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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사람 되게 하소서 (딤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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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되게 하소서 (딤후 3:1-5)

  우리는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답게, 가치 있게, 멋있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며, 꿈입니다. 누구나 다 같이 인생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을 잘 살다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습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고 우리가 깨닫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잠깐 살다가 간다.” 이 진리를 우리는 깨닫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나그네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간다. 내 영혼이 구원함을 받아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산다.” 이것이 우리로 매일 매일을 기쁘고, 여유 있게 좋은 일을 하며, 좋은 인생이 되도록 늘 격려해 주고 가르쳐 주는 우리의 푯대요, 스승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잘 살아야 합니다. 잘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사는데  맞추면 절대로 잘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죽습니다. “나는 멀지 않아 천국 간다. 나는 죽는다. 나는 잠깐인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목표를 정할 때 사는 것도 잘살고, 죽는 것도 잘 죽고, 죽음 다음에도 영원히 갈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죽음이 앞에 있는 사람,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이 세상을 가장 훌륭하게,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 불행, 범죄, 탈선은 내가 영원히 사는 줄 알고 이 세상에 끝없이 나 혼자 오래 오래 살 줄 아는데 있습니다. 있을 수도 없는 이 착각, 이 확실한 진리 앞에서 우리는 어리석은 도모를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누구나 죽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왜 잘 사셨습니까? 예수님은 항상 죽음에 맞추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좋은 일 하신 겁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 와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그 앞에 우리가 나와 있습니다. 주님을 따라 가면 금생에서도 영원히 살고,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살고, 사는 것도 잘 살고 죽는 것도 잘 죽고, 모든 일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를 믿고 새로운 마음, 변화된 마음, 바로 그것은 죽음에다 초점을 맞춘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곽선희 목사님 이야기 중에 늘 감동을 주는 좋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 가정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할아버지가 시장에서 솥장사 하는데 장터에서 전도지를 받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그냥 “예수 믿으세요, 믿으세요.” 하지만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큰 가정을 구원하고, 그 한마디로 동네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를 받고 이 할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고 모든 삶이 새로워졌습니다. 변화됐습니다. 술, 담배, 우상 숭배, 다 끊고 옛날 생활 다 버리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믿고 천국을 바라보는 겁니다.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고, 매 주일마다 거지, 가난한 사람을 그렇게 도와주고, 잔치를 집에 와서 베풀고, 86세를 사셨답니다. 어느 날 오전에 낚시를 하러 가셔서 고기를 잡고 오시더니만 “나는 오늘 간다.”고 그러더랍니다. ‘어른이 왜 이러시나’ 그랬는데 정말 간다고 누우시더랍니다. 그러더니 가족들 다 불러놓고 “나, 오늘 간다. 예수 잘 믿어라. 그리고 내가 가면 장례식을 가난한 거지를 데려다가 일주일동안 잔치를 베풀어라.” 그리고 소년인 곽선희 목사님의 손을 잡고 “너는 남쪽으로 가서 목사가 되어라.” 그러더랍니다. 그 유언을 이어받아서 내려와서 목사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곽 목사님은 ‘예수 믿으면 저렇게 멋지게 사는 구나. 멋지게 죽는 구나. 죽을 때도 저렇게 멋지게 유언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죽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교단이 존경하는 문장식 목사님이라고 사형폐지 운동을 하는 훌륭한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20년 동안을 사형수만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는 우리 기독교의 대표입니다. 가톨릭, 불교, 기독교에도 한 분씩 계시는데, 거기서 사형할 때 유언을 받는다든지, 기도해 달라고 그러면 자기 원하는 종교대로 기도도 해 주고, 마지막에 전달 할 것도 다 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을 보면 두 가지로 나타난 답니다. 끝까지 안 죽으려고 그러고, 반성 안하고, 수십 명 죽여도 이 사회가 정치가 부모가 잘못하고, 전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너무 죄송해서 잘못했다 그러고 울고 회개하며, 기도해 달라고 그러고 찬송까지 부르고 가는 분이 있답니다. 사람은 자꾸 안 죽으려고 그러고 피하려고 그럽니다. 안 죽으려고 그러면 안 죽어집니까? 다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은 또 언제 찾아올지 모릅니다. 왜 일찍 오냐고 그러면 안 됩니다. 일찍 올 수도 있고, 늦게 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한테 기도 받으러 와서 “내가 왜 죽어야 됩니까?”합니다. 제가 어떻게 압니까?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찍 죽어야 합니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30세만 되면 모든 일이 하향합니다. 세포도, 기억력도, 입맛도 다 줄어듭니다. 안 줄어드는 것이 없답니다. 시력도 그때부터는 줄어든답니다. 그래서 어떤 선수도 30대가 되면 모든 분야에 절정이 옵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내려갑니다. 어디로 갑니까? 죽음으로 갑니다. 임금에게도, 왕자에게도, 젊은 30대중전도 다 갑니다. 임금님의 시해가 그렇게 많습니다. 다 갑니다. 미국 대통령 딸, 아들도 다 갑니다. 우리나라 제일 큰 병원 원장들도 원장으로 있으면서 가는 분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내가 원장이면 안 가는 겁니까? 대통령이면 안 가는 겁니까? 어리면 안 가는 겁니까? 누구든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게 교인이며 인생입니다. 100% 갑니다. 한 사람이라도 남는 사람이 있으면 억울하지만 다 갑니다. 오는 것이 아침에 올지, 점심에 올지, 저녁에 올지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출근했다가 퇴근 못하는 분이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침에 인사할 때 잘하고 가라는 겁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악수하고. 미국사람은 헤어지면 반드시 키스합니다. 못  돌아올 수 있으니까. 오늘 키스하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는 이런 것을 모릅니까? 모두 갑니다. 그래서 겸손합니다. 그래서 서둘러서 좋은 일 많이 하는 겁니다.

