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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 참 미련하게 보이는 방법 (고전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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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미련하게 보이는 방법 (고전 1:18~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옛날 6.25 전쟁 때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할 때 이야깁니다. 세계전쟁역사에서 찾아 볼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때 맥아더 장군은 참모들을 모아 놓고 인천을 통한 상륙작전을 의논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부산부터 싸워서 올라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급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통해 인천에 상륙하여 서울로 들어가는 작전을 구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모들이 하나같이 펄쩍 뛰었습니다. 인천 앞바다는 간만의 차가 심하고 갯벌이 넓은 해안이기에 대규모 상륙 작전을 펼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맥아더 장군이 말했습니다.
“귀관들은 모두가 세계 1, 2차 대전을 치룬 다 세계 최고 수준의 참모들이다. 그런 귀관들이 이 작전을 도무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적군들도 마찬가지다. 설마 우리가 그곳으로 상륙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작전은 반드시 성공한다.”라고 했답니다.
절대다수의 상식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이 패전의 상황을 호전시킨 위대한 결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한 그것이 불가능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간혹 그렇게 일하십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행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들어내십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 괴짜 전도자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의 본명은 ‘최봉석’이라고 하는 최권능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의 전도 외침은 단순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었습니다. 우리도 한번 외쳐 봅시다.

그분에게는 많은 전도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어느 날 강원도 산골짜기 화전민을 찾아갔습니다. 다들 농사를 짓느라고 바빠서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궁리를 하다가 꾀를 내었습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들릴까 말까 하는 위치에서 갑자기 “아이고 나 죽는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굴렀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일손을 놓고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목사님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보니까 한 50여명이 둘러섰습니다. 그때 최목사님이 손을 툭툭 털고 일어서면서 “여러분! 예수 믿으십시오! 예수 안 믿으면 사람 죽소!” 하고 외쳤습니다. 허겁지겁 달려온 사람들이 화가 났습니다. 그 사람에게 속은 것을 알고 팔을 걷어붙이고 ‘이 영감이 돌았나?’ 하고는 두들겨 패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러자 최목사님이 막 도망을 치면서 가슴에 있는 무엇을 꺼내서 흔들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암행어사 출두요!”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만해도 강원도 산골 깊숙한 곳에서는 그것이 통했던 것 같습니다. 패주려고 달려오던 사람들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최목사님 말하기를 “나는 사람이 보내 암행어사가 아니오.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죽고 살지 못할 것이요!” 하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난기 있는 전도에도 하나님이 역사 하셨습니다. 그 화전민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목사님이 막 도망을 치면서 가슴에 있는 것을 꺼내서 흔들며 보여준 것은 마패가 아니고, 최목사님이 전도를 하도 잘하니까 신학교에서 준 전도상 메달이었습니다. 이것이 전도의 현장에 나타난 신비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미련해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나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정부에서 인정하는 선교사가 들어온 것은 1885년 부활절 아침(4월 5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처음으로 받아 들인지 10년 후인 1895년에 전국의 신도 수는 746명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년 후인 1896년에 8,496명으로 10배가 넘게 부흥되었습니다. 그리고 15년 후인 1900년에는 18,081명으로 급속도의 증가를 보였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신도 수는 약 1천만 명을 넘고 있어, 지난 한 세기 동안 10,000배의 전도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상 획기적인 전도성장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 즉 감소세를 보인다고 걱정들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전도를 안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도는 하는데 영혼 구원의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서 인간의 방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엄밀하게 말해 인간의 지혜로운 고안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전략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숨겨진 신비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헬라 문화의 꽃’이라고 할 만큼 발달된 도시였던 고린도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 전도의 신비한 능력을 전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썼던 것입니다.
특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과감하고 저돌적인 자세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18절을 보세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복음을 전함으로써 기독교를 땅 끝까지 확장시킨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무리한 계획이었습니다. 세상의 똑똑한 사람들이나 학자들이 보기에는 정말 미련한 방법이었습니다. 도무지 통할 것 같지 않은 무리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의 작전은 사도 바울 시대 때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영혼을 사단에게서 구출하여 구원받게 만드는 전략이었고 지금도 그 작전은 승리에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왜 십자가와 전도가 하나님의 방법이고 능력일까요?
왜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그 십자가의 도를 그토록 고수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하나님은 전도라고 하는 미련한 방법을 고수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왜 이런 방법이 하나님의 능력인가?

