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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안에서 기뻐하라 (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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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에서 기뻐하라 (빌 4:4-9)

주안에서 기뻐하라 저는 이 말을 주안에서 걱정하지 마라 하는 말씀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은 기뻐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걱정을 많이 합니다. 내일 세상이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합니다. 또 하나 걱정해서 이루어지는 일도 하나도 없는데 걱정을 합니다. 걱정하기보다는 일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오늘 귀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주안에서 걱정하지마라.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 송달 장로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특별한 분입니다. 회계학을 전공하신 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정상급에 있는 회계사입니다. 과거 한보사태 때 국가의 요청을 받아 그 기업의 재무구조를 전부 분석, 정리, 평가하는 책임자로 있었을 만큼 탁월한 분입니다. 교회에서는 재정을 담당하고 게셨습니다. 이제 50대 중반인데, 그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회사를 은퇴하면 연변과학기술대학에 가서 경제학, 회계학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을 전도하고, 중국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겠다는 꿈입니다. 얼마나 귀한 장로님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6개월 전에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는데 폐암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대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너무 많이 전이되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도 다른 대안이 없어 그동안 방사선 치료만 계속 해왔는데 별다른 진전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몸 이곳저곳에서 통증이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몰핀 주사를 맞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의 병을 가지고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얼굴에 무슨 웃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런 병을 앓고 있다니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그 병실을 방문한 사람들마다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장로님의 얼굴이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얼굴에 웃음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오히려 찾아간 사람이 민망할 정도입니다. . 한두 번은 사람이 위선할 수 있습니다. 가장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왔으니 적어도 장로라는 체면에 어떻게 찡그리고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 병상에서 변함없이 수개월 동안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가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회 대 각성 전도 집회가 끝난 그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교회 부목사님 한 분이 병상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오늘은 특별히 기쁜 날입니다. 너무너무 기쁜 날입니다." 그래서 속으로 '의사가 병이 좀 나았다고 했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목사님, 이번 대 각성 전도 집회 때 저는 병상에 있어 참석을 못해 태신자만 등록시켰거든요. 그리고는 제가 등록한 부부를 놓고 계속 기도했는데, 그 태신자가 마지막 날 저녁에 참석해서 예수 믿겠다고 일어섰대요. 그리고는 예수를 믿기로 결신을 했더니 얼마나 마음이 기쁘고 감사한지 제 생각이 나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저를 찾아와 '장로님, 그동안 기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이 너무 기뻐 견디지 못하다가 마침 목사님이 오시니까 막 털어놓았던 것입니다. "너무너무 기뻐요. 목사님." 하고 기쁨을 아직도 삭이지 못한 채 말입니다. 자기가 지금 죽어가는 마당에, 살지 죽을지 모르는 처참한 병상에서 한 가정이 구원 받았다고 해서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 보통 일입니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가요? 예수 믿고 돌아온 그 부부가 누구인지 물었더니 그 장로님의 자가용 기사였습니다. 그러니 같이 타고 다니면서 얼마나 전도를 많이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귀를 막고 안 듣던 사람들이 이제 예수 믿고 스스로 하나님 앞에 돌아왔으니 얼마나 장로님이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병상에서 그렇게 중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기쁨을 가슴에 안고,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로님이 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그 장로님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기뻐할 일이 많습니까? 우리가 건강한 몸으로 예배드리고 있으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내 믿음에 문제가 있지 않나요. 우리는 주안에 있습니다. 주 안에란 말이 참 중요 합니다. 주안에 있어야 기뻐할 수 있다 하는 말이고요. 주안에 있으면 주님이 책임진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면 이발을 하라. 한 주간을 기쁘게 살려면 새 자동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려면 결혼을 하라. 일년을 기쁘게 살려면 새 집을 지으라. 그러나 어떻습니까? 이런 기쁨도 필요 하지만 이 모든 기쁨은 잠시 뿐입니다. 이발하면 하루는 상쾌해도 다음 날은 그저 그렇습니다. 새 자동차를 사면 한 주간 동안은 새 자동차 타는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지나면 그것도 별것 아닙니다. 결혼을 하면 한 달 동안은 정말 꿀처럼 달콤합니다. 그래서 밀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면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기쁨은 주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안에서 기뻐하라 그런데 그냥 기뻐하라가 아니고 항상 기뻐하라. 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했습니다. 이 말이 그냥듣기 좋아라 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주안에 있습니다. 감옥 안에 있지만 주안에 있기에 그는 기뻐합니다. 주안에 있는 기쁨을 알고 있기에 기뻐하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위험이 와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날이 춥고 배고픔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분도 이와 같이 주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뇌는 18가지의 신기한 요소를 생성해 내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둘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엔돌핀 이요, 다른 하나는 아드레날린이라는 것입니다. 엔돌핀은 사람이 많이 웃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감사한 마음, 기쁜 마음을 가질 때, 생성되어 흘러나옵니다. 이 엔돌핀은 암세포는 물론 인체에 해가 되는 많은 균들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은 반대로 인간이 슬퍼하거나 괴로워하며,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고, 남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시기하고 질투할 때, 생성되어 흘러나오는 것으로 암을 유발하고 소화불량이나 기타 건강에 해로운 요소들을 활동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웃어야 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우리는 주안에 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내년도 우리교회 주제는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자입니다. 내년구호가 있습니다. 언제나 기뻐한다. 언제나 기도한다 언제나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하다. 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한번 해 보겠습니다. 미소를 짓고 사세요. 자꾸 웃다 보면 행복해집니다.
어느 조사 보고서를 보니까? 한국 사람은 하루에 13번 가량 웃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 정신과학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 미국인은 하루 평균 80회 정도 웃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게 비교가 안도지요. 그러니까? 한국 사람은 하루 종일 성질 난 사람처럼 살아가는 것이고 미국사람들은 별로 좋은사람들도 아닌데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거예요

저를 비롯한 우리 한국인들은 웃는데 인색합니다.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웃지를 않습니다. 외국 선교사가 한국 목사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 한국 크리스챤들은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둡죠?" 바깥에서는 그렇게 명랑하게 얘기하고 웃기도 하는데, 교회당에 들어서기만 하면 왜 갑자기 어둡고 우울해지는 거죠?" 목사님께서는 변명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교사님, 한국 교인들은 예배당 안에 들어서자마자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그 선교사님께서는 웃으시면서, "그래요, 그러면 그 주님이 다시 사신 것은 잊어 버렸나요?"라고 하더랍니다.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마라 그리고 기도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를 지켜 주신다 했습니다. 주안에 있는 사람은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새벽 기도에 나오는 사람을 보면 기쁨이 있습니다. 심야 기도회에 나오는 사람을 보면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걱정으로 푸는 사람들이 아니고 기도로 푸는 사람 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 아닙니까?

어느 교회에서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여전도회 회장이 사회를 보면서 "다같이 찬송가 385원을 부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회중들은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배꼽잡고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웃게 했으니 엔돌핀이 나오게 했다 봐줄 수는 있으나 그 마음속에는 주님이 있지 않고 '돈님이 계신거죠. 이런 분에게는 걱정이 떠나질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가슴속에는 예수님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것이 주안에서 기뻐하는 비결입니다.

오늘 말씀을 한번 다 같이 일어나서 나에게 주는 말씀으로 받고 봉독하고 난 다음 한 목소리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기쁨으로 살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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