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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자가 받는 축복 (살전 2: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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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살전 2 : 17 - 20
제목 : 전도자가 받는 축복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 좀 더 잘해볼 수 있을까?  어떡하면 신앙생활을 좀 더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이런 바램을 한번 가져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대부분 어떤 생각을 가지는가?  “은혜를 받아야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은혜를 받으면 저렇게 할 수가 있을 텐데” 라고 생각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여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은혜는 어떻게 받습니까?  말씀을 통해 받게 됩니다.  아멘!!!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많은 말씀을 듣게 되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으면,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이,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이런 생각, 절대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음에 있어,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많이 듣고, 보고 하는 것만이, 은혜로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신앙생활도 균형이 이루어질 때에, 그것을 바른 신앙생활이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말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무엇이 중요합니까?  말씀을 순종해서 실천하는 것 또한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은혜의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받은 그 은혜를 나눠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가 고이지 않게 하기 위해섭니다.  물이 고이면 어떻게 됩니까?  썩게 되지요.  마찬가집니다.  은혜가 좋은 것이긴 하지만, 이것도  내 안에 고이면 썩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세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무엇을 먹고 살았습니까?  만나지요.  얼마나 맛이 있었으면, 그 이름이 만나였겠습니까? 
아무튼 그 만나가 하늘에서 내린 신령한 음식이었지만, 그 만나를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하루치 분량만 거둬서 먹어야 했다는 겁니다.
욕심을 내서 이틀 치, 사흘 치를 거둬드린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만나를  먹었습니까?  아무도 못 먹었습니다.  왜 못 먹었습니까?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 썩어서 못 먹게 되었기 때문에, 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은혜도 마찬가집니다.  내 안에만 채워두게 되면, 반드시 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요?  그 은혜의 목적은, 흘려 내 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나는 뭔가?  나는 그냥 수단에 불과하지 않느냐?  남 좋은 일 시킬 것 같으면, 굳이 은혜를 구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혹 여러분 가운데, 이런 어리석은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하나만 알고 둘 셋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속에 있는 피도, 우리가 수혈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내 보내게 되면, 당사자도 새 피를 공급받아 건강하게 되고, 그 피를 나눠받은 사람은  건강만 아니라, 생명을 건지게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 나눔을 통해, 나도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은혜를 받게 되고, 나로부터 은혜를 전달받은 그 사람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그 영혼에 생명을 얻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은혜의 나눔은, 곧 생명의 나눔인 것입니다.

마치 갈릴리 호수와 같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어떻습니까?
저 헐몬산 꼭대기에서 눈 녹은 물이, 일년 내내 흘러 내려와 요단강 상류를  통해서, 갈릴리 호수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호수는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떻게 합니까? 계속해서 내어 보냅니다.  300킬로 가까이 되는 요단강을 통해서, 다시금 흘려  내 보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갈릴리 호수는, 날마다 생명력이 넘쳐납니다. 얼마나 많은 고기들이 잡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생명력이 넘쳐나는 호수  이기에, 그 호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이뤄 기쁨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지금까지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통해서 똑같이 받고 있는 사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사해는 계속해서 요단강을 통해서 받기만 합니다.  그러나 내어 줄 줄을 모릅니다.  나가는 출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받기만 합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해 곧 “죽은 바다”가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똑같이 요단 강 줄기를 통해 흘러 들어오지만, 내어 보내지를 않으니까,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않은, 죽은 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비유들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은혜를 받아도, 그것을 세상에 내 보낼 줄 모르고, 그것을 세상에 전할 줄 모르고, 그것을 세상에 증거 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실상은 죽은 자와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에 보면, 주님이 사데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데 교회를 향해, 성령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자로다.”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자로다.” 

우리가 살아 있는 자 같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이 신앙생활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 같으나, 죽은 자로다.”  이 말씀은, 딤후 3 : 5절의,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는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돌아서라.  이런 모습의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심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지 않고 계속 받기만 할 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세요.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감사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에는 희열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까?  이것이 없는 신앙생활은, 사실 문제가 있는 신앙생활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이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염려와 근심이 있으면, 그것에 눌려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똑같이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염려와 근심과 어려움과 질병을 만나지만, 거기에 눌리지 않는 것은, 우리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공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모합니다. “나도 저 사람과 같이 신앙생활 하고 싶다. 저렇게 멋지게 신앙생활하고 싶다. 저렇게 어려운 일을 당해도, 어쩌면 저렇게 표정이 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어쩌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이런 소망을 가지고, 나도 그와 같이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있고, 여기에 모든 문제의 응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는 인생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도로 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내게 안겨 주리라.”  할렐루야!!! 

