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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왜 감사해야 하나? (시 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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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감사해야 하나?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왜 감사해야 되느냐’그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타락한 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천성 중에 두드러진 성품이 불평하는 것입니다. 불평은 안가르켜 줘도 어릴 때부터 잘 압니다. 좀처럼 감사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불평은 그 원인이 마귀에게 있습니다. 마귀는 불평의 아비입니다. 마귀의 사주를 받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평을 갖고 반역하여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의 역사는 불평과 원망이었습니다. 계속 불평하고 계속 원망하고 결국에 하나님께 버림받을 정도까지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살펴보아도 사실 불평하는 때가 감사할 때보다 많지 않아요? 훨씬 불평하는 때가 많습니다. 불평은 썩은 음식찌꺼기와 같아서 파리 떼같이 귀신들을 불러들입니다. 왜 우리의 삶에 감사가 중요한지 우리는 알고 힘써 감사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첫째로,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는데 불평하는 자식이나 부하를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어느 부모도 있는 힘을 다해서 자식을 돌보았는데 항상 어머니, 아버지가 잘못 해준다고 불평과 원망을 하면은 부모의 마음속에 불쾌해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어느 회사도 부하가 늘 상사를 뒤에서 욕하고 불평하면 그 소리를 들은 상사가 마음이 즐겁고 평안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부모를 좋아하고 늘 방실방실 웃는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항상 즐겁고 쾌활하고 명랑한 부하를 거느린 상사는 마음이 즐겁고 그 부하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20대 이전의 얼굴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만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살면서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 얼굴 모습이 변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버마 선교사 저드슨은 못생긴 편에 속했지만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기쁨의 얼굴'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저드슨은 믿음의 사람으로 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그가 마음은 비록 얼굴의 이목구비는 잘생기지 못했을지라도 환하게 기쁨을 소유한 얼굴을 만들어 주변의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저드슨 선교사를 만나면 즐거워지고 평안해지고 명랑해졌습니다. 그 얼굴의 외모는 못생겼지만 마음에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으니까 얼굴에 환하게 늘 빛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 하면서 불평하는 자식이나 부하를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항상 웃는 얼굴로 감사하는 자식이나 부하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기쁨과 평안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도 늘 우는 얼굴 찡그린 얼굴과 불평과 탄식하는 얼굴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고개를 돌리실 것입니다. 한두 사람도 아닌 세계 60억의 인구를 돌보는 하나님이 60억의 불평과 원망을 들으면 어떻게 감당을 하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도 방실방실 웃는 자식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고 찬양하고 나오는 자를 하나님 기뻐하시고 품에 품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감사와 찬송이 있으면 얼굴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항상 불평과 원망만 있지 감사는 없는 것입니다. 대설교가 크리소스톰은 죄 중의 죄는 감사하지 못한 죄라고 말한 것입니다. 톨스토이도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늘 원망, 불평하면 얼굴이 찡그려져서 늙어지지만은 감사하는 사람은 젊은 얼굴이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제사보다 감사의 제사를 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항상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짐승의 제사보다도 당신의 백성들이 감사로 제사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69편 30절로 31절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야훼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50편 14절로 15절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감동하시는지 환난 날에 하나님이 친히 건지고 영화롭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이 감사하는 자를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시는지를 이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며 찬미로 그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성소의 문에 들어가며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겠습니까? 옷을 단장해야 들어가겠습니까? 얼굴에 예쁜 화장을 해야 들어가겠습니까? 코를 높여야 됩니까? 눈썹을 새로 그려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외모 형상이 어떠하든지 감사를 하면 하나님 성소에 들어갈 문이 쫙 열리고 찬미로 나아가면 그 보좌 앞으로 이끌어 들려지는 것입니다.

