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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의 별을 바라보라! (창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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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바라보라! (창 15:1-7)

오늘 현대인들을 가리켜 무감동의 세대라고 말합니다.  싫증을 잘 내는 세대라고 합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헤어져 못 입는 옷보다 지겨워서 못 입는 옷이 많습니다.  빨리 한탕하고 변신하려는 한탕주의가 이 땅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또한 대단히 빨리 잊어버리는 세대라서 사람과의 관계가 오래 가지 않으니 깊은 정이 들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무게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무게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얕은 인간이 판을 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볍게 입고, 가볍게 먹고,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만나는 가벼운 인간이 경양식 음식에, 경양식 음악에, 경양식 인생을 사는 것, 이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소비상품 의식이 팽배해서 만남도 일회용이란 사고방식에 젖어 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땀이 마른 세대인 것입니다.  냉방 세대, 아드레날린 분비의 불량 세대입니다.  친구의 땀 냄새를 싫어하고, 땀흘리는 모습을 싫어하는 어려운 세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일, 어떤 사람에게도 깊이 빠져들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에 괴롬도 없는 세대입니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세대,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세대, 자신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데 별로 후유증이 없는 세대입니다.  대단히 편리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모든 행복은 사람과 일이 남긴 자국입니다.  일과 사람에게 미쳐야 행복이 옵니다.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태도입니다.  삶의 열정은 나이가 아닌 태도에서 나옵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싱싱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나이가 들어도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은 야생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또 어떠했습니까?  그는 나이 80세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험악한 헤브론 산지를 얻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열정적인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권능을 받아 믿음의 야생마가 되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열정적인 비전의 사람이 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우주를 안고 고민을 해 보아야 합니다.  잔잔한 강물에서 뱃놀이를 즐기지 말고 거센 파도를 타고 대해로 나가 보아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거대한 믿음의 허풍쟁이가 되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천하 대사를 논하는, 그래서 뜻을 크게, 생각을 크게, 환상을 크게 갖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힘은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태도입니다.  그의 삶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가면 열정을 빼앗아버립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꿈과 비전을 흐리게 만듭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불평과 원망으로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리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비판적인 것은 다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독수리 같은 새 힘을 가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자세와 태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신앙은 환경을 바꾸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그 사람 속의 태도와 자세를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이 시간 성령의 권능을 입고 내 삶의 태도와 자세의 변화를 일으키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는 결단코 부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입으로 자꾸 시인해야 합니다.  시인하지 않으면 어떠한 역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지역의 장래는 우리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장래는 우리 한국교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깨어있는 사람, 길과 진리와 생명을 붙든 사람이 이 땅과 이 민족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생애에 최고의 성령 폭발을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 생애에 최고의 전도폭발을 일으켜야 합니다.  사실 교회가 존재하고 믿음의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성령 운동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은 사람을 싱싱하게 만듭니다.  성령은 사람을 능력 있게 만듭니다.  성령은 사람을 힘있게 만듭니다.  성령은 그 사람의 심령 속에 열정을 회복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령은 사람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듭니다.  이 시간 성경의 권능을 받아서 기적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화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물이 없으면 시들어 버리고 곧 마르고 죽고 마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가 떨어지면 영혼이 메마르고 맙니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모든 죄와 번민과 염려와 근심을 정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길뿐입니다.  실수와 실패와 번민과 염려를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십시오.  길과 진리와 성령에 취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킬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십시오.  얼굴을 들어 여호와께로 향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능력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니까 지금 아브라함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 때문에 두려워했었는가 하는 것은 2절 말씀을 보면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아브라함은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많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의 아내 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나이든 두 노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가 고향을 떠나온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에게는 땅 한 평도 없습니다.  창세기 23장에 보면 그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그는 아내를 묻을 장지가 없어서 돈을 주고 땅을 사야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든 늙은 두 부부에게는 슬하에 자식도 없었고, 거기에다가 자신들이 죽었을 때 묻힐 땅도 없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아모리 족속과 같은 이방 족속들이 호시탐탐 아브라함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브라함은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니까 걱정과 염려가 밀려오면서 미래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갑자기 두려워지는 겁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의 말로 표현하자면, 나에게는 슬하에 자녀가 없습니다.  나는 아파트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은행 통장에 예금된 돈도 없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도 없습니다.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그저 캄캄하기만 합니다.  지금의 현실을 보고, 장래를 생각하니 답답하여 잠이 오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이런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이런 인생의 캄캄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빛으로 다가오십니다.  아무리 밤이 어두워도 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나면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에 하늘에 별조차 비취지 앉으면 그 어두움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이 아무리 어두워도 별 같은 희망을 바라볼 수 있으면 절망은 아닙니다.  삶의 어두움과 함께 희망조차 바라볼 수 없으면 그때는 절망인 것입니다.

