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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신 1: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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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신 1:29-33)

2007년도를 들어선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1월이 되었고 다음주일로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한 해를 잘 살아온 것은 모두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난 1월부터 우리에게 일어난 중요한 일들과 사건들을 떠올리며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해야겠습니다.  사도바울은“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우리도 지난 한 해를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노라고 고백하고 증거해야겠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하)고 했습니다.  우리는 금년에 어느 해보다도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했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감사해야겠습니다.

오늘은 구약의 말씀을 본문으로 정해보았습니다.  신명기란 책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설교하신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란 책을 영어로는 Deuteronomy라고 하여 그 뜻은 “두 번째의 율법”이라는 뜻입니다.  신명기라는 책은 중국어 성경에는 재명기(再命記)라고 하여, 재차 명하신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의 이름을 붙일 때에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단어나 그 책의 중심인물을 따서 책명으로 정하였습니다.  신명기에 나오는 두 단어는 “엘레 하데바림”인데,“이는 말씀들이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앞에 있는 지시대명사인 “이것은”이라는“엘레”는 떼어버리고 “그 말씀들”이라는 뜻으로 “하데바림”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이 신명기의 내용이 권면과 책망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에 본서를 “세페르 토카호트”라고 하여 “책망의 책”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제2의 율법”, “율법의 반복”이라는 뜻으로 “듀테로노미온”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주교회의 공인 성경인 교부 제롬이 번역한“벌게이트역”에서는 70인역을 따라서 “듀테로노미움”이라고 하였고, 영어 성경은 “벌게이트” 성경을 따라서 Deuteronomy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한글 개역성경에서는 신명기(申命記)라고 하였는데, “계명을 자세히 설명하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의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새로운 세대, 출애굽2세대들에게 다시 한 번 율법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계약인 시내산 언약에 있어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모세는 아직은 율법에 익숙하지 않는 후손들에게 율법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실생활에서 적용하라고 해석해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몰락한 구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답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가장 강력한 교훈은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말씀 선포가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설교할 때는 성경을 가지고 설교하게 됩니다.  딤후3:16-17에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는 책망의 말씀, 교훈의 말씀, 바르게 하는 말씀, 의롭게 되는 길, 의롭게 행하는 길에 대하여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하여 강조해야 하고, 확대 해석하고 적용하고 말씀을 거울삼아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동행해주신 하나님,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긍휼을 베풀어주신 은혜, 어려운 순간에도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만나시고 돌아가시를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모압 평지에서 백성을 불러 모았습니다.  신1:5에 보면 “모세가 요단 저쪽 모압 땅에서 이 율법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된 이유를 정탐꾼의 사건에 찾고 있습니다.  모세는 호렙산을 떠나 가데스 바네아라는 지역으로 왔을 때에, 가나안의 7 부족의 하나인 아모리 족속의 땅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신1:21입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백성들이 모세 앞으로 나오면서 “우리가 사람을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모세도 그 말을 좋게 여겨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 것입니다.  그들이 산지를 이용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40일을 정탐한 후에 돌아와 보고 하였습니다.  정탐꾼들은 모세에게 보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가본즉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입니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참으로 좋은 땅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가지고 온 포도송이와 무화과와 석류를 보여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라고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아모리 사람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 사람은 해변과 요단에 거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을 듣던 백성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에 정탐꾼의 한 사람이었던 유다 지파의 갈렙이라는 사람이 백성들을 조용하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외쳤습니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10명의 정탐꾼이 합세하더니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전까지 좋은 땅이라고 칭찬하던 그 사람들이 가나안 땅을 악평하였는데,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거인족의 후손인 아낙자손을 보았는데,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정탐꾼 중에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들의 옷을 찢으며,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으나, 온 회중은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을 향하여 돌을 들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회막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죽었을 것입니다.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데스 바네아 정탐꾼 사건 이후에 40년 세월을 보내고,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옛날을 회상하면서 불신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가나안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2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그들”이라고 하면 가나안의 7부족들과 그들의 성읍, 그들이 세운 성곽이나 요새라도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앞장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말하기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민 14:9)고 했습니다.  우리의 먹이라, 우리의 밥이라는 말입니다.

모세는 이제 가나안 땅의 주역이 될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3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이스라엘을 ‘위하여’, 오늘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역사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목전에서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합니다.

