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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딤후 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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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후서 4:9-21

지난 주간에 신언중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안경희 집사님 반에 명물인 철수라는 학생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점심을 먹고 난 후에 5교시 영어 시간이었습니다.  잠시 쉬어가려는 생각이었는지 선생님이 난데없이 철수를 불러 세웠습니다.
마침 졸고 있던 철수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예∼"
"야, 너 또 자고 있었지?"
"아닌데요"
"너, only 뜻이 뭐야?"

선생님의 질문에 철수는 고개를 떨구고 옆자리 친구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철수 짝꿍이 속삭이듯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단지. 단지"
철수가 대답을 합니다.
"예, 단지입니다."
영어 선생님은 옆 짝꿍이 가르쳐 준 것도 모르고 "어∼ 그래도 그건 아네.  그럼 다른 뜻은 뭐야?"하고 재차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이 질문에 철수는 이미 깨달았다는 듯이 아주 자신만만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항아리!"

한 번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알아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어설프게 알면 자신도 힘들지만 옆에 있는 사람도 힘듭니다.  신앙도 매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려야 합니다.  어설픈 종교놀이는 자신도 힘들지만 결국은 주변의 사람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기 신앙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분명하지 않는 회색지대에서의 신앙적 삶이 힘든 것입니다.

어제 저는 서재실에서 말씀을 준비하다가 복음성가의 이 한 가사를 되씹으면서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빠졌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축복의 통로인가?  나는 내 아내에게 축복의 통로인가?  나는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축복의 통로인가?'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만 가지의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아빠는 우리 인생에 축복의 통로예요.  당신은 내 인생에 축복의 통로예요.  목사님은 우리 인생에 축복의 통로입니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나를 아는 내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저주의 통로인가?