시편 100편 3절로 4절에 “야훼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 할 찌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면 하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과 탄식하면 하나님이 그 연기를 맡기 싫어하시기 때문에 하늘 문을 닫아 버리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므로 하늘 문이 열리고 찬미하면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귀는 감사하는 자에게 기울어져 있으며 하나님의 손은 찬미하는 자를 붙잡아 주려고 내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미가 우리 신앙생활에 절대적인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자는 감사할 줄 알아야 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찬미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역사적으로 교회에 큰 부흥이 다가왔을 때 찬미가 힘차게 불러졌습니다. 웨일스에 부흥이 있을 때 웨일스교회는 찬양으로 뒤덮여진 것입니다. 미국에 부흥이 크게 일어날 때마다 찬양의 부흥이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보혈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으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지 않고 냉랭한 교회, 찬미하지 않는 냉랭한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와 찬양의 향기를 좋아하지 원망과 불평의 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향기로운 감사의 제사를 드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밀림의 성자'로 불리는 슈바이처는 임종을 앞두고 불란서 친구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자네가 이 편지의 회신을 보내기 전에 아마도 난 죽을 것 같네.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슬퍼하지 말게나.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축복받은 자라고 생각하네. 불쌍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60여 년 간이나 할 수 있었고, 오늘 90세의 노구를 이끄는 이 순간까지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 때문이었다고 확신하네 나는 전심을 다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다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죽는 순간에도 친구에게 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편지인 것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생을 마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평화로운 상태에서 자신을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사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찬양을 드리고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감사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

둘째로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복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 조차 빼앗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떤 주인이 먼 여행을 가면서 종들을 불러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한사람에게는 한 달란트 주어서 장사하게 한 것입니다. 먼 훗날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를 하는데 다섯 달란트 사람은 기쁨이 충만해서 "다섯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서 열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은혜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와서 주인이 주신 두 달란트로 열심히 일해서 네 달란트로 만들었습니다. 또 역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일을 맡으라"고 한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얼굴이 삐죽하게 와서 한 달란트를 수건에 싼채로 펼쳐놓고 하는 말이 "주인님, 주인께서 주신 한 달란트를 나는 땅에 파묻어 놓았다가 그대로 파헤쳐 가지고 왔으니 받으십시오." 주인이 진노하셨습니다. "차라리 한 달란트를 은행에 맡겨서 이자라도 증식하게 하지 그대로 가지고 오다니 이 게으르고 악한 종아!" 밖에 쫓겨 나가서 이를 갈고 슬퍼하라고 말하시고 그 한 달란트를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하신 말씀이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까지 빼앗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감사에 대한 큰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속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헤아려 생각하고 감사하면 더욱 감사할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꾸 없는 것을 바라보고 불평과 원망하면 있는것 조차 하나님이 빼앗아 버리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이너스의 인생은 더 마이너스가 되고 플러스 인생은 더 플러스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 감사할 것을 찾으면 많이 찾을 수 있고 불평할 것을 찾으면 많이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면을 택해서 감사할 것을 들어서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언제나 있는 것을 찾아야 되고 없는 것을 찾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큰 독에 물이 반쯤 가득한 것을 보고 한 사람은 "할렐루야! 물이 반쯤 가득하구나!" 다른 사람은 또 고개를 설레설레 하면서 "아이고 물이 반 쯤 텅 비었구나!"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독에 물이 반이 있는데 한 사람은 가득한 것을 보고 한 사람은 반 빈 것을 본 것 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은총을 주신 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없는 것을 바라보고 원망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로 없는 것을 가지고서 원망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있는 자에게는 더 줍니다.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감사하게 만들고 찬양하는 자에게는 더 찬양하게 만들지만 원망 불평하는 자에게는 주는 것도 다 빼앗았습니다. 