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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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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 8:4-8)
   
    네덜란드의 한 소년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둑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는 것을 보고 이 소년이 밤새 그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그 자리를 지켜서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고 그 마을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았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한 사람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귀중하다는 사실을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한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그 가정이 화목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내의 역할, 어머니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아내라는 말은 '안해'sunshine in the house - 집안의 해라고 부를 정도로 어머니 한 분이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화기애애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없는 집은 불행하고 고독하고 적적합니다. 자식들이 마음을 붙일 데가 없고 남편이 마음을 붙일 데가 없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와 집의 문을 열 때 어머니가 집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아이 하나의 역할도 상당히 큽니다. 아이가 있는 집은 행복합니다. 율 브리너는 많은 외국의 아기들을 입양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은 집 안에 행복을 창조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 하나가 있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형제 모두가 그 아이 중심으로 대화거리가 생기고 웃을 일이 있고 아이를 중심으로 앉고 아이를 중심으로 대화합니다. 옆집에 들려도 되는 소리가 몇 가지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글을 읽는 소리, 그리고 애기가 우는 소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가정이 번창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또한 남편 아버지의 역할도 참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버지 한 사람의 역할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철학자 니체는 아버지가 루터교 목사님이었는데 아들이 일곱 살이었을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에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한 배경에는 아마도 일찍 아버지가 죽은 것에 대한 심리적인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봅니다. 니체에게는 아버지가 없이 자라난 그의 삶이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욕이 무엇입니까. 아버지 없이 자란 자식이다, 그 말 아닙니까. 아버지 한 사람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역할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좋은 사람 한 사람의 역할도 그렇고 나쁜 사람 한 사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소련의 스탈린, 스탈린이란 말은 원래 러시아 말로 '철의 사나이'라는 뜻인데 그는 살아있는 동안 철의 손으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공포의 정치 시대였습니다. 그의 장군들도 두려워하고, 부하들도 두려워하고 심지어 스탈린의 아내조차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언제 숙청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스탈린이 죽는 날, 그가 죽는 줄을 부하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스탈린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의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스탈린이 살아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살아나면 다시 공포의 정치로 돌아갈 테니까 죽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러시아 국민들의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공포의 정치에서 벗어났습니다. 한 사람이 죽었을 뿐인데. 집단을 강조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한 사람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반도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일을 하기 위해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한 사람. 홍수가 있기 전에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에게 방주를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외에 홍수를 준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노아 한 사람이 그 사실을 믿고 방주를 준비했을 뿐입니다. 또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내셔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한 사람이에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세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모세 한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킨 것입니다. 또한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으르렁 거릴 때 하나님은 다윗이라는 소년 한 사람을 내보내서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했습니다. 소년 다윗 한 사람이 물맷돌 다섯 개를 들고 나가서 투구와 갑옷과 창과 방패와 칼보다도 전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증명한 것입니다. 한 사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보내셔서 그분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해서 온 인류가 죄에 빠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서 모든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믿음, 우리의 정성이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집약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를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으니 ‘천하에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느니라 - no other name’, 예수님의 이름 이외에 다른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해서 해결하셨습니다. 다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가 있든 허물이 있든 실패를 했든 어떤 문제가 있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하시는 일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가장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은 사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하시는 많은 일 중에서 가장 귀한 일은 의로운 사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조직을 남기지 않았고 재산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잘 훈련된 믿음의 사람 열 한 명의 제자만을 남기고 떠나가셨어요.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이 지속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잘 훈련된 믿음의 사람들만 있으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얼마든지 당신의 일을 이루실 수 있다고 믿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기 때문에 당신의 몸을 사람에게 의탁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사람이 근본적으로 죄인이고 연약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것을 아셨음에도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떠나가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뭐라고 분부하셨느냐면 ‘너희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내가 가르친 것을 그들에게도 가르치라. 사람을 세우고 일꾼을 세우고 제자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후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게 하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리스크가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이 변절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사람이 실족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요. 사람처럼 리스크가 많은 존재가 없습니다. 요즘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부동산 시장이 냉각되었고 도대체 어디를 믿고 돈을 맡길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것보다 더 리스크가 많은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 믿다가 실망하고 또 신뢰했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떠나가셨어요. 그리고 ‘이 반석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반석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교회를 세우는 분도 예수님이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는 분도 예수님이지만 그러나 예수님도 반석이 필요해요. 그 반석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 반석은 믿는 사람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이 이 반석위에, 베드로라는 말이 반석이라는 뜻 아닙니까.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와 같이 오늘날도 예수님이 당신의 일을 세울만한 반석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한 사람이라도. 한 사람의 의롭고 성실하고 충실한 믿음의 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이 그를 반석과 같이 사용하셔서 그는 연약한 존재일지라도. 그러나 연약한 베드로에게도 반석과 같은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 그도 연약한 인간이지만 그에게도 반석과 같은 면이 있었어요.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 안에 반석과 같은 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자신이 교만해져서도 안되지만 인간적인 면을 보고 우리 자신을 무시하는 것은 그것은 마귀의 미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는 참소합니다. 너는 약하고, 너는 배신자이고, 너는 안된다, 너는 할 수 없다, 너는 포기하는 게 낫다, 이런 식으로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를 참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싫어하기 때문에. 마귀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인간을 참소하려고 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믿음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을 좌절시키고자 하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하실 일이 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그만큼 거기에 시험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우리도 주님을 섬기려고 할 때마다 시험이 오지 않습니까. 내가 마음을 먹고 신앙생활을 잘 하겠다, 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겠다고 다짐을 하면 이상하게 시험이 생겨요.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만한 일이 생겨요. 그럴 줄로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경 말씀에도 ‘너희를 시험하는 불 시험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때 풍랑이 일어나는 것,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불편합니까마는 예수님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풍랑 중에도 고물에 머리를 베고 주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여기에 함께 있는데 이 풍랑이 배를 이길 수 없다, 그런 확신에서부터 비롯된 평강이에요.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호수가 잔잔한 가운데서 오는 평강이 아니고 풍랑이 있는 중에도 배 안에서 잘 수 있는 평강인줄로 믿습니다. 그게 진짜 평강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평강이에요. 그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에요. 우리의 지각은 경고 싸인! 경고 싸인! 풍랑 중! 위험! 위험! 삐삐! 삐삐! 위험합니다! 위험합니다! 경고! 경고!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우리의 지각, 우리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안의 성령은 우리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든 하나님의 뜻이든 섭리든 그것을 성령은 알고 계시기 때문에. 성령은 깊은 것,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것을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염려가 될 만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에 평강이 있을 수 있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상하지요? 이상합니다. 왜 내 마음속에 평강이 있을까, 왜 내 마음이 편한지 난 알 수 없도다, 그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인 것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시련에 처할 때에야 하나님의 임재를 더 확실하게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모르는데 그럴 때 경험합니다. 촛불을 대낮에 켜면 안 보이지만 밤에 켜면 수십 킬로 밖에서도 보입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잘 못 느끼는데 시련이나 어려움이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 아, 이 모든 것이 진짜구나. 성경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구나. 다 진짜요,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구나. 할렐루야! 이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마리아에 빌립이라는 청년 한 사람이 내려갔을 뿐인데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앙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세상에 있어서 어떤 기여를 했느냐?’ 여기에 대해서 무지한 사람도 있고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왜곡된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만일 기독교 신앙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암울했을 것입니다.

