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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 - 위대하신 하나님 (시 145:1-9, 살후 2:1-8, 눅 20:3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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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 위대하신 하나님 (시 145:1-9, 살후 2:1-8, 눅 20:37-40)

1.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말하기를 “내가 만일 무인도로 들어가게 되면서 단 2권의 책만 가져가라고 한다면 당연히 성경과 그리고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가져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 강요」라는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고 난 뒤 이 개혁사역이 표류하지 않고 제대로 방향을 잡고 항해하도록 한 것이 바로 칼뱅의 「기독교 강요」라는 책이었습니다. 칼뱅이 이 책을 쓴 이유는 3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바른 신앙을 위해서였습니다. 둘째는 신앙에 의한 바른 생활을 위해였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제 새롭게 출발하게 된 개혁교회가 바른 방향을 향해서 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토록 기독교 역사상 우뚝 솟은 봉우리처럼 그 존재가 출중했던 칼뱅의 신앙과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토록 유명한 책인 칼뱅의 「기독교 강요」의 중심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은 우리가 속한 장로교의 핵심 신앙이며 우리 각자의 신앙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전 10:31에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으며 요리문답 제 일 첫 번째 항목이 “사람의 제 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칼뱅은 이런 우리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을 또 하나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 “내가 어찌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하리요!”라고 했던 바로 그 신앙입니다. 이런 요셉의 신앙이 Coram Deo의 신앙이었기 때문에 언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고 요셉은 항상 형통했습니다. 죄수였던 그가 일약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순교자 본회퍼는 나치 당시 시국이 너무도 캄캄하여 도무지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지도 않을 만큼 절망적일 때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금 비록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 같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변절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에 대해 전혀 의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과연 하나님 임재 앞에 살고 있느냐라고 물을 때 우리 대답은 매우 궁해집니다. 하루에도 숱하게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숱하게 많이 지껄이는 우리들의 말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우리의 대인관계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우리가 교회를 섬긴다고 하지만 우리의 그 섬김 속에 과연 하나님이 계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는다면 우리 생각이 성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사간(公私間)에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땅히 요셉처럼 “내가 어찌 여호와 앞에 득죄(得罪)하리이까?”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오늘 시편 본문은 바로 이 절실한 문제를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이것이 바로 영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고 믿는 마음, 그 임재하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1) 성경에 가장 중요한 사상 중의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일반적으로 “국가”라고 하면 국민, 영토, 주권이 구성의 3요소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하나님의 주권 즉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말합니다. 우리 주기도에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왕국 즉 주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 복음 성가 가사처럼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사시대를 암흑시대라고 하는데 그 시대를 특징짓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때에 왕이 없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무정부 상태의 암흑시대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여기 “왕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물론 당시 이스라엘은 모세, 여호수아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살아지고, 아직 왕국이 이루어지기 전이 과도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궁극적으로는 “만 왕의 왕”이신 여호와를 떠난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사람마다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시편 본문 1절에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13절에는 “주의 통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것은 성경이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 내용이요 교회 신앙고백의 가장 중심 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믿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회개해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우리 왕으로 모시며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순종합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생각이 교회를 움직여 나갑니까? 만일 나와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일 수도 없고 그리스도의 교회일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칼뱅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기치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라는 모토를 제시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이 이 두 가지에서 다 멀리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예수께서 나의 왕이시라면 우리는 내 인생의 캄캄한 밤중에도, 내 일이 풀리지 않고 꼬여만 가는 현실에서도, 힘들고 답답한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 때문에 담대하게 “예수 우리 왕이여, 좌정하셔서 다스리소서!”라고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세상을 향하여 왕이신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데 더 열심을 내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시편 본문 3절에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4절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주께서 행하시는 일”, “주의 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하신 일이 위대하다, 그걸 보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천지 창조는 주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전능하사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습니다. 시139편의 개역 한글판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으심이 “신묘막측하다”고 했습니다. 이 우주와 인간 역사의 복잡한 행로를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중에 이 역사를 끝내실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신 수많은 일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입니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속하여 주신 일입니다.

   원래 목동이었던 다윗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된 것을 생각할 때 다윗이 어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가시밭길 같았던 고난의 세월 속에 지키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 80년을 섭리하신 하나님, 이 아름다운성전 건축을 이루도록 이끄신 일,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하고 찬양할 것 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그의 세심하심에 나타납니다.

   저는 1년 전에 어처구니없게도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느낀 것이 건축헌금 더 하겠다고 작정하고는 바로 드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을 가슴 치며 회개하고 그 다음 주일 부랴부랴 마련해서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 머뭇거릴 때 강권적인 방법으로 재촉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찾게 해주셨습니다. 너무 세심하신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여러분 각자와 우리 교회를 위하여 세심하게 섭리하시고 능력있게 다스리시는 위대하신 우리 왕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3) 오늘 본문이 있는 시편145:17에는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이 바로 “의로우심과 은혜로우심”입니다. 즉 공의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의 공의 앞에 죄인은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공의야 말로 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세상이 변해도 우리 하나님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현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확신과 함께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망이 선고된 죄인들에게 용서와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이것이 은혜입니다. 아무런 대가없이, 무슨 공로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시는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야말로 말로 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필립 얀시는 이 “은혜”라는 말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최고의 단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목마른 사슴같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가장 잘 나타내줍니다.

   여러분이 전도할 때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은 짐을 미리 지워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뭐하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한다.”하면서 마음대로 짐을 만들어 믿기도 전에 움츠러들게 하지 마십시오. 믿음은 바로 “복음”입니다. 해방을 주고, 자유를 주고, 평화를 주고, 소망과 능력을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4) 그러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일입니다. 우리 찬송가의 표현처럼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고 해야 합니다.

   시편146편부터 유명한 “할렐루야 시편”이라 일컬음 받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처음과 마지막에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을 맺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 없이 많이 사용하는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그에 앞서 오늘 시편본문에서는 어떻게 찬양하라고 했습니까?

    a. 날마다 찬양하되 영원히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숨쉬는 순간마다 찬양하며 숨질 때까지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면서 매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찬양했는데 같은 논리로 우리는 쉬지 말고 찬양해야 합니다.

    b. “크게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큰 소리로 찬양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듣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를 위축시킵니다. 평양부흥 100주년에 아프간 사태가 벌어진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여건 때문에 위축당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담대하게 큰 소리로 세상 모든 사람이 듣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c. 그리고 대대로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부여조의 신앙이 자여손에게 잘 승계되어져야 합니다. 앞으로 세대는 신앙생활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앞선 우리들이 제대로 자녀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면 이런 여건들을 다 이기고 마침내 위대하신 하나님, 위대한 복음이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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