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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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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 116:12-19)

오늘은 일년에 한번씩 지키는 추수감사 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대하는 시편 116편은 많은 학자들이 다윗으로 추정합니다. 다윗은 지나온 인생의 발자취를 회고하면서 그 가운데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어느 날 자신을 돌아 볼 때 어떻게 어린 시절 한 촌에서 목동으로 살아왔던 자신이 한 나라의 왕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잣대가 아니고는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시116:3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지난날의 그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해 주셨는지 설명합니다. 시116:3-5절에 보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시116:8절에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우리는 구구절절에서 다윗의 심정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보세요. 자기의 연약함을 돌아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섬세하게 이끌어 가심 앞에 감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깨닫는 은혜가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만이 열매를 맺어 자라기 때문입니다.(골1:6) 은혜를 깨달으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 감사하며 기뻐하는 사람, 늘 웃으며 얼굴이 밝은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깨닫지 못하면 영혼이 어두워지고 불평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됩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깨달음의 여부가 우리 인생을 밝게도 어둡게도 만들 수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깨달을 때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문학가 '오스카 와일드'의 우화적 단편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과거 자신에게 은총을 입은 몇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우화적으로 엮어 본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이 한 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그는 거의 폐인가 같은 청년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청년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과거에 나는 절름발이였는데 당신이 나를 일으켜 걷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걸어다닌들 무엇을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직업을 구해보았으나 신통한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앉아서 구걸할 때보다 형편이 더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은 남자들에게 희롱 당하고 있는 한 창녀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어찌하여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여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이 나를 창녀에서 건져내 새사람을 만들어 주었을 때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러나 막상 손을 씻고 보니 행복하기는커녕 고독해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창녀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이웃과 싸움질을 하고 있는 한 불량자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청년에게 어찌하여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불량자 청년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원래 소경이었는데 당신이 내 눈을 보게 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눈을 뜨고 세상을 보았을 때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런데 차차 세상을 보고 있노라니 온통 신경질 나는 것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경질 부리고, 화풀이하고, 치고 받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은총을 받고도 제대로 보답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도 이 시간 한번 지난 세월 하나님이 내 생애 가운데 베풀어주신 은혜를 한번 회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 저도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말씀을 묵상하면서 필름처럼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니까 인생의 모든 걸음걸음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그는 이 모든 감격을 담아 12절에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먼저 시인은 13절에 보면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이는 도무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이 없는 자기를 이처럼 자녀 삼으시고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 사랑에 감격을 '구원의 잔'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셨을 뿐 아니라 이처럼 축복의 자리까지 인도하신 그 주님의 이름을 외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까? 우리는 절대로 실패자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어떻게 인생을 살다가 가든지 우리는 절대로 실패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모든 삶은 성공자의 삶이요, 승리자의 삶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영원의 주인공이요, 사죄의 주인공이요, 성공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이런 황홀한 선물을 받았는데, 우리 마음에 감격이 없다면 어딘가 병이 들은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남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어딘가 고장난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손에 쥐고 있을 동안은 그것의 소중함을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다녀 간 적이 있는 재 부산복음병원에서 외과 의사이자 교수인 이병욱 박사라는 분이 계십니다. 지금까지 암 수술만 3000회 이상을 하면서 재발율이 아주 낮다고 평가를 얻을 만큼 권위있는 의사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외과 의사라는 데 평소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외과는 의학도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과입니다. 왜냐하면 날마다 비위가 상할 정도로 피를 봐야 하고, 자칫 수술도중 실수할 수 있는 위험부담이 따르며, 게다가 응급환자가 발생시 밤낮없이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소위 말하는 3D업종인 것입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자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돈을 벌어 남보다 큰집에서 살거나, 외제차를 운전하고 다니면서 남에게 과시하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소명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명자의 삶을 사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이렇듯 자기의 패러다임이 바뀌자 일하는 것이 너무 즐거워졌습니다. 원래는 3D업종이라고 생각한 그 일이 NEW 3D업종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3D업종이 되었습니다. 자기 직업이야말로 '드림'이 있고, '다이나믹'하며, '드라마틱'하다고 정의 내렸습니다. 곧 꿈이 있는 직업이요, 아주 역동적인 직업이요, 죽었던 사람을 수술해서 살리는 극적인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니 삶이 즐겁고,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성공적인 삶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틈만 나면 전도하는 전도에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뭐, 이런 간증을 소개하려면 몇 날을 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4절에 14절 보면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그랬습니다. 서원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입니다. 여기서 서원이 무엇입니까? 이 서원은 의무 사항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이고, 또 그 약속을 지켜 가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 그 구체적인 내용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대개 이런 게 아니겠습니까?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심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런 서원을 많이 하죠. 극한 고난 중에 있을 때, 질병 가운데 있을 때 눈물로 기도합니다. '주님! 이 고난과 질병을 해결해 주시면 정말 신앙생활 잘 하겠습니다.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이러한 서원대로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사는 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제 그는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17절 보면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랬습니다. '감사제'는 구약 제사법 가운데 자발적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 희생 제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무언가 자꾸 드리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헌신은 내가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엄밀히 말하면 헌신되어지는 겁니다. 저절로 이끌려서 헌신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추수 감사주일을 맞아 정말 감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추수할 때마다 그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먼저 예물을 드리며 감사를 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이 한해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한 번쯤 살아온 것을 회상해 보십시오.

신문의 칼럼에서 본 글을 잠시 소개합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의 통계입니다. “ 당신이 오늘 아침 건강하게 일어났다면 이번 주간 죽을 1백만 명보다 훨씬 축복을 많이 받은 셈입니다. 당신에게 배고픔이 없다면 이 세상 5억 명보다 축복 받은 셈입니다. 비를 피하고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75%보다 더 축복 받은 셈입니다. 은행이나 지갑에 약간의 돈이 남아 있고, 접시에 동전을 모아둔다면 세상에서 8% 안에 드는 부자인 셈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세상의 20억 문맹자보다 더 축복을 받은 셈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웃는 얼굴로 이 모든 축복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러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축복을 받았습니다.” 정말 이 말대로 우리는 많은 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복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언제 세상을 떠나도 천국 영생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샘물 같은 영생의 기쁨과 소망이 솟아오릅니다. 그러기에 혹시 인간 조건이나 환경이 부족해도 우리는 인내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합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렇게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장로님 한 분을 목사로 세워 몽골에 선교사로 파송을 했고, 또 이번에 두 분의 장로를 장립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감동적으로 새로 구입한 올겐의 반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샬롬전 1층을 교육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더욱 감사한 것은 교회가 한해 농사라고 할 수 있는 학습, 세례, 입교자, 유아세례가 40여 명이나 받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주의 모든 은혜를 하나하나 기억해 봅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더욱 더 열심을 내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합시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힘써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선교하는 일,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더욱 투자하는 일들이 앞으로 우리가 힘써서 해야 할 일들입니다. 이 일에 온 교인이 감사하며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금년 한 해 동안 그 어느 해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가 막연히 복을 구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는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부디 이런 신앙으로 하나님이 넘치도록 부으시는 은혜 속에 승리하는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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