이걸 다 말할 수 없지만 한 예만 들면, 트래픽이라는 영화를 보면 마약에 관한 영화인데 많은 양의 마약이 미국에 들어올 때 멕시코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멕시코 당국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표가 멕시코의 대표를 만나 협조를 구하는 자리에서 미국의 대표가 멕시코 대표에게 묻습니다. ‘마약 중독자들을 위해서 어떤 대책을 갖고 계십니까?’ 그랬더니 멕시코 대표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런 건 필요 없지요. 마약 중독자가 과다 복용으로 죽어주면 그게 도와주는 것이지요.’ 그 말을 듣고 미국 대표가 뭐라고 대답할지를 몰라요.

  여기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아주 극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마약을 근절하자!’ 이 정도는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동감합니다. 그러나 이미 마약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세계적인 가치관은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까 본인이 그 책임을 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갱생이나 구원이나 second chance는 없어요. 그러나 기독교적인 가치관은 그가 비록 실수를 했지만 그대로 망하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인 것뿐만 아니라 죄인에 대한 배려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안되지요. 그 정도는 삼척동자도 알아요. 그러나 문제는 이미 죄를 지었는데, 죄가 없는 사람이 없는데 죄를 지으면 안된다 라는 것으로는 죄인을 도와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서는 안되지만 이미 죄를 지은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에 대해서 세상에는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마약을 하면 안된다는 구호만으로 마약 중독자를 도와줄 수 없는 것처럼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철학으로 죄인을 도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어요. 이것은 기독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사상입니다. 이것이 인류에 이바지한 것은 우리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예수님을 전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절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병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이 병은 돈으로도 못 고치고 교육으로도 못 고치고 예수님만으로 고칠 수 있는 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전하니까 사람들에게 붙어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고치실 때는 강력하게 고치십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도우실 때는 강력하게 도우십니다.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해서도 안되고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고치실 수 있는 인간의 깊은 병이 있고 죄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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