스펄천이 말한 것처럼 촛불을 가지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가지고 감사하면 달을 주시고 달을 보고 감사하면 태양을 주신다고 말하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면 천국을 주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는 자꾸 감사할 것을 더 많이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은 자꾸 더 원망과 불평할 것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고 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 받았지만 결국 못 들어 가고 광야에 들어가서 40년 방황하다가 첫 세대가 다 죽은 것은 원망과 불평입니다. 하나님이 광야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적을 베풀었습니까? 만나를 허락해 주고 바위에서 물이 나오고 메추라기가 오고 신발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고 병든 자가 다 고침을 주는 놀라운 은총을 생각하고 감사하지 아니하고 항상 길이 험하다. 잠자리가 좋지 않다. 음식이 박하다. 괴롭다. 여행하기가 고통 스럽다. 원망과 불평을 하다가 나중에 버림을 당코 만 것 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분 우리에게 감사하는 일을 배우는 것이 큰 유익이요, 축복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이란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도 보면 예수님이 길을 가는데 문둥이 열 사람이 고함을 쳤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그래,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 몸을 보여라" 그들이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동안 보니까 문둥병이 나았어요. 모두다 감사를 해야 될 것인데 그중에 아홉 사람은 당연지사로 생각하고 그냥 가는데 이방인 사마리아 문둥병자는 고함을 치고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며 되돌아오는 길을 뛰어가서 예수님께 무릎을 꿇어 "주님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니까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열사람이 나았는데 아홉 사람은 다 어디가고 이방인인 네가 와서 감사하느냐?" 그리고 난 다음에 주님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은 여러분 나병이 걸리면 손가락이 잘라지고 코가 문드러지고 발가락이 잘라지지 않습니까? 문둥이만 없어진 것이 아니라 감사하니까 손가락도 도로 생겨나고 코도 도로 생겨나고 발도 도로 생겨나서 완전히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치료받는 것하고 구원 받는 것은 틀립니다. 치료는 있는 그대로 치료받지만 구원을 받은 것은 원상복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문둥이는 떠나갔지만 잘린 손가락 문드러진 코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은 이 사마리아인은 감사하니까 하나님께서 원상복구를 해서 아름다운 신체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가져오는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의 미시간 호수에서 대형 여객선이 암초에 부딪쳐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마침 주변에 있던 대학생들이 승객들의 구조에 나섰습니다. 그 중에 에드워드 스펜서라는 학생이 침몰해 가는 배에서 17명을 구조하곤 지쳐 쓰러져서 응급실에 실려간 것입니다. 가면서도 그는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의 무리한 구조 활동으로 병을 얻게 되어 에드워드 스펜서는 이후 7년간의 투병생활을 하다가 3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신문 기자의 방문을 받고 그 날의 소감을 질문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날 밤에 제가 구출한 사람은 17명인데 나에게 감사를 표시한 사람은 한 명의 소녀 뿐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7년 동안 크리스마스가 되면 감사의 카드를 보내왔습니다." 보십시오. 17명을 목숨을 바쳐서 물에서 건져냈는데 다 당연지사로 지나가 버리고 소녀 한사람만은 매년 한 번씩 크리스마스에 카드를 보낸 것입니다. 우리 한국 말에는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놓으면 보따리 찾아 내라고 한다고 오히려 안 건져 주었으면 고통 안 당했을 것인데 건져 주고 고통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분 이러면 안 되지요. 감사는 꼭해야 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물에서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고 하는데 거꾸로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한은 물에 새겨서 원한은 떠나 보내고 은혜 받은 것은 끝까지 돌에 새겨 평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병 환자 열 사람을 고쳐 주었는데 그중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가는 길을 되돌아 와서 감사를 전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3. 감사는 기쁨과 행복을 가져 온다

셋째로 감사가 마음을 긍정적이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마음은 밝고 맑고 환한 태양이 떠오르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 감사하십시오, 이웃 간에 감사하십시오. 여러분 부부간에라도 오래 살면 너무 무관심해 지는 것입니다. 큰일을 해주어도 당연지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잘못된 것이 당연지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특별히 은혜로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조그마한 일을 해줘도 크게 감사하고 아내가 조그만 도움을 베풀어도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감사해야 마음이 밝아지고 맑아지고 환해지고 서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웃 간에도 조그만 일을 해주어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가장 깜짝 놀란 것은 가족들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스푼 좀 전해 달라. 물 한잔 달라고 하는데 아버지와 자식들 간에 어머니와 아버지 간에 꼭 땡큐, 감사합니다. 당연지사인데 내가 그때는... 우리는 한국에서 어릴 때 자랄 때 숟가락 주세요. 주면 그뿐입니다. 물 줘. 물주면 그뿐입니다. 밥 줘. 밥 주면 그뿐입니다. 감사란 말은 안했습니다. 당연히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할일을 해줬는데 뭘 감사하냐. 그렇게 생각했는데 미국에 가서 보니까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라도 꼭 해준 것은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내 마음속에 찡하게 느끼고 그 다음부터 저도 한국에 와서 해주는 것마다 감사하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나를 쳐다봐요. 저 사람 좀 돌았나? 무엇 때문에 자꾸 감사하다고 그러냐.