"주철이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오랜 시간동안 이 가사를 되씹으면서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그리고 어느 듯 제 눈가에 눈물이 적셔왔습니다.  앞으로 나의 남은 인생이 얼마일는지 알지 못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
당신을 통하여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 주위에 보면 스스로 축복의 통로가 아니라 저주의 통로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축복의 통로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
당신을 통하여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가 전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내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한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한 마디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비전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전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 전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뜨거운 기름 부으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하나의 비전을 향하여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이 사회에 꿈을 전하는 꿈의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께서 오늘을 기억하실는지 모르지만 지난 2001년부터 매년 11월 마지막 주일에 동일한 본문과 동일한 제목으로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헤어져야만 했던 사랑하는 성도들이 매년 반복하는 똑같은 설교를 듣기 위해서 이 재단으로 찾아오는 발걸음을 기대하면서 기나긴 설교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0월 2일에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가운데 정채은이라고 하는 학생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께 부탁이 하나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대장암 말기와 암 전이로 인해 간암에 걸리셨습니다.  의사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메일로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교수님, 저희 아버지를 위해 한번만 기도해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럼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6일에 학생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로부터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이 아이는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힘들어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아픔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한 해를 아무런 탈없이 건강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사명을 놓지 않고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어서 한 해를 달려올 수 있었다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한 해 동안 우리를 아무런 탈없이 건강하게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박수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은 두 번째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서 그는 이제 머지않아 인생을 마감하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나이도 칠십이 넘어서 노인이지만, 그러나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이 "내년 봄의 어느 시간에는 내가 순교하게 될 것이다" 라고 순교를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여기에서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라는 말은 자신의 생명과 피를 희생 제물로 드려진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바로 앞에 있음을 예감하고 있습니다.  삶을 정리해야 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 그는 감회가 깊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그리워집니다.  한번 더 그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아들이요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편지를 씁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죽음을 앞둔 바울이 디모데에게 왜 이런 부탁을 했겠습니까?  멀리 에베소에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한 것은 인생의 겨울이 닥치기 전에 준비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젠가 우리들의 인생에도 차가운 겨울이 닥칠 것입니다.  아니 분명히 우리에게도 어느 날엔가, 어느 시간엔가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순간에 인생의 겨울은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도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당부합니다.  바울은 언제 죽을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어쩌면 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가 어떤 이유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로 하여금 빨리 오라고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를 상상해 볼 수는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겨울을 보다 따뜻하게 보내고 싶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13절 하반 절에 보면,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겨울을 지나기 위해서는 따뜻한 외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무엇입니까?  어쩌면 남들처럼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정도 지위나 명예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들 가운데는 내일 죽더라도 한 시간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갖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루고 싶은 것들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많은 것을 성취하고 싶지만 만족스럽게 이루지 못하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후회하면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젊었을 때 좀더 열심히 했었던들 하고 후회를 합니다.  조금만 더 뜨겁게 사랑했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합니다.  좀 더 건강할 때, 돈이 있을 때 더 열심히 봉사하고 살았더라면 하고 후회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70을 살고, 80을 살아도 정말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세월은 그렇게 길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긴 세월이 주어질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삽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닥쳐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하셔야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속히 오라!"는 목소리는 우리의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는 목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우리의 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 못 되고는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흔히 "내일부터는 내가 새 사람이 되어 보겠다.  오늘밤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재미를 보고 내일부터는 새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장담합니다.  이와 반대로 "내일은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만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내일을 위해서는 그럴 듯한 약속을 하지만, 오늘은 되는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은 평생 결심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와 반대로 후자는, 내일을 위해서는 아무 약속을 못해도 오늘은 바로 살아가는 데서 내일의 인간이 형성되어 갑니다.  우리 모두가 이 순간에 결단해야 할 것은, 이 두 종류의 인간 가운데서 어떤 인간이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순간 나의 사람됨이 곧 내일의 나의 인간됨을 결정해 줍니다.  인생에 있어서 모든 순간이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가장 귀중한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내일이 아니고 오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내일은 내가 오늘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해가 다 지나가기 전에, 내 인생에 겨울이 오기 전에 자신을 한 번 깊이 성찰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금년 한해를 살아오면서 주님을 향한 열심이 좀 부족했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이 부족했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주의 몸된 교회를 더 뜨겁게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내 가족을 좀더 깊이 사랑하지 못했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 뿐인 내 가족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주님 앞에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이웃과의 관계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이 말은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가정과 가정이 벗하여 이웃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세상살이입니다.  결코 독불장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외롭고 처량한 늙은 사도 바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는 지금 인생의 마지막 겨울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먼저 데마가 생각이 납니다.  데마라고 하는 사람은 본래 바울의 제자요 함께 하는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러나 핍박이 어렵고 힘들어서 바울과 같이 동행하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버리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지금 배신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디도가 생각이 납니다.  본문에서 "디도는 갔다"고 했습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바울을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고, 그래서 디도는 자기의 할 일을 위해서 갔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갈라디아로 간 그레스게, 자신에게 해를 많이 입혔던 구리장색 알렉산더.  결국은 모두 떠나가 버리고 바울 곁에는 의사인 누가만 남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겨울 앞에 선 이 늙고 힘없는 외로운 바울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알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갑니다.  이래서 가고, 저래서 가고, 다 떠나갑니다.  그래서 고독합니다.  그에게는 지금 사람이 그립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겨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중해는 겨울이 되면 항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배 사정이 어렵다고 합니다.  만약에 겨울 전에 오지 못하면 그 이듬해 봄에 올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디모데를 보지 못할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고서 어떻게 했는지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디모데는 그해 겨울 전에 로마를 방문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생전에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를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너는 어서 오라"는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서도 다른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지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해 겨울에 항해가 중단되어서 그 이듬해 봄에 로마에 갔을 때에는 이미 바울은 옥중에서 순교하고 난 이후였습니다.  이때 디모데는 스승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가 울고 또 울었다지만 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후회와 한을 풀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원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과 디모데의 이야기는 어쩌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일 수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천하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그를 찾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이웃 아무개에게도 인생의 겨울이 옵니다.  그러기 전에 그에게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 번째 죽음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게 될 영원한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주를 믿지 않아서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 당할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고통의 기간이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0년 20년이 아닙니다.  성경은 '영원히'라고 했습니다.  내 부모가, 내 형제가,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가 정말로 안타깝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사랑과 우정을 갈급한 심정으로 찾는 우리의 부모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혼의 몸부림을 치면서 간절히 부르짖는 친구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삶의 용기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웃의 눈물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을 찾아가십시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십시오.  그리고 부활의 소망을 그들에게 안겨주십시오.

성경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는 같이 죽었습니다.  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고, 한 사람은 천국으로 갔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몸부림을 치며 호소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희에게 증거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겨울 전에 와 달라고 하는 이웃들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쯤은 찾아가 보아야 할 사랑하는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속히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에게 영생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어쩌면 바쁜 시간 때문에 찾아가는 일을 미루다가 디모데처럼 영원히 후회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영영 할 기회가 없는 일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일생동안 단 한번 밖에 없는 기회, 지금 놓치면 다시는 붙잡을 수 없는 기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봄이 오기 전에 세상을 달리할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금년 이 겨울이 가기 전에 누가 죽게 될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구나 존경하는 은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했을 때에 그 영혼의 울부짖음과 고통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복음을 들고 그에게 찾아가십시오.  주님께로 인도해야 할 사랑하는 영혼을 위해 몸부림치며 전도하십시오.  지옥에서도 내 형제에게 이 무서운 심판의 겨울이 오기 전에 복음을 전해 달라고 호소하는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바울은 지금까지의 은원 관계를 정리하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바울과 마가의 관계는 그렇게 좋은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마가를 데려 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마가를 데려오라고 했을까요?