1)  먼저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새번역에서는 인도하신다고 했는데, 원문에는 가다, 걷는다는 “홀레흐”라는 말은 현재 분사로 능동형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함께 걸으시고, 예전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언제나 함께 동행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뒤에 가거나 나몰라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금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뿐이지 지나놓고 보니 하나님은 언제나 나 보다 앞장서 가시고 있었습니다.  목회는 하나님의 목회인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항상 앞장서 가시고 있습니다.  먼저 가시는 하나님, 앞장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은 애굽에 있을 때에나 지금 광야를 지나오거나,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을 응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물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바울의 간증을 들어보면 그는 이런 고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후1:8-11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 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 과거에 큰 사망에서 건져주셨고, 또 지금도 건져주시며, 앞으로도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대적과 싸우시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애굽의 바로와 싸우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싸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에는 싸우시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쟁의 장면을 상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기 위하여 애굽 땅에 10가지 재앙을 퍼부으셨습니다.  그러나 싸움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광야로 보내시면서 홍해 앞에 서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애굽을 섬멸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유인책이었습니다.  바로가 생각할 때에, 이스라엘이 도망가려고 하면 탁 트여진 지중해 해안 길을 따라서 가야 살 수 있는데 광야로 가는 것을 보니, 길을 찾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고 있구나, 가서 잡아오면 다시 노예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면서 까지 이스라엘을 뒤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의 병사들이요, 이스라엘은 광야 끝에 갇혀버렸습니다.  바로는 선발된 병거 600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였고, 지휘관들은 남겨두지 않고 다 출전하게 하였고, 군대를 동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인구가 약 300만 명 정도라고 하면 수십만의 군인을 동원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완악한 바로는 전 군대를 출전하게 한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잡기 위하여 마병을 앞세우고, 뒤로 병거를 달리게 하고, 마지막에는 온 군대로 따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로 건너가게 하시고, 이스라엘 진영 앞에 가시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가니 구름 기둥도 옮겨가서 애굽의 진영과 이스라엘의 진영 사이에 섰습니다.  애굽 쪽은 캄캄한 흑암이요, 이스라엘 쪽은 밤에도 대낮 같이 밝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군사를 홍해 안에 수장시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면 아주 확실하게 끝내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에 창세12:3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 되어주시고,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3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에서 우리를 안으셔서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행동을 그림 언어로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관념이나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전쟁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말씀했고, 이제는 부모가 자식을 안아주는 지극한 사랑을 상상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안으사” “그가 너를 안으셨다.”라는 말입니다.  안아주시는 사랑은 지극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길을 건너갈 때에 시간을 없는데, 빨리 건너가야 하면, 우리의 어린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안거나 업어서 길을 건너가는 것입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이 힘에 부쳐 주저앉으면 부모는 아이를 안고, 업어 보살펴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사실적으로 표현하시려고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으는 예를 들었습니다.  마23:37에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은 지극한 사랑이요, 우리에게는 분에 넘치는 사랑입니다.  그런 안아주고, 업어주시고 품어주시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3절 말씀입니다.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길을 가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진을 칠 곳을 찾아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우리가 갈 길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보다 앞장서서 길을 가보시고는 내가 가본 길이니 가도 좋다고 이 길로 가라고 지시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항상 앞장서서 가셨습니다.

이사야45:1-3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꺽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정지작업까지 하시고 우리를 평탄한 길을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어주신 종들에게 그렇게 힘이 되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어려운 역경을 만나도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우리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은 좋은 때에는 믿어보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초지일관하는 신앙, 전천후신앙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를 당신의 천국까지 인도하시고 구원을 지키시고,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게 하십니다.

저는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먼저 가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역경이 결코 역경이 아니며, 지금의 순경도 순경이 아닙니다. 지나놓고 보면 역경도 은혜요, 순경도 연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즐겨 부른 복음성가 중에 “주님 내 길 예비하시니 나 기뻐합니다.  주님 내 길 예비하시니 나 기뻐합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 이레 주님 내길 예비하시니 여호와이레”라는 가사였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한국전쟁 중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만삭이 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하여 어떤 친지의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집에 이르지 못하고 길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어머니는 어느 다리 밑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아이를 분만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어머니는 모든 것을 혼자 수습하고는 아기가 춥지 않도록 자기의 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었습니다.  해산 직후에 어머니는 추위에 그만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어느 미군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습니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디선가 이상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장교는 기막힌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 죽었고, 어머니의 옷에 둘러싸인 갓난아기가 몹시도 울고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시기 위함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장교는 사내아기를 미국으로 데려다가 양자로 삼아 잘 길렀습니다.  아이는 미국에서 훌륭하게 자라 준수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자기의 출생에 대하여 알고 싶어 하던 아들은 어느 날 양아버지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 한국에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기의 옷을 벗어 무덤을 덮으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하여 어머니는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어요.”라고 다짐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를 대적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싸워주시고 보호하시는 은혜, 안아주시고, 품어주시고, 싸워주시는 그런 지극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오늘의 은총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우리 주님의 지극한 사랑에 감사하면서, 이제는 성령의 밝은 조명 속에 살겠다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시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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