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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살리시려고 (창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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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시려고 (창45:3-8)

나폴레옹이 한참 그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을 당시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폐하께서는 하나님이 어느 쪽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님은 대포가 많은 쪽에 계신다.” 이 대답은 매우 오만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그는 권력이 많고 대포가 많은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1815년 워터루 전쟁에서 패하고 나서 섬에 유배되어 살면서 다시 이렇게 고백하였다. “Man proposes, God disposes” 이것이 옳은 말이었다. 권력을 갖고 힘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주관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이루는 모든 것을 처분하실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 역사 위에 섭리하시는 분이다.

요셉은 이제 그의 형제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오직 모든 것 위에 하나님께서 계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애굽의 상황이나 자신의 환경이 자신을 이끈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결코 세상의 흐름에 따라서 움직이는 분이 아니라, 모든 것 위에서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인류 역사와 세상 위에서 over-ruling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창세기의 역사를 통해서 자신이 over-ruling하는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셨다. 이 ‘over-ruling’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힘이 있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재판장에서 사용된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은 서로 자신들의 자료를 가기고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판사가 이들 위에서 이들의 이야기와 의견을 듣고 결정한다. 판사는 유효와 무효를 결정하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온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그러한 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요셉의 형들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동생인 요셉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 위에서 over-ruling하시는 주권자이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말이다. 오늘의 본문이 그저 오래 전, 팔레스타인의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며 이를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을 발견해야 한다. 요셉의 이야기가 그저 역사 속의 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소망과 계획과 진리가 담겨 있는 인류 구원의 과정으로 받아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해야 하며, over-ruling하시는 하나님과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올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하는 지휘자가 모든 구성원을 이끌고 가듯이 하나님도 온 인류의 역사를 이끌고 가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이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살전5장16-18절을 보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말씀은 참으로 엄청난 말씀이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산불로 인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아프고 생명에 위협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 뿐 아니라 이 섭리를 붙잡고 살아간다면 이렇게 살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붙잡아야 할 신앙의 방식이다. 이렇게 살려면 하나님의 over-ruling하심을 믿고 따라야 한다. 나를 모략하고 비방하여 억울한 상황이 만들어져도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을 바라고 그 분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자신의 과오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마저도 오른 손에 붙잡고 모든 일을 handle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요셉을 팔아버린 형들의 행위는 큰 죄악이었다. 우리가 요즘 다락방에서 배우고 있는 사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탐심과 질투심과 큰 죄악마저도 하나님은 함께 취급하시며 모든 상황을 운영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선택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런 마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두 가지 역사를 조명하기를 원한다.

(1)하나님의 주관(인간의 모든 계획과 전략 위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본문의 말씀에서 요셉은 ‘하나님이’라는 말을 세번 사용하고 있다. 5절을 보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 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그리고 7-8절을 보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지금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not you, but God’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한 것 같아 보이지만 오직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다. 때로는 ‘나같이 작은 자도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실까?’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시는 분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모습대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우리를 추적하시는 분이다. 그 분은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은 불러서 축복하신 이유는 그를 통해서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지금 어려움 속에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하갈이 집에서 쫒겨 나와 광야에서 소망을 잃어가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다. 우리의 눈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만 흐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하갈을 통해서도 역사하시는 분이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낯선 곳에 있을 때에도 하늘의 사닥다리를 보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야곱은 비로소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알았다. 그리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지명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계시다. 마태복음6장26-28절을 보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산불로 인해서 모든 산야가 다 탄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키우신다.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도, 아름다운 백합보다도, 더욱 귀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친히 대속물로 삼아 구원하신 자들이다. 그 분은 우리와 상관없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이것을 확고하게 믿어야 우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죠셉이라는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Life is not good, but God is good’ 본문에 나오는 요셉의 삶이 바로 이랬다. 그는 버림을 받았고 그의 삶은 참으로 어려움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그의 삶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Life is not good’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돕는 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끝까지 승리할 수 있었다. 지금 병상에 누워 있거나, 어려운 경제 앞에 한숨을 쉬고 있거나, 갑자기 문제가 생긴 가정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양을 하며 ‘God is good’이라고 이야기 하자. 심지어 내가 큰 잘못을 하였어도 ‘God is so good’이라고 고백하자.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오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법이다. 요셉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믿음을 가지고 한결같이 나아가자.

(2)하나님의 구속사역(생명을 살리시려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좁은 눈으로 보면 그냥 나 중심으로 끝나고 만다. 이것은 성숙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는 이유는 그분이 생명을 살리시려는 큰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7절을 다시 보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리고 50장20절을 보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이란 만민의 생명을 구하시려는 선을 말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은 그 쪽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만민 구원을 위해서 사용받을 수 있다. 두 가지 자세가 있을 수 있다. 수동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면, ‘그저 나에게 선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갖는다면,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가슴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 지를 알고 자신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함께 움직이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자신이 공중에 나는 새와 백합보다도 귀한 존재라면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우리는 수동에서 능동적인 믿음으로 전환해야 한다. 하나님의 over-ruling 섭리를 믿는다면 우리는 만민을 움직이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으로 보며 움직이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묵은 땅은 지경되어야 한다. 지난 아프카니스탄 인질사태를 보면 19인의 인질이 살아 돌아왔고 2인이 그곳에서 순교의 피를 흘렸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의 무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곳의 땅은 묵은 땅이고 순교의 피가 있어야 지경이 될 수 있었다. 5000년 역사의 한국 땅도 묵은 땅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지면서 비로소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큰 그림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마지막 때은 언제였나?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핍박할 때였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초대교회가 큰 핍박을 받던 때였다. 하나님은 이 때가 적합한 때라고 하셨다. 때가 찼다고 하셨다. 왜 그런가? 당시의 큰 핍박으로 인해서 유럽과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이 언어적으로 통일 되었던 때였다. 그리고 국제적인 이동이 가능했던 때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복음이 이제 비로소 왕성하게 전파될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넓고 능동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 당시가 바로 때가 찬 시기라는 것이다.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 집에 화재가 나거나 비지니스가 없어진다고 해도 그것들은 다시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이 가장 귀한 것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우리의 한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하다. 그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주신 것이다. 더 이상 당신의 진노의 불이 타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불이 날 때는 미리 한 지역으로 이동해서 그곳에 불이 이르지 못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막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도 더 이상 타지 않을 자리로 옮겨야 한다. 생명이 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섭리를 가지고 생명을 향해서 방향을 잡고 계시다. 우리도 그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사실 우리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이민을 왔지만 하나님은 더 큰 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통해서 훈련받아 생명을 구하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삼 세대가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생명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열정 앞에서 우리도 그렇게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생명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훈련받은 사람을 세상으로 보내는 교회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임한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굳게 믿자. 그 섭리를 믿고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더 전진 시켜서 내게 주신 건강과 자원과 가족을 활용하여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김승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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