여기에서 나오는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고 우리가 흔히 말할 때 '마가의 다락방' 그 다락방의 주인입니다.  부잣집 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 마가가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따라 나섰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 가버렸습니다.  이 일로 바울은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그래서 2차 전도여행 때에 마가가 찾아와서 함께 동행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으나 바울은 끝내 허락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마가의 일로 동역자요, 후원자였던 바나바와 다투고 서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런 애물단지 같은 마가였습니다.

그러나 애물단지 같았던 마가는 그 후에 열심을 내고, 충성을 다해서 주를 위해 헌신합니다.  그리고 그는 베드로의 수제자가 되고, 우리가 보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얼마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때 섭섭해하던 마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겁니다.

자기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뿐이지만 "그 때 마가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내가 만나서 저를 위로해 주어야지."  "마가야, 그때 마음이 많이 아팠지?"  그 말을 꼭 하고 싶은 겁니다.  이 말은 꼭 하고 가야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용서하고 화목하고….  이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마가를 데려 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니까 마가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지금 바울은 인생의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마가에게 옛날에 서로 막힌 마음을 풀고 화해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격려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를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서로 풀어야 할 사람은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원망하고, 다른 사람에게 허물을 돌립니다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좀더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지금까지 마음 깊은 곳에 쌓여있던 응어리를 풀어야 합니다.  화해하고 위로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가슴에 맺힌 모든 응어리를 다 풀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졌던 묵었던 감정들을 다 푸십시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섭섭했던 감정을 다 풀어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주님께로 좀 더 가까이 가셔야 합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주님께 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과연 내가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내 심령이 주님께 왔습니까?  내가 정말로 세상은 뒤에 두고, 내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돌아서서 주님을 향해 나아왔습니까?  여러분은 진정으로 주님을 내 구주로 삼으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는 회개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엄청난 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 때에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회개했습니다.  베드로는 회개해야 할 기회에 회개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큰 죄를 범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마지막 저녁을 잡수시고 나서 여러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 가운데 하나가 장차 나를 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유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면서 회개를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강퍅한 가룟 유다는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듣기 싫으니까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저주받은 심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로 나아오는 것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오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회가 언제입니까?  지금입니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은혜 주실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닫힌 마음을 여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주시는 은혜를 충만하게 받아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말입니다.  이 시간은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온전히 주님께 나오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이 시간 주님께 나오시기 바랍니다.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좀더 가까이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자비한 주님께서 당신을 부르십니다.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내 신앙에 열심이 없고 뜨거움이 없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신앙의 열심을 회복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막상 인생의 겨울이 닥쳤을 때에 주님 앞에 서지 못하는 불행을 맞이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이라는 동화를 아실 것입니다.  개미는 여름철 열심히 일해서 겨울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라는 녀석은 여름 내내 시원한 그늘에서 게으름만 피우다가 추운 겨울이 닥치자 먹을 것이 없어 이곳 저곳 다니며 먹을 것을 동냥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마땅히 할 일을 해야만 합니다.  세월은 빨리 지나갑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섬기는 것도 기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항상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떠나실 때가 옵니다.  그때는 아무리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우리 가정에도 겨울이 옵니다.  부부간이라 해도 영원히 같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같이 살다보면 서로가 귀한 줄을 모르고 살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등한히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가정에도 겨울이 옵니다.  매일 저녁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어느 순간엔가 돌아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때가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더 귀한 줄을 알고 더 깊이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겨울이 오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겨울 전에 더 열심히 주 앞에서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 행로는 일방 통행입니다.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기회 있을 때에 좋은 일을 많이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더 열심히 사랑하고 헌신하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기회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풍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합니다.  내 앞에 있을 때 붙잡아야지 지나고 나면 붙잡을 수 없습니다.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몹시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젊은 사업가에게 어떤 낯선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당신 사업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주일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이제는 주신 사업으로 이웃이나 하나님을 위한 일도 계획을 좀 하시지요?"하더랍니다.
"그러잖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은 젊으니 좀 나이가 든 후에, 지금 잘 벌릴 때 돈을 좀 더 벌어놓고 할 생각입니다."
몇 번이고 이 사람은 찾아와 똑같은 말을 했고 젊은 사업가는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한참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 내려가는데 이 낯선 사람이 또 찾아왔습니다.
"이번이 내가 당신을 찾아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십시오.  그리고 하늘을 위해 준비를 하십시오."

이번에는 괴롭히지 말라고 짜증을 부리면서 이 사람을 쫓아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제는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 "이제 당신의 때가 되었습니다.  머물 시간이 없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지금 바쁩니다.  곧 중요한 바이어들을 만나야 합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그 순간 갑자기 얼음장같이 찬 손이 목덜미를 거머쥐는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죽음의 사자였습니다.  이제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해도 발버둥쳐도 유언이나 하게 해 달라고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생의 겨울은 찾아옵니다.  그러나 겨울 전에 주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마지막 주일이 있듯이 내 인생에도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아십니까?
우리의 헌신과 사역에도 끝 날이 있습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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