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 (출 18:17~27)

  • 잡초 잡초
  • 428
  • 0

첨부 1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출 18:17~27)
 
  미래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가까운 미래인 당장의 내일을 바꾸기는 참 어렵습니다. 힘이 듭니다.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변화의 시간이 너무 짧아서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10년 후를 바꾸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바꾸어가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항도 많지 않습니다. 비록 당장의 내일은 바꿀 수 없더라도 5년후, 10년 후는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실망치 않고 걸어가다보면 되는 것입니다.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가본 것처럼 바라보고 달려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조금씩만 보이지 않게 움직여가도 미래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대는 일꾼을, 일꾼은 시대를 열어갑니다. 사역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주님의 일꾼들을 세우셔서 종교개혁을 이루셨습니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제2의 종교개혁이 와아한다고 열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당장 하루아침에는 어렵더래도 5년후 혹은 10년후 시대와 교회는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는 신신한 일꾼들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을 세워가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일꾼이 많은 교회, 생산자가 많은 교회입니다. 헌신된 리더들이 또 다른 평신도에게 영향을 주고 리더를 세워가야 합니다. 성장가능성을 가진 교회의 지도력은 성도들 개개인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돕고, 격려하고, 준비시키고, 훈련시켜 나갈 것입니다.

  황홀하게 사역하는 평신도 사역자를 세우는 일은 일주일에 한 번씩 참석하는 예배 한 번으로나, 설교 한 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람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세우는 일은 엄청난 노력과 눈물과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을 3년 6개월 동안 양육하고 훈련했습니다. 이것은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체계적인 양육과 훈련으로만 가능함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제도보다 아름다운 까닭은 이러한 아픔의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대속의 피값 없이 죄사함도 없다는 진리와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강력한 양육과 훈련으로 평신도 사역자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살던 사람이 일산쪽으로 이사를 해서 전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리 농장에 달려가 청둥오리 한 마리를 사서 물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밤새 안녕할 것을 기대하며 오리에게 가보니 오리가 물통 속에서 죽어 있는 게 아닙니까! 깜짝 놀라 오리를 이리저리 뒤척여 봐도 짐승에게 물린 흔적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수영이 '전문'인 오리가 물통 턱을 기어 올라오지도 못하고 30cm 정도밖에 안 되는 얕은 물에 빠져 죽었을 리는 없었습니다. 그는 오리 농장에 가서 주인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하지만 자초지종을 들은 농장 주인은 그것도 몰랐느냐는 듯이 말했습니다. "이 오리는 오리 농장에서 부화하고 키운 오리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할 줄 모르지요. 게다가 이 오리는 어릴 때부터 물속에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에 깃털에 기름이 분비되지 않아 물에 잘 뜨지도 못합니다."외모가 오리라고 모든 오리가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듯, 교회에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으로 바르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진품명품>이라는 재미있는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출연해 골동품의 진위와 가치를 가격으로 평가해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출품작 가운데 고가의 골동품으로 추측되는 것일수록 대부분이 가짜였다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어떤 중년 신사가 오래 되어 보이는 붓글씨를 한 점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 직접 쓴 글이라는 것입니다. 소장자는 애국자의 붓글씨를 소장한 것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했습니다. 연예인 감정가들도 감탄하면서 매우 비싼 가격을 매겼습니다. 소장자도 감정가를 1억 원이 넘게 써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평가만 남았습니다. 숨을 죽이고 전광판을 지켜보는데, 글쎄 단돈 500원이 나왔습니다. 소장자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금세 표정이 굳었습니다. 가짜였던 것입니다. 소장자는 지금까지 가짜를 보고 기뻐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소장자는 이제 정신을 차리고 헛 자긍심을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앙도 자주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귀한 것일수록 복제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확신은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멀게 합니다. 신자는 자주 성경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말 진품명품같은 성도가 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진품성도가 온 교회에 아름다운 영적 영향을 미칩니다. 한 사람의 변화된 간증이 온 교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건강한 교회의 제1의 질적특징은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체로 하는 생명체이고 유기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교회가 있고, 앓고 있는 병든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교회의 첫번째 질적 특징은 바로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이란 자신의 유능함보다는 평신도 동역자를 발굴하여 그들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평신도들이 사역할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리더쉽입니다. 그러니까 "유능한" 지도력이 아니라,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래리 리차즈(Larry Richards)가 1992년도에 미국 목회자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고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응답자의 100%가 똑같은 대답을 하였습니다. "평신도를 사역의 동역자로 발굴하여 훈련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교회는 평신도가 영적 소비자가 아닌 영적 생산자, 즉 사역자가 되는데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한 사람의 생산자인 모세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비자로 머물러 있었을 때 오는 불행과 패단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세는 모처럼 장인이 왔고 아내와 두 아들이 왔으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꼬박 재판석에 앉아서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자기의 책무를 충실하게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숙하고 인생의 경험이 많고 사리판단이 분명했던 장인 이드로가 보기엔 모세가 하고 있는 일이 선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세요. "그대의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개역성경에는 "선하지 못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성실한 사림이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직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18절에서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말한 것처럼 결국 민수기 11장 14~15절에서 보는 대로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은 최선을 다한다고 한 일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본문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가 한 최선은 결국 모세나 백성들이 함께 기력을 쇠하게 하는 형편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혼자서는 일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혼자 그 일을 감당하므로 이처럼 기력이 쇠잔해진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능력 있는 자를 훈련시켜 이 일을 분담하게 하라고 좋은 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러니까 사역자를 세우는 리더십은 21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주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리더십인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의 지도력은 영적인 수퍼스타보다는 함께 일할 사람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일꾼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설정해 놓은 목표나 자신의 비전을 이루는데 혼자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 가운데 적절한 일꾼들을 사역자로 세워주고 권한을 위임해서 함께 일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지도자들은 성도들 개개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준비시키고, 돕고, 격려하고, 훈련시킵니다.
  "사역자를 세우는 지도력을 가진 교회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자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준비시키고,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고, 훈련시키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피라미드의 권위구조를 거꾸로 뒤집어 리더가 교인들을 섬기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영적 잠재력을 개발하여 쓸 수 있도록 돕습니다. 목회자가 나서서 일하는 공동체는 생산적일 수 없습니다. 목회자가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제자훈련과 권한 위임, 재생산에 전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선수가 아니라 코치와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주로 하는 일은 준비, 격려, 동기부여, 제자훈련, 권한 위임, 그리고 재생산등입니다. 이런 사역은 영적인 "자생조직"을 생겨나게 하여 사람의 노력이나 애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방출됨으로써 교회가 움직여가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 일하시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의 지도력은 이처럼 관계 중심, 사람 중심, 팀 사역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발걸음을 걷기 시작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도하는 목자인 모세의 고충을 들으시고 모세와 함께 짐을 담당할 사람들을 세우게 하셨습니다(민 11:16~17). 고통스러워 하는 모세에게 그리고 피곤에 지친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해결책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들을 발굴하여 사역자로 세우게 함으로 모세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게 되고 모세 혼자 짐을 지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지도자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군들을 세워서 함께 동역해야 합니다. 모든 일을 혼자 다 하면 책임감이 있어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세워줄 수 없기에, 사람이 키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일의 완성도도 떨어집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사람을 세워 일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에도 무엇보다 사람을 세우는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제 1종교개혁으로 성서가 성도의 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제2의 종교개혁으로 사역이 성도의 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 교회는 양육과 훈련으로 사역자를 세워가는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