감사가 우리 한국의 생활 습관이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에는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으며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에 감사를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고려대 신경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몇 년 전 40대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그 증상과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부부간의 싸움이었고 그 다음이 고부갈등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40대 우울증 환자는 여자가 남자보다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부부간에 서로 감사하면 우울증이 안 걸릴 것인데 서로 자꾸 원망하고 무시하고 천시하니까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존 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의 깊이에 달려 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감사를 깊이 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감사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가족 간에 감사하십시오. 감사가 마음을 긍정적이 되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감사 할 때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사는 것은 무지막지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한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안 보내 셨으면 죄 값을 우리가 어떻게 갚겠습니까? 여러분 모든 죄는 보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큰 죄는 큰 보상을 해야 되고 적은 죄는 적은 보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용서가 안되는 것입니다. 용서는 보상을 해야 진실로 용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어떻게 보상합니까? 그 보상은 죽음입니다. 죽음이어야 하나님께 지은 죄를 보상할 수 있는데 그 죄를 누가 보상해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나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 앞에 죽음으로 보상해 주신 것입니다. 당신의 몸을 찢고 피를 흘리셔서 생명을 쏟아 보상을 해주었으니 그 감사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보상을 받지 않았었으면 하나님과 화목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속에 다 들어올 수도 없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하늘나라에 영원한 거처를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상을 통해서 우리는 넉넉히 하나님과 화목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인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끊임없이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 두번이 아닙니다. 우리가 평생을 드리고 천국에 들어가서도 늘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나중에 지옥에 가보십시오. 언제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의 중심은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에 엎드려 감사할 것은 십자가의 그 고달픈 고생과 고통을 우리 때문에 주님이 감당한 것이므로 그로 말미암아 천국의 영광까지 얻게 되었으므로 감사하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하는 사람은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어떻게 되어도 감사해야 돼요. 내가 암으로 죽어가는 우리 지역장 한분에게 가서 예배를 봐드리는데 지역장이 너무나 암으로 고생을 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역장님에게 "지역장님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해주시니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눈을 둥그렇게 뜨고 벌떡 일어나더니만 "목사님 무슨 말씀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세상에 머리 두고 사는 사람 누가 하나님께 감사 안할 수가 있습니까? 좋다고만 감사하고 아프다고 원망 불평합니까? 나는 그러지 않습니다. 내가 아픈 것은 내가 잘못해서 아픈 것이지 하나님이 내게 병 준 것 입니까? 내가 식생활 잘못하고 생활 습관 나빠서 병든 것을 왜 하나님께 책임을 돌립니까? 나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프더라도 소망이 있는 것은 언제 내 육신을 떠나도 천당에 가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새빨게 졌습니다. 너무나 내가 깊이 없는 신앙이요, 염치없는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좋을 때만 하는 게 아닙니다. 좋지 않을 때 감사하는 것이 진실한 감사인 것입니다. 어려울 때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8편 28절로 29절에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 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야훼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23편 6절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이끌어 주시고 나중에는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살게 해주시니 우리 어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있겠습니까?

미국인으로 중국에서 사역했던 헨리 프로스트는 선교사에게 하루는 고향에서 슬픈 소식이 전해왔습니다. 그 일로 선교사는 마음이 우울해지고 마음이 답답하고 기도가 그치고 염려, 근심이 꽉 들어 찼습니다. 아무리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가 나오지 않고 염려, 근심이 그 마음을 점령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 영혼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무리 기도해도 그 흑암의 그림자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선교본부에 갈 일이 있어 선교본부에 문을 여는데 벽에 이런 글자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Try Thanksgiving' 감사를 해보라. 그 말이 마음에 부딪혀서 그때부터 시작해서 그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고향에서도 돌아온 슬픈 소식도 하나님이 돌보아 주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그러자 그는 말하기를 '그 시각부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흑암은 물러가고 내 영혼에 빛이 비취기 시작하였습니다. 마귀가 떠나간 것입니다.

영국의 종교가이며 기도의 사람으로 알려진 윌리암 로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
원망과 불평은 원수 마귀가 가져와서 우리 마음을 억압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고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감사인 것입니다. 감사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비춰오기 때문에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마음을 긍정적이 되게 하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넉넉히 부어 주는 것입니다.

4. 감사는 내적 치료를 가져 온다

