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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의 계절 (시 5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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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계절 (시 50:14~15)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기쁘고 즐거운 국가적 명절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이 절기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출에굽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서 기쁨의 축제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일동안 집을 떠나 초막을 짓고 거기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초막절을 통하여 광야 40년과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안전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놀라우신 섭리를 기억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추수가 끝난 다음 모든 소산물을 거둘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은혜에 대한 기억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함께 해 주 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않았습니다.
초막절에는 모든 백성들이 아름다운 실과와 종려가지와 버드나무를 손에 들고 흔들며 하나님앞에서 즐거워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과 천국생활을 예표하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초막절을 지키기 위하여 네가지의 식물을 구하기 위하여서 확대경을 사용하여 신중하게 흠이 없는 과일과 종려나무 가지, 무성한 가지, 버들가지를 고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과 절망의 땅 광야를 무사히 통과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큰 힘이 무엇인 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뿐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절 절기를 통하여 지나온 과거와 풍요한 현재와 복된 미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했던 것입니다. 초막절 마지막날에 이들은 할렐시인 시편 113편~118편을 낭송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편 118편 25절에서 26절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자가 복이 있으며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오늘은 기나긴 인고의 시간이 끝난 후 넓은 들판위로 황금 물결 넘칠 때 주름진 농부들의 얼굴에 감격과 감사의 기쁨이 번져나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들이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는 이유도 파종부터 추수때까지 모든 자연을 섭리하신 하나님께 대한 고마움과 그 고마움에 대한 표시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서는 레위지파 음악가인 아삽이 우리들이 드리는 감사의 예배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찾아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체만으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고, 마음에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주의에 빠지게 되었고 외형에 지나친 관심을 가짐으로 인하여 영적 본질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식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진리와 정직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형식주의와 외형주의는 보편적으로 종교가 외적 화려함에 집착하여 내면적 성결함을 잃어버릴 때 드러납니다.
아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제물과 절기에 대한 충실한 이행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찢는 내적 자기 성찰과 순결함이라고 강조합니다.
아삽의 교훈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는 예배당의 평수나 교인의 숫자, 재정상태는 하나님의 관심대상이 아니며 오직 얼마나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있느냐가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때마다 풍부하게 재물을 드렸고, 각종 절기들을 충실히 지켰으며 율법의 세세한 부분까지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표면적인 예배행위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외적 의식에 수반되어야 하는 내적 진실함이 상실되어 있었습니다. (8절~14절)
그들은 성전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자체로 하나님을 만족시킬것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외부적 의식을 거행하는 데에만 열중하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마음자세와 실생활은 소홀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외모에 의하여 속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희생제사보다 희생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상태를 더욱 중요시 합니다. (잠 21:3, 호 6)
영적인 면이 상실된 화려한 외적제사는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사 1:10~17)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를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며 열납하지 않으십니다.

아삽은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바른 제사법을 제시합니다. ( 14~15절)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드리는 제사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서원, 즉 하나님과의 엄숙한 약속을 이행하는 것을 제사의 핵심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는 마음을 찢고 통회하는 기도와 진실된 마음의 찬양입니다.

예배의 근본정신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의 전인격과 전생활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는 기쁨과 찬양이 넘쳐야 합니다. 전인격을 통하여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예배에 참여하셔서 기쁨을 누리실 것입니다. 아삽은 참된 예배의 본질을 명확하게 증거합니다.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는 예배는 외적 형식과 내적형식이 조화롭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규례를 지키며 참된 예배를 드리기 위한 내적 요소 즉, 예배자의 자세를 살펴봄으로써 하나님앞에 참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삽은 첫째, 예배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감사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손을 펴서 무엇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16장 16절과 17절에서도 “여호와를 뵈옵되 빈 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찌니라”라고 했듯이,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감사는 하나님과 나와의 절대적인 관계에서 나옵니다.
이웃과 비교하고 평가하여 드리는 감사는 악한 세상적인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따라”라는 말씀은 비교개념이 아닙니다.
이사람 저사람과 비교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을 따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소중하기에 나의 힘대로, 내가 은혜 받은대로 감사를 드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복을 헤아려 보십시오. 우리 삶 속에서 얼마나 다양한 복들이 주어졌습니까? 우리의 생명, 건강, 시간, 동행하심, 영생을 선물로 주심, 소망가운데 살아가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찬송과 마음을 담아 봉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사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돈주머니가 회개할 때 진정한 회개라고 하듯이, 우리의 마음이 가는데, 우리가 사랑하는데, 어떻게 물질이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간에, 부부지간에 사랑이 가기에 계산을 초월하여 물질도 갑니다. 사랑하면 다 내어줍니다. 계산하며 주는 것은 뇌물입니다. 하나님도 값을 계산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몽땅 주셨습니다.

부성애가 가장 강한 동물로 황제 팽귄을 꼽습니다. 엄마 팽귄은 알을 낳자 마자 아빠팽귄에게 맡깁니다. 그때부터 아빠 팽귄들은 영하 60도의 얼음바닥위에 서서 시속 160킬로 이상의 눈보라를 견뎌내며 거의 65일 동안 음식도 안먹고 잠도 안자며 알을 품습니다. 알이 발등아래도 떨어지는 순간 얼어버리기 때문에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어야 합니다.