  이분만 그런 게 아닙니다. 빌 게이츠 보십시오. 지금 그분은 55세입니다. 그런데 죽을 준비 다 합니다. 재산, 거의 다 내놓았습니다. 저 나라 가려고, 선한 일 많이 하다 가야 된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무엇이 다릅니까? 죽음이라는 것을 알고 늘 준비하며 살기 때문에 그 나라를 위해서 늘 좋은 일 하는 겁니다. 사랑해 주고 도와주며, 불쌍히 여겨주고 긍휼 베풀며, 먹을 것을 나눠먹고 인자하며, 자비하고 모든 분들을 도와주며, 이게 교인의 삶입니다. 좋은 일 하다가 좋은 나라가야지, 저 영원한 나라에 좋은 사람만 들어가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할렐루야! 

  미국에 유명한 세계적인 부자가 있습니다. 빌 게이츠보다는 두 번째 부자인데, 이분이 워런 버핏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이번에 자기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를 내놨습니다. 다 내놨습니다.  어려운 분들, 암, 에이즈, 불쌍한 나라들을 위해 다 내놨습니다. 남은 15%도 곧 내놓겠답니다. 자녀에게 안준답니다. 기독교 국가의 철칙은 그게 다릅니다. 자녀에게 안줍니다. 왜 그러냐하면 자녀는 자녀의 복이 있다는 겁니다. 카네기도 13살에 미국 이민 가서 예수 잘 믿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학력 전부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니 복 받습니다. 미국에 1등 부자 되어 이분이 교회에 기증한 오르간만 7천대입니다. 오르간 없는 곳에서 다 와서 신청하면 다 해 주고, 도서관을 2900개, 대학도 세웠습니다. 록펠러도 그랬습니다. 그게 교인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세상 사람은 임종까지 모릅니다. 가는 시간까지 모르고 발악합니다. 

  병원에 암 걸린 분만 나가는데 있지 않습니까? 60일 되면 거기 가서 보호받다가 돌아가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호스피스. 그런 시설이 있습니다. 호스피스 동에 가면 자기는 이미 끝난 겁니다. 그런데도 거기서 끝까지 은행 저축통장, 문서, 다 가지고 와서 시간만 있으면 그거 적고 계산하고, 간호사가 보면 기가 막힙니다. 저분은 갈 때가 됐는데도 자녀들한테 끝까지 안 넘겨줍니다. 자녀에게라도 넘겨줘야지, 사회에 조금이라도 좋은 일 하다가 가야지, 어떤 분은 거기 와서 간호사를 어쨌든 꼬셔가지고 살려고. 간호사는 다 아는데. 저 어른이 이제 곧 가게 되었는데도 나하고 같이 나가서 잘 살자고 그런 답니다. 가는 걸 모릅니다. 그게 차이입니다. 이 세상 영원히 사는 줄 압니다. 그래서 욕심냅니다. 끝까지 욕심 부리고 교만하며, 남을 해롭게 하고, 그렇게 사는 겁니다. 

