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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야베스의 소원 (대상 4:9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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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소원 (대상 4:9 ~ 10)

성경에는 야베스라는 이름이 본문에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이 여타 이름처럼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의 신앙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왜 야베스라고 했습니까?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의 대명사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지어줄 때 그 이름 속에는 그를 향한 온갖 소원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성경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낳아 숱한 축복의 이름들을 외면한 채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여기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는 말씀을 감안할 때 야베스는 고스의 형제이거나 고스의 아들중 하나입니다. 이름은 그 사물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에덴동산에 있던 아담은 동산 안에 거하는 짐승들과 새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창세기 2장 20절에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 이름이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본성이 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름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0장 26절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기원과 전통을 함께 나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이름을 없애는 일은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존재를 없애는 것이 됩니다.

사무엘상 24장 21절에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욥기 18장 17절에 『그의 기념이 땅에서 없어지고 그의 이름이 거리에서 전함이 없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존재 의의와 목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창세기 27장 36절에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야곱이라는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고통'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차브 () '에서 유래된 고통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어머니는 야베스를 수고로이 낳았기 때문에 야베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태에서도 수고로웠고 아이를 배면서도 수고로웠습니다.
그렇다면 야베스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고통의 아들 야베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자기의 소원을 구했습니다.

Ⅰ. 야베스는 복에 복을 더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본문 4장 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아뢰어』라는 말의 히브리어 '카라 ( )'는 부르짖는다는 뜻입니다. 야베스가 간절하게 부르짖었다는 것입니다. '복에 복을 더하소서'라는 말은 복 위에 복을 더해 달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복은 이미 받은 복 위에 더 쌓이는 복입니다. 이 소원은 계속되는 복입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입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7절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삭이 받은 복입니다.

창세기 25장 11절에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 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6장 24절에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받은 복입니다. 창세기 32장 29절에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5장 9절에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했습니다.

Ⅱ. 야베스는 지경을 넓혀달라고 부르 짖었습니다.

본문 4장 10절에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라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그가 거주하는 곳은 이방인들의 침입을 자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야베스 당시의 지경이라야 목장 정도에 불과합니다. 야베스는 자기의 지경을 넓혀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활동무대를 확장시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지경이 넓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사업의 지경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손들의 활동무대를 한국과 아시아와 세계로 향하여 그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Ⅲ.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자신을 도와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본문 4장 10절에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의 손으로』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손이 어떤 손이기에 주의 손으로 자신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까? 이 말을 직역하면 '당신의 손이 나와 함께 하셨기에 (웨하예타 야데카 임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주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1) 땅의 기초를 정하시고 통치하시는 손입니다.
시편 102편 25절에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8장 13절에 『과연 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손입니까?
(2) 인간을 조성하신 손입니다.
욥기 10장 8절에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손입니까?
(3) 사람을 쓰심에 자유하시는 능하신 손입니다.
예레미야 18장 6절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손입니까?
(4) 보호하시는 손입니다.
이사야 49장 2절에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라고 했습니다.
어떤 손입니까?
(5) 빼앗기지 아니하는 손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8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6) 순결케 하시는 손입니다.
에스겔 13장 9절에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매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어떤 손입니까?
(7) 견고히 하고 힘 있게 하는 손입니다.
시편 89편 21절에『내 손이 저와 함께 견고히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있게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주의 손으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2) 도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환란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10절에 『…나로 환란을 벗어나…』라고 했습니다. 주의 손이 우리를 도와주실 때만이 환란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의 손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기도의 결과로 인해 얻어지는 것입니다.
여기 환란을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은 '환란에서 지켜달라 (웨아시타 메라아 )' 는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9절에 『…환란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9장 27절에 『…저희가 환란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2) 근심이 없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본문 4장 10절에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근심이란 말은 히브리어 '아차브()' 곧 '나의 고통'이란 뜻입니다. 이것 역시 환란을 벗어난 결과로 인해 얻어지는 당연한 것입니다.

Ⅳ.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소원을 허락 하셨다고 했습니다.

본문 4장 10절에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했습니다. '허락하셨다'의 히브리어 '야베( )'는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야베스는 언약의 하나님인 것과 축복의 하나님인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야베스가 구한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확신 속에 구했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17장 14-15절에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리니 그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고 했습니다.
계시가 없는 백성은 기도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는 그 형제보다 존귀하게 되어야 합니다.

야베스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의 모델입니다. 오늘의 지상교회는 성도들을 양육하는 어머니입니다. 야베스를 낳을 때 수고로이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수고로이 낳은 아들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3절에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15절에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 1장 10절에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장 5절에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9절에『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 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1절에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존귀한 자입니다.
역대상 17장 18절에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에 대하여 다윗이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역대상 29장 28절에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3장 4절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5절에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야베스는 '고통의 아들'이란 이름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고통의 이름을 가지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는 역시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입니다. 존귀한 그의 실체를 다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형제보다 존귀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해산하는 수고와 고통을 통하여 난 자들입니다.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죄인이었습니다.
이사야 48장 8절에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었나니 이는 네가 궤휼하고 궤휼하여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라 칭함을 입은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소서
나의 복이 쌓이게 하소서, 복 위에 복을 더 하소서
나의 지경을 넓히소서, 내 자손의 지경을 넓히소서
내가 받은 기업의 지경을 넓히소서,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땅의 기초를 정하시고 통치하시는 창조의 손으로 도우소서, 나를 조성하신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사람을 쓰심에 자유하시는 능하신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보호하시는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순결케 하시는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나를 견고히 하고 힘있게 하는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환란을 벗어나게 하소서, 근심이 없게 하소서!
결국 우리의 구하는 것이 이루어지게 될 것을 믿읍시다. 우리 주님은 다 이루신 분이십니다. 다 이루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허락했기 때문에 부르짖습니다. 고통의 삶 속에 포기하는 삶이 되지 말고 존귀한 자의 삶을 구하므로 넘치도록 얻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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