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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돼지 이천 마리 (막 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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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돼지 이천 마리                             
본문 : 마가복음 5:1-20 

귀신들려 미친 자가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님이 그 미친 사람을 고치신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그 미친 자에게 있는 귀신을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기록에 따른다면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이 미친 사람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바다에 빠져 몰사했습니다.

사람들은 과연 예수님이 남의 재산에 이렇게 손해를 끼쳐도 좋은가라고 반문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논리로 보면 따질 만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가지고 생각할 때 그 효능과 유익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상품가치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사실 현대를 사는 인간들의 삶의 모든 표준은 이것에 의해 가치를 판단 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그 본질적인 고유한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이 그 가치를 잃어버릴 때 인간은 상품적인 도구 이외에 아무것도 되지 못합니다. 상품적인 가치가 없는 인간은 공동체에서 소외됩니다. 버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은 이런 인간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시키며 미친 사람 한 명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에게는 비록 보잘 것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영혼 하나가 돼지 이천 마리가 아니라 이만 마리보다도 더 귀했습니다. 주님은 돼지 이천 마리가 아니라 이십만 마리를 희생하고라도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뜨거운 우리 주님의 영혼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해주셨음을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보실 때에는 한 영혼이, 돼지 이천 마리가 아니라 천하보다도 고귀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를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천하보다도 귀한 목숨이라고 하지만 천하는커녕 돈 몇 푼과 영혼을 맞바꾸는 악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돈 몇 푼을 위해서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파리 목숨 죽이듯 예사로 죽여 버리는 무섭고 슬픈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무엇이 귀한 것이며 가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직 사람의 관심은 돼지에 있습니다. 셈에 밝고 경영에 능숙하고 신문을 들면 주식과 증권시세에 먼저 눈길을 돌리는 게 현대인입니다. 미친 사람 하나를 위해서 주님은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시켰지만, 세상은 돼지 몇 마리를 위해서 생사람 이천 명도 희생시킬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세상입니다.

이제 현대인에게 귀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돼지입니다. 돈입니다. 쾌락입니다. 현대 인간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 본다면 가장 솔직한 대답은 “돼지 치는 재미에 산다”일 것입니다. 현대 인간은 돼지 한 마리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현대는 돼지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인간이야 어떻게 되든 돼지 새끼를 많이 가진 사람이 큰 소리를 칩니다. 돈이 발언을 합니다.

돼지 이천 마리, 정말 그것은 엄청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일생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어야 할 영혼과 비교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은 영혼을 포기하고 돼지 이천 마리 쪽을 택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

예수님은 ‘돼지 이천 마리냐? 한 영혼이냐?’에서 기꺼이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돼지 이천 마리를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영혼을 구원하셨습니다. 미친 사람 하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시키신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친히 희생시키셨으니 그것은 돼지의 마리수로 따질 수 있는 것입니까? 과연 주님은 그만큼 비싼 대가를 여러분과 나를 위해서 지불하실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돼지 이천 마리가 아니라 그 영혼에 대한 우리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한 영혼을 향한 주님의 뜨겁고도 간절한 사랑이 그 영혼을 구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이 온전한 새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간으로 변화 시켜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의 행위였습니다. 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의 행위가 오늘 여러분과 저를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해 주셨고 함께 어울려 울고 웃으며 살아가도록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참으로 너무 크고 너무 놀라울 뿐입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이 큰 사랑에 대한 감격이 이 험한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간증과 찬양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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