  우리 성도들은 끝까지 남을 좋도록 하다가 가야 됩니다. 남을 해롭게 하면 다 내게 돌아옵니다. 남에게 주는 것은 좋은 것이 돌아오지만 남을 나쁘게 하면 나쁜 것이 돌아옵니다. 남을 해롭게 하면 그 사람만 해로움을 당하고, 내가 빼앗아 잘 살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의 것도 빼앗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다 내게 돌아옵니다. 제가 어떤 영화를 저녁에 한번 보니까 그런 게 나왔습니다. 대감 집에 딸이 둘이 있었는데 한 딸은 전처의 딸입니다. 자기는 이제 와서 딸을 낳았는데 혼인 말이 나오는데 자꾸 그쪽에서 전처 딸을 좋아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부인이 어떻게든 전처 딸을 없애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그렇게 학대하더니만 집에 있는 종을 통해 오늘 딸을 저쪽과 결혼하려면 공을 들여야 된다고 그래서 공들이는 곳에 그 종이 기다렸다가 강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가 그것을 짭니다. 그러면 이 딸은 양심에 가책이 되면 못사니까 목매어 죽지 않겠나, 약을 먹고 죽든 죽을 테니까 그쪽으로 이끌어갑니다. 이것을 누가 들었느냐 하면 몸종이 들었습니다. 몸종이 듣고는 저녁에 그 어머니 딸인 아씨한테 가 그 딸을 그쪽으로 유인해 갑니다. “오늘 저녁 거기에서 공을 들이면 내일 선을 볼 때 참 좋답니다.” 이래서 딸이 거기 가서 공을 들이는데 그만 종이 딸도 모르고, 좋으니까 폭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딸은 너무 원통해서 거기서 목을 매어 죽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전처의 딸이 죽었는지 알고 밤늦게 서서히 갑니다. 가보니까 세상에 웬일입니까? 전처의 딸이 죽은 게 아니라 자기 딸이 죽은 겁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울고 가슴을 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 남을 해롭게 합니다. 나 하나, 막가파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대로 종말입니다. 말세입니다. 개인적으로 종말입니다. 가정이, 시대가 종말입니다. 종말은 자기는, 나만 살아야 되겠다고 하고 오늘 본문에 17가지 나오는데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이게 불행한 일입니다. 남을 유익되게 해야 내게 유익이 됩니다. 남에게 줘야 좋은 것이 옵니다. 사랑해 줘야 내가 행복해 집니다. 남을 좋게 해야 됩니다. 할렐루야! 

  “돈을 사랑하는 것” 너무 돈을 사랑합니다. 부모도, 형제도 없습니다. 돈만 봅니다. 돈 따라 갑니다. 이것은 고통 하는 인생입니다. 그의 인생, 잘 못 삽니다. 죽지도 잘 못 합니다. 잘 못 살다가 잘 못 죽습니다. 이런 인생은 천국 문도, 땅의 문도 굳게 닫힙니다. 자기 사랑하고 돈 사랑하고, 그래서 유명한 벵겔이라는 학자는 악의 첫째 뿌리가 자기 사랑, 둘째 뿌리가 돈 사랑이고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니면서 얼마나 살 겁니까? 사랑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주일 얼마 지킬 겁니까? 주일 몇 년 지킬 것 같습니까? 1년이 52주인데, 백년 해 봐야 얼마입니까? 5200. 5200 주일을 지킬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몇 십 년 해 봐야 그 몇 백번 지키다가 가는 건데, 그것을 못해, 힘들다 그러고. 이번에 추수감사절, 우리가 감사절 몇 년 지키겠습니까? 좋은 일 하고 다 와서 먹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할렐루야! 

  “자긍하며” 그랬습니다. 이것은 잘난 척 하고, 말로 남을 멸시하고, 요새 흔히 악플 족, 추악한 글을 올려서 남을 중상모략하고 험담하며, 헐뜯어내는 사람을 악플이라고 그럽니다. 우리는 선플이 돼야 됩니다. 선한 말 쓰고. 할렐루야! 자기가 거두는 겁니다. 돌아가는 겁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럽니다. 자기에 대해서 수천 개의 글이 올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공격해서 조사를 해 봤답니다. 해 보니까 7명이 밤낮 들어앉아 그 짓만 하더랍니다. 자꾸 다른 이름으로. 오늘 밥만 먹고 그런 짓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다 자기에게로 돌아갑니다. 

