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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은 자의 축복 (미 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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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축복 (미 2:12-13)

(미2:12-13)  야곱아 내가 정녕히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정녕히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 양떼 같게 하며 초장의 양떼 같게 하리니 그들의 인수가 많으므로 소리가 크게 들릴 것이며 (13) 길을 여는 자가 그들의 앞서 올라가고 그들은 달려서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좇아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행하며 여호와께서 선두로 행하시리라

1. 본문 성경을 기록한 미가는 B.C. 700년경,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외적으로는 세계 최강국이었던 앗수르의 침략 위협에 직면한 국가 위기 상황이었고, 내적으로는 심각한 정도로 우상숭배가 만연하고 도덕적 타락과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강하고 힘 있는 자들과 가진 자들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 행위가 심각한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여 사회적 분열과 불안, 불만이 위험수위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까지도 거짓 예언을 난발하며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습니다. 이같은 실상을 기록한 성경을 보겠습니다.

(미1:7)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르며 그 목상을 다 훼파하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미2:1-2)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미3:11)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 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른 바 온갖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가 나라 민족의 존망마저 위협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현 정권의 임기 말에 계속해서 터지는 청와대 전 정책실장의 신정아 비호 의혹 사건, 전 청와대 비서관의 뇌물 수수 혐의 구속사건, 현 국세청장의 인사 청탁 뇌물 수수 구속사건 등은 이른 바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들입니다. 깨끗하다고 자부했던 현 정권의 수많은 권력형 부정부패와 온갖 비리는 임기 말까지 그칠 줄을 모르고 터지고 있습니다. 권력형 부정부패로 인한 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빈부격차를 초래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중 상위 5%의 사람들이 38%의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부동산은 더 심각해서 상위 10%의 점유비는 현재 9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국민은행에서 최근 조사한 것에 의하면 상위 20%가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71%를, 상위 5%가 38%, 상위 1%가 19.4%를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합니다. 이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총액으로 따지자면, 100명중에 부자 5명이 우리나라 돈의 거의 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땅과 집은 100명중에 10명이 90%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심각한 빈부격차는 개선되기가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를 통해서 이루어진 축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미가 선지자 당시의 사회적 병폐와 다를 바 없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미2:4)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 쓰라린 경험을 풍자하여 이런 애가를 지어 부를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망하였네. 여호와께서 우리 땅을 빼앗아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원수들에게 주었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는 이스라엘은 조만간 이같은 “슬픈 애가”(哀歌)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멸망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들로 하여금 “슬픈 애가”를 부를 수밖에 없는 공의로운 심판은 그들 민족을 정화시켜 새롭게 만들고자 하시는 ‘사랑의 징계’입니다. ‘사랑의 징계’를 통해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브라함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12:5-9)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결국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의매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포로 생활 중 겪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 시편137입니다.

(시137:1-9)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바벨론 포로가 되어 바벨론 여러 강변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던 때를 기억하며, 악기를 들고 망국의 설움을 달래고 있었는데 어느 바벨론 사람이 자기들을 위해 노래 한 곡 부르라고 하자 자신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던 그 입술로 어찌 우상숭배자들의 노래와 그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 혓바닥이 입천장에 붙을지라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처럼, 그리고 다니엘처럼 이렇게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서도 철저히 우상숭배를 거절하고 자기의 신앙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사람들, 그리고 바벨론이 아무리 당대 최고의 문화와 문명을 자랑하고 높은 생활수준을 보장한다 해도 그곳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님을 확실히 믿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아니한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부르며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홍수의 심판 속에서도 노아와 그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방주(교회)를 지으라는 하나님 말씀에 세상사람 모두가 조롱할지라도 120년 동안 굴하지 아니하고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의 심판 속에서 롯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세상 모두가 온갖 죄악으로 범람할지라도 홀로 의롭게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의 악독한 우상숭배 강압 정치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우상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켰던 7천명의 참된 선지자들을 남겨두셨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돈과 세상 권세, 우상과 이단의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세상풍속을 따르지 아니하여 신앙을 거룩하게 지키시므로 ‘남은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외눈박이 원숭이만 사는 곳에 어쩌다가 두눈박이 원숭이가 살게 되었는데 외눈박이 원숭이들의 조롱과 멸시를 견디다 못해 두눈박이 원숭이는 한 눈을 빼고 외눈박이가 되었답니다.

모두가 다 타락한 사회에서 나홀로 깨끗하게 산다고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불의한 사회에서 홀로 의롭게 산다고 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두눈박이가 온통 외눈박이 사회에서 끝까지 홀로 두눈박이로 남는 데는 온갖 조롱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손해를 보아야하기도 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받지 않아도 될 환난과 핍박을 당하게 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손해와 고통이 크다 해도 심지가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남은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게 ‘보스라 양떼 같게 하리라’는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보스라’는 애굽의 한 성읍 이름으로 ‘높은 벽으로 둘러 세워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요새화된 성읍’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를 ‘보스라의 양떼 같게 하리라.’는 말씀은 ‘남은 자들을 아무라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요새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완벽하게 보호하시겠다.’라는 축복을 말합니다. 이 시대에 ‘남은 자’의 신앙생활로 ‘보스라의 양떼같이’ 온전하게 보호하시며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남은 자’에게 주시는 두 번째 축복은 ‘하나님께서 선두에 서서 그들의 앞길을 형통하게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같은 하나님을 ‘길을 여는 자’, ‘선두로 행하시는 자’로 표현했습니다. ‘길을 여는 자’의 히브리어 ‘파라쯔’는 앞으로 나가는 길에 모든 장애물을 돌파하여 약속한 축복의 땅에 이르게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출23:20)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출23:27-28)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너의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파하고 너의 모든 원수로 너를 등지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 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앞길에 모든 장애물을 모두 깨끗이 제거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그 모든 장애물들을 여지없이 부수고 돌파하여 형통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로 놓인 홍해에 길을 열게 한 것은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

(출14:21) 하나님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 것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고, 밤에는 혹독한 추위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기 힘든 광야 길에 낮에는 시원한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따뜻한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의 길을 열어주신 분은 모세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선두에 서서 축복의 땅으로 가는 길을 여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바로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축복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을 열어 주시고자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것입니다. 이를 히브리서 성경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죄의 장벽(휘장)부수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영원한 축복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께서 열어놓으신 그 길로 갈 때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부수고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엡2:13-18)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십자가는 인간관계의 막힌 담을 돌파하여 화평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끝까지 따라가면 모든 길이 열립니다. 삶의 모든 닫힌 문과 높은 담을 헐어버리고 형통한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는 ‘남은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에 ‘남은 자들’이 되셔서 선두에서 삶의 모든 길을 형통하게 열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보스라의 양떼 같이, 초장의 양떼 같이’ 부족함이 없이 보호하시는 온전한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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