1)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은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 때문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는 언약을 하나님이 사람과 맺었습니다. 그러기에 죄를 지은 자를 구하려면 “정령 죽으리라” 한 그 언약대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죄 문제는 피를 흘려 죽음으로만이 해결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속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대속”이라 합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9:22절에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느니라.”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십자가의 구원의 도는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세상일에는 대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다른 방안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대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구하는 일에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은 의인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대신 속죄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직접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대속의 능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죄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분에게 대안이 있었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니 이다.” 하신 것은 그분의 고뇌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다른 대안이 없기에 그 처참한 형벌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위대한 사랑이 죄의 형벌을 이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십자가의 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십자가의 도에는 힘이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미련해 보이고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나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2)여기에 하나님의 지혜와 열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통한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열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참 어리석고 단순하고 어떤 때는 참 답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그 속에 하나님의 지혜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수천동안 지속하고 계십니다.
간단한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천군천사들 일시에 동원하여 예수를 믿으라 하면 한방이면 됩니다. 전도를 해도 해도 안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한번만 꿈속에 나타나셔서 “나를 믿으라, 안 믿으면 죽인다.” 한 번만 하면 해결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십자가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의지를 주시고 인간의 의지와 결단을 하나님이 만나길 원하시고 그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의 나라를 세워 가길 원하신 것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우리를 만나시려고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짜자잔!’ 하고 한순간에 당신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원치 않고 한사람, 한사람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주님을 닮기를 원하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저와 여러분이 일꾼이 되길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당신의 나라를 당신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저와 여러분을 세워 함께 만들어 가길 원하십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동역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요. 이것이 위대한 영광의 자리에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초대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감사하게도 그 자리에 초청을 이미 받았고 그 자리에 들어와 동역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그 감격 속에 하나님을 향해 예배자로 서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예배자리가 여러분의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한 자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떠 나아가서 여러분이 받은 직분이 세상 그 어떤 직분보다 더 영광스러운 직분인 것을 믿고 수종 드시기를 축원합니다.
 

2. 왜 십자가의 도와 전도가 미련하게 보이는 것일까?

1)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더 나아가 왜 죽어야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가 미련한 종교같이 보입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도 믿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다는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이나 불교의 석가 이슬람의 마호멧이나 같은 부류로 보게 되고 결국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는 종교로 몰고 가게 됩니다.
다른 종교는 구원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할 어떤 행위가 있는데 기독교는 믿음이라는 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해가 안 되니 오해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해를 시켜야 하는데 그 이해가 사람의 설득으로도 가능하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갖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이 선물입니다. 그래서 엡2:8절~9절을 보면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어진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분들은 이것도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셔야 받아들여지는 진리인 것입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외친다고 누가 믿느냐 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미련한 방법을 통해 영혼을 2000년간 구원해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복음이 여러분께도 전달 된 것입니다.

나 한사람은 계주의 바톤 선수와 같습니다. 아무리 잘 달려도 중간에 바톤을 놓치면 안 되듯이 내가 받은 복음의 바톤을 다음 주자에게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내가 그 바톤을 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계속해서 이사람 저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첨단 과학시대에 좀 미련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럴지라도 계속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복음전파를 천사에게 맡기신 적이 없습니다. 복음전파는 오직 믿는 사람만이 맡은 특권입니다. 그 특권을 잃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구원 섭리와 사랑을 듣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십자가의 도와 전도가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일까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 구원 섭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기에 영원토록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 교제가 이루어질 때 인간은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사단의 꾐에 빠져 타락하였고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포기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시고 구원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십자를 통한 인류 구속, 이것이 하나님 작정하시고 섭리하신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섭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와 같은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듣지도 믿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진리를 깨닫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도서 8:17에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 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 했습니다.