  “교만하며” 그랬습니다. “남을 무시하고” 이게 다 종말론적입니다.

  그 다음에 “훼방하며” 막말하는 사람입니다. 자긍하는 말보다 이 말은 더 분리를 시키고 대립시키며, 분열을 가져다주는 아주 훼방하는 말입니다. 다 사탄으로부터 옵니다. 우리 성도들은 말도 은혜로운 말, 소금을 치라고 그랬습니다. “말할 때마다 소금을 치라.” 양념이 들어간 말을 하라는 겁니다. 은혜로운 말, 감사의 말, 사랑의 말, 이해하는 말, 덮어주는 말, 불쌍히 여기는 말, 남을 세워 놓고도 막 공격하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다 목사라고 그러고, 하나님의 종이라고 그러고, 말하는 걸 보면 다 안다 그러는데, 그게 다 악마에게 속했는데 무슨 주의 종들입니까? 말을 들어 보면 국적이 들어나는데, 말보면 전공도 들어납니다. 남을 공격하고 나 살려고 하는 것이 다 악마지, 무슨 천사의 말입니까? 천하에 없는 논리를 갖다 붙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오는 겁니다. 사랑의 말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집에서도 좋은 말만. 잠깐 사는 세상에 왜 남에게 못 박히는 말을 합니까? 부드러운 말, 은혜로운 말하고 유머를 많이 해야 됩니다. 괴롭고 힘들어도 유머를 많이 해야 됩니다.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속상합니다. 새벽에 어디 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면 힘듭니다. 문 열어달라고 그러면 힘듭니다. 그러나 그때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꼬꼬” 새벽에 오니까 닭이 운다고 그래서 “꼬꼬”. 남편이 그만 회개하고 일찍 들어옵니다. ‘집에 닭이 우는 구나. 내가 새벽에 오니 얼마나 울었겠나.’ 그러면서 딱 회개 합니다. 그 다음 자고 오면 그것은 남남이지 않습니까? 개처럼 짓는 겁니다. “멍멍” 집이라고 오냐 말입니다. 말로 하지 말고 그런 식으로 하면 남편이 웃고, “미안합니다.” 하며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사회를 어떻게 부드럽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보십시오. 지식이 발달하고 우리의 외모도 아름다워지며, 여유도 있고 모든 것이 좋아졌지만 우리말은 전부다 강퍅하고, 가시가 돋치고, 독이 가득차고, 말속에 전부 미사일을 담으니 가는 곳곳마다 파괴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부드러운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부모를 거역한다” 그랬습니다. 우리 모두 부모님이 낳아주시고 길러주시며, 먹여주시고 목욕해 주며, 젖 먹이고 어머니 등에 업혀서 컸습니다. 부모님을 잘 모셔야 됩니다. 이 세상에 제일 아름다운 게 부모 잘 모시는 겁니다. 우리 교회 나올 때 젊은 부부 나오는 것 예쁩니다. 아이들 데리고 오는 것 예쁩니다. 그러나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겁니다. 부모님을 부축해서, 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우리 쓰다듬어 줘가지고 컸지 않았습니까? 우리 교인 가운데는 친정어머니도 모시고 시어머니도 모시는 분이 여러 분 있습니다. 너무 잘 모십니다. 이 어머니끼리 시기 질투도, 할머니들은 둘이 그런 경우가 있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잘 모시고 용돈 드리고, 사람이 성공해서 뭘 하겠다는 겁니까? 출세? 몇 년 할 겁니까? 권력 몇 년 잡을 겁니까? 다 내려오는 자리인데, 천하에 없는 자리. 집에서 여러분 부모님의 할 일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백발 앞에 고개를 숙여야 됩니다. 감사치 않습니다. 잘못된 삶입니다. 다 있어도 하나님을 감사해야 됩니다.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완석 목사님께서 암 걸려 병원에서 수술하자 그러는데도 이만하면 됐다고. 내가 80 넘도록 하나님 은혜 가운데 살았는데 수술 안 한다고. 그래서 더 건강하게 오래 사셨습니다. 아프지도 않고 2년 잘 지내셨습니다. 암 걸려도 우리 교회에 두 번이나 설교하셨습니다. 몇 번이나 설교하시면서 우리 명성교회 고맙다고, 여러분 고맙다고. 그리고 가실 때는 천사같이 고요히 가셨습니다. 이렇게 모두 감사하고 선한 일 많이 하는 분은 사는 것도 잘 살고, 가는 것도 잘 가고, 간 다음에도 천국 가서 영원히 사니 이런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정말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는 하늘나라에 맞춰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요새 너무 속된 걸 좋아하고, 불의하고, 추하고, 더럽고, 음란하고, 타락하고, 이런 악한 길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생각도, 생활도 거룩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무정하고”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오늘 산업사회 정보화 시대에 지식이 발달하고 이렇게 도시화되면서 정은 다 끊어졌습니다. 부모, 형제, 자녀 정이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만나면 반갑고 대접하고 싶으며, 사랑하고 서로 이렇게 해야 되는데, 막 따지고 원칙가지고 그러고 천한 것도 서로 서로 생명 걸고 소송하고. 저는 아직까지 소송을 한 번도 안했습니다. 제가 소송할 것 같으면 안전히 망칠 사람 많습니다. 죽여 놓을 사람도 많습니다. 그것은 명예훼손 하나 걸면 모두 그럽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앞으로 소송은 안합니다. 얼토당토하지 않습니다. 0%도 없는 일가지고 그러면서 모두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 앞에 그래야 되겠습니까? 소송 막 해 대고, 검찰에 고발 막 하고. 