희망은 꿈을 낳고 꿈은 사랑을 낳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믿음을 낳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바라고 나아가는 사람을 환영하고 사랑하시고 그와 손을 잡고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캄캄한 밤에라도 빛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보십시오.  언제 어디에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방 민족들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주신다고 하십니다.  자식도 없고, 땅도 없고, 미래도 없이 불안해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상급자가 되셔서 넘치도록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일을 계획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말씀을 믿는다면 부르짖으십시오.  크게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더 크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현재와 장래의 일에 대해서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아브라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밖은 더 캄캄했습니다.  그 캄캄한 칠흑 같은 밤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 주신 것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늘을 바라보아라.  위를 바라보아라.  무엇이 보이느냐?"
"예, 수많은 별들이 보입니다.  저 별들이 오늘따라 참으로 아름답게 반짝이네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 내가 너를 저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리라.  그리고 저 별들처럼 네 자손이 넘쳐나게 하리라."

사실, 아브라함은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자신에게 땅이 없는 현실이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죽어서 묻힐 땅이 없다는 현실이 자신을 더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현실을 바라보았습니다.  현실을 보니까 자신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자기의 대를 이어줄 자식, 자신의 노후를 이끌어줄 든든한 자식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을 두려움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땅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현실을 보지 말고 하늘의 별들, 비전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보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말씀을 믿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더니 그는 오늘날까지 온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별이 되었습니다.  가장 반짝이는 아름다운 믿음의 별이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더니 그 별만큼 지금 온 세계에는 아브라함의 자녀들로 충만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캄캄한 인생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이 되십니까?  장래도 보이지 않고, 현실은 더 암담하다고 절망이 되십니까?  위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십시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사람은 자녀의 별을 얻습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사람은 모든 일터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현대인들은 위를 바라보는 지혜를 잃어버렸습니다.  위를 바라보고 노래하는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위를 바라보는 여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위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장하시거늘 위를 바라보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아래만 바라보고 땅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 현대인들의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돼지는 도토리를 매일 주워 먹으면서도 그 도토리가 어디에서 떨어지는지, 어디로부터 오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아래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도 도토리를 사모하고 도토리를 찾고 있습니다.

태고 적부터 인간이 영원히 동경해 온 것은 행복입니다.  그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도토리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위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아주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말씀합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렇습니다.  위의 것, 하늘의 신령한 것을 생각하십시오.  거기에는 우리 인생이 생각할 수도 없는 풍성함과 넉넉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물질이 주지 못하고, 명예가 주지 못하고, 권력이 주지 못하는 삶의 평안이 있습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기억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누릴 수 없는 이 놀라운 평화는 오직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평화를 누리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이 땅의 현대인들은 인간의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땅에서 오는 줄 알고 아래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염려와 걱정과 곤고함과 절망뿐입니다.  사실, 밤은 캄캄합니다.  캄캄한 밤에 아래를 바라보고 걸으면 밤길은 더 캄캄합니다.  그러나 위를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위를 바라보는 순간 찬란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십니까?  캄캄한 밤일수록 밤하늘은 더욱 파랗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캄캄하고 어두운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위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위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과 손길에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현대인들은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캄캄합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바라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가면 갈수록 더 어둡고 답답합니다.  앞을 보지 못해서 절규하는 실로암 연못가의 소경보다 더 절망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뜨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위를 바라보셔야 합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오늘 이 땅의 사람들이 잘못되는 것은 캄캄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세상만 바라보면, 땅만 바라보면 캄캄한 밤에 길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밤에 길을 잃어버렸을 때 하늘의 별을 보라고 합니다.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바라보고 걸어가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부딪힙니다.  너무 많이 불행한 일을 만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의 별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위에는 누가 계십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거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위를 바라보는 사람은 누구와 만납니까?  누구와 대화를 합니까?