또 예수님도 마13:13~14에서
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그러기에 노아 홍수시대 사람들도 깨닫지 못해 망했고 소돔 고모라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시대도 마찬가집니다. 깨닫지 못함, 이것이 인간의 지혜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셨고 그 성령의 역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미 여러분이 받아 누리신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보세요.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믿어지는 게 신기합니다. 다른 사람 다 안 믿어지는데 믿어지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 이유는 미쳐서 그렇습니다. 성령이 내속에 들어와 깨닫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우리보고 미쳤다 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만은 안 됩니다. 그러니 성령에 미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깨닫게 하는 은혜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 그 미련한 것을 나는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

1)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전달 받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복음이 귀에 들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복음이 믿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오늘 모습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 있는 자들, 세상의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믿지 못하는 그 복음을 내가 먼저 듣고 내가 먼저 믿고 내가 먼저 구원을 얻은 것은 기적입니다.
그야말로 복중에 복이고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할렐루야! 옆 사람에게 말하세요. “내가 예수를 믿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그러면 대답하십시오. 피차일반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스스로 믿었다 할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중에 내가 스스로 깨달아 믿었다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혹시 있다 해도 누군가에게 하나님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고 누군가에게 예수님에 대해 들었기 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다.
그 복음전도자가 여러분의 부모일수도 있고 여러분의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또 여러분의 친구일수도 있고 여러분의 형제 자매일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전혀 모르는 그 누군가에 의해 듣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해 준 사람을 알든 모르든 그 사람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보낸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아시지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15:10을 보세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2)은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복음의 바톤을 받았으니 이제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달리기를 해야 할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여러분 주보에 나와 있는 복음송가를 한번 보세요.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한번 불러 볼까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때 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 가리라
주의 여광 온땅 덮을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

성도 여러분! 행1:8을 잘아시지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
마태복음 28장에서는 가서 전하라 하셨고 막16장에서는 온천하에 다니며 전파하라 명령 하셨습니다.

왜요? 그토록 미련하게 보였던 그 십자가의 도가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로 받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목숨 걸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전도를 못한다고요? 글을 모르는 할머니도 전도하신답니다.
이 할머니는 문맹에다가 시각 장애를 가지고 계신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전도를 기가 막힐 정도로 잘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서 대뜸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요한복음 3장 16절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목사님은 영문도 모른 채 할머니의 요구대로 성경을 찾아 빨간 줄을 그어 주었습지다.

목사님은 글을 읽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할머니인데 왜 그런 부탁을 할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할머니는 전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학생들이 수업을 마칠 시간쯤에 동네 학교 정문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학생,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 라며 말을 건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가 도와달라고 하니 학생들은 거절 못하고 “뭘 도와드릴까요?” 라며 다가옵니다.
“사실은 이 할미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데 눈이 잘 안보여서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말인데 여기 빨간 줄 쳐놓은 부분만 좀 읽어주겠어?”
그러면 학생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할머니가 잘 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읽어줍니다.
“정말 고마우이. 그런데 학생은 방금 읽은 말은 무슨 뜻인지 알겠어?”
“잘 모르겠어요 내가 가르쳐 줄께.”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거야. 나와 학생을 사랑하셔서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인 예수님을 주셨다는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다 용서함 받고 자녀가 되며 영생을 얻게 된단다.
할머니의 독특한 전도법은 이러했던 것입니다.
할머니로 인해 많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그 가운데는 기독교 지도자로 성장한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고 전도가 가장 미련하게 보이나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강력한 능력이고 지혜임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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