  여러분! 이 사회를 왜 이렇게 망칩니까? 오늘 교인들이 더 합니다. 주의 종들이 더합니다. 이 좋은 시대를 왜 이렇게 정이 뚝 떨어져 나가고, 이렇게 살벌한 사회, 강퍅한 사회, 동물도 안 그럽니다. “동물의 왕국” 봐도 동물이 안 그럽니다. 동물이 소송하고 그럽니까? 우리 모두 사랑하며 삽시다. 짧은 인생 잠깐인데 양보하고 이해하며, 좀 안 되면 기다리고 좀 손해 보며, 말 들으며 살면, 다 될 걸 가지고.

  다음은 “원통함을 풀자”입니다. 아주 원한을 갖고 있습니다. 속에 미움을, 섭섭한 것을 안에 갖고 있으며, 누구 말 하나 들으면 그것을 속에 늘 갖고 있습니다. 다 없애버려야 됩니다. 부부간에도 섭섭한 말 하지 않습니까? 못 박힌 말 하는 겁니다. 저도 사람이 덜 되어 집사람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그러고 교회에 와서는 또 “찬송합시다.” 그러고. 그래도 늘 집사람은 그런 걸 이해를 잘합니다. 또 집사람도 제게 아픈 말을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그런 말을 듣지만 들은 즉시 잊어버립니다. 부부간에, 자식에 대해서, 부모에 대해서도 그런 걸 마음에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목사님에 대해서 혹시 섭섭한 마음을 속에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게 병이 되고 나쁘게 됩니다. 어디 누구에게라도 혹시 속에 뭐 있으면 털어버려야 됩니다. 내 안에 주님만 모시고.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겁니다. 주님을 보는 겁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되는 겁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내 안이 천국이 될지언정 원한이 내 안에 자리를 못 잡을 줄로 믿습니다. 증오와 미움과 이 악한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늘 기도하고 주의 평화가 우리를 주장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고, 조급하고, 자고하고” 다 모두 그런 말들입니다. 자기중심, 자고하고 내가 잘 났고. 항상 남 잘 되게 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지난번에 우리 총회에서 부총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제가 이 말을 안 하려고 그랬는데 제일 어려운 것이 투표를 제가 누구를 해야 되느냐가 힘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생각도 안하다가 그런데 이게 몇 번 동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봤습니다. 딱 동점이 나오는 겁니다. 동점이 나오니까 완전히 그 다음에 바뀌는 겁니다. 서로가 표 관리를 철저하게 하니까 이겨도 많이 못 이깁니다. 어떤 분은 20표, 10표, 5표, 그러고 동점도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항상 몇 차 선거가 계속 이어나가는 겁니다. 제가 찍으려고 그러는데 손이 어디로 가야 되느냐. 이 얼마나 오랫동안 기도를 하는데. 제가 기도하는 중에 ‘내가 안 되더라도, 내가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떳떳해야 된다.’ 제 친구를 딱 찍었습니다. ‘너 되라’ 상당히 머리는 복잡한데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나오는데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 그런데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려운 순간에도 정말 이것 큰 어려움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남을 생각해야 됩니다. 내 친구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오늘 나온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앞으로도 과학은 무한히 발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 그 소중한 인간관계는 다 단절되고 허물어지며, 사람 만남이 무서워지고 서먹서먹해 지며, 우리 안에는 너무 증오가 이글이글하고 앞으로 더하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앞으로 서로가 걸어 다닐 수 있겠습니까? 이 땅 위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인 우리가 얼마 산다고, 다 가면 다 나그네인데, 야곱이 말하기를 “내 나그네의 길은 130세라.” 성경은 우리 인간은 저 본향을 향하여 달려가는 경주자라고 합니다.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찬송가 434장)