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에 계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향하여 걸어가는 믿음의 여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위의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위의 종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자식 없이 쓸쓸하게 밤을 보내고 있는 늙은 노부부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하늘의 별처럼 너희 자손이 많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이것이 상식으로 가당찮은 이야기입니까?  이것은 누가 들어도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해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말씀은 인간의 상식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에는 불가능하게 보이고, 도저히 타당성이 없어 보여도 그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에 하늘의 별들과 같은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늘의 별을 내 마음에 품고 그 별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본문 6절을 보십시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믿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최초로 '믿었다'고 언급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은 원리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땅을 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더 이상 현실을 보고 좌절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기적을 경험하고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십시오.  내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바라보십시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십시오.  바라보면 역사는 일어날 것입니다.  바라보면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늘의 별을 보기 위해서는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장막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장막 안에서는 별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인생의 장막에서 나오십시오.  내 육신의 장막에서 나오십시오.  편견의 장막에서 나오십시오.  모든 불신과 무지의 장막에서 나오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좁은 장막에서만 살지 말고 밖으로 나오십시오.  그래야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품고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하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의 것을 바라보면 잘 됩니다.  어떠한 장애, 어떠한 약점과 단점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역사하시면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위를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파스칼은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까지 잃었지만 위를 바라봄으로써 훌륭한 과학자, 훌륭한 철학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8살 때부터 위를 바라보았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힐튼이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믿음의 생활을 잘했던 분으로서 언제나 자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위를 바라보아라.  어려운 일이 있거든 위를 향하여 기도하라."
위를 바라보고 살았던 힐튼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셔서 호텔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미국에 가서 주소를 잘 모르면 거기에다가 그냥 힐튼이라고 적으십시오.  공항에서 어디에 가느냐,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면 힐튼에 간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당장 통과됩니다.  힐튼에서 잔다, 힐튼에 간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를 바라보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힐튼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내 육체의 부족함과 약점을 크게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위에서 높여주시면, 하나님이 위에서 쓰시면 하나님의 은혜로 위대한 믿음이 나타날 줄을 믿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위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유도 없고 노래도 없고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콘크리트처럼 냉랭해졌습니다.  굳어져 버렸습니다.  규폐증 환자같이 아무런 여유가 없습니다.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기계에서 나는 굉음 같은, 가수들이 불러대는 발악하는 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모두가 위를 바라보지 않고 땅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브라함은 한 마디로 희망을 좇아 나아간 사람입니다.  그의 삶에 노년이라는 밤이 다가왔을 때에 하나님은 희망이란 별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 희망은 삶에 대한 새로운 꿈을 가슴속에 갖게 했습니다.  그 꿈은 삶에 대한 사랑을 끓어오르게 했습니다.  그 사랑은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담대히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에게 찾아오셔서 별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 별을 보면서 삶의 희망을 붙들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여정에서 자신의 약점과 문제를 보고 희망을 저버리는 사람에게는 불안과 좌절과 절망과 두려움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약점과 문제라는 어두운 밤이 아무리 우리를 엄습할지라도 희망이라는 밝은 별을 바라볼 수가 있다면 우리들은 결코 삶에 대한 꿈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가 그 희망을 가슴에 품으니까 꿈의 사람이 되고, 사랑의 사람이 되고, 신념의 사람이 되어서 아내의 손을 잡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담대히 가나안 땅으로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낙심하고 절망하고 좌절 가운데 빠졌을 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살았더니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다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십시다.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에 우리의 가슴은 다시 찬란한 꿈으로 타오르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인생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불같이 끓어오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과 함께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저버린 사람은 광야로 내 몰아쳐 버리십니다.  오직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내일에 대한 꿈과 사랑과 믿음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온 사람은 절대로 희망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별빛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보고 고개를 들어 별들을 헤아릴 수 있는가 보라고 말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를 보고 말합니다.  고개를 들어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너희를 위해서 이룩한 희망의 별들을 헤아려 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 희망을 줄기차게 바라보고 헤아리면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가슴속에 찬란한 꿈이 용솟음치게 될 것입니다.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인생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금번 달보다, 명년은 금년보다, 영원한 미래는 오늘날 보다 더 찬란한 삶이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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