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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가 성공이 되는 비법 (눅 22: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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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가 성공이 되는 비법 (눅 22:31~34)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저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34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지금은 Q 시대라고 합니다. Q가 좋아야 성공한다고 합니다.
IQ는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라는 것은 다 잘 아실 것입니다. 지능의 정도를 총괄하여 나타내는 수치로 보통 지능지수라 부릅니다. 과거에는 이것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할 때도 있었습니다.
EQ는 감성지수 (Emotional quotient)라 합니다. 지능지수(IQ)와는 질이 다른 지능으로, 마음의 지능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MQ는 도덕 지수(Moral quotient)라고 합니다. 도덕성 지수. 즉 양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준법성’인데, MQ는 자녀가 부모에게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양심적이면 자녀의 MQ가 올라가고, 부모가 비양심적이면 자녀의 MQ는 떨어집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단어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NQ 공존지수(network quotient)라는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네트워크 사회에서 우리 모두 함께 잘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공존의 능력을 일컫는 말입니다. 곧 NQ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알아보는 잣대이며 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NQ의 또 다른 이름은 행복지수입니다.

DQ 디지털지수(digital quotient)라 하여 디지탈에 대한 이해력 지수를 일컫습니다. 단순히 컴퓨터 기술만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정보기술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SQ입니다.
이것은 spiritual quotient 라는 것입니다. 영성지수입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이 영성지수에 대해 별 관심도 없었고 그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SQ(영성지수)는 EQ보다 8만 배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SQ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열리면 무식한 사람도 논리적으로 말하게 되고, 60세에도 복음을 위하여 외국어를 유창히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자녀를 세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인물로 키우고자 한다면 SQ를 어려서부터 열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초로 한 교육의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갖추어야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성공은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혼자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었으나 오늘날은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를 잘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NQ도 중요하고 특별히 영성 지수 SQ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기에 적어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라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성에 성공하면 만사가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을 온전히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분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먼저해야 할지 무엇을 나중 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이 성공입니까? 또 무엇이 실패입니까?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기준을 사람의 가치관에 두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세상에서의 성공이 때로는 하나님 앞에서 실패가 될 수 있고 때로는 세상에서의 실패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성공인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으나 성공하는 경우가 있고 성공했으나 실패하는 경우가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도 성공의 비법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서있는 사람의 실패는 일시적 실패로 끝나고 그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 되기에 그 실패는 완전한 실패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점에서 있어서 베드로는 연구 대상입니다. 그는 많은 성공도 체험한 사람이지만 또한 많은 실패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실패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실패는 결코 영원한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실패 때문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종종 일시적 실패를 했는데 왜 했을까요?
1. 자기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6:33~34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장담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분명 주님이 경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큰소리로 장담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결단이고 각오입니다. 그러나 그 각오와 결단은 하루밤도 지나지 않아 무너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베드로는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몰랐습니다. 자기 과신이 실패를 불러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기를 지나치게 과신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금물입니다.
왜요? 세상에서 참으로 믿지 못할 것은 인간이고 그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0:12에서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할 때에 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에 있어서 최고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언제나 처음 그 자세로 나가야 합니다. 내가 이루었다고 생각해도 안 되고 항상 앞의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교만이라는 것, 자만이라는 것은 힘들고 어려우면 안 찾아옵니다. 늘 평안하고 형통할 때 찾아옵니다. 그러기에 교만과 자만은 사단의 교묘한 전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로 여겨집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됩니까? 조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이 여러분의 입술에 늘 따라 다녀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왜 사람이 자기를 모를까요?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눈이 멀어버립니다.
베드로는 많이 교만했습니다. 결국 그 교만으로 주님의 경고도 무시하고 넘어졌습니다. 왜요? 교만하면 눈이 멀어 뵈는 것이 없습니다.
교만하면 자신의 죄악이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교만하면 천국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얼마든지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 은혜를 힘입고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줄 아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베드로의 실패 원인은 
2.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6:40-41절을 보세요.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정말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때 베드로는 정말 피곤했습니다. 기도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해야 할 때는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기도하라고 그토록 간곡하게 부탁을 했는데 그는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결정적인 때 실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선택하기 전에도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 기도하셨고, 마지막 순간에는 땀방울이 핏방울 떨어지듯 기도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기도하셨다면 우리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겠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기도를 안하는 것일까요?
1)기도의 중요성을 모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우리의 삶속에서 우선순위가 밀리기 때문입니다. 2)일은 내가 하는 것이지 기도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3)기도는 시간이 있을 때나 하는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고 환경을 변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는 말을 뒤집어 놓고 보면 기도하면 시험에 들지도 않고 설사 시험에 들어도 이길 능력이 기도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한사람이 일하는 열사람을 당합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국가를 지키고 나라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의 실패는
3. 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18:10절에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베드로가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베 버렸습니다. 혈기입니다. 이것은 살인미수입니다. 형사적인 사건을 저지른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보호 하려고 칼을 휘들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주님을 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앙인은 신앙의 방법으로 해야지 인간의 수단으로 하면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간적인 격분으로 엄청난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군병을 살해하려는 엄청난 사건, 이것은 당시의 형벌로는 사형감입니다. 살인미수에 공무집행 방해죄입니다. 다행히 예수님이 그 말고의 귀를 기적으로 붙여 주었기에 그 사건이 무마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때문에 베드로는 대제사장 집에 당당하게 들어 갈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뜰에서 불을 쬘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여인들이 나서서 “네가 그 사람이다.” 하니 갑자기 두려움이 임했고 결국 “나는 그 사람 모른다”고 잡아떼게 되었던 것입니다. 순간적인 행동이 돌이키기 힘든 사건을 저지르게 만든 것입니다.