  히말라야 고산에는 두 가지 형의 양이 있답니다. 풀을 뜯어먹으면서 아래로 내려오는 양들은 나중에 죽는 답니다. 풀을 뜯어서 위로 올라가는 양들은 끝까지 살 수 있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악한 세대, 되는 대로 막가파식으로 나 하나만 살아야 되겠다고 하는 이런 치열한 세상으로 나가면 우리는 같이 죽습니다. “너 그래라” 그러고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할렐루야! 유명한 장기려 박사는 북한에서 김일성의 주치의이고, 북한병원 원장으로 있다가 다 버리고 남한으로 내려와서 부산에 병원을 세워 전부 가난한 분을 위해서 일하다가 막사이사이상까지 받았습니다. 월급 받아서 전부 환자들 다 대주고, 돈 못내는 환자는 밤중 되면 전부 다 진찰하러 다니다가 뒷문으로 옷 입혀 가지고 도망쳐라 그랬습니다. 원무과는 그 다음 날 일어나보면 환자가 없어 어디 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고, 장기려 박사가 다 빼주었습니다. 교인이지 않습니까? 교인은 자기 가는 것을 아니까. 그래도 이분은 가셨지 않습니까? 좋은 일 하다가 가는 겁니다. 가는 걸 알고 사니 그렇게 잘 사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는 것을 모르고 살면 어떻게 됩니까? 다 죽는데, 죽음이 왔을 때 막 안 줄겠다고 그러고 그것이 됩니까? 안 됩니다. “가겠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벽기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이제는 좀 천국 가서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야지. 할렐루야! 

  오늘까지 지내오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온 여러분! 부부간에도 사랑하고, 황혼이혼이 우리나라에 너무 많다고 합니다. 말이 됩니까? 나이 60 되고, 50 되어 가지고 무슨 이혼입니까? 또 이혼해 젊은 사람하고 살려고 그러고, 사람입니까? 그러면 젊은 사람 만나면 일찍 죽습니다. 더 빨리 죽습니다. 노인은 노인끼리 만나야 됩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고 이야기하며, 친구가 되십시오. 왜 자꾸 이 사회가 그럽니까? 내가 헤어지면 또 아이들이 얼마나 불행해 집니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는데 겹겹이 왜 자꾸 그런 상처를 만드느냐 말입니다. 또 새로 시작하면 얼마나 어려운데 몇 년 더 산다고, 잠깐인데 왜 그럽니까? 65세에 결혼식해 보세요. 말이 됩니까? 창피해서 제가 말도 못합니다. 좀 그러지 마십시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좋은 날이 오는데, 그리고 사랑하고, 김치계절이 오면 김치 열심히 담고, 몇 번 못 담으면 끝나니까. “또 김치 담아야 되나요?” 그러지 말고, 김치 몇 번 담그고, 올해 맛있게 담아서 먹자 이렇게 해서 김치 양념 넣고, 굴젓도 넣고, 맛있게 해서 온 식구가 먹고 오늘 하루가 얼마나 귀합니까? 이렇게 해서 살아있는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감사하다, 감사하다, 그러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고, 더 감사할 수 있고, 거룩하게 살 수 있고, 믿음으로 살 수 있고, 도와주며 살 수 있고, 기쁨으로 살 수 있고, 잘살 수 있고, 건강하게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죽는다라는 것 하나만 알고 살면 성격도 10배나 좋아지고, 절제도 10배나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도 못 참냐? 얼마 안 있으면 다 가는 세상인데 참아야지 참는 것도 잘 참고 다 잘 살 수 있습니다. 좋은 소리 들으면서 멋지게 사는 축복된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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