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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요한 말 (엡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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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중요한 말 (엡 5:3-7) - 새벽설교
본문 : 에베소서 5:3-7 (찬 359)

  한창 정치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루스벨트는 39세 때에 갑자기 소아마비에 걸려 보행이 곤란해졌습니다. 그는 다리를 쇠붙이에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가 방에서만 지내는 것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아내 엘레나 여사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개인 어느날 남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엘레나 여사가 루스벨트에게 이야기 합니다. “비가 온 뒤에는 반드시 이렇게 맑은 날이 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뜻하지 않은 병으로 다리는 불편해졌지만 그렇다고 당신 자신이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여보,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아내의 말에 루스벨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불구자요. 그래도 나를 사랑하겠소?” “아니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해요? 그럼 내가 지금까지는 당신의 두 다리만을 사랑했나요?”
아내의 이 재치 있는 말에 루즈벨트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장애인의 몸으로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어 경제공황을 뉴딜정책으로 극복했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Andrew Carnegie)는 어렸을 때에 모두가 인정한 장난꾸러기였습니다. 그가 9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얻었습니다.
그 때 카네기는 버지니아 주의 가난한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새어머니가 온 후에 그의 집은 다소 넉넉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에게 카네기를 소개하며 “앞으로 이 골치덩어리를 조심해야 할 거요. 내 속을 보통 썩이는 게 아니거든. 어쩌면 내일 해 뜨기 전에 당신한테 돌을 던질지도 몰라요. 아니면 다른 못된 짓을 벌이든가. 아무튼 당해 내기 힘든 녀석이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도 새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카네기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을 들어 올리고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아버지를 보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이 틀렸어요. 이 아이는 마을에서 제일가는 골치덩어리가 아니에요. 제가 보니까 아주 똑똑한 아이인 것 같은데요."
새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카네기는 마음이 따스해졌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이 말로 인해 새어머니와 카네기 사이에는 우정이 싹텄습니다.
이 한마디 말 덕분에 카네기는 후에 스물여덟 가지 성공의 황금법칙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새어머니가 오기 전에는 아무도 그의 영리함을 알아주지 않았고 아버지와 그의 이웃들은 그를 그저 골칫덩이 장난꾸러기라고 야단만 쳤습니다. 하지만 새어머니가 해 준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특히 믿는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 우리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것과 나와야 하는 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3절 말씀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나쁜 것을 입에 담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영적으로 타락되어 있고, 부도덕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여러 부부들이 모여서 놀다가 부부를 바꿔서 성관계를 갖는 스와핑이라는 것을 적발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어떤 교인이 그 소식을 듣고 와서는 흥분을 합니다. 인간이 그럴 수가 있냐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없이 듣기에 아주 민망한 단어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는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실마리조차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악은 처음에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커져서 양심이 무디어집니다. 나중에는 큰 죄악도 당연시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 4절 말씀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저속한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보다 한 단계 앞서야 합니다. 그것은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것은 능력입니다. 감사는 힘이 없으면 못합니다. 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다짐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뭘 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특히 악한 것을 바꿔서 감사로 만드는 일은 더욱 용기가 필요합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보통 감사가 아니고, 돌이켜 감사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화를 복으로 바꾸라는 명령입니다. 이 능력이 하나님을 닮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교인을 병문안 했습니다. 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깨지는 대형 사고였습니다. 차는 완전히 망가져서 폐차를 시켰답니다.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다가 저를 보더니 반가워했습니다. “목사님 참 감사합니다.” “아니 뭐가 그리 감사합니까?” “0.1초 차이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이만하기가 다행입니다.” 그 분은 이 일을 하나님의 경고를 알고 앞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교인들이 남 흉보기를 잘합니다. 여러분 허물을 들추지 마세요.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마세요. 좋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흉보고, 욕하고, 손가락질 하지 말고 돌이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불평은 하면 할수록 눈 덩이처럼 커집니다. 그러나 감사는 하면 할수록 화가 줄어듭니다. 돌이키면 회복됩니다.
감사는 현찰입니다.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감사가 더 좋습니다. 사랑한다는 고백이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랑 고백은 반복될수록 감격이 줄어듭니다. 그러나 감사 고백은 매번 기쁨을 줍니다. 모임의 고백속에 이 감사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허물과 쓰러뜨리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하셨노라고 고백하며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감사의 말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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