혈기를 죽이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속에 살아있는 혈기, 우리 속에서 깊이 웅크리고 있다가 순간순간 툭툭 튀어나와 나를 미치게 만드는 이 혈기를 잡아야 합니다. 한 번의 혈기가 나를 무너트립니다. 이 혈기가 공든 탑은 순식간에 무너트립니다. 이 혈기는 사람의 감정으로 통제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고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나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여기까지는 실패한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실패는 가롯 유다의 실패와 다릅니다. 가롯 유다도 같은 종류의 실패를 했으나 그는 돌이킬 기회를 잃었습니다. 사단의 간교한 유혹을 이길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실패한 베드로지만 그는 회개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결국 그 실패를 딛고 성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실패자가 성공자가 되는 비법은 무엇일까요?
 
1. 주님의 중보 기도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2:31-32절을 보세요.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할렐루야!
주님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의 성공은 베드로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의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비록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은 했으나 그가 가롯 유다처럼 자살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돌이키게 된 것은 주님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주님이 간절히 기도 해 주셨기에 때로 우리가 넘어질지라도 영원히 실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8:34-35에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하셨고 그러기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성공은 알고 보면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요, 공로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통해서 기도를 시키고 그 기도를 통해 일으키시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기도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가 자녀들을 성공으로 이끌어 가고, 우리 기도가 선교사들을 성공으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 기도가 교회안의 지체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시험에서 이기게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있기에 제가 목회를 감당하고 신학교 사역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나 내 힘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2. 주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60-62절을 보세요.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는 닭이 우는 순간 그제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제서 정신이 차려 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실패하지 않으려면 성경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그 말씀이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주님의 말씀을 한 번도 기록한 적이 없지만 성령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은혜로 성경을 깨닫고 하시고 기록하도록 역사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늘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두면 언젠가는 살이 되고 피가 되어 내게 복으로 임하게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목사님, 들으면 뭐합니까? 금방 잊어버리는데요.”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도 걱정 마세요. 하나님은 말씀을 들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잠언1:33에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자는 일시적으로 실패할 수 있으나 그 말씀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순간 일어서게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성령의 능력 때문입니다.

사도행전2:1-4에 성령이 임재하십니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베드로는 이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받았나요? 모여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성령 충만 받기 전에는 귀로 듣기만 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 받으면 하나님과 영으로 함께 하게 됩니다. 성령 받은 베드로는 더 이상 나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목숨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또 능력 받고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고칩니다. 욥바에서 다비다라는 여인을 살립니다. 성령의 지시 받아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루살렘을 복음화 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나이 많아 A.D. 60년경 네로황제에 의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일시적으로 주님을 부인했으나 곧바로 회개하고 온전히 승리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성령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 마음을 주장하고 성령이 내 삶을 변화시킴으로 새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일어서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엄청난 권능을 소유하신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권능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속에 임할 때 권능을 부여하는 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과신, 기도 부족, 혈기, 그것으로는 100% 실패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충만이 있으면 100% 성공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실패가 실패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면 그 실패가 큰 자료가 되고 밑거름이 되어 성공의 길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실패했습니까? 힘이 없어 넘어 지셨습니까? 내 힘으로 내 능으로 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젠 나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 속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고 일어서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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