가시고기 역시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면 알을 먹으려고 몰려드는 수많은 침입자들과 사투를 벌이면서 약 15일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여 새끼들에게 맑은 산소를 공급합니다. 황제 팽귄, 가시고기 이상으로 눈물겨운 예수그리스도의 전적인 포기와 희생과 고통을 통해서 우리모두는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가장 비싼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약하고 능력이 없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때 강한 능력이 생깁니다. 귀신과 사단조차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금보다 은보다 귀합니다. 돈으로 계산을 하거나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을 누가 주셨습니까? 믿음을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께 기뻐하고 찬양드리며 힘껏 물질을 봉헌하면,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린다면 이게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감사의 태도입니다.
계산하고 계신다면 아직도 세상적인 욕심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예배를 드릴 때 마음을 받으십니다. 제물로는 우리를 탓하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8절)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의 제물을 차별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아벨의 믿음이요, 인격 자체였습니다. 야곱은 지팡이 하나 의지하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창 32:10)그러나 얍복강을 건너 돌아올 때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나에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고 가족들이 있습니다.” 야곱의 고백은 약속을 지키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진실하심 앞에 감당할 길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난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숟가락 두 개만 들고 시집오신 어르신들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어떠한 복을 받으셨습니까? 그렇게 받은 복위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기적이고 기쁨입니다. 언제나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생명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찬양합시다. 어렵고 힘들지만 용기와 희망을 가지십시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예배와 기도, 봉사에 충성을 다합시다. 너무 욕심부리지 마시고 잃어버린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시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을 생각해 보면 참 많이 받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내 손을 펼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의 성전에 올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빈손은 아니되는 것입니다. 

아삽은 두 번째로 감사하며 예배드리는 자는 서원한 것을 지켜나간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서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바르게 살겠노라고 약속한 것을 지키며 사는 태도입니다. 감사를 나타내는 행위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즉, 전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 외적표현이 하나님과의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약속한 것을 갚으며 살아가는 삶속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십니까? 세 번째로 아삽은 그러면 환난날에 하나님을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할 때 응답하시며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는 기도의 길이와 관계없이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또한 기쁘게 응답해 주실 것을 믿는 마음으로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생명은 진실성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투적이거나 의미없는 말을 반복하는 습관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시편 62편 8편에서도 하나님앞에 마음을 토하라고 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 감정은 이렇습니다, 요즘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걱정스럽습니다, 이리저리해서 마음이 우울합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바쁩니다”.

정직하고 신실하게 기도하신다면 반드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빠져있으면서 복만을 간구하는 것은 기복이 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구하여 받는 복은 은총입니다.
인간은 본질상 위기가 닥쳤을 때 신을 부르게 되어있습니다. 이 본능은 창조주가 주신 것입니다. 위기가 왔을 때 하나님을 부르게 하신 이가 건져주심도 허락하셨습니다. 부르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건져주겠다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은총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영화롭다는 말에는 ‘부요하다, 풍부하다, 높아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면 계속하여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을 풍요롭게하는 즉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625전쟁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UN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습니다. UN군의 한국전쟁 참전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소련도 회원국이었는데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UN은 한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없게 됩니다.
회의가 열리던 날 각국의 대표들이 회의장으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구 소련대표도 케딜락을 타고 뉴욕거리를 달려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동차 엔진이 꺼져버렸습니다. 소련대표는 금방 고칠 수 있다는 운전기사의 말만 듣고 기다리다가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한국전쟁참전을 만장일치로 결정한 뒤였습니다.

일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은 한국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때문이기도 했지만, 은밀하게 기도드린 한사람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안전보장이사회의 투표함을 만든 대장장이였습니다.
그는 투표함을 완성하기 전에 이런 기도문을 쓰고 서명했습니다.
“이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결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결정되어 인류역사에 하나님의 올바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폴 안토니오)
투표함 안쪽에 이러한 글이 쓰여있다는 사실은 1997년에 투표함이 낡아 교체할 때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장장이의 진실한 기도를 기억하셨습니다. 한국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내려다 본 서울시내의 빨간 십자가!
찬란한 십자가의 불빛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구하셨구나, 고마우신 하나님!”

성도의 찬송과 헌신과 기도로 드리는 감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찬송하고 헌신하고 기도할 때 성도는 가장 복있는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성도가 됩니다. 찬송과 기도가 없는 교회, 헌신이 없는 가정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입을 열어 더욱더 찬송하고 기도합시다. 감사의 언어와 형편대로 믿음의 분량과 은혜의 분량대로 정성을 다하여 기쁨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시다. 우리의 영적수준과 경제적 수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양심을 따라서 최선의 정성으로 드리면 가장 큰 것으로 인정하고 기뻐하십니다.

오늘을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날 나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오늘 내게 주신 은총을 따라서 하나님과의 단독적인 관계속에서 날마다 때마다, 감사하며 인생의 4계절을 감사의 계절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며 돌보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거역과 불평과 불만이 아니라 감사와 찬송과 헌신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생애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나날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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