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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마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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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마 6:19-24)

언제가도 말씀 드린 바 있는 책입니다만[리처드 칼슨(Richard Carlson)]의 베스트셀러 중에<우리는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Don't Sweat the Small Stuff with Your Family)>라는 책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책입니다. 지극한 평범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며 일어나는 내적인 문제들을 100가지 항목의 칼럼으로 되짚어 놓은 책입니다.

칼슨의 말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쁜 소식을 듣거나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실망스러운 일에 부딪히면 과민 반응을 보이거나 마음의 평정을 잃고 짜증을 부리거나 화를 내고 좌절감을 갖는 것이 보통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마치 위급하고 대단한 문제가 일어난 것처럼 행동을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든지 삶을 보다 편안하고 쉽게 만들며 어려움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우 부드럽고 우아한 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 길을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말라. 둘째 ,모든 것은 다 사소하다. 사실은 두 번째의 말에 문제의 해결점이 다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이 문제는 큰 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일 뿐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만큼 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은 곧 지극히 평범한 일 하나를 내가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고 아무 문제 아니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내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을 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모든 불행과 근심, 심지어 스트레스라고 하는 것도 자기 내부에 있는 겁니다. 그런고로 언제나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 자기 진실에 대한 것을 바로 찾으면 그렇게 걱정하는 큰 문제가 아무 것도 아닌 문제로 풀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 역시 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뭐니 뭐니 해도 인간은 가장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실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란 존재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 앞에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도대체 나를 어떻게 보아야 됩니까?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 보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는 쉬운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답이 쉬운 문제를 두고 시시하다고합니다만 하지만 오늘 이 문제는 그 대답이 쉽다고 시시한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존재케 하는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고 선택이 있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만물 앞에서는 주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되어진 자(becoming)요, 만물 앞에서는 존재자(being)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생성 되어진 자로서 또한 현실적으로 존재해 가는 인간 존재의 본연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이 말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섬겨야 할 대상이고 만물은 다스려야 할 대상으로 두고 있는 중간자가 인간이라는 말이 됩니다. 자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 인간 본연의 자세를 잃어버리고 두 가지의 잘못을 저지르며 삽니다. 하나는 내가 다스릴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면서까지 스스로 존재한다고 교만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한 정말 큰 죄입니다.

또 한 가지는 만물은 우리가 반드시 다스려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만물에게 매여서 사는가하면 오히려 만물을 섬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을 섬기는 것은 죄입니다. 무슨 죄인지 아시죠? 우상숭배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것과 우상 숭배하는 것, 이 두 가지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분명한 우리의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는 신앙적으로 살아야 하고, 만물 앞에서는 주관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 존재 본연의 위치를 항상 명심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 중요한 대답을 주십니다."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이게 무슨 말씀인지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과 나와 만물의 관계 속에 바른 궤도에 서 있어야합니다. 사람은 환경의 존재가 아닙니다. 이 말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존재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창조할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22절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보면“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사람이 무지하면 이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무지도 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면서 그 다음에 뭐라고 하셨습니까?“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지한 것은 사함을 받아야 할 죄인 것입니다. 자기가 노예인지도 죽어가는 지도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짓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거든요. 돈의 노예가 되고 명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존심의 노예가 되어서 줄줄 끌려가고 있으면서 자기는 그대로 서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돈을 벌어서 자유한 줄 알았는데 돈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출세하면 그것으로 자유 할 줄 알았는데 명예의 노예가 되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감정과 분노, 한과 억울함, 정욕과 욕심에 끌려가면서 눈이 어두워지면 비참한 것입니다. 이런 비굴한 자기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이 온몸의 등불인데 이 눈이 어두워지면 온 마을, 온 세상이, 모든 환경이 얼마나 어둡겠느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아야 할 것을 올바로 보고, 지켜야 할 것을 온전히 지킬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단호합니다.“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절대로 같이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아마도 아들에게 정신이 팔려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등한시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느 날 결정적인 순간을 주십니다.“네 아들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내게 바쳐라.”이 말씀 앞에 아브라함이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원래 내게 없었던 그 귀한 아들을 내게 주신 하나님이냐, 나를 기쁘게 하고 내게 살맛을 주는 아들이삭이냐 두 길에서 한 길을 택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 순간 결단을 내려 아들을 바치기로 하는 아브라함의 위대함을 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삭이 생의 주인이 되어 있었던 것을 아브라함이 깊은 신앙심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두 친구는 있을 수 있으나 두 애인은 안 됩니다. 두 종은 있을 수 있으나 두 주인은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만물을 지배하고는 살지만 하나님이 둘은 될 수 없습니다. 이 진리를 어느 정도의 각오로 지켜야 하느냐 하면 바울에게서 그 각오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5:24절에서“정과 욕심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았노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맙시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모든 것을, 즉 나의 목숨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그 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매사에 어느 쪽입니까? 하나님과 사람, 어느 쪽입니까? 하나님과 재물, 어느 쪽입니까? 여러분 이거 아십니까?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버리게 하십니다. 내가 헐어 버리지 못하는 우상은 하나님께서 허물어 버리십니다. 만약에 내가 내 명예나 내 자존심을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어느 순간에 그것을 제거하실지 모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한 주인을 섬기기 위해서는 다른 한 주인에게는 배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한 주인을 섬기고 다른 주인은 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인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정말 중요합니다. 다행히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택에 도움이 되는 결정적인 힌트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이 이어지는 마지막 부분 마6:33절입니다.“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우리가 섬겨야 할 주인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래도 못 알아듣고 깨닫지 못한다면 그 무지의 죄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재물을 섬기면 분명히 하나님을 섬기기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허락하실 때는 그 재물을 다스리도록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재물이 나를 섬기게 만들고 내가 재물을 다스려야합니다. 재물과 나는 임시적으로 이어져 있을 뿐입니다. 돈이 내 인격보다 앞설 수 없고, 돈이 내 신앙보다 앞에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가장 아래에 있어야 할 것들일 뿐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스려야 할 만물에 지배 받는 어리석음이 없어야 하겠고 또한 다스림에 있어서 하나님이 되는 교만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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