야,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또 얼마나 감동적인 표현입니까? 
여러분, 이런 말씀을 듣고도 가슴이 찡하지 않습니까? 
“가슴이 찡하네요. 정말로”  세상 사람들도, 사랑하는 말 한 마디에 이렇게  감동하고, 가슴이 찡하다고 고백하고, 심지어는 눈물까지 핑 돈다고 노래하는 데, 우리 예수 믿는 신앙인들이,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의 선언을 듣고도 마음에 아무런 감동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대 나를 얄밉다고 말만 하더니, 오늘은 살며시 내 손 잡았네.” 
아, 손만 잡아줘도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핑 도는데, 하나님의 축복이 이것보다 얼마나 큽니까?  “안겨 주겠다.”  내 가슴팍에 안겨 주겠다.  “팍팍팍” 아멘!!!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분, 식물을 강물에 던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냥 흘러 가버리지 않습니까?
이건 상식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강물에 던졌는데, 어떻게 도로 찾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이기에, 우리는 도로 찾게 되는 것입니다. 흘려보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찾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도 능력 있는 성도들, 또 능력 있는 목회자들을 살펴보세요.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가 다 은혜를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들인 것을 보게 됩니다. 
받기만 하고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받기도 잘 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끊임없이 베풀어 줄줄 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얼마나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능력 있고,  활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은, 다 바쁜 가운데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그 없는 시간을 쪼개 가지고, 말씀을 배웁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납니까?  아니지요?  그 배운 말씀을 어떻게 하면 나누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을까?  이것을 고민하며, 삶 속에서 주변 사람들을 향해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배움의 목적이요,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자의 진정한 신앙생활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 이 시간 자신의 신앙생활을, 깊이 있게 한번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이제껏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말씀에 대한 순종이 얼마나 되었는가? 
또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받은 그 은혜를 얼마나 주변의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왔는가?  특별히 내가 받은 이 복음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전하며 살아왔는가?  내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볼 때, 전도의 열매가 없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정말 참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저 영혼 구원만 얻은 성도가 아니라, 삶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참 제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 15 : 8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이 과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영혼의 열매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무엇입니까?  영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영혼이,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얻게 되는 것,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귀했으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 영혼을 찾으시려고 하셨겠습니까? 

그래서 딤전 2 : 4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하지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아멘!!! 
이것이 세상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립니다.  그래서 전도할 줄 압니다.  많은 영혼의 추수가 있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전도함을 통해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오게 될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는데, 그 영광 하나님만 차지하시겠습니까?  아니지요?  우리 인생이 또한 영광스럽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는 겁니다.

단 12 : 3절에 보세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믿습니까?  믿습니까? 
그래서 전도하는 분들을 보세요.  하나님의 축복은, 혼자 다 받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 그렇게 복을 받는 게 아니지요?  자녀들까지 복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전도 많이 해서, 교회마다 간증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간증이 뭡니까?  자기 자식들이 복을 받았다는 겁니다.  자녀들이 과외도 안 시키고, 학원도 안 보냈는데, 일부러 안 보낸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못 보낸 겁니다.  지질이도 못살아 가난한 게 아닙니다. 

그 돈을 어디다 씁니까?  전도하는 데 쓴다는 겁니다.  맨 입에 전도 못하잖아요?  여러분도 전도해 보셨겠지만, 전도가 어디 말로만 됩디까? 
말로만 하니까, 말로만 오겠다는 거지요.  그런데 입에 뭘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 주고.....  재워 주고는 좀 그런네....  아무튼 뭐라도 줄 때, 그 사람이 마음이 감동이 되 교회에 오려고 하는데, 이렇게 줄려고 하면 돈이 들잖아요?

그런데 아이 학원 못 보내도, 아이 과외 못 시켜도, 나는 주의 복음 전하는 일에는 투자하리라.  할렐루야!!!  여러분, 미친 짓 아닙니까? 
그런데요, 하나님은 이렇게 미친 사람 좋아하십니다.  믿습니까? 
어디에 미친 사람요?  복음 증거 하는 일에 미친 사람, 전도하는 일에 미친 사람, 하나님은 너무 좋아하십니다.  바울도 미친 사람 아닙니까? 