넷째로, 감사는 내적 치료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불평은 미움, 분노, 불안, 절망, 탄식 등을 가져오나 감사는 이 모든 독을 해소 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뱀에게 물리면 뱀의 독이 몸속에 들어가서 피를 응고시키는 것입니다. 피가 굳어져 버리면 간장도 심장도 활동을 중지하고 죽는 것입니다. 뱀에게 물려서 피가 응고할 때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해독제 주사를 빨리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해독제를 맞으면 해독제가 몸속에 들어가서 응고되는 피를 물렁물렁하게 만들어 주고 묽게 만들어 주어서 독사의 독이 해소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물어서 불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에 미움, 분노, 불안, 절망, 탄식이 꽉 들어차서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입니다. 빨리 해독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해독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야 해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펼쳐 읽고 하나님께 감사하기 시작하면 해독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때 귀신들이 쫓겨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 14절에 “야훼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야훼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사울이 하나님을 반역하매 성령이 떠나고 악령이 와서 그를 괴롭혔습니다. 악령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치고 야유를 하고 고함을 치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와서 그를 치료한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이 하나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수금을 타니까 악령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감사와 찬양은 여러분의 마음을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의 독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괴롭고 우울하고 원통할 때 다른 것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엎드려 주님이 주신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큰 소리로 감사하고 찬양하면 얼마 있지 아니하여 독이 다 해소되어 버리고 깨끗하고 밝고, 맑고, 환한 마음이 되고 행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는 내적치료를 가져오므로 교회와서 많은 찬양을 드리고 많은 감사를 드리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속이 시원해지고 여러분 인생이 밝고, 맑고, 환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5. 감사는 기적을 체험하고 역경을 이기게 한다

다섯째, 감사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역경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한 것 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이 임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임하겠다는 것은 기적적인 은총이 임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무엇이든지 잘돼요.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들에 가면 들이 잘되고 집에 들어오면 집이 잘되고 떡 반죽 그릇을 만지면 그릇이 잘되고 짐승을 기르면 새끼까지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모든 환난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서 10년 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 할지라도 성경은 다른 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더라. 그러니 요셉이 종으로써 형통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서 3년 동안 갇혀 있었으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이 감옥에서 갇히게 하셨더라. 그래서 간수장이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하나님이 같이 했으므로 요셉이 결국에는 국무총리가 된 것 입니다. 어떠한 역경에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잘됩니다. 마귀가 같이 있으면 못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뿐이요. 인자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늘 같이 하게 한 것입니까? 감사를 하면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부엌에서 감사하면 하나님이 요리를 잘되게 하시고, 집안에서 감사하면 부모 자식들이 잘되게 하시고, 장사터에서 감사하면 장사 잘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고 마귀가 오므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역사를 베푸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갇혔을 때 인 것입니다.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등이 얻어터지도록 얻어맞고 피를 흘리고 배를 굶고 빌립보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 밤중에 그 두 사람이 일어나서 기도하고 철 고랑을 마주치면서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깊이 감사했던지 죄수들이 듣고도 조용했습니다. 그러자 온 빌립보 옥토가 뒤흔들리고 전부 쇠고랑이 다 끌러지고 감옥 문이 열리고 해방과 자유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그들이 감사 찬양을 할 때 감옥에도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까 빌립보 감옥에 바울과 실라만 옥에서 쇠고랑이 끌러진 것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다 쇠고랑이 끌러지고 만 것 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미하면 가난의 쇠고랑, 궁핍의 쇠고랑, 저주의 쇠고랑이 다 끌러지고 우리 덕분에 안 믿는 사람들의 쇠고랑도 다 끌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우리를 자유케 하고 해방케 하는 능력과 권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묶였으면 감사 찬송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작년 이맘때 11월 감사의 달을 맞아 한 일간지 논설에 한국인의 '감사 결핍증'에 대한 글이 실린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물건을 사고 나올 때 손님이 인사를 하면 주인은 감사하다는 말 대신에 '또 오십시오.' 이기적인 인사를 한다고. 아이들에게도 장난감을 사주면 '고맙습니다.'라는 말 대신에 '야~ 신난다', 택시 정류장에서 바뻐서 허둥거리는 젊은이에게 먼저 타도록 양보해도 젊은이는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 안하고 택시에 들어가서 문을 꽝 닫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서양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감사하다'라는 말로 이들은 옷을 살 때에도, 신문 한 장 살 때에도 '감사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서양인의 이러한 태도는 서구 사회가 기독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신문 사설에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는 좋은 일은 더 좋게 만들고 좋지 않은 일은 감사의 능력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하는 생활을 습관화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성경에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것 입니다. 감사는 좋은 일은 더 좋게 하고 더욱 아름답게 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쁜 일은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큰 역사로 믹서같이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불평할 것을 찾지 말고 무엇을 감사할 것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편의 삶속에 무엇을 감사할까, 아내의 삶속에 무엇 잘난 점이 있느냐. 무엇을 감사할까.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웃 간에도 자꾸 잘난 점을 찾아서 감사를 하고 찬양을 해야지 잘난 점은 다 두고 못난 점만 자꾸 찾아서 불평과 원망을 하면 서로 미워하게 되고 불리하게 되고 싸우게 되고 마찰이 있고 알력이 있고 불평하고 불행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평탄하게 살게 하고 복을 받게 하고 성공하게 하는 비밀인 것입니다. 마귀가 아무리 우리에게 독을 뿌리고 우리를 깨물어도 독이 우리 속에 아무리 넘쳐와도 감사만 하면은 독이 다 해소되어 버리고 마귀가 무력화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힘, 불행을 이기는 힘, 좌절과 절망을 이기는 힘, 마음에 병을 고치는 힘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감사의 제사를 끊임없이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형식적, 의식적으로 감사주기를 맞이해서 감사주일을 지낼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이웃에게 진정으로 감사를 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소서.
더 많이 감사하면 더 은혜가 풍성해지고 더욱 많이 감사하면 더 축복이 넘쳐나고 더욱 훌륭한 인격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도와주시옵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가까이 우리 마음에 있고 우리 입술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서 감사를 충분히 넘치게 하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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