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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백성과 인도하심 (창 2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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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과 인도하심 (창 24:1-67)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삭에게 아내를 주시고(24장), 자식을 주시고(25장), 재물을 주심으로(26장)써 그분의 언약을 계승하게 하셨습니다. 24장은 이삭의 배필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1).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아브라함은 성숙하고 넉넉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나이 40이 된 아들을 위해 배필을 구하려 합니다(25:20). 여기서 그의 결혼관이 드러납니다. 먼저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2-4)는 말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같은 민족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가나안 일곱 족속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15:16). 심판 받을 그런 불신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복을 계승할 이삭이 한 몸을 이룰 배필을 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습니다(고후 6:14-16). 쉽게 정리하자면 혼인은 하나님의 백성과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중에서 배필을 열심히 찾았으나 아무도 없을 경우에 아브라함은 이삭이 잠시라도 본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6, 8). 그 이유는 7절에 언급 됩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연로한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의 결혼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사명을 잠시라도 뒤로 제쳐둘 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다고 여겼습니다.

창세기 24장은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 말씀하시지도 않고, 천사를 통해 계시하시지도 않고, 기적이 일어나지도 않습니다. 성숙해진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들을 근거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가 장성해갈수록 기적이나 환상을 의존하지 않고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의존해 간다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모든 것에 있어서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려는 자세입니다. 종종 죄의 낙을 즐기고 자기 욕심대로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명확한 인도하심을 바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순물 가득한 흐린 눈으로 명확하게 보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발견한 사람들은 모두 철저한 순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3, 7)을 반복해서 언급합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 믿던 신은 어떤 지역에 한정된 신이었습니다. 산을 다스리는 신이 따로 있고 평지를 다스리는 신이 따로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고향 땅에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시며, 그 길로 가는 과정에서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위한 아내를 만날 수 있도록 종의 걸음을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언약의 계승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그와 함께 언약을 계승할 배필과 자녀를 주실 것도 너무나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다만 주실 ‘때와 방법’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므로, 만약 종이 적절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아닌 줄 알고 기다리려는 자세를 가졌습니다(8). 아브라함의 모든 생각과 계획이 얼마나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의존하고 있는가를 여기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낙타 열 필을 취하여 메소포타미아로 가서 나홀 성에 이르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하나님의 구체적인 인도하심을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12) 아마 그가 기억하는 주인의 하나님은 약속하신 바대로 반드시 이루셨던 하나님일 것입니다. 종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조건들을 일단 정합니다(13-14). 이삭의 아내는 단지 한 사람의 아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큰 공동체를 이끌어 갈 지도자를 동역할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나그네를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마음과 낙타의 목마름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사려 깊음과 적극적으로 섬길 수 있는 봉사심을 갖춘 여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기도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가 마음에 생각했던 대상으로 여겨지는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18-20절은 리브가가 “급히” 행동했다는 것과 “배불리” 마시게 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녀는 나그네뿐만 아니라 그의 낙타 10마리까지도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도 풍성하게 대접했습니다. 종이 기도했던 내용과 딱 들어맞았습니다(15-20). 오히려 기도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기도가 응답되었다고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그는 과연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좀 더 묵묵히 지켜봅니다. 그런 중에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형제인 나홀의 손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22-25). 그제야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며 말합니다(26).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27).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참으로 주의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하나님의 뜻이고 뒷면이 나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식으로, 자기가 임의로 정한 방법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일입니다. 점치듯 하는 이런 자세에 종교적인 옷을 입히면 구별하기가 더욱 어려워서 자칫 빠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간절히 기도한 후에 성경을 펼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성경 구절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거나, 여러 말씀들을 통에 넣어두고 아무거나 뽑아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으로 생각하는 이런 종류의 방식을 말합니다. 점집에서 점괴 뽑는 것이나 별 다를 바가 없지요. 만약 그런 자세로 성경을 펼쳤는데, “유다가 …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 27:5)라는 말씀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여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임의로 정한 방법대로 응답해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으십니다. 소원을 빌기만 하면 나타나서 응답해 주어야 할 분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마치 알라딘 마술램프의 거인처럼 취급하는 셈입니다. 하나님을 그리 대한다는 것은 그분을 경외하는 자세가 전혀 아니지요. 오히려 저주를 받아 마땅할 무서운 죄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정한 조건은 이삭과 함께 언약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인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지 점치 듯 하는 자세는 아니었습니다. 이는 그가 생각한 조건이 만족되었을 때, 곧바로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지 않은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앞에서 종합적으로 생각해서 판단할 만큼 사고가 깊고 성숙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경배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이 좋다는 말은 지성을 저당 잡힌 채 무조건 믿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참으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바를 바르게 깨달아 바르게 판단하면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을 “장성한 자”라고 부르며, 성도들이 유아적인 상태에 머물러있지 않고 장성한 자들로 자라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히 5:14, 12). 한두 번 열정적으로 충성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한 말씀에 대한 감동으로도 그리할 수 있고, 단체의 분위기나 의무감에 의해서 그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일관되게 하나님 앞에 충성하려면 큰 깨달음을 통한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되, ‘오직 성경’뿐만 아니라 ‘전체 성경’에 대한 지적인 뒷받침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의 종은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의 성품과 오묘하신 인도하심을 깨닫자 머리 숙여 경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8-61절은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종은 라반에게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33)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사명을 무엇보다 우선에 두는 자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종은 아브라함이 어떤 결혼관을 가지고 이삭의 배우자를 찾고 있는지 설명하고(37-41), “여호와께서 그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할 길을 주시리니”(40)라는 주인의 말을 따라 “나의 행하는 길에 형통함을”(42) 주시도록 기도했었고, 그 기도 내용이 응답되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48)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라반과 브두엘도 즉시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50-51)고 대답했습니다. 종이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56) 속히 돌아가겠다고 하자 리브가도 “가겠나이다”(58)고 결단합니다. 리브가의 가족과 리브가는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작정이고 섭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큰 깨달음은 즉각적인 순종을 낳았습니다. 종은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52)합니다. 라반에게 절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결단케 하신 분도 여호와 하나님의 형통케 하시는 인도하심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리브가를 하나님께서 인도한 사람인 줄로 알고 그를 아내로 맞이하여 사랑하였습니다(62-67).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을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비록 지금은 어려운 여정을 걷고 있을지라도 철저히 말씀을 의존하며 순종 자세를 고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분께서 형통한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가운데 감사하고 경배하면서 마침내 그러함을 깨달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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