바울은 자타가 공인하는 미친 사람입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아그립바 왕 앞에서 바울이 재판을 받을 때, 베스도가 한 말입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왜 미쳤다는 겁니까?  아무데서나, 아무이게나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 전하는 일에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바울을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또 얼마나 그를 축복하셨습니까?  온갖 능력을 덧 입혀 주셔서, 각양각색의  병자들을 고치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려내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던 것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이 일을 귀하게 여겼던지, 결혼도 포기하고, 스스로 고자 되었다고 하잖아요?  이 일에 전적으로 자신의 생애를 드렸다는 겁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하십니다. 
그래서 복을 주시면 그냥 쏟아 부어 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는데, 하나같이 그 자녀들의 장래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학원 못 보내도, 과외 못 시켜도, 더 좋은 대학 들어가고,  더 좋은 직장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전도자가 받는 축복이 분명히 있는데, 내가 전도를 하지 못함으로, 아니, 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이런 귀한 축복을 모두 놓쳐 버린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바라기는,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만 아니라, 우리 성천교회 모든 성도들은, 특별히 전도에 힘쓰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런 놀라운 축복들을, 여러분의 남은 생애  가운데 다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그렇다면, 전도자들이 받는 축복 가운데, 구체적으로, 또 일상 가운데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는 축복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전도자가 받는 첫 번째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영적 건강의 회복....  영혼이 건강하게 되어진다는 겁니다.

사람도 병들면 참 어렵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지혜가 있고, 재주가 있고,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병이 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지 못하면, 모든 신앙생활에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양식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영의 양식이 뭡니까?  말씀이지요.  말씀을 영혼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또, 기도는 뭐라고 그럽니까?  영혼의 호흡이라고 그럽니다.  호흡이 멈춰지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기도를 일상화 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고,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한다고 해서 영적 건강이 다 좋아지겠습니까?  그러면 이 땅의 사람들이 다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병에 걸린 사람들이 생겨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먹고, 쉼 쉬고, 이것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의 운동이 무엇이냐?  무엇일까요?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영혼의 운동이다.  아멘!!! 

