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딤후 4:6~8)

  어떤 제자 훈련 모임에서 배우자나 자녀에게 유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대부분 장난처럼 여겼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분위기가 심각해졌고 나중에는 자기가 쓴 유서를 한 사람씩 낭독하게 했더니 온통 눈물 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유서를 쓴다면 어떤 유언을 남길 것입니까? 집은 첫째가 가지고 자동차는 둘째가 가지고 셋째는 시골 땅을 가지라고 하겠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예수쟁이의 유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평생을 예수님과 함께 살았으니 너희도 내가 믿은 예수님을 잘 믿고 나중에 천국에서 반갑게 만나자!” 얼마나 멋진 유언입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만 진리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충실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까? 그는 감옥에 갇혀서 순교의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미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가 이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도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될까요? 그 옛날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자신있게 고백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는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기를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을 본받는 삶일까요? 오늘 우리는 그 방법을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이 남긴 말을 통해서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 먼저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누구나 때가 되면 다 죽게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인생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도 바울은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오늘 봉독한 말씀에서 떠날 시각이 가까웠다고 말한 것은 바로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도 전혀 떨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죽음 앞에서 그렇게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삶 자체를 온전히 주님께 드렸기 때문에 두려워 떨 까닭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죽음을 영원한 나라를 향해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점을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마지막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산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우리의 추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금 강조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공포로부터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가 기꺼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을 영접한 후 그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주님을 영접한 후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그는 주님 앞에서 참으로 충성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본받는 삶이란 주님께 충성하는 삶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한 싸움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것은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가 온전히 헌신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그 싸움은 실질적이었습니다. 또한 구체적인 싸움이었습니다. 그가 그 싸움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과연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싸운 선한 싸움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운 사도 바울은 이제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했습니다. 그는 앞에 놓인 경주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가 달려갈 길이라고 한 것은 주님이 맡기신 삶의 모든 과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달려갈 길이란 우리 마음대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주님이 지시하신 대로 가는 길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오직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만 달려갔습니다. 주님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좋을 때나 나쁠 때 변함없이 그는 주님의 길로만 따라갔다는 말입니다. 그가 달려간 길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복음 전도자로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달려갔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길은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어디라도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은 우리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달려갈 길은 단거리가 아니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문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코 중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 주님의 충성스러운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대가는 과연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 자에게는 귀한 상급이 있습니다. 그 상급이 바로 의의 면류관입니다. 경주를 잘 마치고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는 그 상급으로 의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분명히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딤후 4:8 상반절) 의로우신 재판장이 면류관을 준비하셨다가 상급으로 주신다면 더 이상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데 누가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승리는 충성스럽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하반절)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뿐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모든 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실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 것 같으면 장차 의의 면류관을 모두 다 받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또 어떤 사람은 경기장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진짜 싸움에서 질 것 같으면 그가 얻은 모든 승리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진짜 싸움은 주먹이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할 싸움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믿음의 싸움이 진짜 싸움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싸움을 선한 싸움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새 생명을 또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싸워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 싸움은 곧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리고 충성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주님은 심판하시기 위해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 주님의 복음을 널리 전하기 위해서 충성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장차 의로우신 재판장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이 귀한 상급으로 주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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