이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육신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운동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폐활량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전도하게 되면은, 영적인 폐활량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폐활량이 뭡니까?  기도지요.  그래서 자연히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전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느냐? 
전도는 내 힘으로 하는 것 아니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전도를 하게 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자신이 늘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뭐가 부족합니까?  말씀입니다.
내게 말씀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의 여러 가지 방법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게 됩니까?  성경을 보게 됩니다. 성경을 연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성경에 모든 전도의 방법들이 다 나타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그런데 막상 하게 되면 어렵습니다.  왜?  복음에 대해서,  또 전도의 방법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이 막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요, 전도를 한다고 하는데 성경에 대한 지식도 없고, 방법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횡설수설 합니다.  황설수설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복음을 분명 제대로 전한 것 같은데, 듣는 사람이 도무지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오히려 자기가  막 화를 냅니다.  그러니 상대방도 화를 내게 되고, 감정싸움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래서 그 사람은 다시는, 예수의 예자도 꺼내지 말라고, 듣기 싫다고 그 자리를 떠나 버립니다.  이게 뭡니까?  전도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도의 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전도를 하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내가 그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이 지옥에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결코 준비 없이 전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배워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기 위해서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게 되고, 말씀을 듣게 되고, 성경공부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런 준비가 된 가운데 전도를 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자신감이 생깁니다. 능력이 나타납니다.  전혀 안될 것 같은 사람이 전도되어 교회로 나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살펴보세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에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기도하고, 말씀에 능한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다 전도하기 위해서.  아멘!!!  그들은 전도를 위한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영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 5 : 29절에 보세요.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나님을 순종한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전도하라고 하는  그 명령에 순종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여러분, 이것이 어디 보통 용기 있는 말입니까?  그들이 누구입니까? 
갈릴리의 어부 출신들입니다.  불학무식한 촌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저명한 권세가들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당신들 사람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담대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능력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행 5 : 32절에 말씀하기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도, 하나님의 능력도 그러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전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참 귀합니다.  그 곳에서도 능력을 받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이나, 말씀 집회를 통해서 은혜 받는 것도 참 귀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놀라운 능력,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지탱해 주는,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하는 것이 부담이 됩니까?  물론 부담이 되지요. 부담이 안 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물어보세요. 
공부하는 것이 즐거우냐?  부담 되냐?  물어보세요.  열이면 열, 다 부담  된다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에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하는 자녀가 있다면, 빨리 병원에 가 보십시오.  분명 그 아이는 제 정신이 아닙니다. 
전도하는 것이 부담이 안 되는 성도는, 교회 안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부담은 거룩한 부담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감당해야만 하는 부담인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 하나님이 전도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면, 그까짓 부담감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내 체면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내가 쓰는 물질이 뭐가 그리 아깝겠습니까?  내가 쓰는 시간이 뭐가 그리, 아까울 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사랑한다고 외쳐보라고  할 때에, 주저할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람이 많은 가운데서라도 용감히 외칠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내가 숫기가 없다?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라면, 상대방을 진정 사랑한다면, 분명 용감히 외치게 될 것입니다. 
전도하는데 잘 듣지 않고, 때로는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설사 그런 곤경을 당한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고난 받았으니,  그 또한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면류관 아닙니까?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신자들의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사탄 마귀입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 이미 꺼꾸러진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패잔병과 다름  없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때에,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사탄 마귀는, 힘을 쓰지 못하고 도망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우리가 이러한 사실은 안다면,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때에, 사탄 마귀의 권세가,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영적 체험이, 바로 전도를 통해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선택이 아닙니다.  필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여러분을 위해서,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 활기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운동하라고, 영적인 운동, 곧 전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전도하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천사 몇 만 딱 보내가지고, 특히 4월 초파일 같은 저녁에, 군대 군대 천사 몇을 보내고서는, “니 예수 안믿을끼가. 심판할끼다.” 그 한마디만 하면 끝날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천사들을 동원하지 않으시고, 그 귀중한 일을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 우리가 전도할 때에 더욱 더 신령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더 축복받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전도를 우리에게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전도를 우리로 하게 하신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우리에게 기쁨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낳는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 20절 말씀을 보세요.“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자녀를 낳고 키우게 되면, 그 자녀가 자랄 때에 기쁨이 됩니다.
이제가지 고달팠던 모든 것은, 다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아이를 낳아서 형무소에 보내는 한이 있어도, 아이를 낳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적인 자녀를 낳는 것도 귀하지만, 영적인 자녀를 낳는 것은  그에 비할 것이 못됩니다.  저도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습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 얼마나 기쁜 줄 모릅니다. 
그러나 이와는 또 다른 기쁨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자녀들입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있던 교회에 아는 청년이 결혼을 해서 축하하러 갔습니다.
서로 간에 오랜만에 보니까 반가웠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왠 청년들이 물려 와서 인사를 합니다.
속으로, “이 아가씨들이 누구인가?  누군데 나에게 인사를 하는 걸까?”
가만히 보았더니, 제가 중등부 때부터 지도하던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가 졸업을 하고, 이제 청년이 된 것입니다.
제가 만난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그 아이들이 더 반가웠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제가 몇 년 동안 그들과 함께 하며 가르쳤던 아이들입니다. 그 이이들이 지금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기쁜지요.
제가 전도하고 가르친 그들이, 결국 나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들로 인해 제가 하나님께 칭찬 듣고, 영광스러운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어떤 전도의 열매가 있습니까? 
영적으로 낳은 자녀가 있습니까?  만약 아직도 없다면, 그 분은 이러한 기쁨을 맛보실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기쁨 모르고 살아가도 괜찮다.”
여러분, 과연 하나님 앞에 가서도, 그런 말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결국은 모두가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는 내가 전도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제가 바로 저 형제 때문에, 제가 바로 저 자매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앞의 그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를 환영하며 즐거워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부끄럽게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당장 삼일 뒤면 새 생명 축제일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누구를 전도  하시겠습니까?  “내년에도 기회가 있겠지.” 천만에요.
누가 우리 중에 내년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올해가 마지막일지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의 생애에, 내년이 있다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30대, 40대에도 막 쓰러지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내년을 장담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다음에 다음에 하시겠습니까?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영혼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받을 그 영혼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안 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복음을 듣게 하시고, 결국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성경에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기에,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일해서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 때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많이 남긴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에게,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겨 버렸습니다.
내가 맺어야 할 전도의 열매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거두게 하지 마십시오. 빼앗깁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빼앗깁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깁니다.
더 나아가 천국에서의 형언할 수 없는 그 즐거움과, 영광스러운 기쁨마저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십니까? 

우리로 이런 은혜와 축복과, 그 기쁨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전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은혜와 축복, 기쁨을 누리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이런 것들을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이 오늘 우리의 신앙 가운데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을 소망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 11 :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상에 대해서 무관심 한 사람은,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고 했는데, “나는 상이 필요 없어. 나는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죄악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받아야지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룬 세상의 것에 만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추구하지 않고 거절한다면, 그것이 불신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것이 믿음과 신앙의 기본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의식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에서도 출세하고도 남을 사람이었습니다. 
당대의 석학이요,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방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복음에 사로잡혔습니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평생을 살아갔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상 받는 것을 사모하면서, 그는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가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여러분 무슨 선한 싸움을 싸웠겠습니까?  사탄에게 결박을 당한 형제와 자매들을 구출하기 위한 영적 싸움이 아니었겠습니까?

“달려갈 길을 마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는 잠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뛰고, 달리면서, 감옥에서, 그는 박해자 앞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믿음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 앞에 가서 상 받는 일만 남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훌륭하고 멋지고, 당당한 고백입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바울과 같은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이런 멋있는 고백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뜨겁게 신앙생활 하시다가, 활력 있게, 기쁨으로 신앙  생활 하시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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